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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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9회 작성일 19-11-21 02:45본문
가을의 기슭이다
흐름의 갓길로 밀려 나온 것들
줄에 묶인 보트에 달라붙은
부유물처럼 젖은 낙엽들이
마음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어디론가 같이 휩쓸려서
흘러가지 않아서 좋은 시간이다.
따돌려지고, 버려진 것 같지만
쓸쓸할 수 있어서
침전물처럼 오히려
계절에 침잠되는 것이다
붉고 노랗게 물든 잎들을 보면
푸른 것도 아집이구나 싶다
이래도 곱고 저래도 고운 것인데
굳이 푸르러야 한다고
날을 세우고 산 것 같기도 하다.
광합성이란게 결국 남 좋은 일인데
누이 좋고 매부 좋다보면
결국 푸름이 베여나는 것인데
푸를려고 푸른 나무처럼 살았나보다
갈 때가 되면 좋은 것 먹고
좋은 것 먹고, 좋은 데 가야할 것 같은데
저 울긋도 하고 불긋도 한 잎들이
그러는 것 같은데,
사실 나뭇잎은 금식중이다.
색을 가려 입지 않고,
어디를 갈까가 아니라 어떻게 갈까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느긋하게 즐기듯이 가거나
툭, 깨끗하게 수직낙하 하거나
휙 날려서 내 그늘을 벗어나보거나
이렇게 잦은 가을이 나를 다녀 갔는데도
단 한번도 저래보지를 못했다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남는 침묵과 마주하지를 못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나보지 못했다
혹독한 찬 바람에 벌거벗은 나를
던져 보지 못했다
자주 산보를 나갈 일이다.
지금부터 봄이 올 때까지
저 알몸의 수도사들이랑 안면을 트고
등과 가슴을 부딪히며
절친해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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