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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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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손계 차영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9회 작성일 21-12-14 16:24

본문

나무 / 차영섭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나무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사랑한다. 굽으면 굽은 대로
   가시가 달렸으면 달린 대로 무조건 사랑한다. 내가 나무를 이토록 사랑하는 대에는 그
   까닭이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무가 없는 산을 보았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없는 새빨간 산, 산이 사막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흙탕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그대로 하천을 범람시킨다. 순식간에 홍수가 졌다가 순식간에 말라버린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이렇게 홍수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만 해도 땔감이 없어 나무 끌텅까지
   곡괭이로 파서 아궁이 쏘시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까닭을 하나 하나 짚어보겠다.

     나무는 영원성을 지닌다.
   물은 움직이면서 영원성을 지니지만, 나무는 제자리에서 영원성을 지닌다.
   어떤 나무가 그립고 보고 싶을 땐 언제나 그 자리에 가면 기다리고 있다. 나무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내 앞에 서고 싶어 아름다운
   변화를 보여준다. 나무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한 줌 재로 사라질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나무는 사랑할 줄 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한 나무가 산에서 사랑을 하다가 나에게 들켰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젊은 나무가 오동통통한 허벅지로 서로 휘감는다.
    분명히 한 둥치에서 두 개의 줄기인데, 한 번 꼬고 두 번 꼬고, 꼬다 꼬다 합해졌다.
    개천물이 강물로 흘러 들어가듯 둘은 하나가 된 듯 한데, 하나라고 할까 둘이라고 할까,
    하나도 둘도 아니라고 할까.

       나무는 눈과 입이 있다.
    나무는 가지에 별처럼 무수히 눈과 입을 달고 있다.
    봄이 오면 눈을 뜨고, 눈을 뜨면 입이 되어 푸른 혀를 길게 내민다.
    입으로 비와 햇빛을 받아먹기도 하고 가장 아름다운 꽃잎으로 활짝 웃으며 사랑하고 싶다
    한다. 가을이 가면 입을 오므리고 눈을 조용히 감는다.
    겨울 동안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빠져 마음을 추스른다.
    칡, 호박, 나팔꽃, 담쟁이, 등나무, 다래나무 같이 홀로 설 수 없는 나무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다래나무가 2미터가 넘는 참나무 가지를 한 숨에 뛰어 붙잡은 것을 보았고,
    호박 줄기가 고사리 손을 벌리고 울타리를 휘어잡고 똘똘 말아버린 것도 보았다.
    나팔꽃 줄기가 전신주 지지 철사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보았고,
    멀리 있는 칡덩굴이 나무를 향하여 기어가는 것도 보았다.
    붙잡겠다는 덩굴나무의 생각 그리고 정신력, 보이지 않는 눈과 손 놀림을 
   보면 얼마나 생명력이 강인한지를 알 수 있다.

       나무는 글을 쓴다.
   나무는 일 년에 한 번씩 글을 쓴다. 겨우 내내 골몰한다.
   알몸으로 움츠리며 뼛속 깊이 새긴다. 봄이 오면 나름대로 정리한다.
   한 닢 두 닢 초록 이파리를 달며 새김질한다.
   여름이 지나도록 모든 정리가 끝나면, 가을에 나무는 가랑잎을 떨구며
   한 글자 두 글자 땅에다 글씨를 쓴다. 시를 쓴다.
   구름이 여름에 빗방울로 작곡을 하고, 겨울에 눈송이로 글을 쓰듯이
   나무는 자기 나름대로 빨갛고 노란 편지를 써서 바람에 날린다.

      과일 나무는 해거리한다.
   주렁주렁 가지가 찢어져라 감을 매달던 감나무가 한 해 띄어 한산하기 그지없다.
   하늘은 푸르고 쓸쓸하게 보인다. 그래 매년 어떻게 많은 감을 달 수 있겠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데.
   엄마가 아이를 갖고 기르는 거나 같다. 해거리하며 쉬면서 기력을 보충해야  
   다음 해에 많은 열매를 가질 수 있다.

      나무는 슬기롭다.
   줄기가 넘어지지 않게 뿌리를 사방으로 균형있게 뻗어 지탱하는 의지가 있고
   서로 영향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 적절히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는 화합이 있다.
   바람이 불면 정도껏 내 몸을 굽힐 줄 아는 겸손과 새들에게도 내 집을 내어주는
  양보와 고된 자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미덕이 있다.
  하늘을 지향하되 아래로는 스스로 몸무게를 줄이면서 사는 푸른 지혜가 있고
  똑같은 줄기인 듯싶으나 꽃과 열매를 맺는 신비와 씨앗을 만들어 싹을 틔우는
  사랑이 있다. 죽어서는 몸을 태워 따뜻한 빛을 주고 숯이 되고 다시 재가 되는
  날까지 희생을 반복하는 거룩한 넋을 보여준다.

      나무는 서로 대화한다.
   솔이 대에게 말한다. 하늘 높은 줄만 알고 곧다고 자랑 말라고,
   제 아무리 으스댄들 기둥도 되지 못한 것이,
   대가 솔에게 말한다. 하냥 아래만 살피며 기개 한 번 펴지도 못한 것이
   홀로 외로이 고독하지도 아니하냐고,
   둘의 말을 듣던 달이 일침을 놓는다. 콩이니 팥이니 따지지 말라고,
   콩도 팥도 다 쓸모 있으니 서로 어울려 이상적인 숲이나 되라 말한다.
   버드나무가 멀리서 하늘하늘 춤을 춘다. 제 멋에 사는 거 다투지 말라고,
   뭐니 뭐니 해도 부드러움이 제일이지 않느냐.
   대나무 자세에 소나무 처세가 어떠신지?

       나무는 공생의 이치를 깨닫고 있다.
   나무가 사람처럼 소유욕이 강하다면 열매를 땅에 떨어트리지 아니하고
   썩을 때까지 꼭꼭 붙들고 있을 게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봄이 온다 해도 싹이 없겠지. 나무는 존재하기 위해서 상관관계로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이 목을 추겨주고 흙이 밥을 먹여주고 공기와 햇볕이 준 따스한 사랑의
   힘으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는 맺은 열매를 서슴없이 땅에 떨어트리고 받은 것을 다 되돌려준다.
   나무는 홀로 살되 더불어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의 이치를 잘 깨닫고 있다.

         나무는 홀로 살되 더불어 산다.  
   홀로 있을 때 더 의연하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늘 자기 자리를 지킨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변화를 한다.
   일 년에 한 번은 알몸으로 비운다. 비우고 혹독하게 겨울 참선을 한다.
   그리고 깨끗한 몸으로 봄을 맞이한다. 일한 성과를 세상에 바친다.
   나이를 속으로 속으로 헤아려 보며 산다.
   고목이 되면 속을 모두 도려낸다. 존재하기 위하여 소유한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면 가지들은 서로를 비껴주며 이웃이 햇볕을 쐬게 양보한다.
   키 높이를 맞추며 자라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한다.

         나무는 지혜롭다.
   나무는 지혜로워 일 년에 한 번씩 묵은 것을 떨쳐 버린다.
   길고 긴 겨울 동안 자기 자신을 알고자 추위에서 알몸으로
   깊은 사색과 각고의 고뇌를 거쳐 스스로를 조용히 지켜보고 얻은 깨우침으로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봄이 오면 그 각오를 새싹으로 움 틔운다. 그래서 꽃과 열매는 새 가지에서 맺는다.
   나무의 지혜를 느끼고 싶어 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숨소리를 들으며 그 기운을 받는다.

         겨울 나무의 명상
   겨울을 겪은 마른 나무가 서있다. 봄볕이 따스한 가슴으로 나무를 어루만지며
   사랑을 투약한다. 나무는 아직도 떨고 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부드러워져
   시나브로 마음이 깨이기 시작한다. 포근하고 얼었던 몸이 녹고 참 좋다!
   더 많이 햇볕을 받아들이고, 그랬더니 슬금슬금 나무의 마음이 햇볕에게로 동요되며
   사랑에 물들어 자신도 모르게 꽃을 피우게 된다.
   이것이 봄 꽃이다. 나무가 명상을 하여 얻은 마음의 평안이다.
   추위에 길들여진 잘못된 습성을 바꾼, 아! 바꾸어버린……

         봄 나무는 봄의 편지를 받아본다.
   땅 얼고 몸 언 추운 겨울 깊고 깊은 깨달음에서 일어날 때다.
   하늘은 는개를 보내 똑똑똑!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기지개를 펴며 가지마다 눈을 뜬다. 뿌리로부터 우듬지까지 물레방아 돌린다.
   싹이 쏟아져 내리고 꽃망울이 터진다. 바야흐로 깨끗한 마음으로 새 세상을 맞이한다.
   새들과 벌 나비 찾아와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봄 나무들은 얼마나 가슴 벅찰까!

          나무를 보면 행복하다.
     긴 겨울 고통을 이겨내고 봄에 꽃 피고 새싹 돋는 널 보면 나는 흐뭇하다.
     가장 아름다울 때 꽃잎을 떨구는 너의 지혜에 나는 감탄한다.
     열매를 맺어 꼭 붙잡고 키우는 너의 정성이 지극히 대견스럽다.
     갈 바람에 미련도 없이 달고 있던 낙엽을 휘휘~ 날려보내는 널 존경한다.
     겨울 들녘에 알몸으로 버티고 서서 봄의 희망을 찾아가는 넌,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사랑하면 좋아하고 꺾으면 아파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를 만들며 몸소 공생하는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임을 안다.

         나는 나무의 마음을 읽는다.
    언제나 새롭게 변화할 수 있고 가진 것을 비울 수 있어 좋다.
    일 년에 한번은 꽃을 피우고 꽃 진 자리에 풍성하게 열매를 단다.
    뿌리를 내리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더불어 공생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하늘을 받들어 푸르르고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를 만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 함께하는 마음으로 행복하다.

         나무는 좋겠다.
    팔을 쭉쭉 펴 하늘을 우러러 살고 새들이 오면 둥지를 내주며
    밤에는 별들과 사랑을 속삭여서 나무는 좋겠다.
    달님 오면 달님을 품고 밤 지샌 줄 모르며, 이슬 오면 이슬 데리고 구슬치기하고
    바람 오면 바람의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어서 나무는 심심치 않겠다.
    소낙비가 내려와서 씻어주며 어깨를 풀어주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제 자리를 내주며
    푸른 마음, 푸른 생각, 푸른 몸으로 살아서 나무는 행복하겠다.
    일 년에 한 번은 꽃을 피워서 세상에 향기를 보내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변화를 가지며, 한 점 재로 없어질 때까지 뜨겁게 살아서 나무는 후회 않겠다.

      끝으로 나무의 수행이란 나의 시를 올리며 갈무리한다.

                    나무의 수행

         나무들은 겨울 수행에 들기 전에
         쓰다 남은 이파리들을 다 버린다
         꽃이나 열매까지도 아낌없이 털어내고
         추위에 맞서 알몸으로 정진한다

         그래서 봄이 오면
         다 쓸어낸 깨끗한 마음에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싹을 틔워
         새롭게 한 해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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