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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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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75회 작성일 16-08-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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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1 / 김지명


  단체로 산행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높은 산마루를 정복하려고 이른 새벽어둠을 헤치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관광버스는 이마에 현수막을 걸고 산악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는 사람이 없어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버스 안으로 올라서니 퇴직하기 전에 함께 산행했던 직장 동료가 보였다. 반가워서 악수하면서 함께 앉으려고 하는데 산행대장이 양해를 구한다. 묻지마 관광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즐거운 산행을 위하여 남녀를 동석시키겠다고 한다.
  등산객은 모두가 좋아한다. 이런 자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도 어색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산행은 자주 하지만, 중년에 남녀가 단체로 등산하기는 처음이다. 사내들끼리 앉으면 발생하는 것은 졸음뿐이지만, 남녀가 함께 있으면 미소와 엔도르핀이 생성된다. 양극과 음극이 합쳐 전등불이 켜져 주위를 밝히는 것과 같다. 음인 체질과 양인 체질이 조화를 이루듯이 안전 산행을 위하여 반드시 남녀가 이인 일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양의 중요성은 이것 뿐만은 아니다. 거북이같이 천천히 산에 오르는 음인 체질은 주로 여성이지만, 토끼처럼 급하게 오르다 쉬는 양인 체질은 대다수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사내들이다. 산행대장은 이인 일조의 작전을 이용하여 자주 오라는 부탁하는 듯하다. 등산 코스와 시간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한다.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말동무를 옆자리에 앉혔으니 되돌아와 하차할 때까지 함께하라고 강조한다. 행복한 여행 즐거운 산행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인다.
  버스 안은 훈훈한 분위기다. 관광버스는 산악인을 태우고 남해 고속도로로 시원하게 달려간다. 내 옆자리에도 중년의 아주머니가 앉았다. 처음 보는데도 고향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도 잘하면서 유머가 풍부하다. 이런 산행을 처음 하므로 수줍어서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지 어리벙벙하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남자를 친구 대하듯 잠시도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수다를 늘어놓는다. 미소를 날려보지만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의아하였다. 아주머니는 지천명이 훨씬 넘어서부터 산에 다닌다고 한다. 네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아무리 많게 보아도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안이라서 그런지 십 년은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는다. 아주머니는 애교스러운 언행으로 자신의 이름을 미숙이라고 밝힌다. 나도 맞장구를 쳐야하는 분위기라서 지명이라고 이름을 밝혔다. 미숙은 깔깔 웃으면서 뭐! 지명수배자, 오지명, 호지명, 아니면 땅이름을 말하는가요? 하면서 능청을 피운다. 미숙이라는 여인은 방정꾸러기 아니 빈 깡통 같아 보였다. 멍하니 앉아만 있었더니 자꾸만 말을 시킨다. 어디에 사는지, 산에는 자주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서 아양을 떤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여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미숙은 상당히 재치 있는 여자다. 처음 만나는 사람답지 않게 여유만만하게 농으로 수다를 떤다. 탤런트 오지명 씨라고 했던가요? 다음 산행 함께하도록 부탁 한번 합시다, 하면서 농으로 이어간다. 다음에 만나면 맛 나는 것을 대접할 테니 산행할 때 배낭을 짊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배낭을 두 개 짊어지라는 게 아니고 여인의 배낭을 내 것과 합치자고 한다. 기어이 두 개를 합치자고 강조하지만, 절대로 그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미숙에게 어리석은 사나이를 이해하라고 했다. 미숙은 내 배낭까지 메겠다고 기어이 합치자고 한다.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곁에 있고 싶다고 한다. 그제야 미숙의 마음을 알고 그렇게 하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미숙을 처음 만났지만, 고향 친구처럼 만만하게 대하며 편안하게 생각하였다. 등산할 때 주의할 점을 알려주기도 했다. 지치지 않으려면 호흡에 걸음을 맞춰야 하며 보폭도 같아야 한다. 절대 처지지 말고 따라붙어야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깔딱 고개를 올라갈 때는 보폭에 호흡을 맞추어 천천히 올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산행 상식을 듣고 있던 미숙은 고개 돌려 바라본다.
  미숙은 산행친구를 원한다. 미숙은 강인한 체력으로 타의 모범이 되겠다며 산행에 자신감을 나타낸다. 나와 산행친구하자고 제의한다. 미숙이는 내가 등산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미숙은 나를 전문 산악인으로 판단하고 산행 친구가 되겠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함께 등산하려면 빙벽도, 암벽도 타야하고 자일에 매달려 양팔 힘으로 바위를 올라야 하는데 할 수 있으면 친구가 된다. 미숙은 특수산행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다니는 산에는 자신감 있다고 한다. 좋다고 했더니 황소 웃음 보인다.
  수다쟁이가 귀를 즐겁게 한다. 말 많은 여자가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자꾸 말을 시켰다.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산행대장은 남강휴게소에서 십 분간 휴식시간이라고 한다. 미숙에 잠시 바람도 쐬고 내리자고 했다. 화장실 다녀오면서 직장 동료였던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재미없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좋다고 하면서 내가 뒷좌석에 앉았다. 미숙은 절대로 안 된다며 함께 있어야 한다고 따라온다. 이제 다 왔으니 친구랑 할 말이 있다고 해도 나중에 하라며 기어이 원위치로 가자고 한다. 버스 안에서 밀고 당기니까 산행대장이 다가와 아기 달래듯 타이르며 정해준 자리에 앉아서 가자고 한다.
  휴식을 마치고 출발하면서 산행대장은 낙오 없이 안전하게 산행하기를 대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남해 고속도로로 달려가는 관광버스는 조용한 분위기며 스피커로 통해 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창가에 앉은 나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다. 들판은 짙은 녹색으로 펼쳐져 싱그러움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두 시간을 달려왔지만, 지루하기보다는 미숙의 애교스런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등산하는 재미보다는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미숙과 대화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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