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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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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영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20-06-12 09:46

본문

별을 찾아서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왜 별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을까?

   “오빠, 이젠 인태오빠라 안 하고 인태 씨라고 부를래요.”

   “그래? 너 좋을 대로 하렴.”

   그 날 오후 우리는 함께 학교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노랗게 물들었던 은행잎은 대부분 땅에 떨어져 황금빛 비단 이불을 만들고 있었고, 하늘의 공기는 점차 서늘해져 갔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빠’라는 호칭과 ‘씨’라는 호칭에 어떤 차이가 있지? 나는 왜 그렇게 부르려 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별이는 나와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자연과학대학 천문학과天文學科 3학년 강인태, 별이는 음악대학 성악과 1학년.

 

   별이의 실제 이름은 김은별이었다.

   “김은별? 참 예쁜 이름이다. 그런데 나는 ‘은별이’ 보다는 ‘별’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이래 뵈도 내가 천문학도 아니니? 물론 은색 별도 있지만 나는 모든 별을 사랑한단다.”

   “와, ‘별’도 참 예쁜 이름이네요. 오빠에게만 ‘별’이라 부르게 허락할 게요.”

   “고맙다, 별아! 밤하늘에서 유성우遊星雨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지난 가을 별밤 축제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소개를 마친 다음부터 별이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인태오빠라 불렀었다. 나는 별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댔다.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별이의 잔상殘像이 떠나지 않았고 어느새 내 가슴 속에는 별이라는 존재가 또아리 틀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춘기에 들어섰나 보다. 나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여학생에게서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첫눈에 들어온 그 소녀는 머리 뒤에서 광채가 날 정도로 예뻤다. 소녀의 몸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특히 나와 같은 동네 살고 있어서 몇 번 버스를 같이 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때는 남녀가 유별有別한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소녀와 아무런 추억도 남겨 놓고 있지 않았다. 분명 나에게 다가온 첫사랑이긴 했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짝사랑에 불과했다. 나만 혼자 좋아하고, 나만 혼자 애태우는 슬프고도 슬픈 짝사랑. 다만 학교 안에서 얼굴 마주치는 것만으로 애태움을 달랬다. 고교 졸업반 시절, 그때까지 나는 그 소녀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고,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계절이 다가온 어느 날 나는 그 소녀에게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어찌하여 소녀의 이름과 집 주소를 알아냈다. 소녀의 이름은 진달래.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꼬박 날밤을 새워 쓴 핑크빛 연애편지를 등굣길에 진달래의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두근두근 기다리길 여러 날. 집에 돌아온 나는 아버지로부터 겉봉이 뜯겨지지 않은 편지를 건네 받았다.

   “한참 공부할 시기에 이게 무슨 짓이냐?”

 

   아버지는 더 이상 꾸지람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얼른 방에서 나와 편지를 살펴보았다. 분명 내가 보낸 편지인데 편지봉투에는 ‘수취거부受取拒否’라는 붉은 색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의 마음은 달래네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난 셈이었다. 눈앞에 닥친 대학 입시 때문에 더 이상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달래를 잃어버리고 한참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더욱이 달래는 단번에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나는 낙방의 쓴 잔을 마셨다. 억지로 달래를 잊고 열심히 공부하여 다음 해에는 나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달래는 이미 내 주위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젠 나도 떳떳한 대학생 신분. 다시 달래네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나에게 돌아온 답신은 단 두 문장.

   ‘나는 당신을 잘 모릅니다. 다시는 이런 편지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쌀쌀맞은 답신에 내 마음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제 달래를 향한 내 마음 접어야 하나?’

 

   대학교 입학식이 끝난 후 기대에 찬 신입생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봄. 노란색, 분홍색, 하얀색 꽃들이 한참 흐드러지게 피고 우아한 목련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한참 미팅의 재미에 빠져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나도 두세 번 미팅이란 것을 해 보았다. 그 곳에서 내게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내 머릿속에는 첫사랑 진달래의 잔상殘像이 너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나날이 따사로운 햇살이 뜨거운 햇볕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 뒤적이다가 밖으로 나왔다.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캠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사방이 컴컴해졌을 때 나는 산 중턱에 있는 연못가에 서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에는 동그란 달이 떠 있었다. ‘아! 그 아이의 이름이 진달래라고 했지?’ 하지만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인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조차 거부하던 달래. 이미 원망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서로 가야할 길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환한 달빛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 주위에는 희미하게나마 작은 별들이 보였다. 아, 별도 있었구나! 고개를 돌려 다른 쪽 하늘을 보았더니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모두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저 많은 별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혹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거기 있지 않을까?’그것은 꿈이었다. 도저히 이루어지지 못할 꿈.

 

   나는 2학년 올라갈 때 전공학과를 정해야 했다. 다들 졸업 후 취직이 잘 되는 과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천문학과를 떠올렸다. 별과 달이 있는 밤하늘의 우주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천문학과는 취직이 잘 되지 않는 학과라며 동급생들에게는 기피대상 1호 학과여서 그랬는지 무난히 배정되었다.

 

   우주宇宙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포함하여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낮에는 태양 빛이 너무 강해 많은 것이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태양빛에 가려져 있던 많은 것들이 나타난다. 수많은 별과 달,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함한 공간이 바로 우주이다. 우주는 약 145억 년 전, 빅뱅이라 부르는 거대한 폭발로부터 시작되어 계속 팽창 중이라고 한다. 우주의 크기는 수십억 광년光年 이상이라고 한다. 1광년이란 빛의 속도(300,000km/초)로 1년 동안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하는데, 300,000 x 60 x 60 x 24 x 365 km = 9,460,800,000,000 km (9.46조 km)에 달한다. 우주의 크기가 수십억 광년은 족히 넘는다고 하니 실로 어머어마한 크기라 할 수 있다. 이 우주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이 바로 천문학天文學이다. 나는 천문학에 곧바로 매료되어 버렸다.

 

   2학년부터는 전공과목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별은 밤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공부해야 하는 과목은 여럿 있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별로 없었다. 나는 별을 보며 낭만을 꿈꾸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내가 선택한 길.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늘의 별은 그대로 있었지만 도심의 불빛 때문에 눈에 보이는 별들은 자꾸 줄어만 갔다. 나의 대학 생활은 그렇게 흘러갔다. 동급생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 채 나는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점점 외톨이가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별을 관측하는 일이었다.

 

   3학년 가을 축제 때 우리 천문학과에서는 달과 별 관측 행사를 준비했다. 천문학과 3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하는 행사였는데, 행사 제목은 ‘별밤 보기’라 했다. 산중턱에 있는 대학 천문대에는 크고 작은 망원경이 두 개 있었다. 그 중 큰 망원경은 달 표면을 뚜렷이 볼 수 있도록 고정시켜 놓고, 크기가 작은 망원경은 밤하늘 이곳저곳에 있는 별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설치한다고 했다. 나는 관여하기 싫다고 했지만 과대표는 관람객 안내라도 맡아달라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관람객들에게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설명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지못해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관람객은 우리 학교 남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여학생들끼리 온 관람객도 있었다. 또 다른 학교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처음 안내를 맡은 학생들은 우리 학교 경영학과 2학년 남학생 둘.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별을 보려고 하는 이유는 무얼까? 경영학과를 나오면 취직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나는 쓸 데 없는 걱정을 해 가며 대충대충 설명해 주었다. 달 표면을 보면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언제쯤 저기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저 곳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까?”

  등등 그들로서는 아주 비현실적인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수십 년 이내에 눈앞에 닥칠 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던 그들을 보내고 나서 나에게 다가온 관람객이 바로 별이였다.

 

   별이는 혼자 왔다고 했다. 이 캄캄한 밤에 여학생 혼자 산 중턱에 있는 천문대까지 올라오다니… 대단한 강심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별이는 올해 음대 성악과에 들어온 신입생이라고 했다. 집이 경상도 쪽이라 학교 앞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 소개가 끝난 다음 별이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인태오빠라 불렀다. 나는 별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근래에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로부터 내 머릿속에는 첫사랑의 소녀 달래 대신 별이의 모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별이는 달래만큼 빼어나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수더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은 것이 더욱 예뻐 보였다.

 

   천문대 안은 복작거리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별이에게 달 표면을 보여 준 다음 천문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별빛이 잘 보이는 풀밭에 앉아 내가 알고 있는 별자리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문고자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가 그의 아버지 아폴론에게서 선물로 받은 하프란다.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던 아내 에우리디케를 잃고 그 슬픔으로 방황하다 숨졌을 때, 그의 음악에 감동한 제우스신이 이 하프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지. 거문고자리는 여름 하늘에 나오는 조그마한 별자리이지만 아름다운 베가(직녀성)를 포함하고 있어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던 별자리란다. 또 안드로메다자리는 밤하늘에서 쉽게 찾긴 힘들지만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안드로메다는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의 딸이었는데 카시오페이아의 허영심 때문에 바다뱀의 제물이 되어야 했다. 괴물이 안드로메다에 다가오려 했을 때, 마침 메두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그 광경을 보았단다. 그는 케페우스에게 가서 안드로메다를 아내로 삼게 해 준다면 괴물을 죽이겠노라고 했다. 케페우스의 승낙을 받은 페르세우스는 그 괴물을 죽이고 안드로메다와 결혼했단다. 오리온자리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사랑한 대가로 그녀의 화살에 맞아 죽음을 당한 사냥꾼 오리온의 별자리이다. 그러나 아르테미스가 그에게 화살을 쏜 것은 둘의 결혼을 반대한 오빠 아폴론의 계략 탓이었단다. 천구天球의 적도에 있는 나비 모양의 별자리로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별자리이다.  전갈자리는 헤라여신이 사냥꾼 오리온을 죽이기 위해 풀어 놓은 전갈이다. 오리온은 무척 오만하여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죽일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이 말을 들은 올림푸스의 신들은 무척 화를 냈고 결국 헤라 여신이 전갈을 풀어 건방진 오리온을 죽이게 했지. 그 후 전갈은 오리온을 죽인 공로로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단다. 오리온은 하늘에서도 전갈이 두려웠는지 전갈이 서쪽 하늘에 질 무렵에야 동쪽 하늘에 보이기 시작하지. 카시오페아자리는 북반구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별자리인데 W 또는 M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카시오페이아를 이루는 별들은 대부분 밝아서 도시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페가수스자리는 메두사를 사랑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녀가 괴물로 변하여 페르세우스에게 죽음을 당한 것을 슬퍼하여 그녀의 머리에서 떨어진 피와 바다의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페가수스는 벨레로폰을 도와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훗날 벨레로폰이 교만에 빠져 제우스신에 의해 죽게 된 후 하늘에 올라 별자리가 되었지. 이 별자리의 중심 부분에 해당하는 페가수스 사각형은 가을철의 대표적 길잡이 별이란다.”

 

   “와, 대단하다. 오빠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어요?”

   “내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도 아니니?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

   별이는 내 이야기에 대한 보답으로 ‘별’이라는 노래를 불러 주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나야 물론 O.K. 별이는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도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 역시 성악과 학생다운 실력이었다. 마침 천문대 안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천문대 안으로 들어갔다. 과대표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 처음 치르는 행사에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 과대표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뺏어들었다.

   “오늘 별밤 행사에 참석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행사를 마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어느 아름다운 분이 오늘 밤에 꼭 맞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합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기 바랍니다.”

   나는 별이를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별이는 수줍은 듯이 사양하다가 앞에 나섰다. 그리고 아까 내게 불러 주었던 것보다 훨씬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물론 아무 반주도 없이… 환호성이 터졌다. 과대표가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꼭 맞는 노래를 꾀꼬리처럼 불러 주시니 저희 행사가 더욱 알차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성악과 신입생이구요, 김은별이라고 해요. 평소 밤하늘의 별을 좋아 했었지요. 오늘 인태오빠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그 고마움의 표시로 노래를 불러 드린 것뿐이에요.”

   “역시 성악과라 수준이 다르군요. 아무튼 은별 씨는 우리 ‘천문학과의 별’인 것 같아요. 내년 축제 때에는 저희가 정식으로 초대할 테니 꼭 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힘찬 박수를 보내 드립시다.”

 

   그 날 나는 별이와 함께 내가 가끔 들리는 카페에 갔다. 그 카페에는 평소 내가 즐겨 듣는 곡이 담겨진 LP판을 가지고 있었다. 칵테일 한 잔씩 시키면서 나는 영화 'Zorba the Greeks'에 나오는 ‘Zorba's dance'를 틀어달라고 했다. 별이는 내가 잘 모르는 곡을 신청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별이와 나와의 공통점을 찾게 되면 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내가 여배우 중에서는 잉그릿드 버그만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 배우를 좋아한다고 했다. 또 별이의 모습이 ○○○이라는 배우와 비슷하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런 말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 날은 그 정도로 하고 헤어졌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별이 사는 집까지 바래다줄까 했더니 자기 집은 바로 옆에 있으니 나보고 먼저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이후 별이와 나는 자주 만났다. 내가 별이 하교 시간에 맞춰 음대 건물 앞에서 기다릴 때가 많았다. 우리 학과에서 교문으로 가는 도중에 음대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별이가 내 실험실로 놀러 오기도 했다. 별이 내 실험실로 놀러 왔을 때 나는 같은 실험실을 쓰는 친구에게 별이를 소개시켜 주었다. 처음 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음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별이는 자기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나와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별이는 나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나는 꽃밭 속에 자리 잡은 나비처럼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함께 교문을 나섰다. 그때는 별이 친구들의 재잘거림도 새들의 노래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다음부터는 별이 친구들이 “나 먼저 갈게!”“나는 도서관에 가야 돼!” 등등의 이유를 대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래서 별이와의 오붓한 하굣길을 가질 수 있었다.

 

   낙엽이 거리를 마구 뒹굴던 날, 별이와 나는 하굣길에 있었다. 갑자기 별이 노래 한 곡을 부를 테니 들어보라고 했다. “♪♬……♩”별이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곡조는 프랑스 샹송인 Sous les Ponts de Paris인 것 같은데 가사는 우리 말 같았다. 내가 “샹송인가?” 했더니 별이는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했다.

   “물에 빠진 파리, 왕십리 똥파리, … …”

   “이 말과 아까 그 노래가 무슨 관계가 있지?”

   별이는 이 말을 아까 그 곡조에 맞춰 입술을 안쪽으로 집어넣고 혀를 굴리며 샹송처럼 불러보라고 했다. 그리고 약간 느리게 하여 시범을 보여 주었다.

   “♬ 물에빠 진 빠리, 왕십리 똥 빠리, … … ♩, 아하, 이 노래였구나!”

   “오빠도 노래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그걸 당장 따라 부르는 것을 보면…”

   “야 네 노래에 비하면 흉내만 내는 거지 뭘”

   우리는 함께 흥얼거리며 교문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별이는 나에게 인태 씨라고 불러도 되냐고 했고, 나는 인태오빠에서 인태 씨로 바뀌게 되었다. 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여느 여학생들처럼 까탈스럽게 굴지도 않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두 손을 턱에 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귀여운 모습이란…

 

   첫눈이 오던 날, 그 날은 대부분의 강의가 끝나는 날이었다. 별이와 나는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별이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첫눈이 소담스럽게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별이는 자기 고향에서 이런 말을 쓰니 잘 들어 보라고 했다. 별이는 울퉁불퉁 경상도 사투리로 “지는 당신끼라예~”말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이제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버스와 함께 멀어져 가는 별이를 보고 있었다. 나는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양 얼떨떨했다. 이건 나에 대한 사랑 고백 아닌가?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겨울방학 동안에는 몇 차례 전화만 주고받았다. 첫눈이 오던 날 별이가 내게 했던 고백에 대해서는 피차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기나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다. 나는 졸업반이 되었다. 별이와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만나면 깔깔대고, 웃고, 떠들었다. 벚꽃이 활짝 핀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는 남산 팔각정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별이는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대놓고 연인처럼 행세하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속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장 졸업 이후의 일들이 눈앞에 닥쳐와 있었다. 대학 재학 시절동안 연기되었던 군 복무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며칠 전에 입영 신체검사를 한 결과 ‘현역입영대상’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다 해 놓고 있었다. 졸업 후 ROTC 장교로 가게 된 친구도 있었고, 이미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친구도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일단 대학원에 들어간 다음 훗날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군대를 가게 되면 그 때까지 공부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 텐데… 군대 갔다 와서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고… 공부를 계속 하려면 적어도 유학을 다녀와야 할 텐데, 우리 집 경제 상황은 내가 손을 벌릴 처지도 못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별이 나에게 들려 준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별이 아버지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굴지의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공장만 해도 여러 군데 있다고 했다. 별이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그다지 아버지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나는 우리 집과 별이네 집 경제적 수준이 많이 차이 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마음에 걸렸다. 차츰 내가 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별이와의 만남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이로부터 연락이 와도 무슨 이유를 대며 다음에 보자고 했다. 별이도 처음에는 알았다고 했지만 나의 회피가 계속되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며 추궁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점차 별이로부터의 연락도 뜸해져 갔다. 어느 날 나는 별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시를 한 수 지었다. 그리고 고운 편지지에 옮겨 적은 다음 음대 성악과로 보냈다. 수신인을 김은별로 해서…

 

 

별이에게

 

 

자하산 언덕 모롱이 모롱이

아지랑이 흐늘거리고

멀리서

뻐꾸기 소리 가물거리는 오후

 

그래 별이야

너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에메랄드빛 하늘이

잠깐씩 비껴가는 구름 사이로 눈부시고

청운사 암자 뒤를 돌아흐르는 물가에 앉아

편지를 쓴다

 

젊음은 이래서 좋은 것인가?

만나고, 반갑고, 즐겁고…

헤어지고, 외롭고, 슬프고…

 

목 긴 사슴의

슬픈 전설이 생각나는 저녁 어스름

 

너의 커다란 두 눈은

호수가 되고,

 

나의 마음은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처럼

그 곳을 스치어 간다

 

별이야 슬픈 이야기는 말아다오

너의 향그런 관은 잊을지라도

너의 맑고 고운 두 눈은

언제나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니…

 

   며칠이 지나도록 별이로부터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섭섭했지만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다.

 

   4학년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나는 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방학을 하고 내가 졸업을 하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할 처지이니 마지막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별이는 약속 장소에 나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교 뒤 산중턱으로 올라갔다. 별이와 그 친구도 말없이 따라왔다. 자그마한 연못에 이르러 나는 한참동안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마음속으로는 할 말이 많았지만 입 속에서만 맴돌았다. 별이의 친구가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산에서 내려왔다. 우리 세 사람은 나와 별이가 함께 가던 카페에 갔다. 나는 Charlie Rich가 부른 ‘The most beautiful Girl'이라는 곡을 틀어달라고 했다. 별이는 음악을 신청하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별이의 친구가 간간이 내 말에 대꾸해 주었다. 카페를 나와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졌다. “잘 가!” 이 소리마저 내 목울대를 넘어오지 못했다.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별이의 친구가 별이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쪼그려 앉은 별이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했고, 벅찬 훈련소 생활 덕분에 별이와의 이별의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차츰 나의 머릿속에서 별이의 모습은 희미해져 갔다. 군대에서는 캄캄한 밤중에 보초를 서면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다. 밤하늘에는 도심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가끔 학교에서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던 그런 별도 아니었다. 모두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아름다운 성단이나 성운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군대를 마치면 우주와 별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끔씩 별이와 달래 생각도 났다. 하지만 지금 별이와 달래는 나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별이가 결혼했다는 소식은 병장 계급장을 달 무렵 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 결혼 상대방이 나와 같은 실험실을 쓰던 친구였다는 것. 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자초한 일. 나는 별이나 그 친구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되라고 축하해 주었다.

 

   얼마 후 군대에서 제대한 나는 대학교 은사님의 소개로 충청북도 단양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소백산천문대에 연구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 곳은 전혀 인적이 없는 산 속에 있었다. 그래서 지원자가 별로 없었다. 가끔 부식 실은 차량만이 경적을 울리며 나타날 뿐이었다. 시내에 나갈 일도 거의 없었다. 소백산천문대에는 직경 61cm 망원경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걸 사용하여 마음껏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 그 속에 나의 별이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가끔 스쳐 지나갔다.

 

   1985년에는 아주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소백산천문대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보현산천문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거의 10년 후의 일이지만 보현산천문대에는 직경이 1.8m나 되는 반사망원경이 설치될 것이라고 했다. 집에서는 결혼할 때가 되었으니 적당한 짝을 맞아 결혼하라고 재촉했지만 나는 하고 있는 일이 우선이라며 말도 꺼내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가끔 별이와 달래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나는 보현산천문대로 가기 위해 열심히 연구를 했다. 소백산천문대에서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논문도 많이 발표했다. 석사 논문도, 박사 논문도 무난히 통과되었다. 이 모든 것이 보현산천문대로 가기 위해서였다. 보현산천문대에 설치될 망원경을 사용하면 새로운 별을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새 별을 발견하면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발견하는 별에는 달래의 이름을 따서 ‘달’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야겠다는 김칫국물을 마시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보현산천문대 설립준비위원으로 발령받았다. 나는 천문학 전공자로써 1.8m짜리 반사망원경 설치 공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워낙 산악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공사라 꽤 까다로웠다. 드디어 1996년 4월에 보현산천문대가 완공되었다. 나는 1.8m 반사망원경 관측팀장으로 임명되었다. 보현산천문대에서 본격적으로 관측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될 무렵 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망원경이 있는 건물에서 밖으로 나왔다. 바깥 공기가 무척 차가웠다. 밤하늘에 별은 무수히 많았지만 내가 기다리는 별은 오늘도 나오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다. 기다리는 사람 헛물만 켜도록 해 놓고 자기 얼굴 제대로 보여 주지 않았다. 관측을 시작한 첫날 어떤 별 하나가 슬쩍 내 눈을 스쳐 지나갔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별이라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려는 순간 그 별은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나는 그 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맞이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별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별이 새로 관측된 별이라면 최초 발견자의 재량에 따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나는 벌써 이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Byul. 그것은 꿈에도 잊지 못할 이름이었다.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

 

   그러나 그 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꿈이었던가?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수는 없지…’ 혼자 자위하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별 관측에 들어갔다. 어느 날 나는 새로 태어나는 한 쌍의 아기별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이게 바로 쌍둥이별 아닌가? 쌍둥이별은 두 개의 별이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정밀 자료를 통해 그 별들이 새로운 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나는 각각의 별에 대하여 Byul이라는 이름과 Daal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내용을 국제천문연맹(IAU)에서 발표하여 공인까지 받았다. 이후에도 나는 별의 관측에 힘을 쏟아 몇 개의 별을 더 찾아냈다. 다른 별들의 이름은 생각나는 대로 지어주었다. 나는 장비 개발에도 참여하여 2K CCD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2K CCD 카메라는 1.8m 망원경의 주력관측기기로 사용되고 있다. 2003년에는 BOES(고분산 에쉘 분광기)를 개발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 해 9월에는 미국 애리조나 주 레몬산에 위치한 레몬산천문대 초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레몬산천문대는 한국천문연구원 산하의 천문대로서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연중 측정 가능한 날이 200일 이상이나 되었다. 그 곳에는 직경 1m 크기의 광학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국내와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소백산천문대와 보현산천문대의 자료를 비교 분석하면 종합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2004년 9월 나는 대덕 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으로 보임을 받았다. 도시로 나가니 몸은 조금 편해졌지만 마음은 항상 새로운 별을 찾고 있었다.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고 있을 때가 더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9월, 23년 동안 나의 보금자리였던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물러났다. 세상이 젊은 사람들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미혼인 상태였다. 내 마음 한 구석에 별이와 달래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이곳저곳에서 별에 관하여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직장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시간이 좀 흐르니 강연해 달라는 요청도 점점 줄어들었다. 여유 시간이 조금 생기자 나는 인터넷에서 고교 동문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보게 되었다. 아아, 그 곳에는 젊은 시절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첫사랑의 소녀인 진달래가 그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다.

 

 

 

첫사랑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모습은

언제나 언제까지나 16세 소녀

 

이마에 한 줄, 두 줄 세월이 흐르고

머리엔 희끗희끗 서리가 내렸어도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모습은

언제나 언제까지나 수줍은 소녀

 

아지랑이 춤을 추는 어느 봄날에

내 눈을 스쳐가는 소녀가 있었다네

 

아, 황홀한 순간이여!

영원한 순간이여!

그로부터 나의 시간은 멈춰 버렸고

그로부터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지

 

아아, 이제 와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늘이 내게 내린 축복이었다

 

소녀는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었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

꽃향기를 쫓아 날갯짓 하는 벌, 나비처럼

언제나 내 마음은 소녀를 향하고 있었다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가!

한 걸음만 더 다가가 말을 건네면

다정한 말 한 마디쯤 들을 수 있었으련만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은 그예 오지를 않고

소녀는 기약도 없이 떠나버리고 말았다네

 

무심한 하늘이시여!

비정한 하늘이시여!

 

나의 눈은 인파 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사라진 소녀의 흔적은 찾을 길 없었다네

그로부터 소녀의 향기는 옅어져 가고

바람결에 들리는 건 그녀의 웃음소리뿐

 

하루하루 기억은 사위어가고

하루하루 추억은 새로워가고

문득 문득 떠오르는 소녀의 영상

그것은 젊은 날의 소중한 훈장이었지

 

이마에 한 줄, 두 줄 세월이 흐르고

머리엔 희끗희끗 서리가 내렸어도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모습은

언제나 언제까지나 수줍은 소녀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모습은

언제나 언제까지나 16세 소녀


   동문 주소록에서 진달래의 E-mail 주소를 찾아내어 Mail을 보냈다. 나 자신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하여 내가 그녀를 짝사랑 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그녀에게 보냈다. 내가 발견한 쌍둥이 별 중의 하나인 Daal의 사진과 그 이름의 배경 그리고 아름다운 천체의 사진들까지… 하지만 그녀로부터 온 답신에는 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더 이상 자기 인생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사실 나도 그녀를 찾아 무엇을 해 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나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란 말인가? 그저 마음이 허전할 때 말상대라도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는데… 또다시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찌그러져 버렸다.

 

   얼마 후 별이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동창으로부터 전해들은 실험실 친구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 친구는, 아니 별이의 남편은 미국 유명 천문연구소의 소장으로 보임되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그 친구보다 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래 잘 살고 있었겠구나. 원래 그 친구는 똑똑한 녀석이었으니까… 그 친구에게 축하의 말이라도 전달해야 할 텐데… 하지만 그 친구도 나와 별이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며칠동안 고민하던 끝에 나는 별이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그 친구가 캐나다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그 친구가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 연구소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우리나라 아침 7시면 그 쪽은 오후 2시이기 때문이었다.

   “Hello~ This is In-Tae Kang. Can I speak to the secretory of Dr. Ha-seung Park?" "Just a moment" 뚜뚜뚜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기 저 편에서 나이가 지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Hello~" 나는 그 쪽에서 중간에 내 말을 끊지 못하도록 미리 준비해 둔 영어 문장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Hello~ Good afternoon. This is In-Tae Kang calling from Korea. I am old friend of Dr. Park and his wife, Mrs. Kim. I wonder whether you can give me the Dr. Park's home telephone number or Mrs. Kim's cellular phone number. If that is not possible, can you call Mrs. Kim for me and let her know my phone number? My phone number in Korea is ○○○-○○○-○○○○, and my mobile phone number is ○○○-○○○○-○○○○.” 전화기에서 “O.K.”라는 말이 들렸다. “I appreciate your help in advance. Thank you very much" 나는 이제야 끝났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로부터 전화기를 뚫어지게 쏘아보며 기다렸지만 그 날은 끝내 아무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별이가 나를 잊은 것일까? 자기가 먼저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절한 셈이니 별이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으리라. 그 미움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나에게 전화 걸고 싶은 마음이 없겠지… 새삼 젊었을 적 나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별이를 그토록 사랑했다면 당시 나의 심적 갈등을 제대로 설명해 주고 별이에게 처분을 맡겼어야 하는 게 옳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그 날 밤은 뒤척뒤척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별이로부터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아, 이젠 끝이로구나!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찾았던 별이와 달래.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구나! 이 모든 것이 내 탓인 걸 어찌하랴! 소중한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는구나…’

 

   오후 1시쯤 전화기가 요동을 쳤다. 빨리 받으라는 성화 같았다. 무언가 예감이 이상했다. 나는 조심스러이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온 목소리는, 아… 순간 내 심장은 멈추어 버렸다. 바로 별이의 목소리였다. 거의 30년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가 지금 내 귓전을 두드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분명 별이의 목소리였다. 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인태. 너 별이지? 별이 맞지?”나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네, 오빠, 아니 인태 씨. 뭐라고 불러야 되지요?”

   “네 마음대로 부르렴.”

   “네, 어제 연락을 받았어요. 저는 오빠 이름을 듣는 순간 땅이 꺼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왜 이제야 연락하는 건데? 내가 얼마만큼 기다렸는지 알아?”

   “그게 그렇게 됐어요. 제 남편 아시죠? 오빠 친구 하승 씨.”

   “그럼. 소식 다 듣고 있었지. 얼마 전에 그 연구소 소장으로 간 것까지…”

   “하승 씨가 캐나다로 출장 갔다가 오늘 오후에 돌아왔거든요. 얼마 전에 하승 씨가 잠깐 고국에 들릴 일이 생길 거 같다고 말했었어요. 그래서 그거 확인한 다음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그만. 오빠를 기다리게 만들었군요. 죄송해요.”

   “그래, 이제 괜찮다. 네 목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구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구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러세요? 지금 오빠한테 좋은 소식 들려 드리려고 하는데…”

   “그래, 좋은 소식이라니 그게 뭐지?”

   “다음 주에 하승 씨가 제주도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참석하기 위해 잠깐 고국에 들어갈 거래요. 그래서 저도 함께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죠. 오랜만에 친정에도 가보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다고… 그랬더니 자기 일에 방해만 안 된다면 같이 가도 된다고 했어요. 이거 좋은 소식 아니에요?”

   “그래 참 좋은 소식이다. 그 때 우리 만날 수 있을까?”

   “그럼요. 이번에 제가 가는 것은 모두 오빠 때문인 걸요. 다른 곳은 다 핑계에 불과해요. 제 남편은 제주도에 있을 거고…”

   “그래, 그때 보면 좋겠다. 그럼 너희 집 전화번호나 네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지 않겠니? 인터넷 메일 주소도 함께…”

   “ ○○○ ○○○ ○○○ ○○○”

   “참 네가 오면 서울에 머무를 거지? 난 지금 대전에 살거든. 너 올 때 맞추어 내가 서울로 올라가도록 할게.”

   “오빠 가족은 다 잘 계시죠?”

   “나? 이건 극비사항인데… 나 아직 미혼이야. 말하자면 숫총각이지, 천연기념물. 하하하”

   “……”

 

   그 날은 그 정도로 통화를 끝냈다. 별이가 오다니, 별이를 만나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소식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새 세상을 사는 것 같았다. 혹시 별이가 우리 집에도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집 청소를 시작했다. 앞뒤 거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칙칙한 냄새들을 모두 쫓아 보냈다. 무려 3년 여 동안 이 곳은 홀아비만이 드나들던, 그래서 모든 곰팡내와 쓰레기들이 구석구석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가끔 나이 드신 어머니가 오셔서 대강대강 청소도 해 주시고 밑반찬도 만들어 놓고 가셨지만 그때뿐이었다. 밖에서 들어오면 양말은 아무 데나 던져 놓고 웃옷, 아래옷 가릴 것 없이 옷장에 쑤셔 넣었었다. 이 꼴을 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날 오후 내내 칙칙한 냄새를 쫓아 보내는데 시간을 다 소비했다. 다음날은 본격적으로 청소에 들어갔다. 가구에 손걸레를 대었더니 때가 새까맣게 묻어 나왔다. 두 세 차례 손걸레로 문질러 주어야만 반들반들거렸다. 하루 종일 몸을 놀렸더니 제법 집 같은 집으로 변했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모두 별이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니 힘이 펄펄 솟아났다.

 

   며칠 후 아침 전화기 벨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별이였다. 어젯밤 비행기를 타고 오늘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했다. 남편은 곧장 제주도로 떠났다고 했다. 자기는 방금 서울에 들어왔다고 했다. 앞으로 내일 밤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남편에게 친정에 갔다가 친구 만나고 오려면 그 정도 걸릴 거라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했다. 별이에게 내가 지금 당장 올라갈 테니 어디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으라 했다. 별이는 학교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별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차를 몰고 서울로 가는 도중 나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고속도로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는 과속 카메라도 내 차의 속력을 줄일 수 없었다.

 

   별이는 모교 교문 앞에 서 있었다. 기본적인 얼굴 형태는 그대로였지만 역시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별이의 얼굴에 중년의 주름이 얇게 덧입혀져 있었다. 우리는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 돌아다녔다. 모교 뒷산 중턱에 있는 연못에도 갔다. 함께 공부하던 도서관에도 가 보았다. 우리가 즐겨 가던 카페는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깨끗해 보이는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별이는 한참이 지나도록 입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별이가 입을 열었다. 자기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고 했다. 그 원인이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로 인하여 결혼 초기에는 부부 사이에 갈등도 많았다고 했다. 지금 남편은 자기 연구에 바빠서 집안일에는 신경도 안 쓴다고 했다. 그 대신 좋은 연구결과를 많이 발표하여 연구소장이라는 직책에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벌써 아는 이야기라고 대꾸해 주었다. 별이는 요즈음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고, 무언가 활동을 해야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충고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 생활에는 그럭저럭 만족하고 사는 편이라고 했다. 그때 별이의 입에서 얕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때맞추어 들어오는 음식상 때문에 그 소리는 묻혀 버렸다. 나는 그 한숨 소리를 확실히 들었다. 아, 별이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은 것 같구나! 식탁에는 정갈해 보이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지만 별이도 나도 숟가락을 조금 들다 말았다.

 

   음식점에서 나와 남산에 올라갔다. 남산 꼭대기까지 찻길이 나 있었지만 우리는 옛날 도서관 있던 자리에 차를 세워 두고 층층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올라갔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남산 정상에 있는 울타리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 많은 자물쇠 중 아직까지 주인이 있는 자물쇠는 얼마나 될까? 남산에서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한 후 별이는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조용해 보이는 술집으로 안내를 했다. 별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말도 많이 했다. 갑자기 나보고 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그냥 산속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얼버무렸다. 별이는 정색을 하면서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자기 때문이 아니냐고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별이는 평소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자꾸 술을 들이켰다. 그것도 독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얼마 후 별이는 식탁에 쓰러졌다. 나는 계산을 마친 후 별이를 안고 나왔다. 별이에게 어느 호텔에 묵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별이는 “아무 데나, 아무 데나”를 외쳤다. 나는 근처에 있는 고급 호텔로 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별이는 내 가슴에 안긴 채 숨을 쌔근거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서 별이를 침대에 눕히고, 겉옷을 벗겨 주었다. 스타킹을 벗기니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내 눈에 비친 별이는 옛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소파에 다리를 뻗고 누웠다. 나는 밤새 나와 별이와의 관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까 술김이었는지는 몰라도 별이는 내가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따를 뜻이 있다는 말까지 했었다. 나는 일이 정말 이렇게까지 커질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옆에서 아무 저항 없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별이. 그 옛날 나에게 오빠라는 호칭 대신 씨라는 호칭으로 부르겠다던 별이. 나보다 먼저 내게 사랑 고백을 하던 별이. 나는 왜 그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후회가 몰려들었다. 고개를 돌려 별이를 쳐다보니 별이는 브라자와 팬티만 입고 있었다. 아까 마셨던 술기운이 때문인지 위아래 아무 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아, 이런!’나는 하얀 침대보로 별이를 덮어 주었다.

 

   나는 또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별이를 위한 일일까? 내 마음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별이는 이미 남의 아내, 아니 친구의 부인이었다. 나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도 억센 인연. 30년 세월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인연이었나 보다. 나는 한참동안 고민한 끝에 별이가 깨어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나의 존재가 별이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나는 여태껏 잘 살고 있는 별이의 행복을 빌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던 찌꺼기들을 말끔히 쓸어버리듯 시 한 수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별이에게 바치는 나의 마음이었다. 편지지에 정성들여 써서 예쁜 편지 봉투에 넣은 다음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인 연

 

 

별빛 가득한

어느 가을날

천사와 같이

나타난 별이

 

그날로부터

나에겐 오직

별이만 남아

별이 뿐인 걸

 

날이 갈수록

별이를 향한

나의 마음은

부풀어 가고

 

사랑합니다

그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망설인 날들

 

어느 날 문득

별이 보내고

나는 왜 이리

용기가 없나

 

뒤늦게 새삼

후회했지만

남은 빈자리

너무도 컸네

 

날이 갈수록

별이의 모습

희미해지고

서글픈 마음

 

다시는 못 올

그때 그 시절

영원히 못 올

그 시절 그때

 

세월은 흘러

반백의 머리

주름진 이마

퇴색한 젊음

 

하지만 문득

기적과 같이

별이 내 앞에

나타났다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은 엉켜

답답한 마음

하지만 우리

너무도 늦어

이을 수 없는

인연이었나

 

지금은 그저

멀리서 그대

바라만 볼 뿐

말없이 그냥

 

   나는 차를 몰아 어슴프레 여명이 밝아오는 길로 나섰다. 이제 내가 가야할 곳은 나의 집, 작은 공간. 나는 아직도 별을 찾고 있다. 지금, 아니 옛날 옛적에 존재 했지만 아직 우리 인간의 눈에 잡히지 않은 별을 찾아서…

 

   사실 지금 당장 우리 눈에는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별도 있다. 그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다. 그 별에서 나온 빛이 지구까지 오는 시간이 몇 억 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가 그 빛을 보았다면 그 빛은 몇 억 년 전에 나온 빛일 것이다.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만 사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별.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 : 서기 1006년에 어떤 별 하나가 큰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에 의한 광채가 너무 밝아 당시 지구상에 살던 사람들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집트, 이라크,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 일본, 프랑스, 시리아 등지에서 관측 기록이 남아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그 빛이 지구로부터 약 7,000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SN1006이라는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빛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따라서 1006년에 그 폭발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보다 7,000년 전에 폭발한 빛을 본 것이다. 폭발이 일어난 이후 그 초신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사람들 눈에는 보였지만(존재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 생각으로는 짐작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우주에서 티끌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다가가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우주의 끝.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옛날 내 마음을 그렇게 사로잡았던 달래와 별이처럼 꿈을 쫓아가지만 결국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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