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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묘일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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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1회 작성일 21-01-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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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든 사이에도 지구는 어둠 속에서 몸을 돌려 밝은 곳으로 나를 옮겨 놓았다. 이제 봉달이의 몸은 길게 

기지개를 켜지 않아도 아내의 발과 길이가 비슷하다. 아직 그렇게 둥글둥글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약간 마른듯한 몸매가 봉달이에게 우아한 기품을 준다. 봉달이는 내가 만든 갈치상자 캣타워의 선반을 좋아한다. 지금도 내 노트북이 있는 1단의 발판을 딪고 2단무의 쿠션을 딪고, 그리로 올라가서 빼꼼히 노트북을 마주하고 있는 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아래를 탐색하기도 한다. 어제는 넷플릭스의 다큐멘다리들을 보았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의 이른 새벽이다. 나찌스의 포로소에 관한 어느 미국 중령이 촬영한 다큐 영화와, 신에 관한 것, 지구에 관한 것, 이제 아이들에게 굳이 책을 읽으라고 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책은 상상력을 높이고 언어에 대한 이해력과 표현력을 발달 시킨다. 영화는 누군가가 만든 영상을 제시하지만 책은 작가가 던져 놓은 언어를 뼈대 삼아 내가 만든 영상을 살처럼 붙여야 한다. 그러니까 머릿속의 영화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을 어떻게 표현 할 것인가, 책 자체가 무한한 실례들이다. 그리고 정교한 언어들, 재능있는 언어 기술자들이 제시하는 뛰어난 언어들을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며, 어떤 대상을 나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대단을 넘어서 위대한 인간의 업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야기 속의 인물의 존재를 극대화 시킨다. 일목요연하게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내용을 나보다 뛰어난 눈을 가진 영화 제작자들이 영상으로 말끔하게 정리 해준다. 그리고 영화는 책에서 제시되는 배경과 장소들을 현장감 있게 보여주고 여러가지 극적인 기술을 통해 몰입도를 높여준다. 무엇보다도 나의 뇌에게 노동을 요구하지 않고, 누군가의 뇌가 노동한 열매를 누워서 편안하게 따 먹을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 저 시대로 다니는데 내가 이차대전이 일어나는 시공에 떨어져도 총알을 맞지 않을 수 있고, 가스실에 함께 들어가도 가스 때문에 죽지 않으며, 중세 시대 마녀와 똑 같은 생각을 해도 화형을 당하지 않을 수 있고, 버스를 탄듯, 사막과 먼 나라의 바닷가를 둘러 볼 수 있다. 물론 멀미를 하지 않고, 


사람들은 어떤 악에 대해서도 내성이 생긴다. 연합군이 강제 수용소가 있던 지역의 독일 주민들을 초대 해서 포로 수용소의 참상을 보여 주려고 했을 때, 잘 차려 입은 여자와 남자들이 활짝 웃으면서 포로 수용소로 가는 철조망 옆을 걸어 오는 영상이 있었다. 사람 피부로 만든 전등갓과 사람 피부를 도화지 삼아 그린 그림들과 사람 피부로 만든 여러가지, 사치품들을 보면서도 아무도 눈물을 흘리거나 기절하는 숙녀들이 없었다.

살처분한 돼지들도 그만큼 끔찍하지는 않을 것이다. 돼지는 땅에 파 묻히는 그 순간까지 살이나 붙어 있지만 연합군이 밀려온다는 소식을 받고 총살을 시키거나 땅에 매장 해버린 시체들은 가죽에 넣어 놓은 뼈들이였다. 오븐 속의 태워버린 빵처럼 재가 되어 있는 사람들, 여자고 남자고 벌거벗은 해골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가스실을 샤워실이라고 속이고 벗겨 놓은 유대인들의 옷이 구제 옷가게 창고처럼 쌓여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오는 시민들의 얼굴이, 이런 참상을 만든 것에 대한 일말의 감정도 아닌, 그저 패전국이

지킬수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살려 보겠다는 얼굴들이였다. 그러니까 웃으면 이긴다, 같은 그런...

그 영상을 지켜보는 나 조차도 너무 많은 해골과 시체들을 보고 있으니, 한 구 시체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 육체들이 살아 있을 때를 지나오지 않은 영화 소품들처럼 보였다. 어쩌면 나도 가서 한 쪽 팔과 발목을 잡고 흔들며 몇 구쯤은 구덩이에 던져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저 전쟁의 전범은 독일이나 일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 시대 독일 국민으로 태어났다면 히틀러의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나찌스 당원이 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 시대 히틀러를 향해 한 쪽 팔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을 학살하는데 한 쪽 팔을 쓴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 또한 별 볼 일 없는 화가 지망생이고, 별 다른 희망 없이 삶의 변두리를 전전하다 권력의 맛을 보게 된다면, 내 야망이 제시하는 명분과 비젼에 속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데 나 또한 죽은 나찌 관료의 변명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속한, 나의 세금과 자부심으로 운영 되는 정부와 국가가 다른 국가와 대치 상황이라면 나 역시도 내 나라의 승전을 바라며 내 나라의 승전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각오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전쟁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인간 모두가 전범이기 때문이다. 싸우지 말아야 할 싸움을 하는 것도 인간이고, 정작 싸워야 할 싸움을 하지 않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탐욕적인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을 자신들이 가로채면서 명분을 국민에게 준다. 그 전쟁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자신들이 독점하면서 그 전쟁에 참여 해야할 명분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다. 개털로 무엇을 하겠는가? 결국 그 전쟁이 낳은 물질적 정신적 폐허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안고 가는 것이다. 이차대전 이후 이렇다할 큰 전쟁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국가들이 전제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전보다 권력에 대한 독점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야할 진정한 이유도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의 피를 빨아서 개인의 부와 권력을 축적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외국을 넘보는 것이다. 나누면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자기 곡간에 쟁여두고, 국민들에게는 싸워야할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제는 표면상일지라도 국가 권력이 개인에게 한 표씩 분배 되어 있다. 권력자가 되지 않고 일개 국민이 된것은 천성이 호전적이지 않고, 욕심이 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슨 까닭이든지 왠만하면 싸우지 말자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일해서 내 식구들 배부르면 되고, 배 부르면 콧 노래를 부르고, 술 한 잔 마시고 푹 자는 사람들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것 누가 뺏아 가지만 않으면, 남의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다. 내 아내,

내 딸, 내 어머니, 내 아버지를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그들 또한 남의 아내, 남의 딸, 남의 가족들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전쟁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전쟁을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전쟁의 장막 맨 뒤에 숨어서 제 목숨만 챙기는 것이다.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 자신을 신의 혈통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을 자신이 만든 물건처럼 대한다. 이제는 개인의 탐욕, 개인의 이해관계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투표권이 전쟁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전쟁을 해야할 진정한 까닭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아직도 전쟁이 그치지 않는 나라들과 그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의 상관관계를 보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넷플릭스를 너무 많이 시청한 나의 의견도

순수한 엉터리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종교가 민주화 되지 않는 나라들은 아직도 총칼을 맞대고 성전을 치러고 있고, 정치가 민주화 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내전이 그치지 않으며, 여성이 민주화 되지 못한 나라들 역시 대체로 한 쪽 손의 칼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깡패 두목들, 그러니까 주먹으로 쟁취한 권력을 이용해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금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금으로 만든 지팡이를 든 사람들이 저질러 온 만행들이 우리 인류의 역사다. 


나는 가끔 예수가 진짜 신이였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천년 전에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부와 세리와 창녀가 함께 천국에 갈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칼과 방패가 그 세계의 모든 논리였던 시대에 감히 사랑을 발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몸과 같이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고 한 쪽 뺨을 때리면 다른 한 쪽 뺨을 돌려 대라고 했으며 부자, 그러니까 권력자(부는 권력을 살 수 있으니까)가 천국에 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 구멍을 통과 하는 일 같다고 했다. 아이도 갈 수 있는 곳을 왕(백성들보다 가난한 왕은 없을테니까)은 뼈와 살을 다 발라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못간다고 했다. 오병이어는 나누고자 하면 나눌수 있다는 논리다. 긍휼이 여기고 사랑한다면 모두 배부를수 있다는 논리다. 마르크스보다 1800년을 앞섰으면 방법론적으로도 훨씬 안정적이고 영구적이다.. 사람의 왕이였다면 그 물고기와 떡은 자기 창고에 쟁였을 것이다. 신이 왕이 되었기 때문에 같이 먹고 같이 배부른 것이다. 그가 살리고 치료한 자들은 왕이나, 우리들이 우리랑은 태생이 다르다고 믿는 귀족들이 아니였다. 그가 안식일에 조차도 욕 먹어가며 살린자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눈 멀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였다. 가인은

아벨을 돌로 쳐죽이고, 그러고도 하나님께 표를 받아 목숨을 건졌는데도 성을 쌓고 칼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세상 권력자들이 모두 카인의 후손이라고 믿는다. 사랑하고, 순종하며, 진정으로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카인의 돌에 맞아 죽거나, 카인의 노예로 살면서, 숨어서 예배를 보며 사는 것이다. 카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다. 하나님 조차도 그 자신의 들러리다. 이 세상의 교회들은 카인의 예배를 올리는 자들로 차고 넘친다. 예배자의 죄를 씻지 않은 예배를 보며 신이 나만 미워한다며 돌을 찾으러 땅바닥을 보는 자들로 넘친다. 카인의 성은 약한 자의 방어물이 아니고 자신의 선공격에 대한 방어물이다. 자신이 먼저 일으킨 전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가 도시라 부르는 이곳은 카인의 성이다. 카인들은 신의 것인 사람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었고, 사랑으로 작동 시키는 창조물들을 폭력으로 작동 시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다시 우리들에게 인간의 작동 원리와 작동 방법을 알려 주려고 오신 것이다. 가끔 나는 그를 믿는다.


나는 오늘도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그렇다고 고양이들에게 세금을 거두거나, 나를 위한 싸움에 동원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것도 낳은 것도 아니지만, 그저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게 우리 마당에서 사는 동안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랄 뿐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다 보면 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고양이가 나를 위해 십일조를 내거나, 더우기 나를 위해 순교를 하거나 머리 카락으로 내 발을 씻어주듯 나를 핥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에게 감사 예배 같은 것을 드려 주기를 바라지도 않을 뿐덜러, 다른 집 집사들 보다 내가 더 권능 있는 집사라고 싸우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감기 걸린 녀석을 치료해 주기 위해 다가 갔을 때 도망만 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아픔을 낫게 해줄 수 있으니까. 신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기 위해서지,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는 나 조차도 고양이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술 안주로 먹던 삼겹살이라도 한 점 더 남겨서 사료만 먹는 녀석들의 입을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데, 신이 뭐가 부족해서 우리의 고통과 희생을 바라겠는가? 몇 년을 밥을 먹이고 영역을 제공해 주어도 고양이들은 먹튀다. 그렇다고 그 고양이들을 심판해서 지옥에 보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다만 유독 잘 따르는 고양이에게 고기가 생기면 한 점 더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따르지 않는 고양이 것을 뺏아서 잘 따르는 고양이에게 던져 주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눈도 이도 없다. 이런 마음은 내가 고양이를 만들지도 낳지도 않았기 때문에 드는 마음일까?

끊임없이 신에게 무엇인가를 보답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사람들은 신이 우리 늙은 부모처럼 유한하고 

보살핌을 필요로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로마는 예수라는 양치기를 고용했을 뿐이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예수는 제국과 공존 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피리를 불고 길을 앞장서서 양떼를 모아주면 제사를 지낸다며 털을 벗기고, 심장을 따고,

고기를 잡았다. 지금의 기독교는 그 시절 로마 황제들의 유산이다. 예수는 실존했고 실존하는 신이지만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피조물이 없다. 대대손손 로마가 고용한 양치기들이 아직도 바티칸을 지키고 있고, 교회들은 편견과 아집과 미신과 무지를 버무려서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햇빛과 공기와 물과 바람과 땅에 가격을 매겼는가? 그것을 내것이라고 우기려면 칼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도와 도적들이 이 지상의 왕조와 귀족들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왕조 실록들은  폭력의 기록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귀히 간직하는 것은 그 왕조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 폭력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민족의 우수성이니하는 말을 쓴다. 이제 피부, 성별, 종교의 우월성을 거론 할 수 없듯이

민족의 우월성을 거론하는 것도 차별이 되는 시대가 온다. 어느 민족도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지배할 특권도 권리도 없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니, 우리 역사의 우수성이니 하는 말들도이제는 폐기 되어야할 폭력의 언어다.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해 레벤스보른을 만들고, 흰 피부 파란 눈의 여성들을 종자 보존소 침대에 뉘었던 것도 나치의 업적이다. 한 때는 페르시안 고양이가 길고양이들 보다 더 우수한 고양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날씬하고 날렵한 한국 길고양이를 더 선호한다. 고양이는 다 같은 고양이일뿐, 더 우수하고 열등한 고양이는 없다. 그냥 다른 고양이 일 뿐이다. 종이를 만드는 나라도 있고 나침반을 만드는 나라도 있고, 전기를 만드는 나라도 있고, 축구를 만드는 나라도 있고

한글을 만드는 나라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문명이라는 물결에 집합되어 우리 모두를 좀 더 나은 시대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거나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이차 세계 대전의 전범이라는 증거다. 강자 끼리의 팽팽한 긴장의 돌파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약자들의 약점이다. 그래서 유대인과 조선 사람들은 우물에 독을 타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도 민족주의라는 차별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다 똑 같다. 이제부터 우리의 전쟁은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데 필요하다.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신의 창조물의 다양성을 말하며 풍요로움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 때문에 미래가 태어나는 것이고, 나와 너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삼백육십도 각도에서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다르기 때문에 단풍과 바다와 하늘을 그릴 수 있고, 분홍과 보라와 연두와 오렌지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전쟁의 원인은 나다. 나를 증명해 보이려는 수작들이다. 만약 나가 아닌 신을 증명해 보이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았다면 세상에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신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인과 아벨은 서로 다른 육체를 가진 적도 있지만, 지금은 나라는 하나의 육체 속에 있다,끊임없이 카인은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 있다. 나라는 신은 이제 아벨의 핏소리가 아무리 땅속에서 울려도 듣지 못하는 귀먹어리가 되었다. 우리가 히틀러를 향해 들었던 한 쪽 팔은, 내가 카인에게 들어 준 팔이다. 그 카인들은 끊임 없이 이마에 표를 달고, 끊임 없이 나를 대적해서 성을 쌓고 있다. 


우리가 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고 싶다면 고양이에게 밥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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