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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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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5회 작성일 20-05-29 16:57

본문

코로나는 내게 여유를 가르쳐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라는 여유를,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휴식이라는 여유를

돈에 대해서는 포기라는 여유를 준다

여유란 공터와 같아서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풀이나 꽃이나 자라고

마음 먹고 흙을 고르고 뭐라도 심으면 자란다

내 마음에 공터가 생기자 그리움 같은 것이 자랐다

타이어가 빠진 자전거와 녹슨 운동 기구와 낚시가방과

술병과 잡동사니가 쌓여 뒤죽박죽이던 마당에

내 마음이 들어섰다. 공터가 들어 선 것이다.

타이어가 빠져서 달릴수 없게 된 자전거를 늙은 소처럼

끌어다가 마루문 앞에 매어두었더니 자체로서 묘한 운치가

생겼다. 원래 여유란 한끗의 멋 같은 것을 부여하는 모양이다.

그 자전거에다 아내의 방에 잠시 걸렸다 창고로 밀려난

밀짚 바구니를 걸고, 그 핸들에는 마루에 바람이 불지

않아 죽은 채 매달려 있던 종을 매달았더니, 죽었다 살아난

소처럼 자전거가 울었다. 자전거 뒤에는 잎이 무성한 화분을

싣고, 한 쪽 디딤돌 위에는 신발 대신 아내의 다육이 화분

두 개를 놓고, 못 쓰는 나무 의자를 찾아내어 크고 작은

화분들을 늘어놓았다. 마트에서 얻어온 갈치 상자에 흙을

가득 담아 와서 벽을 따라 쭉 늘어놓고, 다이소에서 사온

꽃씨들을 뿌렸다. 일주일 전에 뿌려 놓은 코스코스는 이미

싹이 나서 제법 줄기가 자라 있고, 고추 모종과 토마토와

오이도 젖을 뗀 고양이처럼 발랄하게 잎들을 흔들고 있다.

나무가 거의 다 썩어가는 파레트를 운동 기구 앞에 턱 놓

았더니 시골 사립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꽃이라는 예쁜 꿈을 꾸는 일이다. 꽃이 알록달록 피어난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상상을 하면 뼈빠지게 일해서

월급을 받는 순간보다 행복하다. 우리가 사람에게 건내는

예쁜 말들도 흙더미처럼 어둡고 무거운 무의식의 지층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씨앗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땅을 파헤쳐 버리듯 원망의 말들을

쏟아내고 결국 꽃을 보지 못하는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츄어의 어설픈 깨달음들이 웃자라는 우리 집 마당이

얼마나 풋풋한지, 꽃을 피워서 뜯어 먹을 것도 아닌데 꽃을 심는 것은

사람의 아름다움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살게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신성을 우리가 가진 것 같다. 메리골드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번데기 속에서 우화를 기다리는 우리 집에는

설레임이라는 나비가 이미 수십마리 날아 다니고 있다.

 

코로나는 무섭다.

가끔 선생님은 무서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데도 겁을 내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진정한 선생님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말해도 말 같이 여기지 않던 것들,

좀 쉬어가면서 살아라,

안전거리를 유지해라,

닥치는 대로 먹고 말하고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라

 

그러나 코로나는 자상한 선생님이다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자분자분 말한다.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다그치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코로나는 무섭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

 

코로나는 내게 마당을 내어준다.

사느라고 아무렇게 쌓아놓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을 치우게 만들고,

바쁘다고 외면해온 꽃과 풀과 고장난 자전거를

돌아보게 만든다.

육체를 위태로움에 내몰며

영혼을 치료한다.

게다가 코로나는 재난지원금을 준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박봉의 아빠가

한우를 한턱 쏘게 만들어준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국민들에게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여동생에게

팔을 걷어붙이고 알통을 보여주는 오빠처럼

힘내라, 나라가 있다고,

국가가 국민에게 보여주게 만든다.

 

오늘은 마당에서 딴 상추에 삼겹살을 싸먹으며

푸른 잎을 먹은 달팽이가 푸른 똥을 싸듯

시를 쓰고 싶다.

 

코로나는 무엇보다도 나에게 시를 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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