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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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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78회 작성일 16-12-14 15:31

본문

올해는 첫서리가 일찍 내렸다.
가을걷이를 하는 들녘에
배춧잎은 숨을 죽이고 시들하고
무청은 낙엽이 됐다.
산마루에 지는 노을을 벗 삼아
수확을 하였건만
노란 알 속을 승용차에 싣고 보니
개수만 늘어 갈 뿐이었다.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는
주말이 되어야 김장을 할 수 있었다.
아파트 거실에 쌓아놓은 배추 더미와
무를 담은 자루들이
한 주를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보일러 분배기에 거실 밸브를 잠그고
어렵게 수확한 김장거리를 걱정해야 했다.

어머니는 그 한 주를 지켜볼 수 없어
날이 새면 복지관에 나가시던 낙을 접고
팔을 걷어붙이셨다.
배추를 절이고 무를 손질하고
양념을 버무릴 육수를 끓이고
갓을 쪽파를 다듬고
미리 손질해 놓은 마늘을 다지고
생강의 껍질을 벗겨놓고
찹쌀풀을 쑤었다.
생새우와 새우젓, 멸치액젓, 황석어젓
염수를 뺀 천일염을 어렵사리 구했다.
올해도 김장에 넣는 태양초는
가족들의 겨우살이가
삶의 열정처럼 붉었다.

어릴 적 산 동네를 오르내리던
연탄 차와 지게꾼은 볼 수 없다.
된장, 고추장은 마트에서 사 먹는 시절이다.
늘 아쉬운 것은
된장을 담아야 맛볼 수 있는
세월이 빗는 조선간장이 그리웠다.
김장김치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어찌 가격만 놓고 정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삽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당신의 막노동 벌이에 월동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걱정이었을지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아범아, 내 방바닥에 불이 안 들어 온다."

어머니의 말씀에
보일러 분배기를 점검하였지만
모든 밸브는 열려있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을까?

"거실 바닥은 절절 끊고 있는데
미운것이냐?
빨리 죽으라고
내방 보일러만 잠갔냐?"

"그럴 리가….요."

사철 런닝셔츠 바람에 츄리닝바지로 사는 집이다.
너무 보일러를 뗀다고
아껴야 산다고
어머니의 잔소리가 귀에 물리는 겨울이다.
세탁기를 돌리면
헹군 물에 묵은 옷을 빨고
걸레를 빠시던 어머니의 근검절약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이었다.

나이를 드시면 냄새가 난다고
목욕을 자주 하셨다.
어느 할머니를 쫓아간 바자회에서
재래시장 가판에서
'아 글쎄, 멀쩡한 옷을 안 입는다고 주었다.'며
딸네 집에서
철이 지나고 색이 바랜 것 같았는데
아들이 사 준 옷이라며
새색시처럼 곱게 화장을 하신 얼굴에
단장을 하신 옷 매무새는 멋쟁이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소피를 본 화장실 물이 아깝다고
내리지 않으셨다.

속옷차림으로 '망측해라.'

"뭐 어떠냐, 다 늙은 할망군데~"

"어머니, 아이들이 보면 흉봐요."

아이들이 짬깐 화장실에 간 사이
그 새를 못 참고 아이들의 방불을 끄셨다.
거실 TV볼륨이 너무 크다시며
'소리를 낮쳐라' 하시는 걸 보면
TV전기도 아까워 그러시나
TV가 닳는다고 그러시나 생각했다.

어머니방 TV앞에서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 무순 궁상이예요.
식탁에서 드세요!"

그렇게 입이 달토록 부탁을 해도

"내가 허리가 아파 그렇다."시며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벽을 마주보고 붙은 식탁에
여섯식구가 앉아 밥을 먹는다는게
아이들의 등치는 산만한게
'손주들에게 불편할까?' 생각하신
어머니의 배려였다.

'내리 사랑일까?'

아내는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으라 잔소리를 한다.

"우리집은 무슨 이산 가족이예요.
뿔뿔히 흩어져서 밥을 먹게요."

장인이 한지공예로 연꽃을 덫붙인 팔곽상에
독상을 차려
나는 TV앞에서 밥을 먹는 것이 편했다.

"어머니, 제발~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는
설거지를 하지 마세요."

"빈 그릇은 나오는 되로 바로바로 씻어
어퍼놓는 게 좋다."

어머니의 말 뜻에는
설거지감을 미루면 보기도 않좋고
그릇에 말라붙은 밥풀이며 기름끼가
씻기도 힘들고
물도 많이 든다는 지론이셨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행동은
'시 어머니의 구박'이라는 걸
어머니는 모르셨다.

그릇을 씻으시고
냉큼 들어가신 어머니는
'내 할일은 다 했다.'
말씀은 안 하셔도 어머니의 웅변이었다.

막네딸이 사 준 TV보다는
큰 누님이 사 주신 라디오가
어머니의 친구였다.
"어머니, 라디오를 끄고 주무세요."
말을 해도
잠이 드실 때 까지
라디오를 들으시다가 주무신다.

'한 푼 두 푼 살림에 보테볼까!'
젊어서 다니시던
창문도 없던 봉제공장에
힘이 드실 때마다 즐겨 들으시던 라디오는
어머니가 세상에 이어놓은
삶의 끈이었다.
때로는 눈물겨운 사연이며
평범한 사람들의 너무도 똑같은 삶의 웃음들이
자꾸 들으면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유행가가
그리고 세상 사는 뉴스들이
어머니의 인생에 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이제는 동네 어린 아이들도 따라 부르는
한 물 간 트롯트가
어머니의 방에서 음성으로 흘러 나오면
이네 곧,
안동역에 첫 사랑이라도 두고 온 사람처럼
노랫소리가 구성지게 넘어갔다.

어느 날은
노래교실에서 배운 신곡 발표라도 하시는지

"아범아, 이 노랫말을 들어 보래이~"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자네는 좋은 친구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두 사람
전생에 인연일꺼야~

진신몬의 '보약같은 친구'의 노랫말이었다.

이쯤 듣고 보면
어머니가 매일 다니시는 복지관이 없으셨다면
노후의 삶은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상상이 갔다.

-사랑도 해봤고
이별도 해봤지
사는거 별거 없더라
언제갈지 모르는 인생
우리 둘이서
웃으며 살아가보자~

노랫말에 돋은 가시가 순간
목구멍이 컥 막히는 것이
내가 느꼈던 것 처럼
어머니의 지금 심정을 항변하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수절하시며 육남매를 키웠던 어머니,
당신의 마지막 남은 삶에
복지관에서 만나는 친구분들의 안부와 근황은
어떤 힘이었을까를 짐작하게 된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
아~아~아~사는 날까지
같이가세 보약같은 친구야~

사람은 나이가 들면
세 가지가 옆에 있어야 했다.
하나는 병원이요
또, 하나는 술이라 했다.
그리고 친구.

'나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께서 부르시는 보약같은 친구가
한 둘쯤 남아 있을까~'

그 전에 내가
친구에게 보약같은 친구가 되 주어야
할 일이다.

"아범아,
내 방바닥에 불이 들어온다."

"네,
오늘 제가 고쳐놓고 출근 했어요."

보일러 분배기에 손잡이가 헐거웠는지
부속이 헛 돌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어머니가 미워서 보일러를 잠갔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무실에서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를
전화로 듣고 보니
괜스레 미안해 지는 마음은 어찌할까~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다.
'고생했는데 실컷 고기라도 먹어라~'
애비 마음을
고깃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풀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렸다.
해 마다 달력이 한장 남으면
묵은 김치 쫑쫑 썰어넣고
당면도 두부도 넣고
왕만두를 빚어 먹을 참이었다.
어머니가 좋아 하시는 대봉을
한 박스 사고
가족들이 먹을 귤을 한 박스 사서
배달을 시켰다.

"야야~,
네가 사 준 대봉도 아직 남아 있는데
뭘, 또 사왔냐~"

'보고 배운다고 하였던가'
친구를 만난다며 늦게 들어 온 녀석이
주머니가 가벼웠는지
여섯개 짜리 대봉을 사 들고 들어 왔다.
내가 사 준 대봉 박스는
이미 비워 버린지 오래였다.

"어머니, 아들이 먼저 대봉을 하나 먹거든
약을 탔는지 죽었는지 잘 지켜 보고 드세요."

아들의 농담에
웃음으로 화답하시는 걸 보면
어머니의 화증이 조금은 가시지 않았을까?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인지
어머니의 대봉을 하나 들고 안방에 드는데
아내가 말했다.

"어머니, 대봉이 아직도 남아 있었어요?"

"응, 아직도 새것같이 그대론데~"

"어머니는 감이 무를 때까지
두고 드실 성격이 아니신데, 이상하시네~"

나는 시치미 뚝떼고 있었다.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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