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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수기4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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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교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5회 작성일 19-02-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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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이라는 말은 실은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 판매한 책의 돈을 수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월 말에 계산을 해준다는 말로 돌려보낸 다음 월 말에 가면 집에 아무도 없거나 심지어는 남 몰래 이사를 가버리기도 합니다. 위트는 인간들에게서 정당하게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빌미 같은 것을 제공합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그래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넥타이를 사고 귤을 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다른 곳으로, 어디 좋은 곳으로 가서 남은 돈을 다 써버릴 요량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저는 택시기사에게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 중 안 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소용없는 일이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안 되는 것일까요. 세 명이 가면 한 사람이 말했을 때보다 좀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디로 우리는 가야 할까요. 저는 그들에게 어디로 갈까 물었지만 그들 역시 목적지가 없었습니다.

 

결국엔 택시기사가 우리를 내리라고 했습니다. 참 우습지요. 우리는 중국집에서 나와서 더 근사한, 이를테면 달력 속의 ‘그러니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들이 있는 곳이라든가 크라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든가, 좀 더 따뜻하고 차가운 술이 있는 곳을 찾아서 가려고 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집에서 나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들은 스무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독한 고독의 비릿한 냄새를 아내는 본능적으로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연히 만난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내는 나의 고독과 불안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렇게 교접함으로써 아내의 불안도 같이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재작년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것 같아서 후회가 극심합니다. 이 후회가 지금 저의 심장을 찌르고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만 같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억지로 위트를 내 보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귤은 아내가 시체가 되고 나서야 실컷 먹습니다. 이 삶이 거짓으로 똘똘 뭉친 위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누군가라도 붙잡고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했어요. 그렇게라도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의 비관적인 양심 때문에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죽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마음만으로 먹었던 단적인 비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비관이 심해지면 자동차에 치여 죽어 버렸으면, 어딘가에 떨어져 죽어버렸으면, 병이라도 걸려 깔끔하게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죽어버렸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의 시체를 팔아먹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저 같은 놈을 만나서도 3년 동안 잘 웃었습니다. 세상엔 다행히 여자의 특징만 중점적으로 내보이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안 형이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몹시 슬펐습니다. 제 아내 얘깁니까? 저는 안 형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내의 특징은 너무 잘 웃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하는 말인지,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인지도 모를 이 말은 제가 듣기에도 몹시 슬펐습니다. 정말 슬프고 아주 슬펐습니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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