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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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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영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1회 작성일 20-03-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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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달




1

   ‘제기랄, 내가 왜 이 여행에 자원했던가? 무엇을 위해서, 나의 의지와 체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실로 가소로운 생각이었다. 모래바닥을 해매고 다닌 지 고작 두 시간 만에 체력은 바닥이 나 버렸다. 이제는 그저 살기 위해서, 물 한 모금 얻어먹기 위하여 나는 지친 다리를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에 누구에게 원망을 퍼부을 수도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온통 누런 모래만 지천으로 널려 있고 모래 알갱이가 끊임없이 얼굴을 두드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옆에 한 사람이 있긴 있었다. 술에 취해 있는 여자였다. 정체도 정확히 모르는 이 여자를 나는 끌고 가야만 했다.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 도대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도움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짐만 되는 사람이었다. 정체도 정확하게 모르는 이 여자를 나는 끌고 가야만 했다.


   이미 제 역할을 다한 생수 병은 모래바닥 어디론가 던져진 지 한참 되었다. 어제 저녁, 어둠이 찾아올 무렵 나타났던 초승달이라도 보이면 훨씬 좋으련만… 희정이의 속눈썹을 닮은 초승달. 그러나 그 초승달마저 지고 만다면 진짜 끝장이었다. 사막의 무시무시한 밤 추위. 사막의 밤 추위가 대단하다는 것 이미 알고 왔지만 진짜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지금 계절로도 한여름 아닌가? 이번 탐사일정 내내 잠잘 때에는 집에서 가지고 온 대부분의 옷을 꺼내어 겹쳐 입어야만 추위를 막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지금 이대로 밤이 온다면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배가 고파 죽거나 목이 말라 죽거나 날이 추워 얼어 죽거나 이래저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은 공포감.


   ‘나는 왜 이 길을 이렇게 힘들게 가고 있을까?’
후회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그때 나는 조금 힘들더라도 굴러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야 했었다. 아니 첫 번째 실수는 나침반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하필이면 왜 내가 나침반을 들고 있었을까? 그냥 일행들이 가자는 데로 따라가면 되었을 것을, 무슨 바람이 들어 방향을 확인해 본다고 나침반을 받아들었을까? 그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방향 확인을 마쳤으면 나침반을 돌려 준 다음 생수 병을 꺼내들 일이지 왜 나침반을 손에 든 채 생수 병의 뚜껑을 열려고 했을까? 아니 다른 생수 병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뚜껑이 잘 열리더구만 그 놈의 생수 병뚜껑은 왜 그리 안 열렸을까? 아무래도 귀신에 씌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나침반을 한 손에 쥔 채 생수 병을 잡았고 다른 손으로 생수 병뚜껑을 열려고 했다. 뚜껑이 잘 열리지 않아 힘을 잔뜩 주는 순간 나침반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아니, 아니”하는 동안 나침반은 모래계곡으로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떼구루루. 멈출 듯 멈출 듯 다시 떼구루루. 나침반은 끝없이 굴러 내려갔다.


   굴러 내려가는 나침반을 향해 모래언덕 아래로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순간 “안 돼!”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나의 몸뚱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이 모래계곡으로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 굴러 내려와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모래언덕 위의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모래계곡이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앞서 굴러 내려간 그 놈의 나침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또 하나의 물체가 굴러 내려왔다. ‘누굴까?’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 그 여자였다. 여행 기간 내내 하루 일정이 끝나면 늘 혼자 앉아 술을 홀짝이던 그 여자. 그 여자는 왜 이 사막체험까지 동행했을까? 타고 왔던 9인승 미니밴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줄 텐데… 술까지 마신 상태에서 사막 체험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사막 체험을 위해서 이동하는 오전 시간 내내 뒷좌석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사막 체험을 시작하려 할 때에는 이미 많이 취한 상태인 것 같았다. 다들 말렸다. 그러나 그 여자는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나도 가야 해요! 나도 갈 수 있어요! 나도 갈 수 있단 말이에요!” 꼭 가야 한다는데, 자기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말릴 방법이 없었다. 이젠 이 여자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다니… 엎친 데 덮친 꼴이었다.


   아무튼 그때 나는 바로 옆의 모래언덕으로 올라가면 일행이 나올 줄 알았다. 여자를 끌고 허겁지겁 그 모래언덕의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지만 일행은 없었다. 불행히도 그 모래언덕은 다른 모래언덕과 이어져 있었다. 거기서도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건너편 모래언덕에 희끗희끗한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이 누런 모래뿐인 세상에서 희끗희끗한 것은 당연히 사람들이리라. 분명 우리 일행이 거기 모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곳을 목표로 발길을 재촉했다. 모래계곡을 가로지른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내려갈 때는 마치 썰매를 타듯이 앉아서 아주 쉽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런데 올라가는 게 문제였다. 경사가 급하기도 했지만 왜 이리 바닥이 미끄러운지… 얼마만큼 올라갔다 싶으면 굴러 떨어지고, 오르고 굴러 떨어지기를 숱하게 하였다. 옆에 있는 여자는 자꾸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다음 일정 때문에 일행이 우리를 버리고 가면 어쩌나 하는 초조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니 몸은 더욱 굼뜰 수밖에… 천신만고 끝에 모래언덕 위에 올라섰지만 그 곳에는 일행도, 미니밴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눈에 희끗희끗 하게 보였던 것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신기루를 보았던 것일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젠 혼자다. 옆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이 여자. 둘이지만 혼자나 다름이 없었다. 젊은 시절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무겁고도 거대한 더플 백을 어깨에 짊어지고 연병장을 뛰어다녔었지. 빨간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조교가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내지른 소리. “전방 50m에 있는 축구 골대를 좌에서 우로 돌아 다시 여기에 일렬종대로 집합한다. 선착순 한 명. 뛰어 갓!” 군대생활을 위하여 나에게 지급된 물품이 가득 든 더플 백이기에 버릴 수도 없었다. 그걸 버린다는 것은 군대생활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했다. 나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 꼭 짊어지고 뛰어야 했다. 그 많은 입소생 중에서 선착순으로 한 명, 한 명씩 줄어들었지만 그다지 재빠르지 못한 나는 조교의 고함 소리를 계속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그 꼴이 아닌가? 벗어던져버리고 싶었던 그러나 결코 던질 수 없었던 그 더플 백, 옆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이 여자. 아,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앞으로는 혼자서 이 무거운 더플 백을 짊어지고 길을 찾아야만 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사막 체험을 시작할 때 조선족 가이드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그래, 일행으로부터 떨어졌거나 길을 잃었을 때에는 무조건 남쪽으로, 태양이 떠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고 했었지?’ 그 말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참동안 태양만 따라 다녔는데 그 놈의 미니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째 저 언덕만 올라서면 파란 색 오아시스가 나타나든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미니밴이 보이리라 기대를 했건만 불행히도 기대는 항상 깨져 버렸다. 무참히…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팔에 이끌려 따라오던 여자도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물도 떨어지고, 힘도 떨어지고, 정신도 몽롱해져 갔다. 도대체 보이는 것은 모두 누런색 모래뿐이니 눈을 감아도 그 지긋지긋한 모래가 보일 지경이었다. ‘죽는 일만 남은 것인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옆에 쓰러져 있는 이 여자는 진짜 죽으러 온 것 같았다. 죽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을 하니 지나온 일들이 머릿속에서 주르륵 흘러갔다.



2

   내 나이 마흔셋. 아직 한참 일할 나이이다. 사오정이니 뭐니 해도 나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년은 끄떡없이 회사에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집에만 들어가면 주눅이 들었다. 그건 결혼할 때부터 내가 자초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위 어른들은 서로 상대가 되는 사람끼리 짝을 지어야 서로 마음고생을 안 하고 산다고 하셨는데 쓸 데 없는 걱정 마시라고 면박을 준 건 바로 나였다. 데릴사위로 팔려 갔다고 놀리면 어때 나만 편하게 살면 되지, 이런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아내도 처가 식구들도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아내와 사귀고 있던 대학교 졸업반 시절 재벌기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입사 동기들보다 먼저 진급하니까 칭찬이 대단했었다. “우리 사위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지!” 뒤는 얼마든지 받쳐 줄 테니 빨리빨리 진급만 해라, 빨리빨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 그것만 요구했다. 그러나 재벌기업 생리가 어디 그런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때를 잘못 만나거나 줄을 잘못 서면 뒤처지게 마련이다. 차츰 진급 우선순위에서 밀리더니 어느새 다른 입사 동기들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내 인생 이제 끝났다고 수군거렸다. 그 소리를 아내도 듣게 되었고 처가 식구들 모두 알게 되었다. 그러자 단번에 대우가 달라졌다. ‘우리 사위, 우리 사위’하던 것이 호칭마저 ‘자네’로 격하되었다. 어쩌다 처갓집에 가도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자기 친구들 모임에 같이 나가자고 해서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내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하고 자랑하고 다니더니, 차츰 혼자만 나돌아 다녔다. 또 무슨 모임은 그리도 많은지 집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돈은 물 쓰듯이 썼다. 자기 돈 자기 마음대로 쓰는데 내가 왜 참견하려 하느냐는 생각인 것 같았다. 내가 회사에서 받은 월급 자기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아내와 나는 각자 따로 방을 쓰기 시작했다. 또 언젠가는 아내 의견을 듣고 싶어 말 좀 하자고 했지만 “당신 마음대로 해!”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점점 결혼 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내가 이 집에 장식용으로 들어온 것인가?’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도 제 풀에 지쳤는지 점점 모래언덕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희정이가 생각났다. 불쌍한 희정이. 희정이는 사춘기 고등학교 때 내 온 마음을 바쳐 짝사랑하던 소녀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입학했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말 한 마디도 붙여 보지 못하고 헤어진 그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내가 뒤늦게 희정이를 찾아 나섰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희정이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몇 달 취직을 하려고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그게 마음대로 안 되자 결혼을 했다고 했다. 상대방은 허우대가 멀쩡한 청년 사업가라 했다. 사업도 잘 된다고 했다. 전망도 좋다고 했다. 주위의 평판도 좋았다고 했다. 희정이 부모님도 좋은 혼처감이라고 했다. 다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는 게 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것 빼고는 완벽한 신랑감이었다고 했다. 6개월 정도 사귀다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한 달쯤 전에 희정이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그 힘들었던 삶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어요. 일 년 후 예쁜 딸을 낳았지요. 남편도 아주 좋아 했어요. 그 무렵 친정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친정집 거실에 있던 낡은 소파를 버리라고 하더니 아주 근사한 소파를 들여 놓아 주었어요. 사실 비싼 소파였지만 그 집에는 격에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친정 엄마, 아빠는 사위를 무척 칭찬해 주셨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마魔가 끼었는지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렸어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확인 결과 아들이라는 것까지 알아내고 기뻐했는데 6개월째 될 무렵 유산이 되었어요. 불행히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덤으로 알게 되었지요. 얼마 후 친정아버지가 35년 동안 봉직하시던 교단에서 물러나셨어요. 그즈음부터 시어머니도 달라지셨어요. 신혼 초에는 하는 일마다 칭찬을 해주시던 시어머니가 언제부턴가 하는 일마다 트집을 잡으셨어요. 가끔씩 혼잣말로 ‘집안에 대를 끊어서는 안 되는데… 조상님들 볼 면목이 없는데…’라고 중얼거리셨어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결혼한 지 5년쯤 되었을까 시어머니 눈치를 봐 가며 겨우겨우 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사업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어요. 내 딴에는 걱정해 준답시고 요새 뭐가 잘 안 되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안 되긴 뭐가 안 돼?” 하는 역정만 들었어요. 어느 날 남편이 평소와 다르게 점심때쯤 집에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다짜고짜 말 좀 하자고 했어요. 요새 회사 자금 사정이 안 좋으니 친정에 가서 돈을 구해 오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죽어가는 소리로 친정 사정도 여유롭지 않은데 5억 원이나 되는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했어요. 남편은 친정아버지 퇴직금도 거론했고, 친정집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도 있지 않느냐며 매달리듯 사정했어요.』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친정으로 갔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엄마, 아빠는 모처럼 찾아온 딸에게 포근하게 대해 주셨어요. 나는 차마 남편의 부탁을 꺼낼 수 없었어요.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은 내 표정을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어요. 그날 밤 늦게 술에 곤죽이 되서 돌아온 남편은 더 이상 나의 남편이 아니었어요. “사위는 자식이 아니야? 회사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장인이 그것도 못 도와주겠다고? 당신이 지금까지 한 게 뭐야? 말 좀 해 봐!” 마구 고함을 질러대더니 내가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발길질까지 했어요. 건넌방에 있는 시어머니도 다 들었을 텐데 못 들은 척 나와 보지도 않았어요. 다섯 살짜리 딸이 아빠 왜 그러느냐고,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울먹였어요. 결국 열흘 후 아버지는 그동안 모아 놓은 돈과 친정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돈을 합쳐 총 5억원을 마련해 건네주었어요. 하지만 얼마 후 남편 회사는 날아가고 말았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5억을 해 주건 안 해 주건 간에 그 회사는 날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들었어요. 그리고도 남편은 처갓집 핑계를 댔어요. 돈 5억을 제 때 해 주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이지요. 꼭 6개월만 쓴다고 해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걸 갚지 못하자 친정집은 경매에 붙여지고 말았어요. 친정 엄마, 아빠는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월세 지하실 단칸방으로 옮겨야 했어요. 우리 집은 아니 남편 집은 시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어서 고스란히 살아남았어요.』


『그때부터 남편은 술과 함께 살았어요. 나갈 곳도 없고 나가 봐야 할 일도 없었으니까 술병을 손에 든 채 잠에서 깨어나 술병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었어요. 시어머니는 집에 사람이 잘못 들어와 이 모양이 되었다며 노골적으로 구박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네 식구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했어요. 남편 술값을 대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 집에서 돈 벌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요. 밖에 나가 보니 사회가 그리 만만하지 않더군요. 돈 벌 구석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손님이 들끓는 식당 주방의 허드렛일이나 할 수 있을까? 슬픈 소식은 계속 되었어요. 그무렵 친정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평생을 교직에 계셨던 분, 평생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살아오셨던 분이 먹고 살기 위해서 길거리에 떨어진 종이박스를 주우러 다니셨다니…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를 엄마는 뒤에서 미셨다고 했어요. 종이박스를 초가집 지붕만큼 실은 리어카가 언덕길을 내려갈 때에는 제동을 잘 해 주어야 하잖아요?  제동을 제 때 해 주지 못한 리어카는 쏜살같이 내려가고 아버지는 그 리어카 바퀴 사이에 깔려 한참동안 끌려갔대요. 피를 많이 흘리셨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그 날 밤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어요. 나는 다음날 늦게야 그 소식을 듣고 병원 영안실로 뛰어갔지요. ‘아버지, 제가 죄인이에요. 제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어요, 아버지∼’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어요. 남편은 한참 지나서야 나타났다. 그리고는 또 술을 찾았어요.』


『불행은 불행히도 연이어 닥친다고 하는 말 있잖아요? 혼자서 눈물로 지내시던 친정 엄마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부르는 듯 4개월 만에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엄마는 아버지가 리어카 밑에 깔린 채 질질 끌리면서 언덕길을 내려가는 모습을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대요. 엄마는 나만 보면 당신이 죄인이라고 하셨어요. 언덕 꼭대기에서는 리어카가 못 내려가도록 잡아당겼어야 했는데 그걸 모르고 밀었으니 당신이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이라고… 엄마는 얼마나 충격이 크셨을까요? 그나마 큰 고통 없이 돌아가신 게 엄마로서는 다행이었어요. 이후에도 남편과 시어머니의 닦달은 계속 되었고, 그나마 딸이 내 편을 들어주어 버틸 수 있었어요. 골방에 쳐박혀 딸의 손을 잡고 함께 울기도 했어요. 지금은 딸과 함께 따로 나와 살고 있어요. 법원에 이혼 신청도 해 놓은 상태구요. 딸은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기특하게도 공부를 잘 하여 장학금을 받아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딸이 마지막 남은 나의 희망이에요.』


   희정이가 한 달쯤 전에 담담하게 들려 준 자기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좀 도와줄까 물었지만 희정이는 자기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다며 거절했었다. 아직 이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혹시 누구에게 오해를 받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 문제만 해결되면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이젠 불쌍한 희정이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구나 생각하니 비감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틈에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모래언덕의 그림자가 모래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3

   그때 부시럭 소리가 들리더니 내 옆에 널브러져 있던 여자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술에서 어느 정도 깨어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사실 할 말도 없었다. 이 처지에 무슨 말을 주고받을 것인가? 한숨만 나왔다. 순간 그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기를 끌고 와 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젠 우리에게 희망이 없지 않느냐며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듣고 있었다.


『그동안 저를 이상한 여자로 생각하셨죠? 젊은 여자가 일행도 없이 이런 데나 쫓아다니고…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잘 안하고… 역시 그렇게 보셨군요. 그런데 저 실연당한 거 아니에요. 저는 부잣집 외동딸이에요. 그렇다고 큰 부자는 아니고, 아빠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큰 부자가 어떻다는 것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는 몰랐거든요. 학교도 좋은 데 나왔어요. 유명한 배우가 유명한 영화에서 “나 어디 나온 여자야!” 소리친 바로 그 학교. 지금은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지만 사실 이름만 걸어 두고 있는 거죠. 그동안 저는 제가 세상에서 상위 1%에 해당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 있죠? 제가 어떤 사람을 죽였어요. 저 참 나쁜 년이죠? 휴∼』


『어떤 남자가 있었어요. 5년 동안 저를 쫓아다니던 남자. 참 착한 남자였어요. 그 남자는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학교에 다녔어요.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어느 날 수업이 끝나 친구와 같이 학교를 나오는데 누군가 후문 담장 옆에 서 있다가 저를 따라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죠. 같이 가던 친구가 귀띔을 해 줘서 알았어요. 그 날은 제가 타는 버스를 따라 타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내릴 때 따라 내리지 않아서 별 일 아닌가 보다 했지요. 다음날도 거기 서 있었어요. 그 날은 제가 타는 버스가 오니까 그 남자가 먼저 버스에 오르더군요. 그러려니 했어요. 신경도 안 썼지요. 그 남자도 같은 버스를 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날은 제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먼저 내리더군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 남자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더라구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가 앞장을 서게 되었죠. 그냥 집에 갔어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약간 그 사람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어요. 역시 별 일 아니구나 생각했죠. 이럴 때 드는 생각이 뭔 줄 아세요? ‘괜히 김칫국부터 마셨네!’』


『다음날은 토요일이라서 학교에 안 갔고, 일요일에도 당연히 가지 않았죠. 월요일에는 아침부터 기분이 묘했어요.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았어요.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라일락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은 라일락꽃에서 향기가 풍겨 나오지 않았어요. 다른 날은 향기가 코를 찔렀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후문 앞까지 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상했죠.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가 깨졌을 때의 허탈감이랄까? 저도 모르게 두리번거리게 되더라구요. 그 남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버스에 탔는데도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어요. 기분이 진짜 이상하더라구요. 사실 그때까지 그 남자 얼굴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거든요. 얼핏 보기에 키는 보통 키 정도였고, 얼굴도 제 눈을 끌만큼 잘 생기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때 제가 한참 눈이 높을 시기잖아요? 파릇파릇한 대학 1학년에 국내 최고의 대학을 다닌다는 자부심. 그거 잘 모르실 거예요. 우리 학교 애들은 그거 대단하답니다. 그러니 그 정도의 남자가 제 눈에 들어오겠어요? 입고 있는 옷도 다른 학생이랑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마치 배반당한 느낌이었죠.』


『잔뜩 헛물만 켜고 집에 왔는데 이게 웬일? 그 남자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서 있었어요. 우리 집은 골목 안에서도 사거리 코너에 있었기 때문에 코너를 돌기 전까지는 대문이 보이지 않거든요. 코너를 돌자마자 그 남자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것이었어요. 그 날은 옷도 제대로 입고 왔더라구요. 그렇다고 명품 옷을 걸친 것은 아니고… 제 눈에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렇다고 제 마음을 들키면 되나요? 제가 가만히 서 있으니까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꽃을 내밀더라구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눙쳤어요. 이 꽃은 무슨 뜻이냐면서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예의 아니냐고 했죠. 그 사람은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어요. 자기 이름은 김진후라 하고, 우리 학교 후문 건너편에 있는 Y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이라고 했어요. 나를 알게 된 것은 지난주부터라면서 장미 꽃다발은 자기 성의 표시니까 받아 달라고 했어요.』


『결국 저는 그 꽃을 받지 않았어요. 그 남자는 그 후로 5년 동안 저를 따라다녔어요. 하도 불쌍해서 몇 번 만나 이야기도 들어 주고 식사도 같이 했어요. 그렇지만 그 평범한 남자에게 제 인생을 맡기기에는 제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남자는 자기 집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어요. 가끔은 집에 누나밖에 없어서 외롭다고 했어요. 누나들하고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 않는다고 했어요. 저는 건성으로 듣고 대답했지요. 어떻게 하면 그 남자로부터 벗어날까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세월이 지났지요. 그 남자가 제 주위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남자들이 제 곁에 잘 안 오는 것 같았어요. 저야 뭐 걱정이 있나요? 집에 재산이 좀 있겠다, 정 필요하면 그 남자라도 불러내면 되니까… 그런데 그 남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올 초에 그 남자가 자살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앓던 이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그 남자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참 묘한 일이지요? 그렇게 싫다고 도망 다닐 때는 언제고, 며칠 보이지 않으니까…』


『한 달쯤 전에 누가 저를 찾아왔어요. 그 남자 집 고문 변호사라더군요. 고문 변호사라니 얼마나 대단한 집이기에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변호사 말로는 그 남자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자기가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저에게 넘겨주라고 적혀 있었대요. 재산은 땅이 전부였는데 모두 요지에 있는 것이었어요. 가족들은 그 땅을 넘겨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한 결과 돈으로 주기로 결정했대요. 변호사 말로는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대요. 상속세니 증여세니 그런 것도 따져야 되고, 그 쪽에서 법적으로 이의제기할 수도 있고… 그래서 그 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죠. 그게 얼만지 아시겠어요? 물경 50억 원. 저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50억 원이라니! 그런데 그 때 제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아이 미친 놈, 그 말 진작 했으면 내가 당장 결혼도 해 주고 쓸개든 뭐든 다 빼 주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참 나쁜 년이죠? 하늘에서 공짜로 50억 원이 떨어졌는데 그거 고마워할 줄도 모르다니. 그것도 제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서 그 많은 돈을 받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부동산 재벌의 외동아들이었대요. 위로 누나만 잔뜩 있고 아들은 혼자였대요. 그런데 그게 정식 아들이 못되고 의붓아들이었대요. 그러니 집에는 친엄마가 안 계시고 회장님의 본처가 살고 계셨지요. 어렸을 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친엄마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대요. 회장님은 그러니까 그 남자의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전국 각지에 있는 땅을 자식들 명의로 돌려놓았대요. 그러니 완전히 그 남자 명의의 땅이었던 거죠. 단지 땅문서만 그 집에서 보관하고 있었구요. 그래서 그 남자는 자기가 그토록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을 거래요.』


『그 후에 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왔어요. 세상에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그 남자 가지고 있던 재산을 떠나서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그 남자 자기는 참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었어요. 그때 제가 막 화를 냈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책임지느냐고? 그 사람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제가 그렇게 대답했을까요? 저 반성 많이 했어요. 여기 고비사막 온 것도 그 남자 때문이에요. 언젠가 그 남자가 사막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황량하고 외로운 사막을 걷고 싶다고… 다른 사막 프로그램들에는 실제로 사막을 걷는 일정이 없잖아요? 선생님도 어젯밤 초승달을 한참 바라보시던데, 저는 그 뒤에 숨어 있는 별을 보았답니다. 환한 달 뒤에 숨어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는 별. 저는 그 별을 보았답니다. 그 남자가 별이 되었다면 아마 그 별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제 뒤를 따라다니던 그 사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사람. 그러나 속으로는 엄청난 열기를 가진 사람. 제가 만약 살아서 이 사막을 빠져 나간다면 그 사람이 남기고 간 50억 원 자선단체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그건 저 혼자 마음대로 쓰라고 준 돈 아닐 거예요. 그 사람이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여자가 긴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달이 떴어요. 저기 보세요. 초승달이에요∼”
   언제부턴가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떠있었다. 희정이의 속눈썹을 닮은 초승달이었다. 서쪽 하늘에 그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서 오라는 표정이었다.
   ‘그럼, 가야지. 가야하고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 조금 더 힘을 냅시다.”
   그녀가 또 외쳤다.
   “저기 봐요∼ 불빛이 보여요∼ 불빛이 움직이고 있어요∼ 사람들인가 봐요∼ 우리 이제 살았어요!”
   나는 불빛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 여기∼ 여기 사람이 있어요∼”
   여자도 함께 목청을 높였다.
   “도와주세요∼ 이쪽이에요∼”
   불빛이 마구 흔들렸다. 불빛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원주민들에게 인도되어 원주민 마을로 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낯이 익은 미니밴이 보였다. 우리와 함께 사막을 누비던 미니밴이었다. 그 여자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미니밴이었다. 미니밴 옆에 있는 게르의 문이 열리더니 선배의 환한 얼굴이 나타났다. 다른 일행들도 따라 나왔다.
   “야, 살아 있었구나! 너 덕분에 나도 살았다∼”
   선배는 울부짖고 있었다.



4

   지난주 초까지 몇 달 동안에 걸쳐 아주 힘든 회사 일을 해 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니 마치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았다. 며칠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고 나니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때맞춰 고등학교 선배로부터 5박6일 몽골 고비사막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 왔다. 대부분의 여행사에서 취급하는 고비사막 탐사 프로그램들은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고 게르 체험을 해 본다든지 낙타나 말을 타 본다든지 공룡 화석 유적지를 답사 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선배가 다니는 여행사에서는 그 일정을 약간 조정하여 직접 사막을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을 넣으면 어떨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요즈음 웰빙이다 뭐다 해서 자기 몸을 관리하는 게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기 위하여 기획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마라톤 42.195km, 바다 수영 3.9km, 도로 사이클 180.2km. 이런 종목들은 일반인들이라면 한 종목도 제대로 해 내기 힘든 운동이다. 그러나 이 세 종목을 쉬지 않고 계속 이어서 하는 철인 3종경기라는 종목이 있는데 대회 때마다 참가자들로 성황을 이룬다고 했다. 공수부대 체험 프로그램이나 해병대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들도 요즈음 인기가 많다고 했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사막에서 두 시간동안 걷는다는 것, 생각만 해도 의욕이 솟아오르지 않을까? 선배의 생각이었다. 나도 귀가 솔깃했다. 고비사막이라! 벌써 나의 구미가 동했다. 평소 주말만 되면 어디어디 산악회에 끼어 자주 산에 올랐었다. 그래서 중년에 찾아오는 불청객인 뱃살도 나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항상 등산으로 다져진 몸이라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이번 기회에 나의 체력과 의지를 시험할 겸 한 번 도전해 볼까? 내가 아직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아무 토도 달지 않고 일주일 동안의 휴가를 허락해 주었다. 몇 달 동안 고생한 것을 보상해 주려는 것이리라.


   아내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하지? 가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며 어디 좀 갔다 오겠다고 말을 꺼냈는데 아내는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고 그러라는 반응이었다. 완전히 남처럼 대하고 있었다. 무척 서운했다. 나는 이 집에서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였단 말인가? 도대체 나는 이 집에서 무엇이라는 말인가? 하긴 지난 몇 달 동안 회사에서 야근을 하느라 집에 못 들어갈 때도 많았는데 처음 며칠은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이내 신경을 거둬들였다. 그렇게 아내와의 간극은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여행 준비물도 모두 내가 챙겼다.


   그렇게 씁쓸함을 안고 떠난 여행이었다. 고비(Gobi)란 뜻은 몽골말로 ‘사람과 동물이 살지 않는, 황폐한 땅 또는 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보통 사막 하면 광활한 모래언덕을 연상하게 된다. 끝없이 파도치는 모래언덕들… 그것이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사막의 영상들이다. 그런데 몽골 전국토의 41.6%를 차지하는 고비사막은 대부분 스텝 지형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라고 했다. 즉 풀과 모래가 같이 존재하는 사막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하라사막과 같이 모래뿐인 지역도 있다고 했다. 그 지역에서 사막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첫날은 대한항공 마크가 찍혀 있는 커다란 비행기를 타고 울란바토르까지 갔다.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의 칭기스칸 공항까지 약 2시간30분이 걸렸다. 거기서 타고 갈 국내선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느라 몇 시간을 지체하였다. 그 몇 시간 동안 울란바토르 시내 관광을 하였다. 몽골의 수도라 하지만 우리나라 시골 중소도시 규모로 별로 볼 것도 없었다. 시간이 되어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올라갔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멀리 드문드문 모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사막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리라 생각하니 약간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는 한 시간 반 만에 달랑쟈가드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달랑쟈가드는 울란바토르보다 더 작은 마을이었다. 선배는 달랑쟈가드가 이번 고비사막 프로그램의 베이스캠프라고 했다. 첫날밤을 묵게 된 게스트하우스는 그럭저럭 쓸 만했다.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선배는 일행을 불러 모았다. 앞으로의 일정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준 다음 이번 여행을 같이 하게 될 사람들이니 누가 누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사막 속 오아시스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취재하러 간다는 잡지사 기자와 사진 기자,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옛날의 공룡 뼈 유적을 직접 보고 싶어 찾아간다는 고고학자와 소개할 게 별로 없다는 말로 자기소개를 끝내 버린 젊은 여자, 그리고 선배와 나까지 모두 6명이었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사람은 여행 목적을 말하지 않은 여자였는데 구석에서 술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나의 직감으로는 얼마 전에 실연을 당한 것 같았다. 소개가 끝나자 모두 좋은 여행이 되자며 파이팅을 힘차게 외친 다음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먼 길을 쉬지도 않고 강행군 하느라 피곤한 터에 몸을 대강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모래바람이었다. 모래 알갱이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고비사막이 나를 환영한다는 소리일까? 하지만 나에게는 내일부터 각오하라는 경고로 들렸다.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편한 여행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소리는 다시금 나의 마음을 곧추 잡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도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사막에 들어서기 전 마지막으로 제대로 하는 식사라 하니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다.


   그 날부터 만 4일을 사막에서 보내야 했다. 사막용으로 개조된 9인승 미니밴을 타고 거대한 고비사막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몇몇 유명 지역을 탐방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다. 사막 안에서는 오아시스 근처에 있는 마을의 게르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애당초 선배가 말했듯이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두 시간동안 차를 타지 않고 사막길을 직접 걸어 보는 것이 계획에 잡혀 있었다. 프로그램 이름이 ‘모래사막 체험’이라고 했다. 나는 군인 시절 보병이었기 때문에 숱하게 걸어 다녔다. 천리 행군까지 한 적이 있어 행군이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까짓 두 시간 행군쯤이야 했는데 선배는 그까짓 두 시간 행군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했다. 선배는 우리 일행에게 조선족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소개해 주었다. 몽골족 운전기사는 우리와 아무 말도 통하지 않았고 눈짓, 손짓, 발짓으로만 의견을 교환하였다. 조선족 가이드는 원래 말투가 그런 것인지 마치 싸우자는 투로 말을 했다. 그래서 농담조차 건네기가 어려웠다.


   사막에서의 첫날, 그 날은 거의 온종일 차를 타고 가도록 일정표에 나와 있어서 느긋하게 사막 경치만 구경하면 될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달랑쟈가드 마을은 발목까지 오는 풀로 뒤덮인 초원지역이었는데 마을을 벗어나자 점점 풀이 줄어들었다. 초원에는 소와 말이 많이 보였는데 사막 안으로 들어갈수록 양과 염소 떼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풀이 거의 보이지 않고 푸석푸석한 흙이 많아졌다. 길은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였다. 미니밴도 거기에 맞춰 덜컹덜컹 거렸다. 우리 몸도 오르락내리락 했다. 가끔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조금 더 가자 차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서서히 모래 언덕이 나타났다. 한 언덕을 넘으면 또 한 언덕이 나오고, 그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언덕… 공동묘지에 있는 무덤들처럼 거대한 모래 언덕들이 모래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그 모래 무덤이 나타났을 때에는 모두들 ‘과연 이것이 사막이로구나!’라며 사진 찍기에 바빴는데, 조금 지나자 똑같이 반복되는 장면에 모두들 흥미를 잃고 말았다.


   앞에 펼쳐진, 좌우로 펼쳐진 모래 무덤을 한참 감상하며 가다가 나는 문득 차 뒤쪽을 내다보게 되었다. 아, 거기에도 거대한 모래무덤 뿐이었다. 갑자기 난 모래무덤에 갇혀 있다는 생각에 빠져 버렸다. 두려웠다. 동서남북이 어딘지 당최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젠 창밖 풍경에 아랑곳없이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어련히 운전기사가 알아서 잘 가려고…”하는 대꾸였다. 괜히 한 마디 했다가 면박만 당하고 말았다.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부릉, 부릉…” 엔진은 용은 쓰고 있는데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한참 실랑이를 하던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모두 내리라고 했다. 바퀴가 부드러운 모래에 빠져 헛바퀴를 도니 모두 내려서 차를 밀어야 한다고 했다. 평화로운 담소가 깨진 데 대하여 다들 투덜거렸지만 이게 진짜 사막 체험 아니겠냐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힘을 쓴 후에야 바퀴는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다. 차는 저만큼 앞에 가서 멈췄고, 모두들 발에 쥐가 나도록 뛰어가서 차에 올랐다. 다들 땀투성이, 모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차 안에 있을 때는 폴폴거리며 에어컨 바람이 나와 몰랐었는데 사막의 내리쬐는 태양은 금방 옷을 땀에 절게 만들었다.



5

   문득 차가 이 광활한 사막에 나 혼자 내버려 두고 가 버리면 어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했다. 가끔 창밖으로 보이는 해골바가지들이 마치 내 것인 양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조선족 가이드는 별 일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점차 사막의 두려움에 빠져 들어갔다. 운전기사는 이 수많은 모래언덕 속에서 어떻게 방향을 찾아가지? 앞에 나침반이라도 있는 걸까? 나침반이 있더라도 모래언덕 길이 꼬불꼬불한데 제대로 가고 있기나 한 것일까? 기름은 충분히 넣어 가지고 왔나? 중간에 기름이 떨어지면? 의심을 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약간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족 가이드가 “아무 일 없수다!”하는 소리에 모두들 입을 닫고 말았다.


   점심때쯤 사막에 듬성듬성 널려 있는 마을에 들렀다. 낙타고기, 말고기를 구워서 팔고 있기에 맛이나 볼까 하고 조금 샀는데 역겨운 냄새가 나서 거의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고츠라고 부르는 양고기 만두가 그런대로 먹을 만했고, 커다란 빵을 사서 수태 차와 함께 배를 채웠다. 오후에도 오전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풀이 듬성듬성 보이는 지역이 나타나는가 하면 모래만 보이는 지역도 있었다. 더 이상 바깥 풍경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은 미니밴 안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화투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미니밴은 오후 느지막이 차강수블락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과연 그 곳은 몽골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치가 좋았다. 그 곳에서 30분정도 구경하고 빠져나와 해가 떨어질 무렵 어느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에 차가 멈췄다. 사막 안에서는 게르가 유일한 숙박 시설이라고 했다. 여러 군데 게르를 둘러보았는데 시설이 천차만별이었다. 관광객을 위하여 특별히 만든 게르도 있었고 실제 원주민이 살던 게르를 비워 주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그나마 침대가 마련되어 있는 게르를 찾아들어갔다. 저녁 식사는 그 곳 원주민들이 파는 원주민 요리를 사먹었다. 볶음밥, 국수 등 우리에게 친근한 음식도 팔고 있었는데 실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선배 여행사에서 준비해 간 고추장, 김치, 단무지가 있어서 그나마 넘길 수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사막에 어둠이 찾아오니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온 하늘을 덮어 버렸다. 별들의 고향이 사막의 하늘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원주민들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별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빛, 그리고 소란스러운 춤의 향연. 그렇게 사막의 밤은 깊어만 갔다. 차를 타고 이동하였지만 하루 종일 울퉁불퉁 사막 길에 피곤하여 게르에 들어가 자려고 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사막의 밤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고 간 모든 옷을 꺼내 입고도 추위를 이길 수 없었다. 선배가 침낭을 꼭 가지고 오라 했는데, 한 여름철에 무슨 침낭이야 하고 안 가져온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손전등이나 촛불을 켜면 게르 안의 바닥에는 온갖 벌레가 기어 다니고, 나방은 불빛을 향하여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오돌오돌 떨며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도마뱀 한 마리가 내 발밑에 쪼그리고 있다가 부리나케 도망을 쳤다.


   다음날은 바양작이라는 곳으로 갔다. ‘바양작’이라는 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라 그것으로 지명을 삼았다고 했다. 특히 이곳은 수많은 공룡 뼈와 공룡 알들의 화석이 발견된 곳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유물과 암각화 등도 발견되었다고 했다. 우리 일행 중 고고학자는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우리는 고고학자만 그 곳에 남겨 두고 근처에 있는 호수를 구경하러 갔는데 마침 수많은 낙타 떼가 호수에서 줄을 지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다음날은 욜 암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독수리계곡으로 갔다. 한여름에 영상 40도까지 올라가는 뜨거운 고비사막이지만 이 계곡만큼은 산과 절벽들이 햇빛을 막아 주고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줘 일 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다고 했다. 욜 암은 ‘독수리의 입’이란 뜻인데 많은 새들이 서식하는 곳이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그 곳에서 빠져 나와 원주민 마을에서 숙소를 정했다. 그 곳에서는 특히 저녁 식사 후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다. 모래사막을 뜨겁게 달구었던 태양이 서서히 모래 속으로 파묻히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더니 모래 위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낮의 열기도 많이 수그러져 있었다. 불그스레한 화선지 위에 먹물 통이 엎질러져 검정색 먹물이 서서히 번져가는 것처럼 붉은 색 하늘이 어둠에 덮여 가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더니 붉은 색 하늘이 머물다간 자리에 노오란 달이 소리 없이 나와 있었다. ‘아, 초승달!’ 사춘기 고교 시절, 내 마음을 빼앗아갔던 희정이. 그녀는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3년 내내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때는 그랬다. 남녀가 유별한 시대였으니까.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고, 아니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려 주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던 안타까움. 우연히 그녀가 눈을 살며시 감은 모습을 훔쳐 본 적이 있었다. ‘아, 초승달!’ 그녀의 속눈썹은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처럼 동그란 모양이었다. 그래서 항상 초승달만 보면 희정이의 속눈썹이 생각나고 이어서 그녀의 모습이 완성되곤 했었다.


   희정이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아니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 나 혼자 애태우고, 나 혼자 가슴 졸이고, 나 혼자 기뻐하고, 나 혼자 슬퍼하는, 진짜 슬프고도 애달픈 짝사랑. 짝사랑 한 번 안 해 본 사람과는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말란 말이 있지 않던가? 벌써 석 달이 지났나 보다. 그녀가 25년 만에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 물론 내가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서처럼 희정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타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그것은 인연이라 했던가? 우리는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나 보다. 나는 황홀한 꿈을 꾸는 듯했었다. 내가 그토록 그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화사한 벚꽃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가 하나둘 떨어질 무렵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동창 하나가 돈을 많이 벌어 왔다며 친구들에게 한 턱 낼 테니 어느 호텔로 나오라고 했다. 동창들 번개 모임이었다. 그때 나는 회사 일로 무척 바빴지만 그 날은 그 친구도 보고 싶었고,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약속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눈인사를 하고 빈자리가 없을까 둘러보다가 나의 눈이 한 구석에서 멈췄다. 아, 희정이!  희정이가 그 곳에 있었다. 희정이는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한 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희정이는 여자 동기들 사이에 끼어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냉큼 그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달려가서 아는 척 하고 싶었지만 주위 이목을 생각하여 일단 근처에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나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 나설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멀리서 훔쳐 본 희정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얼굴에 수심이라니…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눈여겨보니 옷차림도 이 호텔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무슨 일일까? 마침 희정이 옆 자리에 앉았던 동창이 사회자의 호명을 받고 앞으로 나갔다. 때는 이 때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희정이 옆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여기 앉아도 되지요?”
   “그럼요. 벌써 앉으셔 놓고…”
   “그렇군요. 괜한 말을 했군요. 저는 박우현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처음 뵙겠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했는데, 내 머릿속에서 얼마나 너를 그리워했는데…’
   “네, 저는 박희정이라고 해요.”
   “희정 씨는 여전히 아름다우신데요?”
   “뭘요. 사실 저는 여기 올 처지가 못 되는데, 명숙이가 여기서 만나자고 해서…”
   “아니 여기 올 처지가 못 된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희정 씨는 우리 동창생 아닌가요?”
   “그런 말이 아니고…”
   “지금 사시는 곳은 어디지요?”
   그때 최명숙이라는 동기회 여자 회장이 다가와 옆 자리에 앉았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봐!”
   “아니 오늘 처음 만났어.”
   “아주 다정히 이야기 하던데? 아니야 뭐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아∼”
   “동창생들끼리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건 그렇고 명숙 씨 부군은 잘 계시지요?”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유 그 양반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왜요?”
   “무슨 사업을 벌인답시고 돈을 숱하게 가져다 쓰잖아요.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
   “그래도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 투자를 해야 큰 돈 벌 수 있다는데… 저 같은 월급쟁이 하고는 생각 자체가 다르니까요.”
   “ … ”

   마침 동기회장이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오늘 모임은 이것으로 마치자고 했다. 그리고 정식 모임이 한 달 후에 또 있는데 그때는 모교에서 운동회를 겸하여 할 것이니 꼭 나오라고 했다. 바비큐 파티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끼리끼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희정이도 여자 동기들 틈에 섞여 빠져 나갔다. 나는 몇몇 친구들이 2차 가자는 것을 선약이 있다는 것을 핑계로 뿌리치고 나왔다. 황급히 희정이를 찾았다. 희정이는 혼자서 털레털레 호텔 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 차는 호텔 지하 차고에 주차되어 있었지만 나는 희정이 뒤를 밟았다. 희정이가 호텔 정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말없이 뒤를 따라가다가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쫓아가서 희정이 옆에 섰다.



6

   “또 만났군요.”
   “아, 예.”
   “어디로 가세요?”
   “사당동이요.”
   “아, 나도 마침 그쪽으로 가는데 우리 택시를 타고 가실래요?”
   “괜찮아요. 나는 버스가 더 편해요.”
   “아니 제가 그 쪽으로 빨리 갈 일이 있어서 그래요. 어차피 같은 방향인데 택시비 걱정은 마시고 같이 가시지요. 우린 동창생이잖아요? 남도 아니고, 아까 인사도 나눴고…”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가 보이기에 손을 들었더니 옆에 와 섰다. 나는 얼른 뒷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호텔 도어맨처럼 손을 안으로 저었다. “어서 타시지요.”
   희정이가 먼저 타고 나도 옆자리에 앉았다. 운전기사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두 분 데이트 하시나 봐요? 한참 좋을 때지요?”
   “아, 예? 그럼요. 그런데 좋을 때라뇨?”
   “벚꽃 말이에요. 이번 주가 피크라잖아요. 내일과 모레 비가 온다고 하니 꽃잎도 많이 떨어질 테고…”
   “우리가 데이트 날짜를 아주 잘 잡은 것 같아요. 그렇죠, 희정 씨?”
   “아∼ 예.”
   “어디로 모실까요?”
   “사당동이요.”
   “아니 거기 말고 봉천동까지 가 주세요.”
   “네, 떠납니다∼”

   차가 출발하자 나는 희정이에게 물었다. “아까 사당동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고개 하나 넘으면 봉천동인데요.”
   “아, 그렇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묻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자칫 오해를 받기 십상이고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재를 끼얹는 꼴이다. 나는 신중해야 했다. 질문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한 다음 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아예 물어 보지도 말자. 그것이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자녀분은 어떻게 되세요?”
   “딸이 하나 있어요. 고3이에요.”
   순간 희정이의 눈에서 생기가 돌았다. 나는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벌써 그렇게 큰 따님이 있었군요. 고3이면 한창 바쁠 시기인데… 공부는 잘 하죠?”
   “네. 다행히 말썽 피우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잘 해요.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해 줬는데…”
   “그래요. 요새 자식 걱정 안 하고 사는 사람 없다고들 하는데…”
   “자식 자랑은 팔불출에 속한다고 하지만 제가 자랑할 것은 딸밖에 없답니다.”
   “기특하시겠어요.”
   희정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모임에 나오실 거죠? 바비큐 파티도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명숙이가 꼭 나오래요. 고기도 좀 굽고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하다나요.”
   “아니 희정 씨가 고기 구우러 나오는 사람인가요? 고기 먹으러 나오는 사람이지. 고기야 거기 나오는 사람 아무나 구우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고…”
   “아무튼 희정 씨도 그날 꼭 나오셔야 해요. 나와서 고기도 푸짐히 드시고, 또 제가 드릴 말씀도 있고…”
   “무슨 말씀인데요?”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고, 그날 말씀드릴 테니 꼭 나오셔야 해요. 저랑 약속하는 거예요.”
   “그때 가 봐야 아는데…”
   “정 못 나오실 것 같으면 저에게 연락이라도 주세요.”
   나는 명함을 내밀었다. 희정이는 조심스레 명함을 받아들었다. 희정이는 봉천동 고개 넘어 큰길가에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나는 집 앞까지 가자고 했으나 어디 좀 들렀다 가야한다고 했다. 나는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며 더 이상 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한 달 후에 꼭 보자고 했다. 희정이도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가까워지는 데도 희정이로부터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알 수 없었다. 예정된 일요일에 모교 운동장에서 동기 운동회가 열렸다. 그 날도 나는 무척 바쁘게 돌아가고 있던 회사 일을 부랴부랴 마치고 오후 늦게 모교로 찾아갔다. 그 날은 일부러 회사에 차를 놓아두고 택시를 타고 갔다. 가는 도중 희정이가 나왔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가보면 자연히 알게 될 일. 모교에 도착하니 운동회는 마지막 경기를 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이미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희정이는 한쪽 구석에서 말없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희정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아는 척 했다. 희정이도 눈인사로 받아주었다. 희정이만 들을 수 있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중에 같이 가요. 할 말이 있어요”했다. 희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비큐 파티는 운동장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해가 떨어지자마자 얼마 안 있어 파장이 되었다. 희정이는 끝까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일을 거들어 주는 척 남아 있었다. 다른 동창들이 다 떠날 때까지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희정이 혼자 남은 것을 확인하고 옆에 가서 섰다.
   “희정 씨 혼자서 일을 다 하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건가요?”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희정이에게 화를 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너무 한 것 같으니까 그렇죠.”
   “그런데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뭐죠?”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한 달 사이에 얼굴이 더 홀쭉해 진 것 같아요. 뭐 고민 있어요?”
   “고민은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 조용한 카페에 가서 이야기 좀 할까요?”


   우리는 근처 조용한 찻집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나는 쟈스민 차를 시켰고, 희정이는 레몬 홍차를 시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나왔다. 나는 쟈스민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속마음을 쏟아 내었다. 25년 전의 일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왔다. 25년 동안 감춰 놓았던 쟈스민 향기가 이제야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희정이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털어놓으니 이제 가슴 속의 멍울 하나가 내려가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바라는 것 없다고 했다. 그저 같이 늙어가는 동창으로서 옛날 생각하며 스스럼없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혹시 희정이 남편이 오해할지 모르니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고도 했다.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희정이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랬었군요. 저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네요. 하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들 아니에요?”
   “물론 그렇지요. 저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잖아요. 그때만 해도 졸업을 하면 가까운 친구들 하고나 연락을 할까 그렇지 않은 친구들 하고는 연락이 끊어지는 걸로 알았잖아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그리고 열여섯 살 풋풋한 사랑 고백을 27년 만에 하게 되다니 이게 보통 인연입니까? 희정 씨는 저라는 동창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저도 우현 씨를 알고는 있었어요. 등굣길에 몇 번 본 적이 있지요. 우리 같은 버스 타고 다니지 않았나요?”
   “아이고 그것까지 알고 계셨군요? 그렇다면 말이라도 좀 붙여 볼 걸… 워낙 새초롬하셔서 그만. 엄청 후회가 되는데요? 하하하”
   “그렇지만 그때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남학생, 여학생들 사이에 말도 못 붙이게 했잖아요?”
   “그랬었지요…”
   “이젠 속마음 털어놓으셨으니 마음이 좀 편안해 지셨겠네요?”
   “그럼요. 제 이야기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희정 씨와 좀 더 있고 싶은데 제 욕심이겠죠? 앞으로 차차 친해지기로 하고, 오늘도 봉천동까지 같이 가시죠?” 희정이는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해 보였으나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택시는 어김없이 봉천동 큰길가에 세워졌다. 나는 택시 창문을 열고 멀어져 가는 희정이를 향해 언제든지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소리를 쳤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급하게 차를 세웠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희정이가 간 곳을 향해 뒤쫓아 갔다. 희정이는 저만큼 가고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뒤를 밟았다. 희정이는 산동네를 오르기 시작했다. 산동네에서도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다 무너져 가는 집이었다.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7

   한 달쯤 전이었나 보다. 회사 일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오후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바쁜 와중에 그냥 끊어버릴까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박우현 씨 휴대폰이죠?”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 박우현입니다. 희정 씨 맞죠?”
   “네.”
   “무슨 바람이 들어 전화까지 다 주시고, 황송합니다.”
   “ … ”
   “어유 제가 말실수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지금 어디시죠? 가까운 데 계시면 제가 지금 나갈게요.”
   “아니에요. 그럴 건 없고 있다가 퇴근 후에 좀 뵈었으면 하는데요.”
   “그러죠. 어디가 좋을까요?”
   “그때 그 카페 어떠세요?”
   “좋습니다. 시간은요?”
   “… 8시쯤?”
   “아니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는 게…”
   “그때는 제가 시간을 낼 수 없어서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나는 일부러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 혹시 희정이도 안 먹은 상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희정이는 벌써 나와 있었다. 희정이는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별로 생각이 없어요.”
   “저는 희정 씨와 같이 하려고 아직 안 했는데…”
   “그럼 식사하면서 말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착한 학생이라면 선생님 하시는 말씀 하나라도 빼먹으면 안 되잖아요?”
   나는 쟈스민 차와 함께 간단히 요기 될 만한 것을 시켰고 희정이는 역시 레몬 홍차를 시켰다.


   차가 나올 때까지 희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희정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쟈스민 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희정이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는 제가 우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 드렸잖아요? 이번에는 우현 씨가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셨으면 해서요.”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가슴에 답답한 일 쌓아두고 살면 병이 된다고 하잖아요? 제가 이래봬도 남의 이야기 듣는 데는 선수랍니다.”
   “제가 요즈음 사정이 좀 어려워요. 지난번에 운동회 때도 우현 씨가 나오라고 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 명숙이가 수고비를 준다고 해서 나간 것이에요. 그러니 열심히 고기를 구웠어야죠. 그때 저도 고기 많이 먹었어요. 먹을 때는 동창생이니까… 고기 구우면서 남의 눈치 보아가며 게걸스럽게 먹었죠. 몇 년 동안 못 먹은 고기 그때 다 먹었다니까요.”
   희정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희정이가 말하는 동안 쟈스민 차와 레몬 홍차는 두 번이나 더 채워졌다. 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젠 좀 속이 시원하네요. 우리 동창생 중에는 명숙이가 제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다른 애들은 전혀 몰라요. 괜히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친구들 사이에 소문 퍼지는 것 시간문제잖아요? 우현 씨는 이런 이야기 남에게 안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냈어요.”
   “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희정 씨 이야기 누구한테 하겠어요? 더구나 저의 첫사랑이신데… 혹시 제가 도와 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제 딸이 워낙 공부를 잘 해서 장학금을 받고 있고, 학교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아직 이혼 문제가 확정되지 않아서…”
   “그렇군요. 저 때문에 오해받으시면 큰일이겠군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간 지는 두 달 정도 됐어요. 그때 명숙이가 좀 도와 줬죠. 지금은 딸과 함께 살고 있어요. 남편은 우리가 어디 사는지도 몰라요. 아마 열심히 찾고 있을 걸요?”
   “그렇군요.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드릴 게요.”
   “우선 남편과의 문제가 해결돼야 해요. 그래야 뭐를 하든 할 텐데…”

   그 날도 희정이는 봉천동 큰길가에 내렸다. 나는 희정이 뒷모습을 보고 “힘을 내세요!”하고 외쳤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지금쯤 남편과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서울 가면 명숙이를 통해서 연락을 취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맘때면 늘 술병을 들고 다니던 여자도 오늘은 왠지 빈손이었다. 그 여자는 모닥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초승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척 쓸쓸해 보였다. ‘저 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서울에서는 몰랐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밤하늘의 별은 모두 색깔이 달랐다. 빨간색 별도 있었고 노란색 별도 있었고 초록색 별, 주황색 별, 하얀색, 파란색. 온갖 색의 별들이 모두 있었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희정이의 별도 저 많은 별 중 어디엔가 있어 희정이를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르에서 아침 식사를 지어 먹고 우리는 사막 체험을 하러 떠났다. 미니밴으로 한참 달렸더니 거대한 모래 언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곳이 그 유명한 홍고르 모래언덕이라고 했다. 풀이나 잡초는 보이지 않고 온통 모래뿐이었다. 언덕 높이가 72m에 이르는 곳까지 있다고 하니 모래가 30층 빌딩 높이만큼 쌓여있는 것 아닌가! 과연 대단했다. 그 모래언덕은 끝이 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동안 고비사막에서 보아왔던 풍경이 아니었다. 마치 사하라사막의 어느 곳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이 지역만을 일컬어 바양홍고르사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미니밴은 모래언덕 안으로 한 시간 가량 더 가서 멈춰 섰다. 미니밴 안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사막 체험을 하게 되었다. 차 안에서 조선족 가이드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목적지는 남쪽으로 8km 떨어진 지점으로 근처에 있는 다른 모래언덕보다 제일 높기 때문에 미니밴이 거기 서 있으면 멀리서도 잘 보인다고 했다. 잘 걷는 사람은 1시간 30분, 늦어도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방향을 제대로 잡았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미니밴은 미리 가서 일행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거기에서 차로 한 시간만 더 가면 오아시스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가 예정된 숙박지이고 거기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늦어도 3시간 안에는 미니밴에 도착해야 저녁식사를 제 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급적 모래 언덕 위로 걸으라고 했다. 모래 언덕 위에서는 전체 지형을 파악하고 방향을 잡기 쉬운데 반하여 모래계곡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전체 지형을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모래 언덕 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게 좀 힘들 거라 했다. 모래언덕이 꼬불꼬불 하게 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남쪽으로만 방향을 잡으면 된다고 했다. 남쪽이란 해가 떠 있는 쪽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별로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나침반을 하나 주겠다고 했다. 나침반은 선배가 받아들었다.


   우리는 손에 500ml 생수 병을 하나씩 든 채 출발했다. 술에 취한 여자와 함께… 떠나기 직전 조선족 가이드는 차 안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물은 가급적 아껴 먹으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까짓 두 시간도 못 참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사막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데…’ 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좀 지나자 ‘이거 별 것 아닌 게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술 취한 여자는 자꾸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를 기다리느라 시간은 자꾸 지체되어 갔다. 급기야는 내가 그 여자를 부축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팔을 그녀의 겨드랑이에 끼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물컹한 젖무덤이 만져졌다. 하지만 그걸 느끼고 있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멀리 모래먼지가 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저 모래먼지가 이쪽으로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러나 그 모래먼지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드디어 모래먼지가 우리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서서히 모래먼지가 해를 가렸다. 그 쨍쨍하던 해가 점점 빛나는 빛을 잃어갔다. 그래도 해가 어느 쪽에 있는지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방향을 잡고 싶어서 선배에게 나침반을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놈의 나침반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에필로그

   선배는 내가 자기를 살려 주었다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이 사막 체험 프로그램이 실패로 끝나면 자기도 회사에서 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전답사에서부터 조난자가 생기고 그것도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는 프로그램 기획자로써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판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난사고는 일어났지만 그래도 살아왔으니 여기에 대한 안전책을 조금만 보완한다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나의 경험담이 자기 회사에 꼭 필요하니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 회사에서 약간의 보답을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나는 미니밴에서나 비행기에서나 내처 잠만 잤다. 일행들이 일어나라 그러면 일어나고 옮겨 타라 그러면 옮겨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곧 잠에 곯아 떨어졌다. 마치 잠에 걸신이 들린 사람 같았다. 꿈속에 고비사막 모래언덕이 보이고 초승달이 나타났다. 황량한 고비사막 한가운데 희정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매우 갈증이 심한 것 같았다. 빨리 시원한 물 한 모금 전해 주어야 할 텐데 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비행기는 막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있었다. 공항에는 선배네 회사 차가 나와 있었고, 나를 우리 집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지만 아내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처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글쎄, 그 바보 같은 계집애가 200억이나 하는 땅을 50억만 받고 우리에게 넘겨준다고 했다니까… 나는 100억 정도에만 흥정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50억이나 벌었지 뭐야! 호호호”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한 역겨움에 구토증이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토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웩웩거리는 소리만 날 뿐 아무 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갑자기 고비사막에서 보았던 초승달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 여자가 생각났다. 희정이도 생각났다. 왜 하느님은 이렇게 불공평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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