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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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현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8회 작성일 16-08-15 13:41본문
가끔 나는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는 국방군과 인민군들을 보러 간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세상 어디라도 끼어 들어 보려고
자신을 구부리고 거리에 오가는 물주를 엿보는 철물점이 있는 횡단보도 건너,
독일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일 약국을 지나
시청과 도서관을 지나
이제는 돈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와
수용 되어 있는 이 섬에서 그나마 이념과 운명의 포로가 되어 갇혀 있었던
한 넝쿨의 수박처럼 싱그러웠던 포로들을 보러 간다.
포로는 노예보다 나은 사람들 같다.
힘 있는 자들은 전쟁을 벌이고도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협상을 하고 협정을 맺는다
전쟁터에서 누가 얼마나 많이 죽었거나
또 얼마나 죽어야 하거나 그들은 문제 삼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 자신에게 떨어질 이문을 놓고 한 주판의 주판알처럼
잔머리를 굴리며 전쟁통에 떨어진 청춘의 머리통들을 손톱 끝으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이다.
그 협상의 결과에 따라
협정 문서에 적힌 내용에 따라
언제라도 자유를 향해 풀려 날 수 있는 사람들을 포로라고 부르고
그들을 위해 아무도 협상하지 않으며
아무 협정도 하지 않고
전쟁시나 평화시나 자유를 향해 돌아 올 수 없는 사람들을 노예라 부른다
이 전쟁통에는 포로는 별로 없고 죽어도 그만인 노예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대포 소리도 총소리도 폭탄 소리도 내지 않는 이 음흉한 전쟁터가 싫어
대포 소리도 총소리도 폭탄 소리도 들리는
국방군과 인민군이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퍼붓는
쌍욕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이 포로들의 수용소로 온다.
이곳, 거제는 한 때 거대한 선박이였다.
아직 한참 축선 중인, 회색옷을 입은 노동자들이 밤마다
불꽃처럼 현금을 뿌리며
배 밑바닥을 용접하느라 제 안에 뻥 뚫려가던 외로움의
구멍을 땜질하러 갯바위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노래방 골목으로 뿜은 담배 연기처럼 밀려들던 곳
오랜 시간의 지층에 뿌리 내린 이웃이 없어
갑판 위를 내리고 타는 뿌리 없는 인연들이 함께 부딪히며 출렁이다보니
살벌하고 오래 묵은 숲 그늘 같은 안식이 없던
축선 중인 군함 같은 도시였다.
옥포에는 대우가
고현에는 삼성이
잘나가던 시절의 뱃머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처럼 맥이 빠진 도시다.
전쟁으로 밥 벌어 먹던 도시에서 평화는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전쟁이다.
모든 것이 조선 업계의 장기 불황으로 가라앉아 있다.
엄마 아빠가 배 밑바닥을 용접하러 간 사이 네군데 다섯군데 학원을 돌며
하루를 이어 붙이던 아이들이 할머니의 주머니 속에서 하루와 방과 후를 보낸다.
신문과 뉴스들은 글로벌을 탓하고 중국을 탓하는데
호황이던 시절에도 글로벌과 중국은 죽은 물고기처럼 배를 까뒤집은
호락호락한 주머니는 아니였다.
온 나라의 신문과 강철 우산 같은 수신기들이 기를 쓰고 지켜 주고 싶은
여왕이라도 있는 것일까?
경제 하면 경끼를 일으키던 국민들에게 경끼요~ 경끼요~하면서
울던 암닭이 물 먹은 병아리가 되었다.
수장된 아이들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단골네 같은 이야기를 하고,
개 돼지들의 한표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암닭에게는 쪽을 못 쓴다.
아! 정치는 음치가 음의 바보이듯, 천치가 천가지 다 바보이듯,
기계치가 기계에 대해 바보이듯, 정의에 대해 바보인 것을 정치라고 한다.
그의 꿈은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 일자리를 얻고 미국에서 살다 미국에서 죽는 것이라 했다.
미국이 아니라도 한심한 한국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미국이라고 했다.
헬조선을 떠날 것이라고,
헬조선 여자랑 아이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터가 지옥보다 나은 것 같아
나는 육이오 보다 먼저 조국을 지나간 광복절에도 포로 수용소에 와서
국방군과 인민군 사이에 서서 시시각각 영혼을 전향하며 한낮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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