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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수기8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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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교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6회 작성일 19-02-2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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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간 공포가 심해졌습니다. 여보라고 흐느낄 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일 낮에 오라며 대문이 닫혔을 때 저는 인간 공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이란 어디를 가도 있습니다. 인간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매일 격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무시를 당한다는 건 본디 인간 공포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대문 저 안쪽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무섭고, 귤을 팔던 리어카의 귤 장수도 무섭고, 술집에서 모르는 이들끼리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무서워졌습니다. 제게 남은 사람이라곤 오늘 처음 만난 안 형, 김 형 저 둘 뿐입니다. 저들은 오늘 밤 저와 함께 있어 줄 겁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아이처럼 혼자서는 이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하나의 방법만이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 덕분에 얼마간 혼자서도 서울의 거리를 다니며 외판원 일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가 저를 잘 조종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건네주고 받고 하는 어색한 손놀림에서, 받을 돈을 받아야 하는데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마땅한 말을 하는 것에서, 인색한 사장 앞에서 인색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하는 위트 있는 표정을 짓는 것에서 오는 어색한 침묵에서 아내는 저를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가면 아내를 안을 수 있었으니까요. 잘 웃는 아내를요.

 

그때 공포의 냄새가 저를 덮쳤습니다. 울면서 잡고 있던 대문에서도, 골목의 벽에서도, 바닥과 전봇대에서도 인간 공포의 냄새가 났던 것입니다. 술, 술이 이 공포를 조금 없애줄 것입니다. 저는 일어나서 힘이 빠진 채로 그들에게 걸어갔습니다. 몇 발자국 안 되는 걸음을 걷는 동안 술보다는 잠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비틀비틀 걷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로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인 채 골목을 벗어났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필요 이상 고요한 거리에 불었습니다.

 

몹시 춥군요. 저는 그들이 걱정이 되어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데리고 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안 형이 방을 따로 잡자고 했지만 김 형이 한 방에 모두 같이 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도 물었지만 저는 어떠한 의견도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렵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무 곳도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관에 들어서는 것이 거북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들의 거북스러운 감정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와 같이 있어주기만 바랄 뿐입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김 형이 그렇게 말을 해 주어서 저는 또 한 번 열심히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곤하다며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잠을 자기로 하자고 안 형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만,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말을 해 버렸습니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라는 말로 나를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화투라도 사서 같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절실했습니다.

 

인간 공포도 무섭지만 혼자서 고독 속에 갇히는 것이 지금은 더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바람은 역시 무시를 당하고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쿨쿨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월부 책값을 받으면 그들을 데리고 창녀를 안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빌미를 내보였을 때는 그들을 경멸하는 웃음을 보였지만 저는 저를 경멸하기로 했습니다. 창녀는 여성도, 인간도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버린 발광 존재이기 때문에 창녀의 품에서 밤새 안심하고 서글플 정도로 잠이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독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창녀와 저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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