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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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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영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9회 작성일 20-03-16 10:27

본문

  매화를 찾아서

   어둠이 걷히기 전부터 TV 속의 예쁘장한 아나운서는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고 극성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새벽이 어둠을 이을 무렵 나는 집을 나섰다. 오늘 일정은 빛고을 광주를 거쳐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까지. 젊었을 때 나는 시간이 나면 혼자서 훌쩍 집을 떠나 이 땅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가정을 이루면서 나의 여정에는 늘 가족이 함께 하였다. 언젠가 우리나라 지도에 나의 발길이 닿았던 곳을 덧칠해 보았더니 지도가 새까만 거미줄로 변했다. 물론 거미가 만든 자연의 거미줄은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모양이로되 내 여정의 거미줄은 성盛한 곳과 소疎한 곳이 불규칙적이기는 했지만… 하긴 성한 부분은 벌레가 갇혀 있는 곳이라 생각하면 또 그렇게 생각되기도 했다.


  올해 겨울은 여느 해 보다 많은 눈이 내렸다. 또 다른 해 보다 특히 추웠다. 산비탈 응달진 곳에는 3월이 내일 모레 인 아직까지도 흰 눈이 남아 있었다. 겨울은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 새로움은 동면冬眠하던 생명들이 하나 둘 깨어나고,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곧이어 울긋불긋 화려한 꽃들이 피어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매화꽃.


  이번 여정의 목표는 겨울 속에서 봄의 전령傳令인 매화꽃을 찾는 것. 작년 가을 옛날 자료를 찾다가 앨범 속에서 젊은 시절에 그려 놓았던 매화 그림을 발견했다. 영원히 잃어버릴 뻔 했던 그 그림을 찾아내곤 잊고 있었던 젊은 시절을 되찾은 양 흥에 겨워 매화에 관한 시와 글을 지었다. 시ㆍ화를 함께 하니 그럴 듯한 작품이 되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주니 평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 전 계절은 봄을 향해 치닫는데 뒤늦게 닥쳐온 꽃샘추위 때문에 내가 사는 움거窇居 근처에는 봄소식이 감감이었다. 성급한 마음에 남녘 땅 어딘가에 오고 있을 봄을 마중 나가기로 결심했다. 예로부터 매화꽃이 피면 봄이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 했다. 이를 매신梅信이라 한다. 나는 옛 선인들처럼 매화꽃을 찾아서 봄을 맞이하러 나선 것이다. 허 참, 옛날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어느덧 나의 심신도 늙고 지쳤다는 말인가? 하지만 가족들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 같았다.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은 제 할 일이 있으므로 동행하자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고, 아내는 혼자 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홀홀단신 떠나게 되었다.


  아침 7시35분 발 광주행 고속버스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구하고 승객이 제법 많았다. 아침 햇살을 차창으로 받은 채 버스는 시간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설렘은 떠나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감정이고 집을 나서면서부터는 기대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번 여행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오늘은 옆 자리에 60대 할머니가 앉으셨다. 살짝 눈인사를 한 다음 조금 뜸을 들여 말인사를 건네려고 쭈뼛쭈뼛 하는 순간 할머니는 이내 눈을 감아 버리셨다. 잠에 들려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실례가 되겠지?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마음 편하게 가는 여행에는 주제가 밝은 내용의 읽을거리가 좋다. 그래야만 중간에 잠이 들지 않고 끝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꺼내 든 책은 금강반야바라밀경. 줄여서 금강경. 참 어이가 없는 결정이기는 했지만 나는 금강경을 꺼내들었다. 정본을 보다가 해석본을 보다가 번갈아 보는 사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역시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나에게 금강경을 권한 스님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으니 청정한 마음으로 독송讀誦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해 질 거라 하셨다. 그러나 나는 주위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한 번도 끝까지 독송을 마친 적이 없다. 그저 머릿속으로 읽고 입 안에서 중얼거리다가 ‘이 말씀의 뜻은 무어지?’하며 해석본을 뒤적여 그 의미를 되새겼었다. 알 듯 모를 듯… 그러니 마음의 평안을 얻기란 애당초 그른 일이었다.


  설핏 든 잠에서 눈을 뜨니 버스는 산허리를 감돌고 있었다. 얼핏 스쳐지나가는 이정표로 미루어 보아 내장산 줄기인 것 같았다. 버스가 허겁지겁 산마루에 오르니 그 곳은 장성 고개. 멀리 무등산 부드러운 산줄기가 보였다. 아련한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문득 시상詩想에 잠겨 들었다.

다시 찾은 광주에서


어디까지 왔나
봄소식이 궁금해서
짐 보따리 달랑 매고
남녘 길을 나섰네


빛고을 광주
가까워질수록
푸릇푸릇
연녹색이 물들고
벌름벌름
봄 냄새가 풍기는 듯 하고


젊은 시절
나의 땀방울, 눈물방울, 핏방울이
스며들던 곳
일 년 가까이
땅 냄새 맡으며 한숨 쉬던 곳
맨몸뚱이로
땅과 맞대고 호흡하던 곳


그 후로도 삼년 동안
이 땅의 공기를 숨 쉬며
살아갈 뻔 했던 곳


그러나 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나는 빛고을 광주와 멀어져 갔었지


그리고
다시 찾은 빛고을


강산이 세 번 바뀌어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등산
부드러운 능선

가까이 갈수록
늠름한 그의 자태
어떠한 곤경에 처해도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묵묵히 이 땅
이 사람들을 지켜주던 산


무등산의 정기가
이 땅에 서려
빛고을이 되었는가?


어느새 광주 터미널
열려진 버스 출입문으로
빛이 한가득
들어온다


  광주 매월산 구룡사. 가는 길에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았지만 매화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봄소식이 도착하지 않았단 말인가? 스님은 여러 처사處士님들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선약이 없었던 나는 멀찌감치 서서 주위 풍광을 돌아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들른 내가 잘못이니까… 하긴 연락을 취했더라면 오늘은 바쁘다는 말씀을 하셨을 테고 그러면 광주행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리라. 그리고 설법 듣기는 저금해 놓았다 치면 나중에 다시 찾을 명분이 되니 이 또한 좋은 것 아닌가? 나는 다음 목적지로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 남사마을은 일제시대에 선친이 태어나신 곳. 소학교(초등학교) 때까지 사시던 곳. 선친은 어린 시절 인근 마을에 있는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신 후 읍내 단성소학교를 졸업하시고 이내 서울로 유학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러나 고향 집은 그대로 남아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나의 고향은 아니지만 제2의 고향 같은 곳. 고향집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마을에 대한 나의 기억은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 어렸을 때, 아마 5 ∼ 6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 마을에 처음 내려 왔다. 아버지는 고향집에 나를 홀로 남겨 둔 채 일행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셨다. 그 때 나는 모든 것이 생소한 이 시골집에서 하루 온종일 이름 모를 풀들과 말동무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7월 그 옛날 아버지의 길을 따라 이곳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지리산에 올랐다. 천왕봉 심술궂은 바람에 등산 모자를 날려버리고, 다시 이 마을로 내려와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남도 각지를 돌았다. 그 때 남도 곳곳에 사시던 친지 분들께 누나의 결혼 청첩장을 전하는 특사였다고나 할까? 그 이후로도 지리산 등반을 위해 또는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끔 이곳을 찾았었다.


  이 마을은 옛날 모습으로 남아 있는 기와집 여러 채가 그대로 있어 경상남도 한옥 보존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옛스런 담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그 이름도 예쁜 예담촌이라 하던가. 또 마을 앞에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예전에 이곳에 들렀을 때 마침 친척 할아버지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서툰 솜씨나마 힘을 보태 주었는데 그 때 논두렁에서 새참으로 먹은 시원한 콩국수와 막걸리 한 사발, 지금 생각해 보아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 벌판이 모두 딸기 하우스로 탈바꿈해 있었다. 고향 땅, 고향 집을 지키고 계시는 연세 80 넘으신 숙모님은 여전히 건강하시고 어김없이 살갑게 맞이해 주셨다. 밤늦은 시간까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끝이 없었다. 숙모님은 나 잘 방 따로 준비하시려 하였으나 내가 극구 말렸다. 나이 적당히 먹은 조카가 나이 많이 잡수신 숙모님하고 함께 잔다고 해서 누가 소문이라도 내겠느냐며 함께 자자고 했다. 숙모님도 못이기는 채 그렇게 했다. 재작년 말 수십 년 동안 모시던 시어머니를 여읜 후 혼자 주무셨는데 다 큰 조카가 와서 함께 자자고 하니 얼마나 기쁘셨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뜨락의 동백이 빠알간 꽃을 피우고 있었고, 천리향, 매화는 꽃봉오리만 올라와 있었다. 동백이야 겨울부터 피는 꽃이니 당연한 것이고, 아직까지 이곳에도 봄소식이 도착하지 않았단 말인가? 안타까운 것은 또 있었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 주던 우물이 말랐다는 사실. 고향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을 집집마다 모두 그렇다고 했다. 근래 겨울 가뭄이 심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범인은 따로 있었다. 너른 들판을 차지하고 있던 비닐하우스에서 지하수를 대량으로 퍼올리기 때문이라고… 타지 사람도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속만 끓이고 있다고 하셨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마을 앞산에 누워 계신 아버지 묘소로 향했다. 내 머릿속에는, 아니 가슴 속에서는 또 한 편의 시가 지어지고 있었다.

남사마을에서


꽥∼ 꽥∼
검은 색 증기기관차는
슬픈 소리를 내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옆에는 아버지
여섯 살짜리 꼬마는 아버지 손만
꼬옥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 나절
기억은 끊어졌다
다시 이어져
물레방아가 나오고
돌담길이 나오고
커다란 솟을대문이 나오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아무도 놀아 주지 않는
그 마을에서

나는 혼자
돌담 밑에 솟아난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거기까지 남아 있는데
그리운 아버지
두류산 자락
고향 땅 양지바른 곳
할머니 계신 곳
바로 밑에
누우신 지도
벌써 17년째


아버진
오늘도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시겠지?


  아버지는 할머니 누우신 곳 아래 편히 계시는 것 같았다. 묘소 앞 제단에 나의 졸저와 시화 몇몇을 올리고 아버지께  절을 드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제 이름 석 자 더럽히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계신 곳 바로 위에는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몇몇 자손들이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할머니 얼굴에 손을 대고 있으라 하셨다. 할머니는 숨 쉬는 간격이 점차 길어지더니 마지막으로 큰 숨을 들이키신 다음 고개를 옆으로 떨구셨다. 순간 “휙∼”하고 할머니 코에서 따뜻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는 듯했고, 이내 내 손에는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떠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장의차를 타고 고향마을로 내려와 미리 준비되어 있던 알록달록 예쁜 꽃상여로 옮겨 타고 구슬픈 상두꾼 소리에 맞춰 이곳까지 오셨다. 할머니가 땅으로 들어가신 다음 꽃상여는 활활 불 타 올랐다. 나는 할머니의 아름다운 주검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던 것이다.


  불행히도 아버지 임종은 지켜보지 못했다. 병원에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달려가 싸늘하게 식은 아버지 몸을 한참동안 주물러 드렸다. 살아계셨을 때 해 드렸던 것처럼… 더 이상 주물러 드릴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옆에 누워 계신 백부님께도 절을 올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또다시 매화꽃을 찾아 길을 떠나야 했다. 다음 목적지는 부산. 부산에 가면 매신을 전할 수 있으려나?


  남사마을에서 진주로, 거기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내처 부산으로 향했다. 진주터미널에서 약간의 뇨기尿氣를 느꼈으나 차가 곧 떠난다는 바람에 그냥 참기로 했다. 부산 가는 길은 아주 잘 뚫렸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부산까지 갈 수 있었다. 부산에서는 해운대에 사는 4촌 누님 댁에서 묵기로 되어 있었다. 집안 일 있을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주던 누님. 어젯밤 숙모님 댁에서 전화를 걸어 부산 갈 일이 있는데 하룻밤 신세 끼쳐도 되겠느냐 했더니 어서 오라 하셨다. 단 외출할 일이 있으니 5시 이후에 오라고 했었다.


  남는 시간에 해운대 극장가에서 영화를 볼까 하다가 유람선 생각이 났다. 나의 딸 수진이가 돌잡이였을 때 우리 가족은 해운대로 놀러 갔다. 그 때 유람선을 탔는데 울렁울렁 파도에 못 견딘 수진이가 유람선 매점에서 쌓아 놓은 과자 봉지 위에 멀미를 하고 말았다. 나와 아내는 그걸 깨끗이 닦아 놓느라고 배가 선착장에 도착한 후에도 한참동안 내리지 못했다. 또 얼마 전에 만든 ‘바다’라는 졸작 시화 작품도 생각이 나서 영화 대신 유람선을 타기로 결정했다. 유람선 선착장은 해운대 백사장 동쪽 끝에 있었다. 잔비가 솔솔 흩뿌리는 바닷가에는 몇몇 연인들만이 커다란 우산 아래에서 서로 허리를 껴안은 채 거닐고 있었다. 나의 시심은 또 한 번 발동하였다.

겨울 바닷가


겨울 바닷가
쓸쓸함이 거니는 곳


어디로 갔는가?
지난 여름
붐비던 사람들


그 바닷가
백사장은
다름없지만


인적 끊긴 곳
파도 소리마저
처량함을 더 하네


  시간이 되자 유람선은 웅장한 엔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바다가 갈라지고 유람선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유람선 선장은 이렇게 비가 흩뿌리는 날씨를 감안하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관광객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 했다. 더군다나 전 세계적인 불경기가 아닌가? 배가 움직이니 주위를 서성대던 갈매기 떼들도 따라 왔다. 영악한 갈매기들은 이미 배에 탄 사람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뱃전에 기대어
수평선을 바라본다
하늘을 본다
바다를 본다
하늘과 바다가 갈라진다
나와 내 마음이 갈라진다


  비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일행이 없는 나는 홀로 쓸쓸히 갑판 밑 객실로 향했다. 객실 유리창으로 내어다보니 바닷물이 눈 바로 앞에서 일렁이는 것 같아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멀리 수평선이 보였다. 수평선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수평선. 그러나 먼 바다에 비가 내리면…

먼 바다에 비가 내리면


먼 바다에 비가 내리면
수평선이 사라진다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 된다


배만 남는다
눈물만 남는다
서러움만 남는다


먼 바다에 비가 내리면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


  유람선은 관광객들에게 광안대교를 보여 주고, 오륙도를 돌아 다시 해운대 선착장으로 돌아 왔다. 어느덧 비는 그쳐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까지는 아직 2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매화를 찾는 일이 남아 있었다. 자연스레 나의 발길은 해운대 옆에 있는 동백섬으로 향했다. 동백섬에는 새빨간 동백꽃이 만발해 있었다. 이미 바닥에 떨어진 것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동백이야 겨울이 피는 꽃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매화꽃을 통하여 봄소식을 찾으려는 나에게는 색다른 느낌을 안겨 주었다.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았지만 불행히도 매화꽃을 볼 수 없었다. 그 곳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양산 쪽으로 나가야 매화나무가 있을 거라 했다. 어느덧 시계바늘은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4촌 누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방금 집에 들어왔다고 했다. 매화꽃 찾는 것은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매신을 전하려고
남녘 땅 향했거늘
매화는 보이지 않고
동백만 난발爛發하였네


  누님 댁에서 싱싱한 회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누님에게 인터넷 바다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나의 졸작들을 자랑하고 나니 벌써 밤이 이슥해져 있었다. 부산의 밤은 바다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부산에서 매화꽃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목적지인 대구로 향했다. 해가 쨍쨍 내리비췄다. 이렇게 날씨만 도와준다면 금명간 매화꽃 소식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구를 목적지로 삼아 찾아간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생각나는 곳.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때. 마지막 찾았을 때부터 어느덧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므로 내 기억 속의 거리와 사람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대구는 말 못할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도심을 관통해 보았다. 마침 화창한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많은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의 그 사람은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났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인파라 하더라도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다만 그 때 그 흔적을 더듬어 볼 뿐. 거리는 새 건물로 들어찼고, 멀리 보이는 팔공산 보다는 약간의 추억이라도 남아 있는 앞산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모두 꿈같이 흘러간 일이라 생각하니 아쉬움만 남았다.


  햇살은 따뜻하게 비추건만 거리의 가로수들은 아직 추위를 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부산보다 북쪽에 있어서 그럴 터이고, 또 대구라는 도시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이라 알려지지 않았던가? 다만 몇몇 산수유 성급한 놈들만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대구 서쪽 끝에는 고모님이 살고 계셨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 지 40년이 더 되었으니 이젠 대구 사람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고모님께 인사드린 다음 다시 시내를 관통하여 동대구역 근방에 짐을 풀었다. 내일의 경주행을 위해서였다. 대구에는 대학교 동창이 살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경주행 동행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안내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 약속 장소가 동대구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와 헤어진 지도 어언 30년이 가까웠다. 대학교 졸업식 이후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으므로… 물론 그 친구가 대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대구 들릴 일이 없어 그냥저냥 세월을 보내는 사이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그 친구는 입 꼬리를 양 귀까지 찢으면서 나타났다. 마침 떠오르는 아침 해에 친구 이마가 번쩍거렸다.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니 불역낙호不亦樂乎 …’ 어쩌고 하는 말 다 필요 없이 “그래, 좋다.” 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친구 차를 타고 경주로 향했다. 경주는 친구 선친의 고향이라고 했다. ‘아, 그래서 이 친구 대구로 내려온 것이구나.’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경주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주 남산. 젊었을 때에도 경주에 들린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 첨성대 등이 잘 알려져 있었고, 그 무렵까지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사용되던 마을 언덕이 왕릉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복원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남산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 눈에 벗어나 있었다. 근래에 들어서서 그 남산이 엄청난 보물덩어리라는 것이 알려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경주에서는 묘령의 여인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 분은 시청 소속 문화재 해설사 임무를 띠고 있었는데 나와 같이 소설 공부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분은 오늘 박혁거세의 무덤인 오릉의 안내를 맡고 있었기에 먼저 오릉으로 가서 도착 신고를 한 다음 친구와 함께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 입구 안내판 앞에 섰는데 도처에 불상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 불상들은 천년 세월동안 사람들 머리에서 잊혀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길로 따라갔다. 어느 정도 오르자 불상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머리가 잘린 것도 있었다. 내 머릿속은 불끈 달아올랐다.

경주 남산에서


성급한 마음에
봄을 마중하기 위해서
남도 여행을 나섰다


남도 땅
이곳저곳을 거쳐
마침내 이른 곳
경주 남산
경주 사람들
머리 위에 뜬 해
제일 가까이 있는 곳
천년 넘게 잊혀져 있던 곳


천년 세월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모닝콜 소리에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두리번 두리번거리듯이
경주 남산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산새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산새가 아니기 때문인가?
그 때 그 영화를 모르기 때문이리라
앉은뱅이 진달래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 때는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인가?
전설처럼 들리던 이야기
그게 어쨌다는 말씀?
이랬을지 모르리라


하지만
천 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도
별로 기쁜 기색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간 장면들
무수한 발길 오고가고
무수한 치성이 올려지던 그 장면들
덩달아 우쭐했던 마음


어느 순간
거친 숨소리
급한 말발굽 소리
깨지고
부서지고
사람들 비명 소리
짐승들 울부짖는 소리


그 때는 너무 어렸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사 모든 일들이
자기와 상관없다는 듯이
무심히 보아 넘겼던 것일까?


천년 고도 경주
경주의 앞산 남산에서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나의 뿌리가 태어난 곳
경주 남산에서
천년 앞을 내어다본다


  그 때 친구가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실은 다리가 좀 아프다고 했다. 나도 친구의 근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목 잘린 불상 본 것만으로도 나의 남산 탐방은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했다. 등산로 입구로 내려와 어묵 꼬치 하나씩 사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대학 졸업 후 친구는 자기가 목표로 했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고 나는 나의 길을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후 여기서 다시 만났다. 친구는 앞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나는 위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한참 웃었다. 그게 인생이니까…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다시 오릉으로 갔다. 그 분에게 내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해 주었다.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는데 초면인 두 사람의 호흡이 짝짝 맞았다. 어느 식당, 어느 식당 하니까 둘 다 알고 있었다. 졸지에 주인공이 바뀌어 버렸다. 나는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내 친구 심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그 분이 근무하는 오릉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 분이 나를 위해 준비해 둔 안내 책자를 내 친구에게 주었다. 오릉에 대한 해설사 역할도 내 친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시간 안내소를 지키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 분이 내 친구와 함께 오릉을 둘러보러 간 사이 나는 나의 여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안내소 근처를 배회했다. 고궁이라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지만 아직 꽃망울을 터뜨린 것은 없었다. 매화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안내소 옆에 목련이 많이 서 있었는데 이제 막 꽃눈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분은 4월이면 목련꽃 화사한 그늘 아래서 편지를 읽는다고 자랑을 했다.


  불행히도 오릉에는 매화나무가 없다고 했다. 아, 경주에서도 매신을 전할 수 없단 말인가?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니 친구가 다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좀 피곤하다고 했다. 나는 “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아픈 사람 끌고 온 내가 잘못이지 너는 잘못 한 거 하나도 없다”고 했다. 친구는 대구로 떠났고, 나는 그 분과 남았다. 그 분이 조금이라도 어색해 하는 구석이 있었으면 나도 그 자리를 뜨려 했는데 그 분에게서 그런 표정 읽을 수 없었다.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 자리가 어색한 자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떠들어야 했다. 나의 첫사랑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원래 작가란 여행을 통해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어야 하거늘 완전히 밑지는 장사를 하고 말았다. 그 분은 타지에서 홀로 식사를 해야 하는 나를 어여삐 여겨 저녁식사 자리까지 함께 해 주었다. 결국 나는 경주에서도 매신을 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젠 여정이 북쪽으로 향하는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가? 다음 목적지는 강릉. 영동 지방은 기후가 좀 따뜻하다고 하니 거기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하지만 TV에서는 내일 영동지방에 비 또는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새벽 6시 20분에 떠나는 강릉행 첫차를 타러 밖에 나오니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오늘은 매화꽃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또 동해 일출을 보기 위하여 어둠이 가시기 전부터 서둘렀는데 눈발이 날리니 하늘이 날 저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시간표대로 출발하였고, 잠시 후 눈발은 그쳤지만 조금씩 희끄무레해지는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황홀한 동해 바다 일출 장면은 물 건너 간 일, 이젠 이번 여정의 목표인 매화라도 찾아야 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달리고 또 달려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포항에서 내릴 사람 다 내렸는데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20분 후에 출발할 거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내가 탄 버스는 완행이라고 했다. 차는 새로 뽑은 고급차이건만 완행열차처럼 곳곳의 정류장에 모두 선다고 했다. 경주에서 7시에 떠나는 급행버스를 타면 강릉에 먼저 도착할 텐데 왜 이 차를 탔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빨리 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30년쯤 전에 포항에서 강릉까지 버스 여행을 했던 게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이 길 대부분이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였고 털털거리며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낡은 차를 타고 있었다. 지금은 버스가 좋은 걸로 바뀌었고, 길이 모두 포장이 되어 있을 뿐 30년 전에 지나갔던 똑같은 길을 다시 가고 있는 것이다. 버스는 제 시간에 포항터미널을 출발하였다. 시간이 좀 더 흐르니 하늘의 구름은 조금씩 얇아져 가는 것 같았다. 8시가 되어서야 바다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구름이 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동해 바다 일출 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바다에는 파도가 거칠게 일고 있었다. 과연 동해 바다였다. 엊그제 본 해운대 앞바다가 아니었다. 날은 환해졌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남아 있었다.

7번국도에서


심술궂은 파도가
애꿎은 바위를
내리치고 있더이다
하늘에 구름은 가득한데
저 멀리 동해 바다 한가운데
동그랗게 햇살이 비추더이다


구름 사이
구멍이 뻥
뚫렸나 보오이다

구름 뒤에 숨어 있던 해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려 하더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웅장한 태백산맥 연봉들이
하얀 모자를 덮어 쓰고 있더이다
그 모자를 살짝 훔쳐다가
그대에게 씌워 드리고 싶더이다
내 마음과 함께


  갑자기 내 눈에 하얀 나무가 지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갔기 때문에 운전기사에게 물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 때 나는 운전석 옆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때부터는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도록 앞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하얀 나무가 나타났는데 내가 손을 들어 “저거, 저거∼”하는 사이 벌써 버스 뒤로 사라져버렸다. 운전기사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조금 전에 지나간 하얀 나무를 보았느냐고 했더니 그거 ‘매화’ 아니냐고 했다. 그렇다. 매화였다. 내가 여태껏 찾아다니던 매화가 거기 있었다. 다만 연분홍 매화꽃이 아니라 하얀 매화꽃이었다는 게 조금 아쉬웠을 뿐 분명 매화는 매화였다. 또 가까이 다가가 만져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분명 매신梅信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매 신


겨울이 저만치
물러나고 있다


매화꽃이 피었다
소식이 왔다
봄이 왔다
봄은
매화꽃 소식과 함께
왔다


매화꽃 송이송이
얼마나 세상 구경하고 싶었으면
쌓인 눈
녹기도 전에
꽃봉오리 열었는가?


매화꽃 향기 아래서
시가 흘러나오고
사랑이 움트고
회춘을 한다


봄이 왔다
매화꽃이 피었다


  이후 길 가에 하얀 매화는 드문드문 나타났고, 한 무더기 매화 군락이 보인 후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울진, 영덕, 삼척… 북으로 올라갈수록 계절은 다시 겨울로 돌아가려는지 공기가 차가워졌다. 매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이 감겼다. 강릉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1시. 거의 7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강릉에는 대학교 선배 한 분이 자리 잡고 계셨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싱싱한 회 한 접시만 사달라고 떼를 써서 허락을 받아낸 참이었다. 선배님께 가서 한참동안 어리광도 부리고, 옛날이야기도 하고, 함께 바닷가로 나와 약속대로 회 한 접시 거하게 얻어먹었다. 어느덧 밤은 이슥해져 있었다. 숙소에 들어와 몸을 씻고 누우니 피곤했던 참에 곧바로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 연분홍 매화꽃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관령을 넘으니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겨울가뭄이 심각하다고 걱정 많이 했었는데 이번 비로 해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봄은 매화꽃과 함께 온다.
봄비는 봄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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