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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은 미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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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8회 작성일 21-02-1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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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텔레비젼과 라디오가 정말 바보 상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바램과 반대로, 아이들이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고 노래하는 텔레비젼은

루시퍼의 거울이다. 악마를 그릴 때 머리에 뿔이 나거나, 혓바닥이 아홉갈래로

갈라지고, 손톱 발톱이 고드름 같은 그림들은 상상력의 부족이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악마가 있다면 그는 원빈과 현빈과 브래드피트를 다 합친 것보다

매력적으로 생겼을 것이라 믿는다. 누가 머리에 뿔난 사람의 속삭임을 들으려고

그의 곁으로 가겠는가? 


얼마 전 텔레비젼을 보니 어떤 탤렌트가 졸혼을 하였다고

그가 졸혼하여 혼자 사는 집을 보여주었다. 마치 졸혼이 자식과 가정을 위한 평생의

희생과 헌신을 보상 받는 근사한 일인 것처럼, 여러분의 용기가 부족해서 이제까지

세상의 어떤 부부도 하지 못한 일인 것처럼 포장이 된듯 하였다. 또 어떤 가수의 남편은

졸혼을 희망하고, 그 남편의 아내는 정말 졸혼을 하게 될까봐 울먹이는 모습도

브라운관을 적셨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이혼을 자식들을 위하여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하는 일처럼, 무슨 장한 일에 대한 자기 포상이나 되는 것처럼, 졸혼자의 일상이

로맨틱하게 그려져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 입장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나랑 다른 외계의 생명체 같은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 다운 것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바라보면 사이코 패스나 또라이가 되는 것이다. 함께 한 집, 한 방에서

살을 맞대는 근접거리에 산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하나를 상대방에게 선물하는 일이다.

그저 매끈하고 반짝이던 유리 조각에서 우둘투둘한 균열이 보이고, 그 위에 우글거리는 세균들이

보이게 되는 일을 서로 알아가는 일이라고 부른다.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되면 가려운 손등을 긁는

일보다 손을 깨끗하게 씻는 일이 치료법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근접 거리에서 그를 들여다보았으면

정말 그가 코로나 같은, 패스트 같은 악바이러스나 균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처치법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은 치료가 되고 또 어떤 부분은 마스크를 하듯 피하게 되고, 또 어떤 부분은 무시하고 넘어간다.

모든 인간은 한 상자의 갈치나 꽁치처럼 똑 같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데

함께 산다는 것은 그 근소한 차이와의 전쟁인 것이다. 그래도 아무 전쟁도 치르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은

결혼이 인생의 무덤인 것과는 또 다른 무덤이다. 크게든지 작게든지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 사람은 사람으로

형성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기도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사람은, 사람을 규정하는

숱한 명제들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동물이다. 생각이나 도구처럼 사회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하다못해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도 거울을 붙여놓고 자신과 친분을 쌓는 동물이 사람이다.

누구를 통해서라도 자신을 마주보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없는 동물이 사람이다. 도를 많이 닦은

사람이라면 혼자 앉아서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염력이 생기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여주는 거울 없이는 자기 자신을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은 교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한다.

고양이들은 교미만 하고도 충분히 후손을 낳고 키운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은 결혼을 한다.

교미도 하고 후손도 키우고, 그 후손이 장성해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 나가면, 서로 바라보고 살기 위해 결혼을

한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혼 서약서에 흰머리 파뿌리 같은 시절을 왜 굳이 넣겠는가? 아이들 다 클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살아야 한다고 하면 되는 것인데, 이제 서로 생식이 다 끝난 시기의 의리를 다짐하는 것이다. 나 혼자 사는 방의 유리 거울은 나를 1점도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는 거울이지만 사람은 나를 흡수하고 반응하는 거울이다. 그를 통하여 비친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나이며, 그라는 시선을 통해서 새로

배합되고 조합된 나다. 누군가의 내면을 통해 본 거울은 내 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흡수성이 없는 거울은 차갑고

스며들 데가 없다. 온기가 없고, 안이 텅 비어 있다. 나를 흡수하고, 반사가 아닌 반응을 하는 거울을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무대에 선다. 배우자는 최후의 순간까지 나를 바라보고 반응하는 단 한명의 관객일수도 있다. 너무나 자주 바라보아 그 배우의 일거수일투족과 대사를 다 외어버린 관객일수도 있다. 뻔한 연극을 죽을 때까지 봐주는 관객,

그래도 텅빈 거울을 보며 연기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관객을 보고 연기하는 일이 어쩐지 연기할 맛이 날 것이다.

그 연극 너무 많이 봤으니까 이제 다른 연극을 보거나 아예 연극 따윈 보지 않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기는

하다가 쓰러질 수도 있고, 다칠수도 있는 연기다. 서로 지긋지긋하던 단 한 사람의 관객이 서로를 업고 병원으로 

뛸 것이다. 그 병원에서 다시 죽을 때까지 서로를 위한 배우와 관객 사이가 재연 될 것이다. 젊음은 누구랑이라도 나눌수 있다. 그 자체에 꿀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음이란 한 이불을 덮던 사이가 아니면 서로 나누기가 어렵다.

젊을 때는 혼자 살아도, 티켓을 쥐고 밤새 기다려 주는 관객도 있고, 어디를 가나 팬을 자처하는 관객들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늙으면 피붙이나 부부가 의무라는 또 다른 성분의 사랑으로 최소한의 객석을 지켜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노년이야 말로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랑의 단계라도 볼 수도 있다. 젊어서는 생식과 생식에 대한 책임, 생식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대처가 사랑이였고 결혼이였다면 노년에는 그런 동물적인 관계를 극복한 사랑이고 동거다. 서로 매력적이고 강한 것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서로 약해지고 병들고 무력해졌음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면 화가는 깔끔한 새 운동화가 아니라 끈의 끝을 감싼 끝이 뭉개지고, 때가 묻고, 실밥이 터진, 낡은 운동화를 그린다.

낡은 인간에게는 왜 그런 사실주의적인 미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그냥 낡은 운동화를 그린 것 뿐인데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는 그 운동화가 걸어 온 길이 보이기 때문에, 낡은 운동화는 금방 공장에서 나온 운동화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그림속의 낡은 운동화를 들여다보는 심미안이 없는 것일까? 모두 새 운동화, 새 옷만 그리는 초보적이고 얆팍한 눈들만을 가진 것일까? 솔로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때와 닳고 닳은 밑창을 보며 정말 섬세하게 잘 그렸다고 감동하는 눈으로 각자의 늙은 아내와 남편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졸혼이 아니라, 대학에서 대학원에 진학 하듯이 진혼(晉婚)이 이치에 합당하지 않을까? 이왕 사회적인 흐름을 만들고 선도하려면 도대체가 무책임한 졸혼 보다는 덜 자극적이지만 진취적이고 진정성 있는 진혼이 미디어의 근본 목적에 맞지 않을까? 늙은 부부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여행을 떠나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알바를 함께 해보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야영을 해보고, 남은 결혼을 아름답게 완성해가는 모습을 그리면 과연 그렇게 시청률이 떨어질까? 이혼은 혼자 살아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체력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당신은 아직 정정 하십니다. 백세 인생인데,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며

헛된 망상을 일반화 해도 노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자식들은 자식들의 삶이 있고, 친구들 또한 그렇다. 어쩔 것인가? 일찌감치 노인 요양원에서 졸혼 살림이라도 차릴 것인가? 생식이 끝나면 서로 남남이 되는 것은 동물들의 생활 방식이다. 인간은 생식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맞다면, 생식의 의무가 끝났다고 미뤄왔던 이혼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사랑의 여러 과정에서 보면 신혼은 달콤한 에피타이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코스 요리의 코스를 다 지나고 나면 마지막으로 수정과나, 식혜, 커피가 나오듯이 좀 더 기다려보면 한결 가볍고 달고, 조금 씁쓸해도 지금까지의 식사를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후식이 있다. 뜨끈뜨끈한 국밥한 후루룩 한그릇 먹고 던지듯이 계산을 하고 나가는 식사도 있지만, 결혼은 양가 모든 친지들을 모아놓고 시작하는 일인만큼, 죽을때까지 계속되는 예식 같은 식사다.먹는 일이라는게 원래 침을 튀기고 쩝쩝 씹고 으깨고 넘기는 상스러운 일이지만, 어차피 사람의 탈을 쓰고 살기 때문에 예의도 법도도,의리도, 예식도, 끝까지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지금껏 사랑한 적이 없는 부부라면 이제부터 사랑하도록 이끌어주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고, 무엇이든지 깨고 버리는 일보다 붙이고, 지키는 일이 가치롭고 유익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한 이십년 전이였을까? 결혼은 미친 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노래가 있었다. 차라리 미친것이라면 어쩌겠는가? 졸혼은 사악한 짓이다. 인간들에게 아름답고 따뜻하고 좋은 일이라고

여겨져 온 또 하나의 인간다움을 파괴하고 타락 시키는 사악한 짓이다, 라고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졸혼은 합의가

어렵다. 분명히 하자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말년이란 함께 있어도 씁쓸한 시절인데, 함께

비비고 기대어 살던 단 한 명 마저도 떠나버린 말년을 상상해보라. 무조건 용서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가 젊은 날, 끝내 지켜야할 결혼의 근거인, 인간의 조건으로부터 그리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사람은 서로 용서해가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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