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지우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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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록별y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96회 작성일 22-12-28 04:48본문
흔적 지우기
이영숙
추억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가슴 아프고, 후회되고,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안타까움이 깃든 지난날이 내게는 많다. 잘못 결정한 조합주택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본 일이라든지 작은 오해로 인해 금이 가버린 친구와의 관계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을 휘벼내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아프고 쓰리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순간으로 날아가서 잘못을 고쳐 잡고 후회되는 일들을 만들지 않을텐데 말이다.
까미의 일도 그중에 하나다. 사랑하는 반려견 우리 까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한 달이 되었다. 13살이 되어 힘이 없고 기침으로 고생을 하였지만 그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다. 잘해 주지 못한 생각들이 뾰죽한 송곳이 되어 내 마음을 콕콕 쑤신다.
내가 허리골절로 병원에서 삼 주를 보내고 집에 오니 까미가 늘 현관앞에서 잠을 자더라고 남편이 말한다. 밥도 새가 모이를 주어먹듯 조금씩 밖에는 안 먹는다고 걱정한다. 나를 기다리느라고 밥도 거르고 쪽잠을 잤을 까미가 측은하고 안쓰러워서 얼른 안아 보니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나를 기다리느라고 먹지도 않고 애간장 태웠을 까미가 불쌍해서 많이 안아 주곤 했다.
그날, 지인이 와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까미가 힘없이 내 옆에 와서 눕길래 네 집에 가서 자고 있으라고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집 앞에서 먹었으니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으려나 지인과 헤어져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평소에 하던 대로 까미야 부르며 들어 왔는데 까미가 힘없이 제 방에서 나와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나에게 기어 온다. 나는 힘든데 오지 마 하고 달려가 까미를 안았다.
그 순간 까미가 죽었다. 사랑하는 까미가 죽었다. 그런데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다른 지인이 초인종을 눌러 현관문을 열어주려고 안았던 까미를 잠간 현관앞에 내려놓고 문을 열어주고 들어 왔는데 뒤따라 들어오던 지인이 까미야 너 왜 그렇게 누워있니! 죽은거 아니야? 하고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라 안아 보니 힘이 다 빠지고 축 처진다.
모임에 나간 남편에게 전화하여 남편이 달려오고 기절한 건지 죽었는지 확인한다며 병원으로 데려가고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말도 안 나오고 눈물도 안 나왔다.
까미가 죽은 게 확실하다며 화장시키고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우리 집 창에서 보이는 작은 동산에 묻어 주자고 하니 불법이라고 단칼에 말을 자른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정말인가 정말 죽었다는 말인가. 영혼도 없다는데 이제 영영 이별이란 말인가.
몇 시간 후 남편이 돌아왔다. 화장하고 뼈는 그곳에 뿌리고 왔다고 한다. 죽는 순간을 남편에게 보고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 통곡으로 이어졌다.
“죽는 순간을 몰랐어요. 몰라서 작별인사도 못 했어요. 까미는 날 기다리느라, 내 품에서 가려고 안간힘을 다해 기다렸을 텐데 나는 까미가 가는 순간을 몰랐어요~~”.
남편은 화장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집앞 공원을 보자 눈물이 왈칵 났다고 한다. 아침마다 운동시킨다고 공원에 다닌 일, 다른 강이지 맘들도 만나면 까미 이쁘다고 안아 주던 일, 아파서 병원에 가던 일.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제 어떻하지? 생각나면 어찌하나 걱정하다가 그다음 날부터 흔적 지우기를 시작했다. 까미의 집은 병원에 갔을 때 두고 왔고, 까미의 밥과 간식은 강아지 키우는 지인 집에 주고 쉬 가리는 기저귀도 주고, 목욕시킬 때 수건이랑 용품들 옷 몇벌, 장난감, 약과 약 먹이던 그릇들, 밥 먹이던 작은 그릇들은 모두 흰 비닐봉지에 넣었는데 10리터짜리가 꽉 찼다. 어디에 까미 흔적이 없나 살피고 흔적이 안 남으면 잊혀질까 싶어 구석구석 뒤지며 까미의 자취를 지우려고 했다.
이제 한 달이다. 보이는 흔적들은 다 없어졌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애완견을 키웠다는 사실을 모를것이다. 도적이 증거들을 지우듯 그렇게 싹 없앴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이다. 흔적을 지우면 지울수록 그것들이 가슴을 파고 들고 분홍글씨처럼 선명하게 새겨지는 것이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는 까미가 어두운데 불을 안 켜고 나와 어쩌나 하는 생각이 일초 스쳤다가 아 까미가 없지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도 나도 모르게 까미야 하고 부르곤 한다. 아침에 눈을 떠도 제일 먼저 생각이 나고 자다가 깰 때도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왜 나는 그렇게 무뎠을까. 까미는 내 품에서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기다렸는데 나는 바보같이 가는 순간을 몰랐다니. 타임머신이 있다면 바로 그 직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까미가 가기 전에 뽀뽀 한번 해 주고 잘가 까미야 너로 인해 행복했어. 사랑해 까미야 잘가~ 이렇게 인사를 하고싶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걸 본 지인이 말한다.
"자책하지 마세요 까미는 사랑많이 받고 갔잖아요. 우리 남편은 칠 년전에 강쥐가 죽었는데 아직까지 잊지못해 울어요, 자기가 몰라서 포도를 먹여 죽었다구요. 그래서 뼈 가루를 아직도 보관하고 가끔 햇볕에 말리기도 해요. 벌레 생기지 말라구요~~"
또 한 지인이 말한다.
"뉴스에 보니 강아지가 살아 있는데 땅에 묻은 나쁜 사람이 있네요~~ 까미는 행복하게 살다가 간거예요~~"
슬픈 내마음을 위로하듯 하이얀 눈이 펑펑 내린다
댓글목록
함동진님의 댓글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간직하고픈 정
더욱 오래오래 안타갑습니다.
초록별ys님의 댓글의 댓글
초록별y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함동진작가님
건안하십니까
강아지에게 든 정도 무섭네요~~
시간이 좀 지내야 할 것 같아요~~
관심과 사랑 감사드립니다.
DARCY님의 댓글
DARC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록별ys님 !
오랫만에 유머방이 아닌곳에서 뵙게 되네요
우연인지 생전에 안오던 소설 수필 방에 들려 보았네요
까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니요 ..
엄마가 병원에 가있는 동안 얼마나 엄마를 찿았을까요
글쓰는 동안 게속 눈물이 흐릅니다
흔적을 지운다고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답니다
그래도 까미의 지난 사랑을 수필로 남기셨으니
더 절절히 마음에 와닿는것 같습니다
허리도 하루 이틀에 낫는병도 아닌데 까미까지 ㅠ ㅠ
제가 스위시로 까미를 만들어준 기억도 나네요
그래도 힘내시고 건강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까미야 ! 안녕 너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많았단다
슬퍼하는 초록별ys님 위로와 격려의 마음 전합니다
초록별ys님의 댓글의 댓글
초록별y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머방 방장님이
다녀가셨네요~~~
사람은 상대적이고 조건적이지만
강아지는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헌신하지요.
나를 그토록 기다리고 버텼는데
정작 작별 인사도 못하고 보냈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위로해 주셔서.
안박사님의 댓글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록별ys* 任`雅!!!
"痕跡`지우기"로 擔아주신,"까미"의 追憶이..
間晩에 "소설`수필房"에 들오니,"초록"任의 글이..
"까미"와 離別을 하시고,슬퍼하시는 "초록"任의 마음을..
本人도 거의 平生을 伴侶犬과 함께했지만,至今은 摺었네如..
人間이나 動物이나 넘 情을주면,떠나간 以後에는 悔恨만 가득히..
"초록별ys"作家님! "까미"의 極樂往生을,빌어주시고..늘,康`寧하세要!^*^
(P`S: 繼屬`들와서 "초록별ys"任의,"答글"을 기다렸눈데 零`零입니다`如..)
초록별ys님의 댓글의 댓글
초록별y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구야 죄송합니다
여기 들어 오면 또 까미가 생각날까봐 안 들어 왔어요~~~
다녀가신지 오래 되셨네요~~~~
아직도 까미는 제 마음속에서 그리움의 눈물을 만들어 주네요~~
강아지 키워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얼마큼 시간이 지나야 잊혀질찌 ......
같이 안타까워 해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안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