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가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0-02-06 16:09본문
키우던 고양이가 가출을 했다
가출을 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나는 어떤 감정이 일었지만
그냥 툭 던져진 짐가방 같은 것이여서,
일단 바쁘니까 걸리적거리지 않는 자리에
밀어놓자는 심정이였다.
그러다 퇴근을 했고,
짐가방의 지퍼를 열듯 마루의 문을 열었고,
늘 내 인기척을 듣고 마루에 나와 있던 고양이가 없었고,
꾹꾹 눌려 있던 옷가지들이 열린 지퍼 사이로 미어져 나오듯,
나는 엉엉, 가방에서 엉클어진 짐들을 몽땅 꺼내듯 울었다.
발정기가 된 고양이가 오늘 아침에 오줌을 싼
퀸 사이즈의 극세사 이불이 욕조에서 거대한 고양이처럼
거의 식빵 자세로 앉아 있었고, 새벽에 싼 똥 덩어리가
꿀꽈베기처럼 몇 점 뒹굴고 있었고, 고양이가 발톱을
다듬느라 주방 벽에 갈기갈기 발겨 놓은 벽지가 내 심정을
그대로 그려 놓은듯 했다. 창밖에서 가끔 흘러드는
낯선 암컷 냄새를 맡으려는지 틈만 나면 앉아있던 창가에
장미과 장미목의 식물처럼 앉아 있던 가시 돋친 녀석이
사라진 것이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아예 있지도 않았던
녀석이, 이제는 내 가슴의 거대한 구멍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 원래 있지도 않았던 것을 잃고 나는 우는 것일까?
이제 나는 고양이를 다시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한 녀석이 없어진 것은
이 세상 모든 고양이가 사라진 것이다.
어떤 예쁘고 품종이 희귀하고 값비싼 고양이도
모두 사라진 것이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