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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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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뜬구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회 작성일 23-09-08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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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책

 

 

아내와 나는 우리끼리 쓰는 말로 병신(病身)이다. 아내는 허리가 아프고 나는 심장이 안 좋다.

그래서 둘은 자주 걸어야 한다.

어제도 우리는 함께 걸으러 나갔다. 짐승들도 늘 다니는 길로 다닌다는데 우리도 즐겨 걷는 코스가 두셋 있다.

어제는 나간 김에 저녁이나 먹고 오자고 백화점 길을 택했다.

 

아내는 허리가 굽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치원 아이들 것만큼이나 작은 등 가방을 멘다.

그리고 우리는 손가락 굵기에, 길이가 30센티쯤 되는 나무토막을 잡고 걷는다. 효녀 심청이와 앞을 못 보는 심봉사처럼 한쪽 끝을 잡은 내가 앞에서 걷고 다른 쪽 끝을 잡은 아내는 뒤에서 걷는다.

지나가며 보는 사람들 가운데 기이한 풍경이라도 되는 듯 흘깃흘깃 훔쳐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어떤 사람은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네 와 밝고 서글서글한 성격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걷는 것은 순전히 아내가 아픈 허리 땜에 걷는 속도가 느려 보조를 맞추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아내가 나무토막을 잡고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고 하여 경상도 말로 남세스러움을 무릅쓰고 그리 걷는 것이다.

집에서 2km쯤 떨어진, 주방장이 TV에도 출연했다는 분식집에 들러 아내는 돌냄비 우동, 나는 모밀 한판을 먹었다. 21,000원을 냈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불평하며 돌아오는 길에 단골로 다니는 떡집 주인 부부를 만났다.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인데 백화점 앞 2층 육교 상가에서 맛있는 모시떡집을 한다.

이틀 전에도 아내와 함께 들러 송편 2판 절편 2판을 샀다. 우리는 그것으로 가끔 저녁을 때운다. 한꺼번에 네 판이나 산 것은 추석 때면 고향 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분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크고 건장하지만 늘 웃음을 지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부인이 사업을 일궈 자매 분이 함께, 때로는 번갈아 가며 나와 가게를 돌본다.

내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했더니 길에서 횡재라도 한 표정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반가이 맞는다. 부인이 우리에게 보기 좋습니다. 정말 두 분 멋져요라고 말한다.

4년 전 금혼(金婚) 기념으로 낸 시집을 주었더니 잊을만 하면 칭찬을 해주어 나로 하여금 또 시집을 내볼까 하는 시험에 들게 한 착한 아줌마다.

엉겁결에 나는 아닙니다. 제가 보디가듭니다. 요즘 길거리에서 칼을 들고 설치는 놈들이 많다고 해서라고 대답했다. 두 분이 엄청 크게 웃었다. 그걸 보고 나는 잠시 내가 칭찬받는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나무토막 한 개를 들고 서 있는 늙은이 모습이 웃겼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서로 건강하세요라는 덕담을 나누고 헤어진 뒤였다.

그리고 나는 아주머니가 두 분 멋져요라고 말할 때 두 분 모습이 더 보기 좋습니다.”라고 맞받아 줄 걸 하고 후회했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어쩌다 가게를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가 가게 문을 닫을 때 부러 나와서 함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둑어둑해진 가로수 길에 어느덧 가로등이 밝다.

선전문을 실은 네온 빛이 빙글빙글 돌면서 길바닥을 비춰주는 길에는 학원을 마친 학생들과 노인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부부는 우리 둘뿐이었고 노인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아마도 출근한 엄마들 대신 손자들을 돌보다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할머니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병신들의 산책이라고 놀림을 받을지라도 죽을 때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이 시원하다. 우리가 이미 가을 속으로 걷는구나-

주님, 이 가을 우리 부부가 매일 걸을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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