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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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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purewater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74회 작성일 16-07-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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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담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데 쉬파리 한 마리가 비행하며 TV화면을 휙휙 갈랐다. 벽이든 천정이든 어디엔가 붙어 있어야 한방 날릴 텐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녀석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혹시 비행하는 기술만 익힌 채로 날아올랐다가 착륙할 줄을 몰라 쩔쩔 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가련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꾹 눌러놓았다. 비밀리에 고도의 비행술을 익혀 다른 건 몰라도 속도로는 이제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시위일 수도 있고, 예전에 비해 머리숱이 부쩍 줄어든 나를 소파에 죽치고 앉아 연속극이나 보며 세월 죽이고 있는 한물 간 늙은이로 우습게보고 대드는 선전포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속극이고 나발이고 내 눈은 시야에서 잡혔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출몰하는 녀석의 궤적을 쫓느라 어지러웠다. 녀석은 컬러풀한 TV화면을 배경으로 날면 근접비행을 해도 나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앵하고 귓가에서 가장 큰 소리를 냈다가 소멸되기를 반복하는 녀석의 엔진소리에 자동 반응한 내 손엔 번번이 허공만 한 움큼씩 잡혔다. 얼마 전까지 식탁에 앉아 있는 파리를 보면 일부러 파리채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바람을 가르며 휙 나꿔채어 생포한 다음 냅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녀석을 기절시키곤 하였던 손이었지만 이 녀석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사 올 때 어딘가 쳐 박아 두었던 파리채를 찾아야만 했다. 베란다 창고에서부터 신발장과 장롱 위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전에 쓰던 플라스틱 파리채를 하나 찾아내었다. 사람 발바닥 모양에 커다란 엄지발가락이 있고 그 옆에 네 개의 작은 발가락이 올망졸망 앙증맞게 붙어 있는 거였다. 나에게 그건 파리채가 아니라 그 모양 그대로 발바닥이어야만 했다. 너쯤이야 발바닥으로도 잡을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릴 수 있도록 파리채를 발바닥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순간 위대하게 여겨졌다. 이제 이단 옆차기든 내려찍기든 발기술을 부릴 일만 남았다. 녀석은 파리채가 진짜 발로 보였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비행할 때마다 빛을 받은 녀석의 등짝은 비취색을 뽐내며 유성처럼 사선을 그었다. 그 때마다 내 눈알은 휘번덕거리며 휙휙 돌아갔다. 언제까지 그렇게 눈알만 돌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술상 녀석을 어딘가에 앉혀야 했다. 녀석을 진정시켜 보기로 했다. 우선 TV를 껐다. 거실 천정에 나란히 붙어 있는 형광등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죄다 껐다. 파리채는 서부의 총잡이들이 총을 빼들 때처럼 여차하면 잡을 수 있도록 오른손 옆 소파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녀석이 형광등에 부딪혔다 떨어졌다 몇 번 하더니 형광등 반사판 바로 옆 천정에 붙었다. 다리를 모두 세운 걸 보면 극도의 경계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였다. 작은 숨소리라도 스치면 휙 날아갈 태세였다. 파리채를 뒤로 숨긴 채 살금살금 형광등 바로 밑까지 접근했다. 옆 벽면에 붙었더라면 파리채를 정상궤도로 휘두를 수 있으니 가속도를 붙여 때릴 수 있을 텐데 천정이라 영 폼이 잡히질 않았다. 밑에서 위로 올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녀석이 파르르 떨고 있는 걸 보면 그것도 잠깐 주어진 기회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난 뇌성마비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왼쪽으로 꺾고 시선은 천정을 보며 녀석을 겨냥했다. 언제 내 두뇌가 휘두르라는 명령을 내렸는지 내 팔은 전혀 익숙하지 않은 궤적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서 멈췄다. 커다란 발바닥이 파리가 앉아 있던 자리에 가까스로 못 미쳐서 달라붙는 게 보였다. 녀석은 몸을 피하지 않았더라도 죽을 운명은 아니었었다. 한 번 놀란 녀석이 더 흥분해서 내 눈 바로 앞인 줄도 모르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행하였다. 다시 녀석이 어디엔가 앉기를 기다리는 건 전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의용군이나 할 만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누구에게 들키지는 않았지만 내 체면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이놈을 기어이 잡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파리채를 다시 치켜세우고 녀석이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를 노렸다. 녀석의 등짝 빛이 내 시야를 다시 가르는 순간 나는 파리채를 잡은 팔을 뿌리치듯 뒤쪽으로 휙 내 저었다. 그 순간 뭔가 틱 소리 나며 부딪히는 충격이 손끝으로 미세하게 전달되었다. 내 눈은 여전히 날던 파리를 추적하고 있었지만 파리도 왜-앵 소리도 동시에 사라지고 없었다. 마룻바닥을 살펴봐도 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파리의 시체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나는 파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고, 파리는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종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실종이란 흔히 죽은 걸 확신하면서 시체를 찾지 못했을 때 하는 말인데다 녀석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먼 쪽 거실 모서리 구석까지 찾아 봤지만 녀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파리채를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파리채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파리채 발바닥 끝에 뭔가 검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였다. 녀석의 몸은 성한 모습 그대로 거기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파리채 바람구멍에 녀석의 목이 박혀 있었다. 마치 장난하다 좁은 공간에 머리를 밀어 넣었을 땐 잘 들어갔는데 빼려니까 빠지지 않아서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일찍 발견하였더라면 녀석을 구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녀석을 죽게 한 건 내 기술이 아니라 비행 중 발생한 우연한 사고일 뿐이었다. 기적 같은 우연이 나로부터 일어났다고 해서 내가 온전히 승자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여하튼 나는 승전보를 사방에 퍼뜨릴 테고 파리는 전사자로 기록될 테지만 그건 영원히 파리와 나만 알고 있는 사고였다.

이건 기적이야. 무협지에도 이런 장면은 없었어. 내가 비행하는 파리의 목을 저 작은 틈에 끼워 넣은 거야. 이건 어느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놀라운 기술인거야. 그렇게 내 두뇌는 흥분해서 제멋대로 몇 바퀴 헛돌았다. TV를 다시 켰다. 화면이 생동감 없고 밋밋해서 그냥 꺼버렸다.

 

 

2016. 07. 25

C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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