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역에 들어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내 영역에 들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05회 작성일 20-09-21 08:16

본문

귀농이라는 말은 사치다. 

전셋집 달세가 너무 버거워서 변두리 반촌에 집을 얻어 산다

다행히 직장과 가까워서 

옷을 입다 지네와 쉰발이를 보고 아내와 딸이 지르는 비명을

환전기 동전 떨어지는 소리로 들으며 산다.

진짜 미치겠다는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지만

내심 정말 이사 잘 왔다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코로나 때문에 일이 뜸하던 봄부터 가꾸어 온 갈치 상자 화단은

봉숭아, 코스모스, 맨드라미, 메리골드,와 어디서 씨가 날아와

제풀에 자란 야생꽃들이 피고 진다. 대형 마트에서 버리는

갈치 상자로 만든 벤치와 탁자에 앉아 고기도 구워먹고 시도 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멋지고 저렴한 물건들이 차고 넘치지만

나는 어쩐지 남보기에 초라해 보여도 내 손길이 지나다닌

물건들이 좋다.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자면 내 판단과 생각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 무엇을 하건 업주의

마음에 맞추어야 한다. 내가 사는 집이라도, 내 마음, 내 의지,

내 의견, 내 시각을 담고 싶다. 꽃 한 송이라도 마음 가는데로

심고, 의자 하나 탁자 하나라도, 서툴면 서툰데로 매끄럽지 못하면

또 그런데로 내 색깔 내 취향, 내 기호를 담고 싶다. 아크릴 물감으로

내가 좋아하는 분홍과 오렌지, 노랑, 하늘색으로 칠한 벤치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시면

나에게도 내 냄새를 뿌릴수 있는 나의 영역이 있나 싶어

산책 나온 개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전엔 혹시 괜한 부담이

될까봐 생일이 비밀이였는데 요즘엔 생일이라고 떠벌리고

친구를 부른다. 뭐 사줄까? 선물을, 하고 빈말이라도 하면

포터 화분을 사달라고 한다. 그것은 비싸봐야 몇 천원 안팍인데

값비싼 지갑이나 신발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물한 화초가 내 마당에서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선물한 친구도 두고두고 생색이 나고, 나 역시도 꽃 한 송이

피고 질 때마다 그 친구 얼굴이 떠올라서 좋은 것이다. 내가 가꾼

마당이 제법 그럴싸해져 가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

"주인이 나가라면 나갈 집을 뭐한다고 이리 좋게 꾸며요?"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갈 때까지 내가 사는 집이기 때문에

아까울 것도 없다. 혹시 취향이 비슷해서 내가 가꾼 예쁜 마당에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다면 뭐 나쁜가? 사람들이 가진 대부분의

불행한 감정은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더 이상 내일이 오늘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풍성한 내일의

마당을 꿈꾸며 오늘의 발밑을 황폐하게 하는 것은 적어도 내 관점에선

정말 이해하기 힘든 어리석은 짓이다. 어쩌면 지금 내 발밑에 뿌리 씨앗이

내일의 꽃이 되는 것인데 오늘을 가꾸면 내일도 풍요롭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즐거움 없이 내일의 즐거움을 바란다는 것은 불성실한 일이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출근하기 전과 퇴근 한 후, 가만히, 혹은 우두커니

내가 만든 벤치에 앉아 있는다. 설치고 날뛰어야 얻는 것들도 많지만

가만히 있어야 내것이 되는 것들도 많다. 차와 사람들이 만든 소음들은

내가 귀를 열지 않아도 들리지만, 새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산의 나뭇잎

들이 통역하는 바람 소리는 내가 귀를 향해 열려야 들리는 소리들이다.

새소리는 귀에 앉은 소음의 딱지들을 쪼아먹고, 귀뚜라미 소리는

딱지 밑에 앉은 검은 때들을 씻어내고,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는

그 물기를 닦아내준다. 그러고 나면 마음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오래전에 잊었던 생의 따스함들, 그 무렵의 향기들, 

추워져 가는 저녁 엄마의 등에 업혀, 뺨을 엄마의 날개뼈 사이에 파묻고

바라보던 노을, 까닭을 알 수 없는 그 서러움과 온기가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눈알이 아프도록 눈물이 고여온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진듯

괜히 넉넉해지며 내가 용서되는 것이다. 


어제는 생일이라고 친구에게 사달라고 한 삼천원짜리 포터 화분에서 

갈치 상자에 옮겨 심기한 국화가 어제 내일이였던 오늘의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세상의 추하고 더러운 것들의 조기처럼 하얗게

너무 하얗게 게양되었던

샤프란 꽃은 한 소뜸 물이 지고, 쥐똥나무와 장미와 다육이 하나가

포트 화분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올 여름 내 마당에서 터질듯한

주머니에 흰색 분홍색 오렌지색 지폐 같은 꽃들을 구겨 넣고

내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한 닢씩 눈에 쥐어주던 봉선화가 참 고맙다.




추천0

댓글목록

시몬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칠십이 몇 달 남지 않은
나를 봅니다.
아직도 부족한
보는 것
입는 것
먹는 것에 아쉬워합니다
글을 보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봅니다
도심 속의
베란다 아래 개천에는
백조가 날고 있는데도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쳐다봅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생님! 누추한 마당에 들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마당에 꽃이 지천인데도 심드렁하니, 담배나 피울 때가 많습니다.
접선불량인 전등처럼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애정이 켜졌다 꺼졌다
그러는 것 같습니다. ㅎㅎ 선생님의 방문에 부끄러워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Total 1,665건 13 페이지
소설·수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305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 0 10-17
1304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 0 10-17
1303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9 0 10-16
1302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0 0 10-16
1301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6 0 10-16
1300 영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4 0 10-14
1299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8 1 10-13
1298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2 0 10-12
1297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4 0 10-12
1296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 0 10-11
1295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 0 10-11
1294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2 0 10-08
1293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5 0 10-04
1292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1 1 10-03
1291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5 0 10-01
1290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4 1 09-29
1289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4 0 09-26
1288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6 0 09-26
1287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6 0 09-24
1286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 1 09-23
1285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6 0 09-23
열람중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6 0 09-21
1283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0 0 09-20
1282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4 0 09-10
1281 피플멘66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 0 09-09
1280 김상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3 0 09-08
1279 피플멘66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9 0 09-05
1278
향수 댓글+ 2
도일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4 0 09-04
1277 김해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5 0 09-03
1276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7 1 08-29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