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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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여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841회 작성일 15-07-30 16:24본문
추억
2009000000 국어교육과 4학년 이이
노란 숲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어,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고 꺾여 내려간 데 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 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한 구절처럼 26 년만큼의 내 기억 속 길들은 내가 기억하는 만큼 많고, 여러 모양이며, 선택되지 않은 것으로 가득하다. 또 그렇게 매혹적이고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며, 그러지 않고 싶지만 가끔은 후회를 불러일으키며 역행하는 꿈이다.
선택되지 않았다는 수동태의 말이 마음에 울리는 것은 왜일까, 어느 정도는 내 길을 스스로 걸어오지 못 할 만큼 큰 완력에 떠밀렸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운명론적 사고, 요즘 듣는 사회학 수업의 말로는 올가미에 걸려 허우댄 듯 한 느낌은, 이 종이에는 다 쓰기 싫은 가볍지 않은 어린이 때의 아픔에서 온 것인가.
그럼에도 내가 계속 살며, 다음 종이에서 쓸 희망인 선생님을 그리고, 밥 먹고 자고, 사랑하는 것은, 또 어린이 때인 그 제주의 유채꽃 밭 한 가운데를 밟고 가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서양인 선교사 신부가 화강암 지대에 농사도 못 되는 가난한 한국의 섬에 와서 양을 데려다가 젖을 짜 먹이고, 털을 깎고 팔았다는, 지금은 수 십 만평일 이시돌 목장 옆에, 우리 집이 있었다.
집은 겨울이면 남자가 도끼질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메오던 전나무 숲 사이에 도로를 마주보고, 뒷 정원에는 작은 감귤이 열리는 나무들과 닭과 오리가 살았다. 어린이집 차량이 오면 어린이는 감귤 하나씩을 꼭 따서 먹었고 지금 내 나이쯤 됐을 어린이집 선생님은 나는 외동이라 누나 같고 예뻤다.
매일 노래하고, 목장에 달리는 망아지를 바라보고,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반석이 형 아버지의 하얀 십자가 앞에서 분유를 털어먹으면 하루가 금세였다. 슈퍼와 상점들만 많고 대형마트는 아예 모르던 때 이-마트가 제주도 어딘가에 들어왔다.
달에 몇 번 오일장에 가 천막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구경하는 게 좋았던 어린이의 관심은 망고색 네온사인에 장난감을 가득 안고 있는 그 마트에 빠르게 옮았다.
그래 그 네온사인 망고색과 유채꽃 밭 어딘가에 비슷한 점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학교주변 이마트를 스쳐 가면 유채꽃 냄새가 날 까 상상을 해 본다.
사람도 없고, 친구도 기억에 없이 풍경과 인상만이 짙은 이 기억들을 추억이라 부를까? 사람도 있고 친구도 있었지만 왜 그 목장과, 감귤과, 유채꽃과, 이-마트의 망고색에서만 나는 솔직하고 편안하게 이 종이를 채울 수 있을까.
댓글목록
石木님의 댓글
石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포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애송하는 명시인데
제2연을 어떤 의미로 번역하느냐에 따라 감상의 뉘앙스가 달라지던군요.
(1) 길 A와 B가 있었는데 둘 다 비슷하게 아름다웠지만, 내게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B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B를 택했었다.
(2) A와 B가 비슷하게 아름다웠는데 그날 아침에는 사람들이 A쪽으로 많이 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B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 길을 택해 주어야 양쪽 길들의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
1번과 같이 번역하면 B가 더 좋을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A가 더 좋았던 것
같다라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이끌게 되고,
2번의 내용으로 번역하면, 모든 길들이 다 아름답고 가치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들 중 하나의 길만을 택하여 걸으면서 다른 길들의 숨겨진 의미를 간접체험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생각하게 만들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2번의 번역을 지지합니다.
'수동태'의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1번 번역은 여행자의 능동적 선택에 해당하고, 2번의 번역은
여행자와 길들 사이의 교감에 의하여 능동도 수동도 아닌 자연발생적 선택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프로스트의 이 시를 매우 좋아하는 터이므로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쓰신 글의 취지에
어긋나는 댓글이라고 느끼신다면 너그럽게 무시하여 주십시오.
최여해님의 댓글
최여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선생님, 댓글을 읽으며 길이 저를 선택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의 "균형"은 다른말로 제게 주어진 몫이라 읽을 수 있을까요? 답글이 늦었습니다. 무시하라 하셨는데 그것이 아니오라 계속 기억에 남다 이제 새벽에 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