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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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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572회 작성일 16-10-0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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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산동네에 땅거미가 늘어진다. 철모르는 어린 여동생의 손을 잡고 고아원 밖으로 나와 울퉁불퉁하게 잘 다듬어지지 않은 계단에 마주 앉았다.

 

오빠, 엄마 언제와?

 

그 질문에 가슴에 서리가 앉아 울컥 화를 냈다, 라는 담담한 고백을 늘어놓았다.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가난해야하나. 산동네에서 보던 가로등 불빛 사이로 발을 딛기가 무서웠던 나날, 넓은 허공에 숨 막히던 나날, 여동생은 항상 밥을 먹으면서 허기에 울어야만 했었다.

 

오빠, 사람이 그리워. 커져가는 몸뚱이 어쩔 줄 몰라. 근데 사람이 그리워.

 

버림받았는데 가진 게 없어 버릴 줄 몰라 항상 허기가 졌었단다. 난 그 말이 너무나도 서러웠다. 녀석과 나는 어릴 적 동창이었을 뿐이다. SNS에서 친구로 등록이 되어있을 뿐 안부를 묻진 않았었다. 어느 하루는 녀석의 동생이 날 자기 오빠 친구라며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묻곤 했었다. 그녀에 대한 건 그 기억뿐이다.

 

살고 싶었단다. 너무나도. 여동생 손을 꼭 붙잡고 계단에 앉아서 야경을 매일같이 바라보면서 저 넓은 세상 어딘가에 같이 살 곳이 생기겠지, 하며. 세상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나 자체가 세상인데 세상이 날 버리겠는가. 사람이 버렸다. 어릴 때부터 녀석도 고아라는 낙인을 찍고 자랐는데, 하물며 여동생이라고 그러지 않았겠는가. 어른이 되면 그런 소리를 안 듣고 자랄 줄 알았는데, 그 사실이 끊임없이 따라와 목덜미를 잡는다. 저 휘황찬란한 야경에 발을 디딜 수 없어 우왕좌왕하고 말았다.

 

그 동안에 사귀었던 그녀의 연애에 대한 사정을 말해주었다. 죄다 고아란 이유로 쉽게 여겨지고 짧은 연애에, 겨우 결혼할 상대를 만났다 싶었더니 그 쪽 부모에게 고아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얼굴을 내미느냐, 라는 질타까지 받아야만 했다고.

 

신경림의 시처럼, 가난하다고 사랑까지 모르겠는가. 저 휘황찬란한 야경에 그림자처럼 파묻혀 행복한 사람의 몸짓을 상상해보던 때가 있을 것이다. 달빛들이 올망올망 피어오를 때, 별들이 산동네에서 아스라이 멀어지던 날들도, 밤의 찬 공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찹쌀떡 장수의 외침도 그대로다 그녀는 행복을 따라했던 그림자였다.

 

텅 빈 장례식장에 아침 서리들이 조문을 찾아온다. 사람이 말해야할 언어를 잃는 순간은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사라졌을 때다. 가슴을 쥐어짜며 끅, 끅 비명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뻗을 수 없었던 가난한 내 손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중이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괜찮아, 라는 말을 입으로 내뱉고 목구멍으로 피눈물을 삼켰다.

     

산동네는 변한 곳이 없었다. 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어쩜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괜찮다, 라는 말로 자신을 속이게 만들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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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베르사유의장미님의 댓글

profile_image 베르사유의장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 잘 보고 가옵니다  감사드리옵니다
여리고 순수한 마음에 장미꽃물이 들듯 수줍은 미소 찰랑거리듯 사랑의 즐거움 속에 빠져 들듯 그렇게 잘 보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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