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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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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도일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19-04-25 20:08

본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시인의 시「꽃」의 이 대목에서 나는 막연히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만 했을 뿐이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가한 날이면 이른 아침과 저녁에 자전거를 탄다. 내가 사는 곳이 구리시기에 왕숙천으로 해서 구리한강시민공원 그리고 장자못을 달린다. 주변에는 패랭이, 개망초, 강활, 아기별, 구절초 같은 다양한 꽃들이 자라고 있다. 그들 곁을 지날 때면 그 예쁜 꽃들이 거기 있어줘서 여간 고맙지 가 않다. 그래서 그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눈인사로 대신한다. 며칠 전부터는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했다. 저녁에 나가 달이 환한 밤이면 달맞이꽃과 달이 밤새 마주보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뿐,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 존재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개망초를 보는 순간 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얗게 언덕을 가리고 있는 개망초가 마치 소복을 한 여인이 망연히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전날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달리던 것을 멈추고 개망초 곁으로 갔다. 잠시 살펴보다 향기를 맡아보았다. 싱그러운 풀내음과 연한 망초꽃향이 코끝을 스쳤다. 잠시 그 옆에서 세상을 떠난 지인을 생각했다 그러다 자리를 떴다. 그때부터 그 앞을 지날 때면 잠깐씩 쉬어가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런 가운데 개망초는 나에게 단순한 개망초가 아닌 특별한 것으로 변해갔다. 내가 아는 지인의 죽음을 나처럼 슬퍼하는 꽃이었다. 이때에 비로소 나는 김춘수시인의 시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읽어 낼 수가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다, 개망초는 지인이 죽기 이전까지는 그저 아무데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지인을 잃은 슬픔을 안고 개망초 곁으로 다가간 다음부터는 아니었다. 개망초는 나의 슬픔을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개망초가 걱정이 됐다. 해가 너무 뜨거워도 걱정이 됐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가면 개망초는 벌써 멀리서 나를 보고 반갑다 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띠고 그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마다 개망초는 싱그러운 향기를 건네주었다. 어쩌다 밤에 찾아 갈 때면 우리는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같이 헤어보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혼잣말처럼 개망초에게 물었다.

“너는 너 아닌 다른 무엇이 너에게 또 다른 의미의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니?”

개망초는 잠시 망설이는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자신이 나 아닌 다른 것에서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거랍니다. 그 순간 둘이는 하나가 되죠. 그렇게 될 때면 난 하늘이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고 별이 되기도 하죠, 어떤 때는 달빛이 되어 바람을 타고 날아보기도 한답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는 당신이 되어보기도 하죠. 그 때문에 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요. 왜냐하면 그들은 또 다른 모습의 나이니까요.”

 

놀라웠다! 

개망초는 단순한 개망초가 아니었다. 개망초는 자신을 넘어 모든 것들을 자신 안에 담고 있었다. 그러고는 언덕에 서서 그들을 한껏 사랑하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인을 잃은 슬픔이 이리도 오래 가는 것은 개망초 말대로 지인이 또 다른 나 자신일 수도 있어서일까...  

나는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가고 있다. 일이 있어서 며칠 동안 개망초를 찾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망초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따라오던 흰 구름이 뒤쳐지고 미루나무에 앉았던 참새가 나를 보더니 뽀르릉 날아올랐다. 내가 가고 있다는 것을 개망초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일 것이다. 언덕에 올라서니 멀리서 개망초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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