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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 -문화의 해에 문화 엿보기]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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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21-05-0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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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 -문화의 해에 문화 엿보기]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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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t1.daumcdn.net/cfile/blog/9916B9335A0BE91C25>

D:\My Pictures\2013.01.01 나의 꽃 A 외암마을-사진 포토에세이방 숙영 IMG_6983-3[1]



   하얀 눈에 반사되는 햇볕은 다이아몬드에서 떨어져 나오는 비늘처럼 눈부시다.
제37회 《오늘의 문학》 동계세미나 개최 초대장을 받고 나서 전국적으로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걱정을 하던 기우는 끝나고, 세미나기간 동안('97. 1.11∼12) 쾌청하고 포근한 날씨는 문학의 축제를 한 것 무르익게 하였다. '한국 문학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의 원로 시인 김규동 선생 강연 중 한하운 시인에 대한 비평적 재조명은 매우 진지한 것이었으며,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뒤집어 놓은 새로운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하여 뜻 깊었다고 생각한다.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여 온 이광녕 시인의 제안에 따라 귀경길에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민속촌락, 반촌(班村)인 예안 이씨 집성촌 외암마을을 탐방키로 했다. 외암마을은 약 500년 전 예안 이씨들이 이주해와 우거하면서 이룩된 마을이다.
예안(禮安) 이씨는 본디가 전의(全義) 이씨이다. 전의 이씨 이도(李棹)의 7대 손인 이혼(李混)을 시조로 하여 예안 이씨가 파생한다. 이혼의 처음 휘자는 자분(子芬)이며 호는 몽암(蒙庵)이다. 고려 원종 때 등과 하고 전조상서, 집현전 태학사, 태사백을 역임하고 벽상삼한 참의정승에 벼슬이 이른다. 시호는 문장(文莊)이고 예안백(禮安伯)에 봉해지나 관향을 예안으로 이적한 것은 이혼의 손자인 보문각 제학공인 이익(李翊)이 고려 충숙왕 때 예안군(禮安君)으로 봉작 되면서부터라 한다. 전의와 예안 이씨는 원래 동본이므로 1957년과 1978년에 각각 대동보(大同譜)를 간행한 바 있다.
외암리에 예안 이씨로서 처음 정착한 이는 22세 손인 호 문정(文正). 추월헌(秋月軒). 시호 공거(公擧). 휘 이간(李柬)으로 조선 숙종조(38년)에서 벼슬 경연관(經筵官)을 지낸 분이다.
외암마을은 풍수에 걸맞는 자리에 있다. 등에는 설화산(일제 때 금광을 캐내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멀리서도 보인다.)을 병풍을 두른 듯 업고 있고, 마을 앞 어귀에는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광덕천이 합수되는 물을 안고 있는 격이다. 곧 배산임수(背山臨水) 꼴을 하고 있어서인지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또한 남향을 하고 있어 포근한 외암마을은 따뜻한 햇볕을 받아 지난날 내린 눈과 얼었던 황톳길이 질퍽해져 고향 같은 끈적임으로 감회에 젖게 한다. 그러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설화산은 화기를 뿜고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를 끄기 위해서 집집마다 수로를 파고 연못을 만들어 물이 흘러들게 함으로서 재난을 예방했다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는 일정시대부터 후학을 위하여 서당을 개설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백산처사 예안 이용정을 기리는 송덕비가 세워져 있고, 맞은편의 상점 앞을 지나면 낡은 다리를 헐어내고 새로 만든 돌다리 반석교(盤石橋)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전 다리 앞 우측에 버티고 서 있는 한 쌍의 장승이 나그네를 반긴다. 반석교를 건너면 좌측 아래에 고풍스런 물레방아와 반석교 사이의 개천 둑에 5m쯤 되어 보이는 4각 기둥형의 돌이 두 개 누워 있는데, 기미 동화수석 이백선 서(己未 東華水石 李伯善 書)라 새긴 돌과 외암동천 이용정 서(巍岩洞天 李用政 書)라 새긴 돌이 그것이다. 반석교를 건너면 마을 입구인데 곧바른 길은 마을 중심부로 진입되는 길이고, 우측으로 난 갈림길은 멋지게 신축한 한옥 화장실 앞을 지나 설화산에서 내리는 개천을 따라 우회하여 마을에 진입하는 길이다.
물레방아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정자가 있고, 정자 앞 길가에는 외암마을 유래가 적힌 스텐레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자가 있는 동산은 물론이려니와 마을과 마을 뒷산이 온통 적송의 솔숲으로 울창하여 옛날의 고향 마을에 안긴 듯 포근한 기분이 든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1대 3의 비율로 이루어진 외암마을은, 집집마다 돌로 쌓은 담장이 골목을 이루어 더욱더 한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우리 일행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에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고샅에 멍석을 깔아 놓고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청년들에게 영암군수 댁을 물으니 골목 코너에 위치한 점포처럼 생긴 가옥에서 중년 나이의 이주선(李周善, 영암군수 8세 손 현지 농협조합장) 선생께서 급히 나와 앞장서며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오전 10시경이라 고샅은 아직도 흰눈이 덮여 있고, 간밤에는 많이 추웠었던지 눈이 녹았던 자리도 꽁꽁 얼은 채로 있었다.
영암군수 댁의 솟을대문 앞에 있는, 주차장으로 된 넓은 공터에는 서너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 주차장이 옛날에는 마구간이 있던 터라고 한다. 마구간을 복원하였더라면 더 예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영암군수 댁의 빛 바랜 송판 대문은 안에서 빗장 지른 채 잠겨져 있었다. 예의 없고 몰상식한 관광객들이 석상이나 마루난간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거나 꽃나무를 꺾는 등, 정원의 유물 등에 훼손을 가하여 상시 개방치 않고 있다 한다. 보통은 내방객이 정중하게 요청할 경우 허락되면 집 뒤에 난 사립문을 열어 준다는데, 우리 일행은 행운이었다 고나 할까, 이주선 선생 덕분에 정식으로 대문을 열어 영접(환대?)받는 영광을 얻었다.
대문에 들어서자 진돗개로 보이는 황구(黃狗) 한 마리가 꼬리를 젓는다. 반가(班家)의 가축답게 비록 짐승이지만 신사적이다. 몇 안 남은 한국의 옛 정원 가운데 손꼽히는 영암군수 댁의 정원은 대지 3천여 평에 75칸의 대 저택에 걸맞게 조경 되어 있다. 마을 내의 10여 채의 기와집들 중에서도 영암군수 댁을 단연코 으뜸으로 꼽아 준다. 그 이유는 한옥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옛 정원의 모습이 손상되지 않은 채, 예스런 정취 그대로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의 옛 주인은 누구인가? 예안 이씨 27세 손으로 조선의 고종과 순종 왕조 때 영암군수 벼슬을 지낸 분이다. 휘는 상익(相翼)이고, 호는 경덕(景德)이다. 정원은 두 개의 정자 사이에 꾸며져 있는데, 뒤뜰 담장 밑에 입수구(入水口)가 있어 설화산의 물이 도랑을 타고 들어오다 30cm 정도의 낙차로 연못에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다. 마치 작은 폭포를 연상케 한다. 연못에 고인 물은 작은 다리(오작교를 연상케 함) 밑을 흘러 출수구(出水口)를 통해 밖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정원 안에는 향나무와 아름드리 소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가지 꽃나무들이 잘 배치되어 있고, 크고 작은 괴이한 모습의 돌들이 저마다 예스런 운치를 돋보이게 한다. 토방 밑 화단에 자연스럽게 놓인 돌 틈은 작은 아궁이의 굴뚝 역할을 한단다. 저기압이고 땅에 습기가 있는 날이면 땅으로 퍼지는 하얀 연기는 가옥을 구름 위에 띄운 듯 얼마나 멋있는 운치였을까? 요즈음 쇼 무대나 예식장에서 드라이 아이스를 송풍기로 뿜어 내 인조 운무를 연출하듯, 영암군수께서 마루에 걸터앉으면 구름을 타고 있는 신선이 되었음직도 하다. 큰 아궁이의 연기는 내벽이나 외벽의 연돌을 통해 내보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준경(李準慶, 영암군수 9세 손) 선생의 영접을 받고 영암군수께서 기거하시던 안채 방에 안내되었다. 고풍스런 서화 작품과 가구가 배치된 방안은 전통 문살과 한지를 통하여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은 것 같다. 아랫목에서는 영암군수의 큰기침과 체취가 풍겨 나오는 듯 하다. 이준경 선생은 부인을 통해 따끈한 차 한 잔씩을 대접해 준다. 크나큰 배려와 환대 속에 담소의 시간을 선물로 받았는데, 고향의 조부님 댁에 들른 것처럼 따사로운 감회에 파묻힌다.
이준경 선생의 말에 의하면 민속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 생활에 많은 제약(개 증축 불가, 임의의 문화시설 설치 불가, 방문객의 훼손에 대한 책임감, 경제적 수익사업 제한, 설화산 근처에 군사시설이 있어 개발 제한 등)을 받아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또한 민속마을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한 쪽을 개수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무너져 내린다며, 민속마을을 지켜 나아가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민속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고 예산배정 또한 보잘 것 없어 외암마을의 후손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한숨짓고 있는 실정이었다.
영암군수 댁 방안의 조그마한 책장에는 두툼한 문집 [외암집(巍巖集); 예안 이씨 23세 손, 호 인계(麟溪), 휘 이이병, 조선 경종 왕조 때 현감 벼슬을 지낸 이의 저서]이 꽂혀 있어 학문하는 가문임을 알 수 있었는데, 현 시대의 학자인 이어령 교수가 집안 사람이며 얼마 전 다녀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동행한 이광녕 시인도 이어령 교수와 성명의 끝 자 돌림자가 같은 항렬자여서 한집안 자손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정원으로 나와 영암군수 댁 건물을 다시 살펴보는데 별채에 추사 김정희 글씨의 편액이 붙어 있다. 외암리 인근에 추사의 처가 집이 있어 들를 때마다 영암군수 댁에도 방문하여 써준 것이라고 한다. 정원에 놓인 돌과 나무포기 하나에도 조상의 얼이 깃 들어 숨쉬고 있는 것 같다. 수시로 찾아오는 관광 방문객은 물론이거니와 영화나 TV사극 촬영 팀이 들이닥칠 때는 너무나 힘에 겨웁다고 한다. 낡고 풍화되어버린 건물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건들기만 하면 부스러질 정도이니 신경을 치켜세우고 관리하기 때문이란다. 고색 창연한 고가(古家)를 지키는 후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일행은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천 근처에 있는 참판 댁(退湖 李貞烈公)에 들러 퇴호 유물관의 전시품을 보려 하였으나 개관하지 않아 볼 수 없었다. 유물관 뒷편에 낡아 부서질 듯 빛 바랜 참판 댁 대문 앞에서 '예술 창작의 집' '연엽주(蓮葉酒)'라는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다.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고전의 비방 토속주가 생산되는 곳이다. 안채로 들어가면 고종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아 지었다는 가옥 두 채가 각기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하나로 이루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한옥을 살피고, 연엽주 제조과정도 살피려 하였으나, 간밤에 제사를 지냈다면서 놋 제 제기를 씻던 한복차림의 예쁘장한 소녀가 지금은 연엽주를 빚지 않는다고 했다.
연엽주는 약간 시큼한 맛에 알콜 함량 14도로, 차와 술의 중간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 비법이란다. 연엽주를 마시면 혈관을 확장시켜 피의 순환과 정화를 도와 양기를 돋우며 맑은 정신에 몸이 가벼워지게 하는 건강술이라고 한다.
우리 전래의 토산문화로서 신비의 연엽주는 1병(0.9ι들이)에 일만 7천 원이라 한다. 연엽주 제조는 현재 이참판 댁을 지키고 있는 이득선(李得善, 예안 이씨 30대 손) 씨가 가주(家酒) 메이커인데, 그의 5대조 이원보(李源保, 예안 이씨 25대손)가 조선 고종왕조 때에 비서감승(秘書監承)직에 있으면서, 봄철마다 약이 되는 술로 임금께 진상하면서부터 유래하여 약 200년 가까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한다.
연엽주는 찹쌀 누룩에 쌀, 물, 연뿌리와 잎, 줄기, 솔잎을 켜켜이 쌓아 섭씨 15∼16도로 발효시켜 생산되는 술이다. 사용하는 물은 생수를 쓰지 않고 미리 길어 저장했던 물을 쓰며 무더운 날을 피하고, 서리가 내리기 전 연잎이 마르지 않는 시기에 술을 빚어야 하는 것 등 주조 방법이 특이하다. 술이 독하여 몸을 해쳐서는 안되기 때문에 약을 만드는 정성으로 순하게 빚는 것이 연엽주 만이 갖고있는 독특한 양조비법이라 하겠다..
우리들은 밖으로 나와 마을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550년 수령의 도(道)나무 ( 道지정 느티나무)의 우람한 모습도 본 후, 고향마을 같은 돌담 고샅을 요리조리 살피며 돌아다녔는데, 햇볕을 받은 곳은 눈이 녹아 질퍽질퍽한 것이, 어렸을 적 마을 어른들께 세배 드리러 다닐 때와 꼭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영암군수 댁 못지 않으나 잘 보존치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송화군수 [ 예안 이씨 27세 손인 조선 순조 왕조 때 군수, 호 익경(益景), 휘 상겸(相謙)] 댁을 살피고 난 후 마을 어귀로 나왔을 때에는 신발에 온통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오랜만에 길 곁의 논배미에 들어가 쌓인 눈과 지푸라기로 진흙을 닦아내니 꿈속에서 고향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외암마을 한복판쯤에는 연못과 그 곁에 분명히 정자가 있었던 것 같은 흔적과 주춧돌 축대 돌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들을 모두 복원한다면 얼마나 운치가 더할까 생각해 본다. 문화의 해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큰 폭으로 지원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상의 얼이 살아 숨쉬는 외암리 민속마을(1988. 8. 전통 건축물 보존지역 제2호로 지정) 영암 군수 댁에서, 특별히 환대하여 따끈한 차와 함께 담소의 시간을 베풀어주신 이준경 선생의 넘치는 인정은, 소나무의 솔 향과 함께 영원토록 우리들의 몸에 배어 있을 것이다. 집집마다 돌담을 안고 있는 뜨락의 은행, 앵두, 감, 밤, 대추, 모과나무들이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예스런 전통 유물인 물레방아, 디딜방아, 연자방아들이 새로이 찾아올 손님을 기다린다.
찾아오는 손님은 물론 관민(官民)이 함께 전통 건축물 보존지역 외암리 민속 마을을 아끼고 지원하는 데 관심을 쏟는 문화의 해가 되기를 빌며, 우리 일행은 반석교를 건너 나온다. 일행 중에는 계간 《오늘의 문학》에서 신인상을 받은 시인 박은희씨와 정분임씨도 함께 하였다.(1997. 1. 12 충남 아산 송악 외암리에서 함동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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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골(긴뫼-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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