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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비목(碑木)의 계곡」 / 함 동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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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36회 작성일 21-07-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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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비목(碑木)의 계곡」 

  

                                    함동진(시인. 아동문학가. 서예인) 

  

 


2306EF3C584873F126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비목공원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516  사진/함동진
  

  

▶화천 문학 나들이 

  

   “IMF체제 극복을 위한 아동문학”이란 주제로 한국아동문학회 창립45주년기념을 겸한 제28회 세미나를 ‘98. 7. 31-8. 1 까지 양일간에 걸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상리에 있는 화천군문화원 문화예술회관에서 갖게 되었다. 세미나 개최장인 화천문화예술회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1,500평 규모로 건축비 64억원을 투자, ’96년 12월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강원도 산골에 이렇게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또한 화천군민의 문화예술 사랑에 대한 높은 긍지를 엿보는 것 같아 흐뭇하였고, 우리들을 이곳에 초대하여 주신 고마움은 아동문학사와 함께 길이 남게될 것이다.

   오늘의 주제발표는 아동문학가 이헌숙님과 한국문인협회강원지회장 박유석님(‘강원도 아동문학의 현주소’)이 각각 진지하게 발표하였다. 이어서 정기총회에 들어가 임원선임과 정관개정이 전 회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회원들이 아동과 같은 순수한 심성으로 잘 단합되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세미나회장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화천문화원장 한기택님이 악기로 연주한 가곡「보리밭」과 「그리운 금강산」이다. 세련된 연주로 들려주는 감미로운 가락은 우리의 심금을 깊고 깊은 평화의 늪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놀라운 연주솜씨다.

제2부 순서로는 화천읍 중리에 있는 한국관에서 화천군수 홍은표님이 베푼 만찬회가 있었다. 경제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아동문학회와 이에 소속된 문인들을 극진히 환대하여 주었고 문화예술창달에 성원하는 그 정성에 감복하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회원들은 후속잔치로 다과로서 여흥을 즐기면서 전국 각 지역별 회원소개와 신입회원소개가 있었고, 노래와 재치자랑으로 친목을 도모하였다. 밤 10시 여흥이 끝나고 회원들은 읍내에 있는 덕성여관과 대호여관으로 각각 나뉘어 여장을 풀며 자유시간과 휴식에 들어갔다. 장대비가 억수로 내리는 밤, 화천에서 아동문학인들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화천은 어떤 곳인가? 

  

   화천군의 면적은 909.48㎢이며 인구는 25.662명(남13,240. 여12,422명)으로, 강원도에 속해 있으며 관내에는 5개의 읍 면으로 화천읍, 간동면, 하남면, 상서면, 사내면이 있다. 화천군은 강원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양구군, 서쪽은 김화군과 춘천시, 북쪽은 김화군, 남쪽은 춘천시로 인접해 있다. 태백산맥의 서쪽 경사면과 광주산맥이 군의 북서부를 감싸 사면이 산에 에워싸인 셈이고 남쪽이 트인 지형을 이루고 있다. 군의 동쪽에는 백산(白山 1,267m), 사명산(四明山 1,196m), 서쪽에는 백암산(白巖山 1,178m), 적근산(赤根山 1,073m), 대성산(大成山 1,175m), 복주산(福柱山 1,057m) 주산(主山 1,192m), 광덕산(廣德山 1,046m) 등이 연봉으로 이어지고, 이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북한강의 흐름을 넉넉하게 한다. 이 강줄기를 막아 간동면 구만리에 축조된 화천댐은 파로호(坡虜湖)를 형성하고 있고, 화천읍과 부근 일대에 화천분지를 발달시키고 있다. 화천은 중부내륙에 속하여 기온의 교차가 심하며 여름의 심한 높새바람으로 한발이 심한가 하면 호우성조차 심한 기후이다. 연평균 기온은 11.2˚C 이고, 1월 평균기온은 -7.2˚C 이며 8월의 평균기온은 26.4˚C로 연강우량은 1.055㎜이다.

   화천은 원래 고구려의 생천군 또는 야시매(也尸買)였는데 통일신라시대(685년)에 와서 랑천(狼川)으로 고쳐 군이 되었고, 고려초기에는 춘주(春州)에 속하였다가 고려 예종원년(1,106년)에 와서는 감무(監務)를 두어 성천군(性川郡)으로 부르며 양구를 겸하였다. 조선 태조(太祖)때에 이를 분리하고 태종(太宗)13년(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조선 고종 6년(1869년)에 이르러서는 화천군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1945. 8. 15 해방과 더불어 북위 38도 이북으로 북한에 속해 있다가 6?25전쟁 이후 1951년에 수복되어 오늘과 같은 자유의 땅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밟고 있는 이 화천의 땅은 한국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쟁터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피로 물들여 되찾아 지켜온 고장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화천군의 상징물로 꽃은 진달래, 새는 꾀꼬리, 나무는 층층나무이다.

  


▶평화의 댐 


 

2306553C584875BD28 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평화의 댐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536  사진/함동진


세상을 쓸어버릴 것 같은 밤샘 폭우는 아침 6시쯤 되어서야 잠잠해진다. 아침 8시, 어제저녁 화천군수께서 저녁만찬을 베풀었던 한국관에서 조반을 들었다. 8시 50분 오늘의 일정인 문학기행으로 ‘평화의 댐’과 ‘비목동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아직 간간히 이슬비를 뿌리며 날씨는 잔뜩 찌푸리고 있다. 한국관을 빠져나와 평화의 땜으로 향하는 도로 우측에는 북한강의 상류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지금은 춘천댐 막이로 화천까지 물이 차 올라 강이라 하기보다는 잔잔한 호수를 이루어 풍광이 빼어난 강촌을 이루고 있다. 호수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산허리를 휘감은 안개와 호수사이를 날으는 백로의 모습은 기가 막히는 한 폭의 산수화이다. 산과 안개와 나무 위의 백로, 날으는 백로가 있는 호수에 드리운 산 그림자는 우리의 감성을 온통 호수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평화스런 모습이 스치는 강언덕에 미륵바위들이 놓여있다. 이 바위들이 지니고 있는 미스테리적 이야기는 퍽이나 흥미롭다. 옛날에 북한강을 오르내리던 소금배들이 이곳에 당도하면 꼼짝달싹을 하지 않아 살펴보니 미륵을 닮은 바위가 있어 이를 건져내 강가에 잘 안치하였더니 이후부터는 배가 멈춤 없이 안전하게 운항하였다 한다. 근래에 와서 미륵바위를 ○○학교교장이 학교정원에 옮겼다가 망했고, ○○부대장병들이 스리쿼터트럭으로 옮겨 부대연병장에 부리려 하자 동통과 경련을 일으켜 되돌려 제자리에 옮겨 놓았다는 실화가 있는 향토기념물이다. 이 호수 같은 강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멋있는 국제적 조정경기장으로 조성될 것이라 한다. 나는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다보며 동시(童詩) 한 수를 읊는다.

  

       아침의 호수에서는 

       내가 세수하면 꽃사슴도 세수하고 

       뽀오얀 안개가 일면 마을의 밥짓는 연기도 모락모락 

       수면에 뜬 햇님이 웃으면 나도 웃고 

       물방게, 소금쟁이 피라미와 함께 즐거운 날입니다. 

   

       한낮의 호수에서는 

       산 그림자 비추이면 하얀 두루미 날아오고 

       물새들이 끼룩끼룩 울면 물고기 떼 수초 밑 맴돌고 

       낚시하는 강태공의 가슴은 두근두근 

       색동 찌 춤사위 사이로 낮달이 비켜갑니다. 

   

       고요한 밤의 호수는 

       별들이 내려와 반짝반짝 꽃을 피우고 

       은하수 오작교 위에서 견우직녀가 정겹게 만나면 

       별똥별은 예서 제서 축하의 폭죽을 터뜨리고 

       망원경 없이도 별자리들이 보이는 천문대가 됩니다. 

                                                    (졸시 <호수> / 함동진  전문)  

  

   우리가 타고있는 관광버스가 아름다운 풍광의 호수 곁을 벗어나자 사행(蛇行)의 해산령을 넘고 있다. 승차한 회원 중 아무도 평화의 댐과 비목동산에 대하여 아는 이가 없어 나는 내가 준비해둔 자료를 가지고 간단하게 설명을 하였고, 이태극 시인의 시비에 실린 “산딸기”도 낭송하여 주었다. 해산령의 고도가 더해질수록 산은 온통 운무에 잠기고 우리들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것 같다. 버스가 지친 듯 기어오른 해산령 마루에는 2Km나 가까이 되는 기나긴 터널(실제 길이 1,986m)이 버티고 있다. 터널을 지나면 평화의 댐까지 구불구불 내리막길이다. 이 내리막길 저 산골짜기 아래에는 “비수구미”라는 오지가 있다. 화천읍 동촌2리 소재로 파로호 줄기가 평화의 댐에 이르는 상류부분에 위치하여 화전민이 거주하는 곳이다. 낚시꾼들만이 비밀스레 출입하던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으로 통하는 해산령과 터널이 생김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잦아져 이제는 화전을 일구는데 주력하지 않고, 낚시꾼 시중들기와 산채, 약초, 버섯 등을 채취해 판매하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 비목동산, 비수구미계곡과 더불어 낚시꾼과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화천의 땅, 산의 능선과 골짜기 어느 한 곳도 전쟁터가 아닌 곳이 없다. 장마로 흘러내린 길가의 언덕에 조국을 위해 숨져간 젊은 국군의 애인이라도 되는가. 나리꽃이 비목의 계곡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함초롬이 눈물을 머금고 있다.

   뿌우연 안개비 속으로 볼품없는 커다란 둑이 시야로 들어오고 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86년 11월, 공포의 뉴스가 장안을 강타한지 어언12년, 지금 우리의 눈앞에 쓸모 없는 “바보댐”(?)이 가로막고 있다. 화천읍 동촌2리 속칭 애막골에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평화의 댐’이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시멘트 벽면 널판지 판넬, 철근, 골재등이 을씨년스럽고 흉물스럽게 널부러져 있다.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하여 2백억 톤의 물을 저수하였다가 수공작전으로 일시에 터트리면 서울 전역이 수몰된다는 선전을 극성스럽게 하였다. TV들은 63빌딩이 반쯤 물에 잠기는 컴퓨터그래픽 그림을 연일 방영하였고, 공포에 휘말린 국민들은 어린이의 코가 묻은 돈에서부터 각계각층에까지 성금을 거두었고, 정부의 예산을 합쳐 평화의 댐 건설에 2천억 원을 투입했다. `87년 2월 28일 착공에 들어간 공사는 `88년 5월에 1단계 공사를 마쳤는데 댐 높이 80m, 길이 420m의 규모로 모습을 들어냈다. 그러나 이 댐은 홍수조절 등 기능성이 없어 볼품없는 둑막이에 불과했고, 저수 없이 바닥을 드러낸 모습은 자연을 훼손한 작태로밖에 볼 수 없다. 더군다나 댐 안쪽에 10억 원을 들여 `96년 6월 착공한 안보관광지와 안보전시관은 댐 안의 상류 쪽에 있어 침수지역에 들어선 셈이니, 평화의 댐이 수공을 막기 위한 대응 댐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10여 년을 넘긴 지금까지 높이 2백여m, 길이 1천여m로 건설된다던 2단계 공사는 추진했는지 흔적도 없다. 그것뿐인가. 이곳에 투입된 50여 억 원대의 각종 고가의 장비들이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 숲 속에 처박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댐 구축을 위한 진입로로 화천에서 댐까지 38Km구간, 양구에서 댐까지 39km구간을 건설하기 위하여 국고 6백 46억 원이 낭비되었다고 한다. 과잉 안보수단은 자연훼손과 물자낭비를 몰고 오면서 오히려 평화를 거슬렸다는 평을 받게된 것이다. 나는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성금모금수단으로 한국학원총연합회 서예분과위원회가 주관한 서예학원장 서예작품 전시회에 출품한 바 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입가에 쓰디쓴 웃음만이 맴돌 따름이다. 지금 우리가 오르고 내린 해산령과 터널은 후일 평화의 댐을 공개하면서 포장하고 다듬어 관광코스로 개발한 길이다. 이 길이 완공되기 전에는 파로호선착장에서 뱃길로 70리를 수상으로 달려야 했다. 역시 평화의 댐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이 고장 출신인 詩人 길명희의 詩 <평화의 댐 가는 길>에서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제5공화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속살 한번 들어내지 않은 

       처녀림을 만년설처럼 간직한 처녀였지 

   

       감히, 점접 못할 품위 

       아프로디테의 경지였는데 

       끄릉끄릉 지반이 속울음 참던 

       칠월 어느 날 

       내 무성한 수풀은 군화발에 

       무자비하게 능욕 당하고 

       그 우두머리 머리처럼 

       내 녹색치마는, 한 올 

       남김없이 벗겨졌네 

   

       단말마 같은 외마디 비명은 여름내 

       흑, 흑 하늘을 울렸건 만 

       모태 같은 대지는 

       벌건 속살 흉측하게 드러내고 

       산과 산 사이 가랭이로 

       검붉은 피 밑 빠지게 하혈하였네 

   

       통곡소리, 세상은 

       떠나갈 듯 하였지만 

       그래도 여지없이 벗겨지는 하체 

       늙은 창녀의 그곳처럼 

       뭇 사내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뻥 뚫린 구멍이 도원경인 듯 

       오르가즘에 취해 황홀해 할 때 

       예언이라도 하듯, 그 구멍에 

       찬바람 휭하니 불고 

       마지막 남은 저고리 섶 부여잡는 

       악착같은 손길 

   

       말채찍, 휘두른 

       상처처럼 

       산허리 끝없이 

       감고있네.  

                     (<평화의 댐 가는 길> / 길명희. 전문)


  

▶비목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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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두타연계곡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296  사진/함동진


   비목의 동산은 비목의 발상지 백암산에서 가장 인접한 곳으로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 안쪽 현장에 1995년 5월 화천군이 2천여 만원의 예산을 들여 3백여 평 규모로 “비목의 계곡 달빛 동산”을 조성하여 두었다. 국민적 가곡 “비목”은 작사가 국악인 한명희(韓明熙 서울시립대학교)교수가 60년대에 이곳에서 청년장교로 근무하면서 댐 북방 백암산 계곡 산허리에 방치된 비목을 보고 시로 쓴 것을 작곡가 장일남씨가 곡을 부쳐 나온 것인데, 애잔하고 애틋하기까지 한 노랫말과 선율 때문에 가요처럼 전국민이 애창하는 가곡이 되었다. 「비목과 노래말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계곡 깊은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되어 쌓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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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비목공원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526  사진/함동진



  이와 같은 비목노랫말은 비목의 詩가 탄생한 평화의 댐 인근 비목공원에 노래비로 세워져 있다. 화천군 땅 어느 한 곳인들 비목의 골짜기가 아닌 곳이 있겠는가. 본 기행문의 필자 자신도 60년대 초 사내면 명월리 육군 제15사단사령부에 근무할 적, 수요일 군사훈련교육차 뒷산 숲 속에 들면 총탄에 숭숭 구멍이 뚫린 탄흔 투성이의 녹슨 철모와 썩어져 너덜거리는 군화, 개인화기 부품 조각들, 인골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되었었다. 화천군 전지역이 처절한 전투지역이었음을 증명하는 흔적들이었다. 이 비목공원에서 비목마을 사람들이 주최하고 화천군청과 칠성부대가 주관하여 제1회 비목제를 열었는데 작사자 한명희, 시인 신경림, 방송인 황인용씨 등이 공동대표로 하여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동참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 호국영령을 위로하였다. 비목문화제는 해마다 6월(현충일)이 오면 회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비목의 계곡 평화의 댐을 빠져 나올 무렵 패랭이꽃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젊은이들의 혼불로 불게 피어났는가. 하늘대는 꽃잎 위로 실비에 젖은 나뭇잎이 눈물방울 떨구기까지 하여 더욱 애처롭게 보인다. 아, 애닲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혼령들이여! 감히 영령들을 위로하며 명복을 빈다.

  

▶파로호와 전적관광지 



23066F3C5848787E2B 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비목공원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501  사진/함동진


   파로호에 가려면 화천읍에서 구만리에 이르는 461번 국도를 타야한다. 도로와 겹치면서 화천댐으로 거슬러 오르는 물길은 산수화와 같은 장관의 정경을 이루고, 댐에서 수로(水路) 터널을 관통한 물의 낙차로 수력발전을 하는 구만리 화력발전소가 건너편 산기슭에 보인다. 검문소에서 화천강을 건너려면 “역사 속의 구만교”가 있다. 이 다리는 일제시대에 건설하고, 북한점령 하에 있었고, 6?25전쟁 후 한국관할 하에 들어갔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발전소가 있는 “구만리”는 어느 사람이 “사당골”을 몇날 며칠을 힘들여 찾다가 이곳에 이르러 사당골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그곳 사람이 골려주기 위해 비아냥으로 구만리가 남았다 하자 여행객은 그만 그곳에서 자결하여 그 후로부터는 구만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파로호를 건설할 당시 수몰지역의 묘지를 이장하는데 일꾼이 시체를 가마니에 싸서 지게에 지고 가다가 주막 앞에 받쳐놓고 술을 마시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쌀가마니로 오인하고 슬그머니 훔쳐 집에 가서 풀어보니 시체가 들어있어 혼비백산(魂飛魄散) 놀랬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10억톤의 저수능력을 지닌 파로호는 1943년 9월 화천댐으로 건설되어 이루어진 인공호수이다. 한국의 인공호수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호수이기도 하다. 금강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북한강이 월명산, 두류산, 일산 등 첩첩 산의 품에 고여 호수를 이룸으로 풍광이 빼어난다. 호수의 명칭인 파로호(坡虜湖)는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화천댐을 방문하여,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 수장시킨 호수라 하여 친필 휘호(揮毫)를 남긴 뒤에 파로호라 부르게 되었다. 이 친필 휘호를 새긴 돌비는 파로호 안보관에서 좌측 비탈로 오르면 전망대(구만리소재)가 있는데 제일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많은 서예애호가들이 탁본하여 간다고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20여m 아래에 호수가 있고, 호수 건너편 호반에서 퍼져 내려온 산그림자의 풍광은 사람의 시선뿐만 아니라 몸통까지 빨아들일 지경이다. 전망대 건물 앞에는 파로호전망대(坡虜湖展望臺)라 한 한자 새김의 돌비가 있고, 비명 아래에 “이 파로호 전망대는 6?25당시 용맹스러운 우리 국군이 중공군 3개 군을 수장시키고 조국과 자유를 지킨 빛나는 전사(戰史)를 기념하고 이를 후세에 길이 전승하기 위하여 육군칠성부대, 한국전력, 화천군이 협동권사업으로 건립하였음. 1989. 12”라 새겨놓았다.

   전망대 아래 길 건너에는 “자유수호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노산 이은상의 글씨로 “조국과 자유를 지킨 곳”이라고 탑비명이 새겨져 있다. 자유수호의 탑이 있는 언덕 아래 호수변에는 파로호선착장과 자연산 횟집이 있고 그 건너 저편에는 다람쥐섬이 헤엄치듯 떠있다.

   자유수호탑에서 100m 가까이 들어가면 호수 언덕 위 솔숲 언저리에 시조시인 월하 이태극(月下 李泰極)의 시조비가 세워져 있는데 전면에는 그의 대표작 시조 “산딸기”가 새겨져 있다.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가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삼촌(三春)을 숨어 살아 

   

       되약볕 이 산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 지이다. 

  

   시비의 뒤 면에는 “금강의 맑은 물결 따라 자리잡은 본군 간동면 방천리 태생의 시조시인 월하 이태극 박사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자랑스런 화천인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자손만대에 영광의 빛이 되고자 미래의 젖줄인 파로호 길목에 이 비를 세웁니다. 1990. 9. 22”(제작 각기 이일영, 주관 화천문화원, 후원 화천군, 시비건립추진위원회, 특별후원 시인 허일)이라고 새겨 넣었다. 이태극은 시조시인이면서도 국문학자로서 정철, 윤선도의 옛시조로 부터 이병기, 이은상의 근대시조에 이르는 전통을 계승하여 문학계에 시조의 지위를 고양시키는데 전력을 다하는 문인이다. 1960년에는 「시조문학」을 창간하였고, 1965년에는 한국시조작가협회를 창립했으며,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를 네 차례나 역임한 바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전옥수, 3남 1녀가 있다. 월하시비 아래에는 구만리 발전소로 보내는 수로 터널의 취수장이 있다.

   파로호전망대에 이르는 초입 왼쪽 도로변에는 파로호안보관이 있다. 이곳에는 6?25전쟁자료, 북한의 물자와 자료 등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정보가 전시되어 있다. 안보관이 세워진 장소는, 화천댐을 두고 6?25전쟁당시 피아간 치열한 공방으로 대치했던 격전지 현장에 세워져 있다. 1951년 5월 2차 춘계 대공세에서 퇴패하던 적이 파로호변 오음리~구만리간 도로를 이용 철의 삼각지대로 퇴각하려다 파로호에서 대패하였다. 당시 화천발전소는 적의 군사령부 주둔지이자 1종 보급소로서 많은 병력과 장비가 집결해 있었다. 파로호안보관에서 간동면 오음리에 이르는 461번 도로에는 적군의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여 불도져로 처리하여 통로를 냈고, 발전소로 통하는 송수터널 내부에 숨어든 120명의 적군을 생포하였다. 발전소의 1종 보급소에서는 다량의 탄약과 보급품을 노획하여 아군의 수송능력으로는 감당키 어려웠다. 이 전투에 참전한 2연대 3대대 10중대원 전원이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은 공적을 미루어 보아도 전과와 전공을 짐작할 수 있다. 6?25전쟁 중 퇴각하는 중공군 제20군 및 제40군을 무찌르는 중 아군 6사단 7연대가 화천저수지(파로호)를 점령하고, 제2연대 19연대가 배머리고개와 전장골을 잇는 선에서 협공하므로 중공군을 완전 격퇴한 전투장이 이곳이다.

   안보관 앞 아래쪽에는 “자유수호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1996. 10. 28 제막) 이 위령탑에는 화천의 詩人 길명희의 詩 “꽃은 피었건만”이 새겨져 있다.

  

       자- 이제 넉넉한 마음으로 기억해야 하리 

       님들이 지켜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화천 

       조상 대대로 물려온 터전에 님들의 고귀한 생명과 

       선혈이 배어 있음을 우리 영원히 기억해야 하리 

       공산치하에 치를 떨며 자유를 부르짖던 

       200여 순한 눈동자 여린 가슴들 

       어느 날 모질게 짓밟히고 끊어졌어라 

       조국과 겨레를 위해 총탄에 가야했던 님들 

       어찌 우리가 한 시 인들 잊으리요 

       소박한 님들은 정든 터전을 땀으로 씨뿌리고 가꾸어 

       봄에는 진달래 여름엔 감자꽃 어여삐 피어냄을 

       우리 알고 있기에 

       님들이 누리지 못한 풍요 우리 대신 누리고 

       님들이 다하지 못한 삶 우리 지엄하게 실천하여 

       숭고한 님들의 혼 늘 살아 있음을 

       우리 알고도 남음이어라 

       아프게 져야했던 꽃 그 슬픔 우리 함께 나누고 

       목놓아 울지 못했던 그 설움 우리함께 눈물 흘리며 

       님들이 모든 것을 바친 소중한 이 땅 

       우리 생명처럼 귀히 여기며 

       매봉산 기슭 아늑한 곳에 모셔드리니 

       님이여 

       편히 잠드소서. 

  

▶38선 정상에서 화천이여 안녕! 

  

   파로호 사수와 화천지구 전투, 철의 삼각지 사수와 백마고지 전투 등의 승리로 155마일의 휴전선이 성립되기까지, 온 전쟁터에서 젊음으로 목숨 바친 희생이 없었다면, 수복된 38선 이북에 자유의 땅이 있었을까? 그리고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와 풍요로운 삶조차 있었을까? 새삼, 불과 몇 십리도 안 되는 북녘 저 산너머에 독재사슬에 얽매여 굶주림과 질고 속에서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처절한 격전의 전적지인 파로호를 출발하여 귀경길에 오른다. 간동면 용호리를 지나고 있다. 이 지역이 70년대에 월남(베트남)전에 파병된 국군 병력의 훈련장이다. 이곳에서 오음리와 배후령 38선 정상에 오르기까지 전지역이 파월장병들의 훈련장이었다. 지금은 잡초만 무성할 뿐 흔적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에 용호리에는 조랑말을 훈련시키는 말부대가 있었는데 모두 해체하여 제주도로 보냈다고 한다. 가는 길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용화산(878.4m)은 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산이라 하며 그 산에 들면 성불사 사지가 있다고 한다. 지금 막 오음리를 지나고 있다. 나는 60년대 초에 군생활 후반기를 사내면 명월리에서 이곳 간동면 오음리로 사령부가 이동됨에 따라 전역할 때까지 병영생활을 하던 곳이다. 실로 38년만에 마주친 곳인데 황당한 마음으로 바라다볼 수밖에 없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복무했던 사령부 막사는 간데온데없고 잡초와 쑥대만이 넘실거리고 있다. 사령부 입구 쪽의 육군 L-19비행장도 역시 쑥밭으로 남아있다. 파로호호반에 있는 언덕 위의 사령부연병장 가장자리 잔디에 앉았을 그 무렵에는 “호반의 벤취”라는 가요가 한창 유행할 때였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을 적마다 잊지 않고 추억하던 곳인데,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숲 속에 숨어 있던 화전민(火田民)의 움막도 보이지 않고, 현대식건물의 풍요로운 촌락과 마을풍광이 경이로워 보인다.

   양구와 춘천의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 앞에서 우리들을 실은 버스는 오봉산 38선 정상이 있는 배후령을 치닫고 있다. 오봉산은 다섯 봉우리를 지닌 산으로 산자락의 유명한 청평사와 소양호(선착장)를 연계하는 이름난 등산코스를 지니고 있다. 막 38선 정상에 도착하자 세찬 빗줄기가 내리친다. 이별의 빗줄기인가. 화천이여 안녕! 우리에게 훌륭한 만찬을 베푸신 화천군수 홍은표님, 좋은 선물을 안겨주신 화천문화원장 한기택님, 헤어짐의 순간까지 친절과 정성으로 우리를 안내한 조규영 시인과 정장한 시인께 감사드린다. 연로하여 불편하신데도 참석하여 격려하여주신 원로 아동문학가 박화목 명예회장과, 행사의 끝마무리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잘 인도하고 진행하여주신 한국아동문학회 김신철회장과 유종슬 사무국장께 고마움을 금치 못하겠다. 그밖에 정든 모든 아동문학회 문우회원들도…….

  

          (1998. 8. 1)

            2016. 11. 01 아동문학 234(201611월호) p.169~188. 월간아동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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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두타연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369  사진/함동진


()

      

두타연

 

                                         함동진

 

 

금강산 금강바위틈새 분단의 슾픔을 토해낸 눈물로

어딘들 못 가랴 동포 찾아 험준계곡 흘러흘러 왔네

 

옥수되어 두타연폭포수 이루니 저마다 감탄하는 경지

두타계곡 손담가 어루만지는 금강산만물상 여기있네

 

되돌아서기 아쉬운 심경 뒤돌아보고 또 돌아다보아도

졸졸졸 뒤따라 한양천리 마다않고 좇아오는 물소릴세.

 

     201269일 구로문인회 두타연문학기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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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골(긴뫼-長山)

함동진

http://hamdongjin.kll.co.kr/ 

http://cafe.daum.net/ham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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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목(碑木 Bimok - Memorial the Unknown soldier)

    

(碑木詩碑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비목공원)

  

  

             비목(碑木) 

    Bimok : Memorial the Unknown soldier 

  

                                                 한명희詩 . 장일남曲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바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곤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Where cannon smoke sweept through the vallry deep,

       valley glinting on the sunny side,

       the winds and rain of old, old time are etched,

       etched upon a lonely wooden plaque,

       Oh distant skies, old friends left far behind,

       longing thoughts flood through the heart,

       knotted cares, mossed o'er wiht pain,

       crust acrossthe aching, tearful heart.

  

  

       The belling stag calls through the vally deep,

       neath a moon that bears the night on high,

       The pain and tears of the unknown are etched,

       etched upon a lonely wooden plaque,

       Oh rueful thoghts, of a time that's gone away,

       turned to stone, piled in a cairn,

       fossiled cares, mossed o'er with pain.

       crust across the tearful aching heart.

                                (trans: by Kevin O'Rourke)



  

            [ 비(碑)를 세우며]  



       태고(태고)가 머무는 한적한 이곳은 한때 아까운

       젊음들이 포연과 함께 살아져 간 격전의 현장이다.

       꽃답고 그립던 얼굴들은 세월의 밀물에 지워져

       가지만 님들의 꿈과 사랑과 거룩한 뜻은 겨례의

       노래 "비목(碑木)"으로 승화되어 영겁으로 이어

       지고 있다. 이에 한 시대의 표상이자 민족 정서의

       분신이랄 "비목"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저 7만

       민군관(民軍官)의 뜻을 모아 여기 시상(詩想)이

       잉태된 전장(戰場)의 부토(腐土) 위에 기념비를 세운다.


                       서기일천구백구십오년유월이십오일

                                       화 천 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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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비목공원 2012.06.09 양구화천문학기행 511  사진/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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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반짝 행사는 그만”…6·25 추념 문화단지 만든다


 “비극적인 6·25전쟁을 추념하는 문화 예술적 성지(聖地)가 없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명가곡 ‘비목’의 작사가인 서울시립대 음악학과 한명희(韓明熙·65) 교수가 6·25전쟁을 추념하는 ‘한국전쟁추념문화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 문화단지는 6·25추념공원, 전쟁박물관, 평화의 종탑, 칼토피아(Cultopia) 등으로 경기 남양주시 일원 12만평에 조성될 계획이다.

  추념공원은 한국을 도왔던 참전 16개국을 비롯해 적군이었던 북한 중국 등 참가국별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갖추게 된다. 특히 북한군과 중공군의 명복을 비는, 가칭 ‘화해의 비(碑)’도 건립할 계획이다.

 전쟁박물관에는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소설 음반 등에 쓰인 소품이나 소재, 실물 등도 전시된다.

  한 교수는 “해외 상이용사들까지 이곳에서 전쟁의 아픔을 씻고 평화를 염원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도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외전시장에는 6·25전쟁에 사용된 각종 무기가 전시된다.

  칼토피아는 문화(Culture)와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로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문화단지 안에 실제 거주하면서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한 교수는 강영훈(姜英勳) 전 국무총리와 조성태(趙成台) 전 국방장관, 서지문(徐之文) 고려대 교수 등 저명인사 50여명을 초청해 최근 설명회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한 교수는 특히 “참석하신 분들이 그동안 참전국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6·25전쟁의 추념공간이 없다는 점에 공감했다”며 “현충일에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추념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양주시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우선 해제할 수 있는 12만여평에 문화단지를 조성하되 연차적으로 공사에 들어가 6·25전쟁 60돌이 되는 2010년 완공할 예정이다.

  한 교수는 우선 한국전쟁문화추념단지 건립을 위한 입법청원을 통해 관련 법안을 마련하는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20대에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할 때 6·25전쟁 중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유골을 접하며 추념단지의 꿈을 키워 왔다는 한 교수는 “후세에까지 추념의 마음을 잇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각계의 성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4-06-18 남양주=이동영기자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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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 밸리

  요즘 베를린 중심부에 나치에 학살당한 600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대규모 기념물이 조성되고 있다. 독일인들은 이를 ‘경고가 담긴 기념물’이란 뜻의 ‘만말(Mahnmal)’이라고 부른다. 대학살의 참상을 알리고 동시에 반성의 교훈도 담을 이 추념단지는 1987년 언론인 레아 로슈가 제안했다. 2년 후 빌리 브란트 전 총리와 귄터 그라스 등 독일의 지성들이 참여해 추진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학살 관련 기념물이 많은데 대규모 기념물을 만드는 것은 예산낭비라는 지적이었다. 유대인만을 위한 기념은 또 다른 차별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11년간 토론이 지속된 끝에 99년 연방의회는 마침내 만말 건립을 위한 법안을 의결했다.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 남쪽 2만㎡의 터에 공사 중인 이 기념물은 종전 60돌인 2005년 5월 8일 완공될 예정이다.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생생한 현장은 아우슈비츠기념관이다. 폴란드 크라코프 인근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마련된 이곳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유물들과 유대인들을 처형했던 가스실 등이 보존돼 관람객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가장 큰 전쟁기념물로는 스페인의 로스카이도스 계곡의 성지가 꼽힌다. 150m 높이의 십자가와 동굴성당이 포함된 이 기념물은 프랑코가 내전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조성했는데 상징조작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며칠 전 경기도 덕소의 한명희(가곡 ‘비목’ 작사가) 교수 자택에서 한국전쟁 추념 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모임이 있었다. 남양주시가 제공하는 12만평의 부지에 한국전쟁 참전국 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하고 평화의 종탑도 세우는 ‘평화의 계곡(peace valley)’을 만들자는 지성인들의 제안이다.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참상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역사를 대하는 한국의 자세도 보여주자는 취지다.

  그간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이번 추념단지 조성안도 지자체나 뜻있는 인사들이 추진하기에는 버거운 사업이다. 그럼에도 30여명의 인사들이 추진위를 결성한 것은 6·25전쟁이 너무도 속절없이 잊혀져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요즘 학생들이 6·25를 연합군끼리 싸운 전쟁으로 알고 있으니…”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평화의 계곡’은 시간이 걸릴 사안이고 독일처럼 정부가 맡아야 할 사업이다. 그렇지만 6·25를 앞두고 그 뼈아픈 전쟁의 의미를 잊지 않고 되새기려는 사람이 아직 몇몇은 남아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동아일보[만물상] 2004.06.18정중헌 논설위원 chosun.com )



 

 

  ⊙ 발표문예지 : 순천문학 52호, 1999년 봄호
  ⊙ 수록시집명 :
  ⊙ 수록산문집 :
  ⊙ 수록동인집 :
  ⊙ 수상문학상 :
  ⊙ 발표일자 : 1999년03월  ⊙ 작품장르 : 수필
  ⊙ 글 번 호 : 14127  ⊙ 조 회 수 : 65
  ⊙ 등록일 : 1999-08-18  ⊙ 접속 IP : 218.148.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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