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3)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결심(3)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22회 작성일 16-08-29 19:13

본문

5

 Q가 내린 동네는 제대로 된 이름이 따로 있지만 ‘5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A양이 나타난 후로는 누군가와 연애할 마음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여자의 체취나 살갗이 맞물리는 감촉이 그리워지면 
이따금씩 이곳을 찾곤 했다. 돈을 내고 교미한다는 사실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돈을 내는 쪽과 받는 쪽 사이에는 순수하게 육체적인 
관계만 존재한다. 중간에 머리 아플 일도, 뒤끝도 없다. 깔끔해서 좋다. 
초반의 설렘이 약간 부족한 감도 있지만, 이건 돈을 받는 쪽의 태도 
문제라기보다는 돈을 내는 쪽의 감수성 부족에서 기안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풋내기로 만들 수 있다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5차’에 들어선 Q는 이런 곳은 처음이라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좌우로는 예의 선분홍색 등이 내비치는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다. 조명을 조금 모던한 색으로 바꾸면 장사가 더 잘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런 엉성한 인테리어에는 언제나 약간의 순수함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이것도 나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건물로 치면 1층에 해당하는 거리의 입구는 백화점과 달리 명당이 아니다. 
입구에 들어서고 한동안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좌우의 반나체들에 반쯤 
발기해서 ‘에잇, 어디든 들어가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중간지점이 제일 
명당이다. 그래, 여기쯤. 

 ‘차장님, 여기 괜찮지 않나요?’ ‘음, 좋아, 좋아.’ 배불뚝이에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차장이라는 사람은 좌우도 구분 못 할 정도로 술에 취해있다. 
옆에서 부축하고 있는 깡마른 사람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으로, 
같이 일하면 무척 피곤할 것 같은 뱀 같은 인상이다. 아마 아부가 특기인 
부하 직원이거나 오늘 접대를 담당하고 있는 거래처의 영업사원일 것이다. 

 적어도 차장이라는 사람은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 큰 환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근거가 없는 지레짐작은 아니다. Q는 몇 주 전에 들렀던 가게에서 
알게 된, 목소리가 매력적인 한 여자를 떠올린다. 그녀에 따르면 거리의 
여자들은 비록 손님처럼 상대를 고를 수는 없지만, 손님과 마찬가지로 
상대에 대한 호불호는 확실히 갈린다고 한다.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부류는 술에 떡이 된 뚱보라고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라면 비록 조루라도 
사정하기까지의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물론 시간제로 받아서 손해는 
없지만 문제는 냄새다. ‘쓸데없이 오래 가는데다 알코올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서 도중에 토할 것 같아.’ 그러다 마침내 사정하고 나면 무거운 몸이 
철퍼덕 고꾸라지며 밑에 있는 여자를 사정없이 깔아뭉갠다. 그 후에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옷을 하나씩 입히고, 땀 냄새 술 냄새 잡냄새로 범벅이 된 
이불을 갈아야 하는 등 다음 손님을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게 
된다. ‘아,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 

 그 다음으로 꺼리는 부류는 -그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미리 물을 
빼고 와서’ 괜히 센 척 하는 손님들이다. ‘누구긴 누구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대학생 애들이지.’ 이 대학생이라는 놈들은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별 
웃기지도 않는 체위를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한다고 한다. 계속해서 이상한 
자세를 강요받기 때문에 팔도 다리도 허리도 무릎도 아프다. 그러는 와중에 
어떨 때는 너무 어설프고 불쌍해서 그 자세에서 배를 잡고 깔깔 웃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여섯 살 난 아이처럼 삐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속으로만 ‘풉!’하고 
참는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에 ‘좋았어? 좋았어?’하고 묻는 순진한 얼굴을 
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한다. 여러모로 배울 것이 많은 여자였다. 

 Q는 오랜만에 스승님이나 찾아뵐까 하다가, 왼쪽에서 명랑하게 ‘오빠.’하고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선다. 왼쪽, 거기에다 이 거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검정색 스타킹이다. 조금은 앳된, 말괄량이 기질이 보이는 얼굴이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서 왠지 피곤해질 것 같지만, 쇼핑백에 담아둔 시향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제라늄 향과 뒤섞인, 어떤 알 수 없는 좋은 향이 발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게 잔향인가. 



6

 ‘오빠 몇 살이야?’ ‘스타킹 보고 꼴렸지?’ ‘신은 채로 할까?’ ‘응? 좋다고? 
나도 좋아.’ 예상대로 말이 많은 여자지만 오빠오빠 하는 톤이 떼쓰는 
여동생 같아서 의외로 귀엽다. 더구나 팬티스타킹이 아닌 허벅지 위까지만 
올라오는 밴드스타킹이다. 아마 특정한 취향을 고려해서 굳이 벗을 필요가 
없는 스타킹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 여자의 상술이자 배려이자 매력이다. 

 스타킹만 남기고 알몸이 된 여동생 같은 여자는 쇼핑백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연신 킁킁거린다. ‘저 쇼핑백은 뭐야?’ ‘향수? 혹시 여자 친구 선물?’ ‘와, 나 
저 브랜드 아는데. 부럽다.’ ‘비싸지 않아?’ 아직 눈이 조명에 익숙해지지 
탓인지 몰라도, 여자의 얼굴에서 어렴풋한 홍조를 발견한다. 역시 앳된 
얼굴. 어쩌면 이 여자도 이 조명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억지로 명랑한 척을 
하는 건지도. ‘자세히 봐도 돼?’ 입술과 유두는 확실한 선분홍색이다. 딱 
사과만한 가슴. ‘조금 작지?’ 부드러움은 한손에 잡혀야 실감할 수 있다. 
너무 크거나 작은 것보다 이 정도가 딱 좋다고 한다. ‘그래? 다행이네.’ 
어깨는 가냘프고 머리카락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아, 거기 간지러워.’ 
다른 곳은 괜찮은데 귀는 엄청 간지럼을 탄다고 한다. 까르륵 웃는 소리가 
영락없는 여동생이다. ‘와, 리본 예쁘다.’ 귀를 한 번 더 간질여서 다리를 
잔뜩 오므리게 한다. ‘아, 여기서 나는 냄새였네.’ 시향지를 집어 들어 
장난스럽게 팔랑거린다. ‘진짜? 이거 가져도 돼?’ 고작 시향지 한 장인데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얼굴 앞에서는 아무것도 들이밀 수 없게 
된다.

 ‘진짜? 안 해도 된다고?’ ‘난 별로야?’ ‘흐음……그래? 오빠 좀 별난 
사람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순간 -정말 짧은 순간-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는데, Q도 그런 표정을 보고 덩달아 안심한다. ‘그럼 여기 누울래?’ 
한손에 여전히 시향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 곱게 모은 허벅지 위를 
톡톡 친다. 옆으로 눕는 게 좋다. 까끌까끌한 스타킹의 감촉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든다. 머리 뒤쪽, 두 다리가 만나는 곳에서는 이상야릇한 
향기가 풍겨오고, 머리 위쪽, 여동생 같은 여자가 고작 시향지 하나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 ‘흐음……. 이게 제라늄이라는 거네. 혹시 뭔가 
결심한 일이라도 있어?’ ‘아, 나 향은 모르는데 꽃말은 좀 알거든. 
유치하지?’   

 검정색 무릎베게에 파묻힌 Q는 여동생 같은 여자가 티스푼으로 
떠먹여주는 제라늄과 온갖 꽃에 관한 전설을 한 입씩 받아먹는다. 
장미는 사랑, 들장미는 시(時), 고독, 소박한 사랑. ‘난 이 들장미가 
가장 좋아.’ 라일락은 사랑의 싹, 수선화는 고백, 보리수는 결혼, 
로단테는 영원한 사랑. ‘라, 수, 보, 로. 쭉 이어지는 이야기 같지? 
사실 이게 외우는 요령이야.’ 카네이션은 열렬한 사랑. ‘그래도 
노란색 카네이션은 절대로 주면 안 된다? 이건 경멸한다는 뜻이니까.’ 

 처음에 순진함 때문에 성욕이 죽었다가, 색색의 꽃말을 그토록 신경 
쓰는 순진함 때문에 다시 성욕이 일어나는 이상한 기분. Q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의 풋풋한 사과에 손을 뻗어, 한 입 살짝 베어 먹는다. 
아린 맛. 언젠가 이 여동생 같은 여자의 이름 모를 아이도 맛보겠지. 
갑자기 노란색 카네이션이 경멸스럽고, 들장미가 불쌍하고, 제라늄이 
미치도록 그리워진다. ‘오빠……. 지금 우는 거야? 무슨 일 있어?’ 
‘미안, 혹시 내가 기분 나쁜 말 했어?’ ‘음……. 그래? 알았어.’ 
‘응, 잠시만 더 이대로 있어.’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68건 40 페이지
소설·수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498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7 0 09-08
497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7 0 09-04
496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8 0 09-03
495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6 0 09-03
494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5 0 09-01
493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2 0 08-31
492 양승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9 0 08-30
491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6 0 08-30
490
결심(4) 댓글+ 1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5 0 08-29
열람중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3 0 08-29
488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9 0 08-29
487 une pip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2 0 08-29
486 김상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3 0 08-28
485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7 0 08-26
484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4 0 08-26
483 박성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7 0 08-25
482 손계 차영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0 0 08-25
481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9 0 08-23
480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6 0 08-23
479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8 0 08-22
478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8 0 08-19
477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7 0 08-17
476 강현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8 0 08-17
475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7 0 08-15
474 강현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8 0 08-15
473 바람고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1 0 08-14
472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5 0 08-14
471 강현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7 0 08-13
470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6 0 08-13
469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4 0 08-11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