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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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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도일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3회 작성일 20-11-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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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선배친구가 인사동에서 사진전을 하고 있으니 같이 가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선뜻 응하고 나섰다. 오랜만에 찾은 인사동거리는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리 한편에서 외국사람 셋이 금관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대여섯 명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들은 열과 성의를 다하는 듯 했다. 그들 앞에는 작은 돈 그릇이 놓여있었지만 담긴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리에서 저러려고 오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안쓰러워보였다. 일행 중 한 명은 몸이 안 좋은지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초라한 행색에서 어께를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를 느낄 수가 있었다. 잠시 지켜보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놓고는 선배와 약속한 장소로 갔다.

사진전은 산 사진전이었다. 카메라 앵글이 상당히 좋았다. 다양한 산들이 보는 이들을 자연 속으로 힘차게 끌어들였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작가는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한다. 특히나 산 사진은 지역특성상 더 그렇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사진을 감상하고 나서 우리는 자연스레 술집으로 갔다. 술잔이 오고 가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선배친구가 꽤나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는 홍재동 아파트에 살지만 경기도 외곽에 따로 황토로 집을 지어 놓고 이따금 필요 할 때만 가서 사용한다고 했다. 언제 한 번 같이 가자고 했다. 부인이 식당을 하는데 잘 된다고 하면서 부인의 자랑을 길게 늘어놓았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사진이야기라면 나도 거들겠지만 대화 내용이 가정 사다 보니 나는 별로 할 말도 없고 해서 듣고만 있었다. 사진은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시작을 한 모양인데 지금은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그건 잘됐네.' 했다.

술집을 나서자 선배친구는 자기 집으로 가서 한잔 더하자며 끌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선배눈치가 같이 갔으면 해서 따라 갔다.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이건 마치 아파트가 아니라 한옥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거실의 커다란 완자창하며 콩기름을 바른 방바닥, 문갑, 병풍 등이 잘 어우러져 한옥 안채의 분위기를 그대로 연출하고 있었다. 집 주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저 사람한테 이런 면이? 하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문갑 위의 백자가 내 시선을 잡았다. 넉넉한 배부름에 단아한 자태, 태깔이 예사롭지가 않아보였다. 골동품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왠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물건인 것 같습니다." 하고 말을 건네자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지 "우리 집 가보죠! 조선백자입니다."하고는 싱글 댔다. 세월이 가면 얼마가 될지도 모른다며 저것만 보고 있으면 절로 배가 불러온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백자가 잘못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자를 감상하는 맛이야 개인의 정서나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는 아예 돈으로만 즐기고 있었다.

 

그릇이란 본래 무엇인가?  

음식이나 물건을 담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가득 담겨진 그릇 보다는 적당히 담겨진 그릇이 보기 좋고 아예 아무것도 담겨져 있지 않다면 더욱 보기 좋다. 쓰임새가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사람의 마음도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은 보기 싫다. 하지만 욕심을 버려 마음이 한가로운 사람은  여유가 있어 보기에도 좋다. 잘은 모르지만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같은 옛것을 놓고 즐기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단지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그릇의 자태나 윤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리되기 위해서는 마음에 담은 욕심부터 버려야 할 일이지만 선배친구처럼 그릇은 비워놓고 자신의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채워서는 안 될 일이다. 능력이 안돼서 고가의 청자나 백자를 놓고 즐길 수 없다면 소박한 그릇 하나 올려놓고 즐긴다한들 그것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멋스러움으로 말한다면 오히려 후자가 앞설 수도 있다. 대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릇이나 사람이나 자신을 비워 오랜 세월 상처 입지 않고 보존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문갑위에 백자를 올려놓고 눈을 번뜩이며 돈으로만 그 가치를 즐기고 있었다.  

선배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면서 조선백자의 가치를 돈으로만 즐기는 그를 내내 못 마땅히 여기던 내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는 아예 대놓고 솔직하게 자신의 본심을 들어냈지만 나는 그와 같은 본심은 꽁꽁 숨겨놓고 겉으로는 아닌 척 이중인격을 행세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라고 부인할 수만은 없었다. 솔직히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자신은 아닌 척 고자세를 취하는 나 보다는 차라리 그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더 진실 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루가 버겁게 지나가고 있었다. 조선백자가 눈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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