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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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23-10-14 07:10본문
그 해 여름
찌는듯한 한 여름이 지속 되었다.
국민학교 6학년이나 되었나, 오래 되어 기억은 흐릿하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의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포구나무 밑을 지나 정자 어귀를 돌고 미나리깡을 건너 싸맆문을 열고
들어서니 세 칸 방 가득히 낯선 사람들이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했다.
행색이 세련되고 눈길을 보니 대처사람인걸 어린 마음에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마당으로 우물에서 장독대로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정신이 없고 하얗게 질린
할머니는 담뱃대를 물고 연방 연기를 뿜고 계셨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즈음 아버지가 부산 부전시장 앞에서 동업으로 청과물시장을 하셨는데 동업자가 횡령을 해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졸지에 회사가 그 동안 발행한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나게 된 것이다.
30대 초반이었던 사회 초년병이 사업을 한답시고 시골의 논떼기 밭떼기를 있는데로 다 팔아서
투입한 사업인데 그 감당을 상상도 못했으리라.일단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버지도 그만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그간 과일과 야채를 김해등지에서 밭떼기로 공급하던 업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오고 연 걸리듯
걸린 외상거래처도 불길처럼 몰려와 회사는 하루 아침에 풍지박산이 되고 말았다.
여름방학이 되면 여동생과 같이 아버지가 사업하시는 꿈의 도시 부산으로 동방역에서 부전역
까지 완행열차를 탔다.차멀미를 하는 동생이 부전역이 다 와가는 기장쯤 이르면 그만 고 작은
속을 견디지 못해 주르르 흘리고 국민학교 5학년이던 오빠가 옷으로 감싸고 안절부절 하지 못
했던 기억이 아련하기도 하다.
천신만고 끝에 회사 사무실로 꽤죄죄한 촌아이들이 들어가면 환한 웃음의 아버지가 두 팔로
안아 주셨고 부전시장에 들러 순대랑 찐빵으로 허기진 배를 가득 채워 주셨던 기억이 있다.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때는 부산에서 직접 자전거 한 대를 싸서 보내기도 하셨다.이제 중학생이
되면 시내까지 자전거로 통학을 해야 되니 아버지로써의 애틋한 사랑이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의 정성어린 선물이 눈물겹기도 하다.
자전거가 동방역에 도착하던 날 부푼꿈은 하늘을 날고 할머니랑 동방역 맨 뒤쪽 끄트머리 화물
칸 도착지점에 선다. 이윽고 열차의 문이 열리면 동그란 두 바퀴가 허공에 빙그르르 돌고 마음
도 어지러워 핸들을 꼭 잡았다. 아버지의 세월이 참 정겨운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지극정성에 빚쟁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그해 여름도 시나브로 기울어 지고 있었다.
그 후 3년이나 지나 낙엽이 한 잎 두잎 가을이 깊어질 때 지칠대로 지친 초라한 모습의 아버지가 돌아왔다.남루한 차림의 삭신을 본향의 초가에 쓰러지듯 풀어 놓았다.
예순 여섯에 세상을 버리기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가문을 위해 고군분투 하셨고 일개 문중의
긴 산맥을 이어주고 가셨다. 유서를 읽으며 그 해 여름을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새소리가 낭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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