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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수필) 여옥의 눈물 -싸이판 야자 숲의 피눈물 발자국 따라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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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91회 작성일 22-06-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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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수필)  여옥의 눈물   -싸이판 야자 숲의 피눈물 발자국 따라  /  함동진 
    

 
     여옥의 눈물 
      -싸이판 야자 숲의 피눈물 발자국 따라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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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1 사이판[11]사이판의 산야



   ▶ 싸이판은 어떤 곳인가?


   서태평양의 한복판에 위치해 활 모양으로 휘어져 점점이 박힌 마리아나제도가 있다.  1565년 프랑스에 의하여 처음으로 마리아나제도로 호칭되었는데  스페인의 황후 마리아안나에서 따온 이름이며, 그 이전에는 도적제도라고도 불리어졌다한다.  14개 섬들에서 중요한 섬 4개 중 하나가 싸이판 섬나라이다.  서태평양 끝 지점인 필리핀의 맞은편에 위치한 미국자치령인 싸이판은 남북의 길이가 약 23km, 폭이 10.5km이며 면적이 약 185km²로서 우리 나라 거제도의 1/3, 제주도의 1/10크기의 남북으로 길면서도 작은 섬이며 지구의 북위 15˚13´, 동경 145˚43´에 위치해 있어, 세계열강의 침탈에 시달려 온 섬나라이다.  초록빛이다 못해 코발트색, 무엇으로 표현하랴 무조건 아름다운 에머럴드빛 바다. 검은색, 람색, 하늘색, 초록색, 연두색으로 변신되는 오색 빛 바다에 하이얀 파도, 하얀 설탕 빛 모래, 산호초가 솟아올라 섬이 되었다는 싸이판이다.  열대우림의 밀림과 원주민 마을 그리고 현대가 한데 어우러져 공존하고있는 섬이다.  해발 473m의 타포초산이 우림의 정글을 이고 동북부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역사의 애환만큼이나 슬프게 바라다 보이기까지 한다.  작은 만(灣)들과 아름다운 해변으로 둘러쳐진 남부와 서부는 시가지와 호텔타운 상가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  동부해안은 거센 태평양 파도에 대항하기 힘겨워 정글과 우뚝우뚝한 단애 절벽만 자랑할 뿐 주거지나 관광시설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차모로족인 원주민은 기원전 2만년 경부터 뿌리내려 온 족속이라고 한다.  원시림으로 뒤덮인 싸이판과 괌은 마젤란이 세계일주여행중인 1521년에 발견되면서부터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됨에 따라 슬픔이 가득한 애환의 역사가 시작된다.  1565년부터 스페인에 의해 300년간 식민통치 되었고 그 후 스페인과 미국이 전쟁을 치른 후 1898년 마리아나제도와 캐롤린제도가 독일에 매각된다.  다음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 가까운 탓인지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에 의해 UN 신탁통치령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은 독일로부터 싸이판을 위임통치령으로 접수한 후 섬 전체에 군사기지를 만들고 사탕수수농장을 개간하게 된다.  태평양의 군사요충지인 이곳은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열강들이 서로 점령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러 전화에 휩싸이게 한 곳이기도 하다.  전쟁 와중에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병, 징용, 정신대에 징집되어 끌려온 수많은 우리 나라 조선사람들이 죽음으로 희생된 원한의 섬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 패망한 뒤, 1962년에 미국에 의해 신탁통치 되어오다가, 1978년 싸이판, 로타, 티니안이 중심이 되어 미크로네시아지역으로부터 이탈하여, 1981년 북마리아나 연방정부를 결성하게 되고, 1987년에 이르러 미국 연방국으로 편입하게된다.  지금도 이 섬에는 패망한 일본군의 무수한 군사시설이 남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인들의 잔악성과 전쟁의 비극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싸이판의 인구는 약 4만5천여 명이며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약 2만5천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순수한 차모로 인종은 드물고 스페인, 캐나다 등의 혼혈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다.  그밖에 필립핀, 중국인 등 임시근로자들과 유동인구가 많다. 한국교포 또한 3천5백여 명에 이르러 싸이판 곳곳의 거리에는 한글간판들과 한국경영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싸이판에는 한국관광객들이 년간 대략 20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 하니, 싸이판섬 가는 곳마다 여기가 한국인지 싸이판인지 분간키 어려울 정도다.  싸이판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와 차모로어로서 함께 사용되고 있다.  싸이판에는 가라판, 차란카노아, 수수페 등 9개의 마을이 있으며 대부분이 필립핀이 바라다 보이는 서해안에 집중되고, 마을마다 학교와 카톨릭교회들이 있어 스페인 식민통치시대의 잔상이 면면이 흘러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차모로어 한마디, 하퍼다이(Hafadai : 안녕하세요?).
    우리일행이 4시간 남짓 비행기여행에서 내려 갑자기 맞이한 한국의 여름 같은 싸이판의 기온은 28˚C였으며, 이곳은 연간평균기온이 27˚C로 일년 내내 기온의 차이가 1∼2˚C밖에 되지 않아 거의 변화 없이 고른 셈이다.  7∼11월의 우기에는 습도가 높을 수 있고 열대성 저기압일 때에는 장대 같은 빗줄기가 수일동안 계속해서 내린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우기의 끝인지라 아직 살아남아 있는 장마뒤끝 같은 스콜현상으로 수시로 흐렸다 맑았다 한다.  때로는 소낙비가 아니면 가랑비가 졸금졸금 내리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남국 특유의 작열하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선보인다.  우리 나라에 불어닥치는 태풍은 거의가 싸이판 근해에서 태어나 북상하는 것으로 열대성저기압이 자라난 것이다.  1987년 12월의 A급 태풍 때에는 일반가정에서 1개월간 단전단수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한다.  건기인 12∼6월에는 스콜현상만 있을 뿐 습기가 적어 여행하기에 좋다고 한다.  우리들이 1개월만 늦게 올 것을 하며 후회하였으나 경비절약을 위해 성수기인 건기를 피하고 비수기인 우기를 택한 것인데 누구를 탓하랴.  싸이판에는 계속 동풍만 불어온다.  야자수 나무가 45도 이상 기울도록 세차게 불어올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쪽을 향한 대부분의 야자수 잎은 찢기고 지저분한 반면에 서쪽으로 향한 잎들은 대체로 싱싱하게 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싸이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치열한 전투의 포화로 인해 섬 전체가 초토화되어 용암석의 검은 돌과 바위뿐인 섬이었다고 한다.  미국은 자연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섬 전체에 풀과 나무의 씨앗을 비행기로 살포하여 지금처럼 울창한 정글과 그린색의 아름다운 숲을 단시일 내에 이루어 냈다고 한다.
    1996. 11. 23(토), 간밤에는 늦게까지 현지가이드와 말다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일 아침 10:00를 지나서 싸이판 북부 지역을 관광한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와서 할 일 없이 10:00까지 호텔에 머물고 있으라면 우리는 닭 새끼냐? 닭장 신세지러 싸이판에 왔느냐고, 나는 따지고 들었다.  우리에게 정하여진 코스 외에도 섬 주변 아름다운 해안 어디든지(미국기념공원, 열대식물원, 그로토(동굴), 슈거킹파크, 구일본군병원유적, 구일본군형무소유적, 스페인교회종탑, 싸이판 박물관, 캐피틀힐, 라우라우비치, 성모마리아성당, 미군상륙기념비, 마운트카멜교회, 아기간비치, 오브잔비치, 래더비치, 티니안섬, 로타섬, 잠수함투어 등) 관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따지고, 호텔에서 08:00경 일찍 나서자고 강력히 요구하였던 것이다.  가이드는 추가비용 등 아무러한 대안이나 제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딱 잘라 거절한다.  구경거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서비스 정신이 없는 것인지 맹한 것인지 여행사기이드의 일방적인 역설은 우리 일행을 없이 여기고 깔보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상한다.  여행사는 렌트하여 온 버스(전일제가 아니고 시간당인 것 같음)를 자기들이 정한 코스의 주행시간, 그것도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아 한치의 여유도 없는 것이다.  여행사가 정한 코스 ①태평양전쟁한국인위령탑 ②새 섬 ③만세절벽 ④자살절벽 ⑤일본군최후사령부 ⑥마나가하쇼핑점, L/A쇼핑점, 면세백화점DFS갤러리아 ⑦마나가하 섬 이외에는 절대 융통성이 없다.
    나는 아침 05:00에 기상하여 발코니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전날 기내에서 얻어 온 신문과 잡지를 읽었다.  소슬대는 야자수의 나부낌과 맑은 공기 밝아오는 남국의 여명, 우리들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아침이다.  07:00. 호텔구내의 한식식당에서 나오는 아침식사의 시래기국밥 맛은 벌써 향수에라도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고향을 그리게 하는 맛이다.  식사를 마치고 여장을 준비하여 호텔 뜰에 나와 버스를 기다렸으나 10:00의 약속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여기저기 피어있는 열대의 꽃과 식물들과 속삭이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떨어진 열대꽃을 주워 부인들의 머리에 꽂아 더 아름다운 피사체를 창출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조바심 나게 서성거리기도 하고 더러는 호텔 밖으로 나아가 그곳 주민들의 주택을 관찰하기도 했다.  주택의 대지는 5백∼천 평 이상의 넓은 면적을 유지한다. 정원이라 할까 들판이라 해야 옳을까? 갖가지 열대꽃, 야자수, 바나나, 고무나무, 행운목 등 이름 모를 열대관상수들을 즐비하게 심어놓고 화려한 꽃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사는 낙원과 같은 그들의 생활이 부럽기도 하였다.  길가에 울타리도 없이 개방된 정원에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린 파초(芭蕉) 아래에서 찰칵찰칵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바빴다.  관광버스는 11:00가 거의 다되어서야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니 회원 중에 한 분은 "꼴 좋다.  가이드에게 항의하더니 실컷 골탕먹이는 줄도 모르고……." 한다.  심하게 항의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속으로 부화가 치민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여기는 싸이판 이니까.  늦게 도착한 관광 버스에는 유씨라는 새 가이드로 대체되어 왔다.  여러 가지 구구하게 늘어놓는 가이드의 변명을 들으며 싸이판 제2일차 연수여정에 들어갔다.  싸이판 서부해안 비치도로를 따라 중부 가라판 지역(이곳에 아메리카전쟁기념공원이 있으나 관람시키지 않음)을 통과하여 북부지역으로 달린다.  중부 가라판 지역은 고급스런 호텔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북부 고지대 마르피산 줄기의 절벽들은 태평양전쟁 중 미국함대의 포격 공격을 받아 큼직큼직한 구멍의 탄착 흔적이 많이 남아 전쟁이 치열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 태평양 한국인위령평화탑


    11:00. 마르피산(MT. MARPI 249m)의 자살절벽 부근에 한국인위령평화탑이 위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 징용이나 징병으로 3천명 이상이 끌려와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희생되었다.  우리는 이들을 위령하기 위하여 위령탑 앞에 경건히 섰다.  다함께 숙연한 마음으로 회장인 나의 구령에 따라 묵념을 드리고 나서 기념촬영을 한다.  여행사가이드는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한다.  한국인위령평화탑 입구에는 "KOREAN PEACE MEMORIAL, 韓國平和記念"이란 표지판이 있고 경내에 비문이 새겨진 비석과 포효하는 사자상이 있다.  위령탑은 1979년 슬픈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는데 기단을 6단으로 쌓아 6대양을 상징하고, 석탑은 5각으로 5대주를 의미하며, 탑 꼭대기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들기 모형을 얹어놓았다.  이 밖에도 위령탑은 싸이판의 부속 섬인 티니안(Tinian) 섬과 팔라우(Palau) 섬에도 세워두었다고 한다.




   ▶ 새    섬 (Bird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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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사아판[14]새섬의 전망대-여농 권우영


    11:25. 위령탑을 떠나 동북해안으로 가는데 스콜이 오락가락하여 한국의 기후와는 대조되어 신기하기도 하지만 관광하기에는 약간의 방해가 된다.  북단에서 시작되는 동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절벽을 이루어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바닷물에 파인(해식-海蝕) 동굴 같은 구멍들이 뚫려있다.  이곳이 마도그 곶(Madog Point) 절벽 아래에 있는 그로토(Grotto)다.  102 계단을 내려가면 천연풀장이 있어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는데, 지나가는 길 곁이련만 이곳에 한번 들려주면 어디 덧이라도 난다더냐?  그로토에 들르지 못한 채 15Km 정도 남쪽에 위치한 이슬레타 마이고 파항(Isleta Maigo Fahang)이라는 섬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는 언덕에 섰다.  60m 앞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바위섬, 싸이판 최고의 관광경승지라고 하는 새섬이다.  일본군점령 시에는 달맞이섬(월견도-月見島)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석회암으로 이뤄진 새섬은, 수없이 나있는 구멍에 새들이 둥지를 튼다고 한다.  석양이 질 때면 헤아릴 수 없는 큰 떼의 새무리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한낮이어서 스콜과 비바람과 철석거리는 파도에 에워싸인 바위, 새들의 하얀 배설물에 얼룩진 새가 없는 새섬을 바라다 볼 뿐이다.  구경도 마치기 전, 후드득 내려치는 소낙비 속에 또 옮겨가자고 재촉이 심하다.  주차장과 도로에 깔린 하얀 산호모래에서 씻겨 내려가는 도랑물이 쌀뜸물 같기도 하고, 전설에 나오는 이차돈의 피 같기도 하다.  빗발과 독촉 속에 찍힌 사진이나마 제대로 나올는지?



   ▶ 만세절벽(푼탄 사바네타-Puntan Sabaneta)


    11:40. 새들의 낙원을 떠나오던 길을 되돌아 온 곳은 만세절벽(반자이 클리프- Banzai Cliff)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수심 1만 4천m의 마리아나 해구로부터 파도가 이글거리며 밀려온다.  싸이판 제일 북쪽의 사바네타 곶(Sabaneta Point)과 라구아 카탄 곶(Lagua Katan Point) 사이에 검은 빛깔로 80m 높이로 깎아지른 듯한, 아찔한 절벽 위에 우리들은 서있다.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삼킬 듯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교향곡의 절정이듯 싸이판 최고의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절경 속에 숨겨진 슬픈 역사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와 서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인 1944. 7. 7 미군의 공격에 퇴각하던 일본군과 민간인들이 약 1만 명 정도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 검푸른 바다로 몸을 던진 곳이다 . 투신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줄줄이 묶어 강제로 자살케 하였다 한다.  강제로 징집 징용 징병에 끌려온 우리의 한국인들의 비참한 희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투항하면 살려주겠다는 미군의 아량에도 불구하고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파도의 밥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만세절벽'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절벽 뒤편에는 백악의 위령탑이 있고 곁에는 관음상 조각상도, 충혼탑도 있다.  가이드는 이곳이 일본인들의 추모지역이라 하여 발길을 허락지 않는다.  그보다는 관광시간을 줄여 자기네들에게 이익이 되는 코스에 덤이 되는 시간을 벌려고 하는 얄팍한 잔꾀에 불과한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일본 놈의 것도 잘 보아 두어야 하는 것인데….  자살절벽 위의 평평한 곳은 저 유명한 영화 '빠삐용'(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 주연)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왼쪽은 돼지를 기르는 농장의 로케장이고, 바른쪽은 빠삐용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기 위해 뛰어내린 지점이 다.  그곳의 거센 파도 속에는 때마침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탈출하는 빠삐용처럼 앞 갈퀴를 열심히 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찔한 절벽 밑이다.


   ▶ 자살절벽(수사이드 클리프-Suicide Cliff)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현지를 답사 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만세절벽 그 자리에 서서 뒤로 돌아 한 상태로 저것이 '자살절벽'이구나 하며 멀찌감치 원거리에서 올려다 볼 뿐이다.  마르피산(249m) 오름의 북쪽 끝에 현지 명으로 라데란 바란데로(Laderan  Barandero)라 하는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보인다.  자살절벽이라 한다.  2차 세계대전 끝 무렵 일본군의 싸이판 사령부가 최후로 밀리면서 일본군과 민간인, 한국의 징병 징용 인들이 수류탄으로 자결 폭사하거나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아래로 투신자살한 곳이다.  절벽아래 정글은 그들의 피를 머금고 자랐는가,  자살바위 절벽 밑은 더욱 검푸른 초록빛이다.  자살절벽의 마르피 정상에 오르면 1972년에 조성한 평화기념공원이 있으며 그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마르피 로드, 만세절벽, 일본군비행장이었던 활주로, 탁 트인 태평양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말로만 듣고 오르지 못하니 한심하구나.  자살절벽은 TV극 '여명의 눈동자'의 촬영무대가 되기도 한 곳이다.


   ▶ 일본군 최후 사령부(Last Command Post)


    11:50. 마르피 정상으로 안내 받지 못한 섭섭한 감정 속에서 또 떠밀리다시피 도착한 곳은 '일본군최후사령부'(현지명: 바나데로-Banadero)이다. '만세절벽'으로 가는 길 산록 모퉁이에서 조금 올라 들어선 절벽 밑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커다란 바위만 보이는데 좁은 계단을 오르면 바위 뒤에 동굴모양의 입구가 있으나 바위 뒤편은 콘크리트로 구축한 튼튼한 토치카이다.  본래의 용도는 기관총 진지와 감시망대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1944, 6 싸이판에 상륙한 미군에게 쫓기어 마지막으로 밀려난 곳으로, 사이토(薺藤) 육군중장이 1944. 7. 6 이곳에서 자결한 다음날, 끝까지 저항하던 300명의 일본군수비대가 퇴패하므로 싸이판 전투는 끝을 맺는다.  우리 일행이 토치카에 들어섰을 때 토치카 뒷면 옆구리의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2m 가량 구멍이 나 있음을 본다.  치열한 전투에 포격을 받은 흔적이다.  이 토치카가 강제 징집된 우리 조선인들의 손에 의하여 축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구멍 꿇린 토치카 벽 오른 쪽 구석, 사이토 중장이 자결하였다는 자리에 한국관광객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한국상표가 붙은 담배꽁초와 과자 봉지가 널브러져 있다.  유치한 행위가 부끄럽다. 일본인들이 본다면 입맛이 씁쓸하겠다.  토치카가 있는 뒷산에는 한국여성 정신대가 감금되었던 굴이 있다는데 일본의 강력한 반발로 입산통제 되고 있다한다.  우리의 정부는 굴을 공개하는데 힘을 쓰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원망스럽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이 글로 정부에 항의하는 바이다.)  토치카 뒤편에서 밖으로 내려오니 잔디가 깔리고 야자수 잎이 늘어져 그 때의 참상을 다시 잊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놓여있는 녹슨 대포와 전차는 참혹한 역사를 끊임없이 말하여주고 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단체기념촬영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 마나가하 섬(Managaha Island)


    12:25. 마나가하 섬으로 떠나기 전 마나가하쇼핑점에 들러 섬에서의 해수욕과 스노클링에 사용할 용품들을 구입케 하기 위해 억지로 들리게 했다.  이곳에서는 빨리빨리 하며 서두르지 않는다.  가이드는 우리들이 구매한 계산서(영수증)를 모두 거두어 갔다.  쇼핑점으로부터 일정한 %의 소개비를 챙긴다 한다.  정작 관광하는 지역에서는 한 곳에서 10분 이상을 지체하지 않으려 했는데 속이 드려다 보인다.  13:00. 마나가하 섬으로 떠나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가라판 지역 마이크로비치 북쪽에 위치한 스마알링 코브마리나 선착장이다.  마나가하 섬은 마이크로비치에서 2.5Km 건너에 한 알의 진주 알처럼 바다 위에 떠있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실감케 하는 산호초가 있는 푸른 에머랄드빛 투명한 바다,  설탕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눈부신 은빛 백사장, 울창한 초록색의 야자수 숲, 작열하는 태양, 코발트 하늘을 수 없이 변절시키는 하얀 뭉게구름, 금방 쏟아지는 스콜, 남국처녀의 손길 같은 따스한 미풍, 싸이판의 관광은 마나가하 섬에서 끝내준다.  이 섬에는 매점, 레스토랑, 샤워장 등이 넉넉히 있다.  13:30. 또 스콜이 세차게 지나간다. 점심때가 훨씬 기운 우리들은 교포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바비큐가 곁들인 한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이내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14:20. 다시 하늘이 맑다. 수심이 낮아 스노클링에 적합하다.  물안경 속으로 비친 남국의 바다 속은 황홀하다.  산호가 부셔진 하얀 모래, 산호초, 버터풀라이 피시, 흰동가리 돔, 바다 맨드라미, 패롯피시, 엔젤피시 등 열대어들의 춤 솜씨가 찬란하다.  우리들은 부부 쌍쌍이 수중촬영을 하며 물고기들과 놀았다.  저쪽에 한 무리 처녀들의 늘씬한 몸매를 훔쳐보는 재미도 마나가하 섬의 추억거리이리라.  물 속에 들 때 쏘시지를 들고 들어가면 물고기와 더욱 친숙해 진다고 했는데 준비하지 않아 못내 아쉽다.  열대어가 쏘시지를 덥석덥석 잘라먹으니 남자들은 ××를 조심하라던 생각이 나 웃음 짓는다.
    정신없이 즐기다 보니 벌써 떠나 가자한다.  15:30 마나가하 섬 둘레가 15Km로 1주 하는데 15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는데 허용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마나가하 섬 앞 바다에는 2차세계대전 직후 강제징용 당한 한국인 2천여 명을 태우고 싸이판을 빠져나가던 배가 가라앉아 있으며, 전투기 잔해들도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다시 숙연해진다.  마나가하 선착장에서는 차모로족 아이가 커다란 바다뱀 두 마리를 낚아 배를 갈라 말리고 있었다.  마나가하 섬은 제2차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어서 군항도(軍航島)라고도 불렸다 한다.  16:00. 우리들은 SAINT ROSA Ⅱ호 유람선에 올라 싸이판으로 향한다.  유람선은 배 밑에 유리를 깔아 바다 밑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꾸몄다.  열대어들과 산호초, 하얀 모래와 파스텔빛 연두색 조화의 물결, 다시 황홀하다.  마나가하 섬이 점점 멀어지는데 유람선에서 남쪽으로 향해,  바다 위에 커다란 상선이 한 척 떠 있었다.  미해군 7함대 소속의 위장군함이라고 한다.  실제는 미군들을 가득 태우고 있으면서도 일본군에게는 민간 상선인 것처럼 속여 전투에 임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흰모래를 퍼 올리는 선박도 보인다.  유람선 안에서는 차모로족 여인이 무슨 열매를 계속 씹고 뱉어 내는데 이와 입념에 묻은 시뻘건 것이 피를 먹음은 것 같다.  이 열매에는 약간의 환각제 성분이 있어서 즐겨 씹는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 스페인이 침략하였을 당시 스페인군인들이 차모로족 여인을 겁탈 하려할 때 열매를 씹은 여인의 입을 보고서는 피를 토하고 있다 하며 질겁하여 피하는 바람에 정조를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열대의 생태계에 어울리지 않는 탓인지 원인을 알 수 없으나, 태국 피피섬 푸켓섬에서도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갈매기 같은 물새들을 볼 수 없었다.  하느님은 어디까지나 공평하시다.  한국에는 싸이판의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물새 철새들의 낙원이 있지 않는가.  동 서 남해 의 바다와 내륙의 강과 호수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철새와 물새들이 비상하는 장관! 오, 나의 코리아여!  16:20. 다시 마이크로비치 선착장에 도착 부두에 내리니 길에 하얀 모래가 깔려있지 않는가.  아까 마나가하로 가기 위해 선착장에 올 때에는 너무나 서둘러 흰모래를 밟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착장 근처 우리가 지나는 길가에 미국기념공원(America Memorial Park)이 있는데 또 안내되지 않는다.


   ▶ 노재호 원장의 마술


    17:00. 숙소인 코레스코리조트에 돌아 온 일행은 샤워와 휴식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행에 홀로 참가한 지은주 원장의 방으로 모였다. 그 동안 KBS TV에 출연한 바 있고 마술능력이 아마추어를 넘어 프로경지에 이름이 인정되어 다른 TV사들도 출연교섭이 있다는 마술사 노재호 원장이 연출하는 마술을 감상한다.  서울에서 올 때 미리 준비하여 온 소품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마술을 연출하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여 여독을 푸는데 좋은 약효 역할을 한다.  수준급인 마술에 모두들 감탄하여 박수갈채를 보낸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하루종일 사정한 결과) 부인들이 가라판 지역 마켙에서 구입하여 온 열대과실과 과일인 수박, 망고, 오랜지, 아보카도, 포도, 파파야, 스타푸르트, 샤삽파리오도리안, 슈거애플, 구아바 등을 먹었는데 맛이 진기한 것도 있으나 어떤 과일이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소주도 오징어포 쥐포도 서울서 보다 훨씬 맛이 있는 밤이다.  정원의 등불에 그림자 되어 유리창에서 소슬 거리는 야자수 잎을 보며 싸이판 제2일의 밤을 고운 꿈으로 간직코자 각기 객실로 돌아갔다.


   ▶ 정글탐험(Jungle Safari)


    1996. 11. 24(일) 05:00. 스콜이 세찬 바람과 함께 반복되는 아침이다.  오락가락하는 스콜사이에 조깅을 하고 있는데,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코가 오뚝 하며 얼굴이 갸름한 미남형 경비원 한 명이 졸졸 따라 온다.  리조트 건물 옆 울타리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분홍색 부로메리아꽃(어떤 한국화원에서는 종이꽃이라고도 함)이 있는 울타리로 안내하더니 두어 송이 꺾어 나의 손에 쥐어준다.  나에게 프레센트 한단다.  자기는 가난하고 작은 나라 방글라데쉬서 왔으며, 한국은 큰 나라 부강한 나라 위대한 나라라고 영어로 치켜세운다.  그리고 계속 졸졸 따라다닌다.  비가 세차게 내려 객실로 돌아오는데 어느새 두어 송이 더 꺾어오더니 내 아내의 몫이라 한다.  내가 객실의 문을 열기도 전에 자기 손으로 도어를 열고 들어가 아내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무례한 행동이나 하는 수 없이 미화 1불을 주었더니 연신 땡큐 땡큐 땡큐, 서너 차례 굽신굽신 인사를 하더니 물러났다.
    처음의 여행계획 스케쥴에는 없었으나 선택관광으로 신청하여 정글탐험에 들어갔다.  싸이판의 동부지역은 아직도 인간의 발이 땋지 않을 정도로 자연적인 원시밀림이 발달되고 험준하여 인가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관광객들에게는 선택적 관광코스로 소개되는 곳이다.  싸이판 동부정글탐험 선택은 최고 멋진 남국우림 체험의 코스가 되겠다.  허리까지 웃자란 갈대 숲을 헤치고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길을, 4륜구동차를 개조하여 만든 바퀴가 크고 높은 찦차 2대에 나누어 타고(1대에는 부인들만) 달린다.  눈이 먼 것 같은 종잡을 수 없는 길에 웅덩이 같이 패인 곳, 늪 같은 진흙탕, 터널 같은 밀림의 숲, 열대식물의 가지와 갈기들이 차가 달릴 때마다 얼굴과 몸통을 후려친다.  잠시라도 편안히 있지 않고 요동치는 싸파리는 우리들을 멋대로 굴리며 가지고 논다고나 해야 옳을까. 엉덩이가 부스러질 정도로 통통 튄다.


   ▶ 정글터널(Jungle Tunnel)


    넋 나갈 정도로 흔들림과 시달림 끝에 멈춰진 곳 좌측에는 영문으로 정글터널(Jungle Tunnel)이란 목판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좌측 동해안(태평양)쪽에는 역시 목판에 영문으로 라우라우베이 "C"포대(Laulau Bay "C" Guns)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들 모두가 2차 세계대전시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으로 싸이판 동부 라우라우비치(灣) 북쪽 태평양 연안에 불쑥 튀어나온 곳이다.  정글터널은 "영혼의 동굴"이라고도 한다.  전쟁당시 이 동굴에는 철책문(鐵柵門)이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철책문이 흔적도 없다.  동굴입구에는 모기인지 하루살이인지 분간키 어려운 한 떼의 무리가 맴돌고 있었고, 음습한 동굴 속에는 수많은 계단을 밟고 내려가도록 깊이 뚫려 있다.  계단에는 앞서 다녀간 관광객들이 켜 놓은 촛불들이 가냘프게 떨면서 가물가물 비친다.  저 아래 너른 바닥이 있고, 조금 더 깊은 동굴 벽에는 방 모양으로 여러개의 굴을 파 놓았다.  "C"포대의 일본군들이 강제로 끌고 온 조선의 정신대 여인들을 이곳에서 차례로 순결을 짓밟고 욕보인 곳이다.  일본군이 주둔한 부대나 진지근처에는 어디든 정신대 수용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 저 유명한 TV극 "여명의 눈동자"의 여자 주인공 "여옥"이 아기를 해산한 장소, 수많은 조선인정신대 여인들과 여옥이 흘린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음습한 채 우리의 가슴을 쥐어뜯는다.  가슴 쓰라린 우리들의 눈물도 함께 떨구어져 적셔지기도 하거니와 그녀들의 통곡이 귀를 찢는 듯 동굴을 메운다.  짐승 같은 일본군의 만행에 다시금 치가 떨리고 있다.  눈물이 글썽하여 나오려는데 동굴 벽과 천장에 온통 정 자국이 나있다.  강제 징집된 한국 징용인들이 파고 들어간 동굴 속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정조를 유린당하고 짓밟히다니 진정 굴욕스럽고 수모스럽다.  안에서 밖으로 향한 철책문 왼쪽에 겨우 두 손이나 밥그릇이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뚫려져 있다.  정신대원들에게 밥을 넣어주던 구멍이라 한다. 정신대원들은 일체 철책 밖 외출을 금했다 한다.


   ▶ 악마의 소굴 정신대를 어찌 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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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3]일본군위안부역사관 -전쟁이 끝난후 그대로버려진위안부들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에서 포로가된 위안부를 당시연합군이촬영한사진.북한남포시 박영심(朴永心,78세)할머니로 사진에 있는 임신 여성이 바로 나 라며 아기는 포로 수용소에서 유산됐다 고 확인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참패를 당할 때까지 전쟁터에 일본군주둔부대가 있는 곳마다 위안소를 차려놓고 점령지 여성들을 정신대원(종군위안부) 명목으로 끌고 가 정조와 순결을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 위안소 운영은 1932년 상해사변(上海事變) 발발시부터 개시되어, 1937년부터는 소위 정신대(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부대)를 만들고, 1943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 이라는 행정명령을 제정 발동하고, 1945년 항복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어 왔다.
    강제로 이에 끌려간 여성들은 12세부터 20세 안팎의 꽃봉오리 같은 어린 소녀들이 대부분이었으며, 40세 여성까지 도합 20여만 명 이상이 강제징발 되었다.  이들 중 8만 여명 이상이 종군위안부로 강제동원, 일본군 진지에 투입되어 추악한 수욕(獸慾)에 의해 우리의 어린 누이들이 정조와 순결을 유린당했다.   정신대의 수용에는 한국의 여인뿐만 아니라 중국, 기타 동남아 등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약소국의 여인들이었는데, 대부분 좋은 일터에 취직시켜주겠다고 감언이설로 꼬득이거나 유괴, 납치 등의 수법으로 강제 연행해 이루어졌다.
    일본군의 정신대(위안소)는 일본, 중국, 대만, 필립핀,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태국, 미얀마, 베트남, 파푸아뉴기니, 홍콩, 마카오와 남태평양의 섬(이들 중 하나인 싸이판섬에 87학원장친목회원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연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등 일본군부대가 주둔한 곳이라면 어디에든 빠짐없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위안소에서는 1인의 정신대원이 하루에 적개는 3∼4명 많게는 5∼6명 또는 그 이상의 일본군들을 상대케 하였다니 치욕이요, 수모요, 굴욕이요, 조선의 부끄럼이다.
    생존한 일본군의사과장 증언에 의하면 정신대원(종군위안부)을 수용한 위안소는 중국에 280개소, 동남아시아에 100개소, 사할린에 10개소 등 도합 400여 개소(1943년 1월 현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50여명에 이르는 여자 정신대원 할머니들이 생존하여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여전히 과거의 만행을 뉘우칠 줄 모르고 자만한 일본, 그들이 진정 뉘우치고 사과하며 보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조선의 누이들을 짓밟은 대가의 저주가 돌아가리라.  이러한데도 아직 일본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그 문화, 물질문명을 무조건 수용하고 따르는 멍청이들은 정신을 차리라.
 정글터널에서의 여옥의 눈물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우리 한국인들의 수모스런 모습이요, 상처요, 악몽이요, 아픔으로 남게될 것이다.



   ▶ 타포초 산(MT. Tapochau)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한 것인가.  다시 정글을 누비며 싸이판에서 가장 높고 전망이 좋다는 타포초 산(473m)에 오르니 울분과 서글픔에 쌓였던 마음이 다시 평온해 진다.  산 정상에 오르니 그리스도의 입상(立像)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도의 입상 기단에 새겨 넣은 영문의 글을 한글로 풀어본다면 이렇다.


       주의 죽음
       주의 부활
       주의 재림
      -1987년 부활절에(Easter 1987)-


    세찬 바람과 함께 가느다란 빗방울이 섞인 운무가 오락가락 한다.  전망이 좋지 않다. 저쪽 능선에 십자가가 몇 개 세워져 있다.  부활절에 고행을 체험하는 신도가 메고 올라와 세워둔 것이라 한다.  싸이판의 사위(四圍)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북부의 마르피산과 남쪽의 국제공항, 서부의 번화한 호텔들과 아름다운 해안선, 필립핀해와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마리아나해구(10.093m), 동부의 정글과 그 앞으로 펼쳐진 망망한 대해 검푸른 태평양 이 한눈에 다가온다.  남부에 내려다보이는 수수페호수(Susupe Lake)는 민물호수로, 원주민들이 시체를 수장하던 무덤호수요, 귀신호수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호수둘레가 약 1.5Km로 샘이 솟아나 건기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남쪽바다 5Km 너머에는 티니안섬이 군함처럼 누워 있다.  2차대전때의 미군공군기지가 있고 원자폭탄을 탑재한 B29 폭격기가 발진했다는 곳, 활주로를 닦기 위해 강제로 징집징용되어 희생된 한국인이 5천명이나 되고 그들의 위령탑이 있다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으로 이 섬에는 2천5백여 명의 인구 중에 한국인 2, 3세가 20%를 차지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건너가 보고싶은 섬이다.  그 아래로 로타섬, 또 그 아래에 괌섬이 있다는데 아,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다시 눈을 서부해안으로 돌리는데 에머랄드색 비단보자기에 올려놓은 듯한 진주알처럼 마나가하섬이 깨끗한 바다 위에 떠 있다.  어제 다녀온 환상의 섬이다.  동부에는 깊은 정글이 널려있다.  죽음의 계곡이 있고, 동굴 속 성모마리아상도 있다.  동굴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성당 앞에는 맑은 샘이 솟아나 병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마리아 성수로 불려진다.  이곳 역시 들르지 않고 지나친 곳이라 무엇하나 잃은 듯한 기분이다.  우리들은 타포초산 정상의 바위돌 위와 그리스도상 앞에서 강풍에 날릴 듯한 자세로 노랑병아리(노란색 비옷차림) 날개 치듯 기념 촬영을 마치고 또 쫓기듯 하산한다.



   ▶ 제프리 비치(바닷가 노인- Old Man By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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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1 사이판[5]제프리 비치(바닷가 노인- Old Man By The Sea)-여농 권우영


    하산하여 다시 정글을 누비고 들어선 곳은 민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계곡의 끝이 바다와 접하는 곳 왼쪽의 절벽은 동양노인이라고 가이드가 일러준다.  그 위에 멀게 보이는 하얀 건물이 등대인줄 알았는데 골프장의 화장실이라 하여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오른쪽에는 폭이 100m가 넘는 병풍 같은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해안 쪽 병풍 끝 부분 절벽은 오뚝한 코를 가진 서양노인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닷가 노인"이란 별명이 붙은 까닭을 알 것 같다.  여기 계곡의 물은 충분히 흐른다.  이 물을 서로 탈취하기 위하여 일본군과 미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으로 시체가 계곡을 메웠었다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가이드의 말이다.  우리는 바다의 노인 절벽을 배경으로 촬영을 하기 위해 종아리만 걷어올리고 잔잔한 개천에 들어섰는데 난데없는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가슴팍까지 후려친다.  놀래어 바다노인이 있는 쪽을 바라다보니 산더미 같은 파도가 계속 밀려온다. 더 이상 사진촬영을 포기하고 바닷가 노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 코코넛 농장(Coconut 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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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사이판[10]야자수가있는수림-여농 권우영


    우리들의 사파리 찦차는 정글을 헤치고 나와 코코넛 농장에 도착한다.  가무잡잡한 차모로 원주민들이 코코넛 농장을 경영한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웃저고리와 바지를 벗게 하고 원주민들의 전통의상인 빠띡('나풀나풀' 이라는 별명도 있음)으로 갈아입고 코코넛과 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게 한다.  차양이 되어있는 커다란 야외식당에 둘러앉아 농장 측에서 잘라준 코코넛을 빨대로 즙액을 모두 마신 후 고소한 속살을 발라먹고 있는데 등뒤에서 섬뜩한 물체가 덮침을 느낀다.  한국의 여우 만한 크기에 악어처럼 험상궂게 생긴 도마뱀 일종의 모니터 리자드를 목에 걸어주는 순간 찰칵 카메라 소리가 들린다.  어제 호텔에서 보았던 새끼도마뱀이 자라면 이처럼 커지는데 모니터 리자드는 보기와는 달리 온순하다한다.  이 농장에서는 도마뱀 2마리를 개처럼 목줄을 달아 야자수에 매어놓고 기르고 있다.  농장 안에 포장마차처럼 널판으로 간단하게 차려놓은 주방에서는 토속간식과 열대과일들을 팔고 있다.  어제 밤 맛보았던 열대과일을 또 맛본다.  「Trotcal Fruits $5.00」라고 주방에 나붙은 메뉴 표에 따라 주문하여 맛을 본다.  가격표에는 영문으로 코코넛 술(Tuba $1.30), 코코넛떡(Apigigy $1.00)이라고 써놓았다.  코코넛 떡은 바나나 잎에 떡을 감싸말아 만든 것인데 한국의 인절미처럼 쫄깃쫄깃한 것이 먹을 만하다.  농장 안에는 빵나무 등 진기한 열매들과 꽃나무들이 즐비하다.  입맛을 즐기고 난 후 농장에서 기르는 투계장(鬪鷄場) 앞으로 안내를 받아 섰더니 검은 깃털의 닭은 한국의 C대통령, 갈색 깃털의 닭은 N대통령이라 부른다(전직 한국대통령을 빗댐).  일행은 두 편으로 나뉘어 한판 승부 내기 투계를 한다.  지는 편에서 1인당 $1.00 식 내놓기다. 내게 속한 C닭이 이긴 거다. 참으로 웃겨주는 투계이다.  우리들은 농장의 형제들과 어우러져 넓은 야자농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농장을 떠났다.  귀로에 조금 높은 언덕지대에 위치한 캐피틀 힐(Captal Hill)을 지나게 된다.  1947. 7에 미국의 주선으로 유엔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으며 본부가 세워질 때 얻어진 명칭이다.  미크로네시아 행정중심부로 해발 210m 언덕에 있어 파나파 그리프와 마나가하섬 등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의사당 우체국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차를 한번 세워주면 좋으련만 그냥 지나쳐 달리기만 한다.  캐피틀 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태양이 떠서 질 때까지 구름의 흐름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는 환상의 바다를 언제나 이곳에 다시 와서 볼 수 있을는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서운하다.  12:00에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한식음식점 한일관에 들러 전골찌게 백반을 점심으로 들고 12:40에 코레스코 리조트 호텔 숙소로 귀환 휴식을 취한다.  13:10. 엘 에이(L/A)백화점이라는 면세점으로 이동 쇼핑을 한다.  16:00까지 장시간의 쇼핑은 지루하다 못해 무의미한 것이다.  관광지에서는 시간이 없다더니, 쇼핑에는 무제한의 시간을 허용한다.  이러한 처사는 여행사가이드들이 수입에만 급급하는 낯간지러운 처사가 아니겠는가. 달랑 여행경비만을 들고 온 87학원장친목회원들이 아이쇼핑만을 하며 마음들이 무거웠으리라.  가이드는 또 상품구매 계산서를 달라고 손벌리고 돌아다녔는데 몇 장이나 손에 잡혔을가?



   ▶ 선셑 크루즈


    16:35. 마이크로비치가 있는 가라판지역 하얏트리전시 싸이판호텔과 미국기념공원이 있는 곳, 스마일링 코브 마리나 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셑 쿠르즈에 취항하는 선박은 여러 척이 있는데 우리 일행에게 선택된 크루즈는 잠발라야호(Jambalaya)다. 잠발라야호는 옛날 미국의 미시시피강을 오르락내리락 운항하던 스팀보트를 본떠서 재현된 것이며 2층 구조로 되어있다.  17:00. 승선하기 전 차례로 서서 부부끼리 원주민인 차모로족 여인을 좌우에 한 명씩 뒤에는 잠바라야호 선장을 함께 세우고 스넾사진을 찍는다.  우리의 좌측 여인은 타린-Tarlin, 우측 여인은 알리스-Alice, 가운데는 우리부부, 뒤편 가운데에는 잠발라야호의 선장 찰스 테일러-Captain Charces Taylor다. 나는 사진 속의 주인공들에게 직접 이름을 물어 알파벳으로 적었다.  선장의 이름을 묻자 쏜살같이 선장실로 뛰어 오르더니 명함 1장을 기지고 와 건네준다.  영화배우같이 잘 생긴 친절한 사나이다. 배에 오르기 전 선박 안내원(한국출신여인, 나중에 알고보니 양갑석 원장 부인의 동창생으로 현지에서 선박관광업을 한다고 한다.)으로부터 행운추첨권을 한 장식 받았다.  우측에는 한국의 신혼여행 팀들이 자리를 잡는다.  앞에는 필리핀 출신 4인조 밴드가 생음악을 연주하는데 밴드조장이 말하기를 자기의 상체는 어머니 필리핀이고 하체는 아버지 싸이판 혼혈이라고 소개를 한다.  어눌한 한국어를 재치 있게 구사하면서 관광객들을 잘도 웃긴다.  악사들이 노래를 부르다가 마음에 드는 관광객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기도 하고, 디스코와 마카리나 곡으로 다 같이 춤을 추게 한다.  느긋하게 앉아 포도주, 양주, 음료스 등 닭고기와 쇠고기 등 자유롭게 먹고 마시며 즐긴다.  도중에 추첨권 당첨자를 뽑는 순서가 있다.  하필이면 내가 1등에  당첨되다니 우리 일행의 영광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1등 상은 여러 가지의 열대꽃 생화로 엮어 만든 화관이다.  나는 화관을 경사스럽게 받아 써보고 나서 나의 마누라를 나오라고 하여 그녀의 머리에 옮겨 씌우니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황홀한 순간이다.  2등 상은 티셔츠이고 3등 상은 아까 들어오기 전에 촬영한 스넵사진(종이 16절 크기) 1장을 무료로 제공한다.  선실 내 만찬장을 돌아다니는 웨이터 중 한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막스」인데 "막국수"라고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며 관광객들을 웃긴다.  선셑 크루즈는 스마일링 코브를 출항 마나가하섬을 지나 수스페 다이아몬드 호텔 근해까지의 사이를 맴돈다.  파도가 없는 조용한 해역으로 크루즈하는 동안 배멀미를 앓는 이는 한사람도 없다.  태평양 수평선으로 이글거리던 태양이 석양을 뽐내며 잠자리에 들고,  황금색에서 오랜지색으로 다시 붉은 장미빛으로 다시 검은빛으로, 그 속으로 진주알 마나가하섬이 서서히 가라앉아 자취를 감춘다.  숨을 죽이며 일몰을 바라다보는 사람들에게 숨통이 트이려는 무렵 선셑크루즈 선박 잠발라야호의 선실내의 불빛이 은은히 밝아오며 선상은 노래와 춤으로 낭만을 수놓아간다,  아, 환희의 한숨이 절로 터진다.  심장의 박동이 활기차다.  잘름거리는 은빛물결 건너 멀리 가라판 지역과 수스페 지역의 불빛이 손에 잡힐 듯 반짝거린다.  주위를 지나는 다른 선셑크루즈들의 불빛도 휘황하다.  갑판위로 나오라. 태평양의 향기를 실컷 마시자.  잠바라야호에서는 대막대기 위로 발춤(한국의 고무줄 춤추듯)을 추는 프로도 있다는데 우리들에게는 제공되지 않았다.



   ▶ 마지막 쇼핑


    19:35. 선셑크루즈를 마친 우리 일행은 가라판 지역에 소재한 면세백화점 DSF갤러리아(Duty Free Shoppers Galleria)로 안내된다.  세계일류 브랜드의 의류, 양주, 화장품, 건강식품 등 무수한 고급상품들이 즐비하다.  싸이판은 물가가 비싼 곳이다.  몇몇 회원들은 귀국할 때에 필요한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고르느라 골몰한다.  즐거운 쇼핑이 아니라 지겨운 쇼핑인 것 같다.  가이드는 세 시간 반 가량 동안이나 느긋이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나와 몇 명의 원장들은 주차장 쪽의 로비에 미리 나와 무료하게 앉아 있기도 한다.  23:00. 숙소에 돌아온 일행은 여장을 꾸리며 귀국준비를 한다.  잠시 침대에 누워 싸이판 연수여행 중 그릇된 것은 없었는지 점검해 본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에 와서 강점자 일본의 식민지치하 힘없는 조선백성의 굴욕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아두었는가를 ….




   ▶ 여옥의 눈물로 가슴을 적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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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1]일본군위안부역사관 -일본군 사령부 근처에서 미 해병 순찰대에 의해 발견된 위안부들(1945. 오키나와)



    1996. 11, 25(월) 01:00. 코레스코 리조트호텔 카운터에 체크아웃을 마치고 01:30. 싸이판공항에 도착 출국수속을 한다.  그 동안 고된 내조로 희생하신 부인들께서도 충분한 위로의 기회가 되었기를 기원한다.    힘과 능력이 축적되지 않은 자는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간에 비극적으로 망한다는 것이다. 우 리의 조선이 힘이 없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강제징집 되어 보내어진 징용, 징병, 정신대의 비참한 현장을 보았다.  노예와 같은 굴욕의 노역, 의미 없는 총알받이, 순결과 정조를 짓밟힌 학살의 현장을 보았다.  조선의 누이 여옥이와 정신대의 한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현장을 보았다.  자살절벽, 만세절벽, 일본군최후사령부, 정글터널 등 어느 한곳이라도 조선의 슬픈 역사가 아니 스쳐간 곳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여옥의 눈물로 가슴을 적시고 돌아온 것이다.  여명의 눈동자로 밝아오는 붉은 동녘 하늘을 보며 07:35. 우리들은 한국  땅 김포에 안착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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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한국인위령평화탑] 사진[1]출처-합하세(합하여하나로되는세상)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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