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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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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뜬구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3-11-0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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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발신자 이름이 뜨지 않는 전화는 받지 않은 지 오래다. 서울 중앙지검을 사칭한 전화를 비롯하여 몇 차례 자칫 낚일 뻔한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 피싱인 줄로 알고 살아왔는데 보이스를 낚는다니, 사람의 목소리를 낚는다니 별 희한한 재주도 다 있다.

대학 때 촌놈이 서울에 처음 올라와 눈 감으면 코를 베가는 세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조상님들의 코와 귀를 베갔다는 역사를 알고 있는지라 겁 많은 나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한동안 눈 한번 제대로 감지 못하고 서울 구경을 다녔다.

그런데도 만원 버스 타고 이리저리 밀리며 출근하다가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적도 있고 새 구두를 신고 친구 따라 보신탕집에 갔다가 도둑맞고 손님들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려 다 떨어진 구두를 얻어 신고 온 일이 두 차례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신발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에 대해서는 트라우마가 있다.

(참고로 보신탕집은 재작년 미국 사는 외손자가 호기심으로 보신탕집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안내인 노릇을 하느라 한 번 들른 것을 빼고는 발을 끊은 지가 오래다.)

 

그러나 등치고 간 꺼내는 사기술이 과학보다 더 앞서가는 모양이다. 소매치기, 구두 바꿔 신고 가기 따위는 구석기 시대 수법이라 이제는 신문에도 안 난다.

대신 가지가지 기상천외한 휴대폰 사기가 매스컴을 도배하는데 아둔한 나는 들어도 잘 이해를 못 하는 때가 많다. 그래서 아예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가 주문한 약을 찾으러 오라는 약국 전화를 놓친 적도 있고, 교회 목사님 전화를 받고 모르는 목소리면 끊겠거니 하고 한참이나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워버리고 혹 실수할까 아직 지우지 못한 번호가 내 휴대폰에 병원 약국 가족 친구 식당 교회 등등 모두 223개나 남아있는데 나의 전화는 거의 늘 동면이다.

어제는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주고받은 전화 기록을 뒤져보니 어제는 파란 화살 두 개, 그제는 붉은 화살 한 개, 그끄저깨는 추석이라고 다녀간 아들과 손자와의 통화를 빼면 nothing이었다.

인간관계란 서로 오가거나 소식을 주고받고 만나는 것에서 시작할 진데 전화 통화로 보면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만남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만남의 회수가 아니라 질인데 만난 뒤끝이 별로인 때가 많았다.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접촉할 기회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TV를 빼면 공짜로 주는 보수 일간지, 아니면 핸드폰으로 보는 뉴스가 전부다. 그나마 네이버나 다음 같은 뉴스 제공자들이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맹랑한 기법으로 찾는 사람의 기호에 맞춰 뉴스를 골라 상단에 올려놓는 바람에 뉴스 식중독을 피하기 어렵다.

가짜 조작 선동으로 먹고사는 유튜브를 즐겨 보는 사람은 그 증상이 더욱 심하다.

어쩌다가 신간 서적을 큰맘 먹고 읽어도 금방 잊으니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 카톡으로 받아 본 재밌는 이야기도 중언부언, 듣는 사람이 하품하지 않을 수 없다.

화제 빈곤은 누구나 도사가 되는 정치 이야기로 결국은 번진다.

그러나 윤석열과 이재명 편에 선 두 친구가 만나면 결과는 뻔하다.

50년 사귄 친구와 정치 이야기를 놓고 다투다가 헤어져 만나지 않고 지내다가 한 사람이 죽은 뒤에야 후회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다.

나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될 수 없다. 이것은 대부분의 늙은이들이 공통으로 앓고 있는 무서운 병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세계적 통계학자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박사가 그의 아들 및 며느리와 공동으로 집필한 팩트풀니스’(Factfullness)란 책을 보면 인간에게는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생각에 끌리는 단일관점본능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주의를 사로잡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세계를 단순화하여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얻어지는 무언가를 정말로 안다거나 이해한다는 식의 잘못된 통찰력의 순간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고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내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을 꺼리게 되어 특정 생각에 늘 찬성하거나 반대하고 그 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없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러한 경향에 깊이 빠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다.

돌아서면 잊는 긴 설명, 긴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두꺼운 책을 멀리한다.

저자의 말대로 나의 관심을 끄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세계를 단순화하고 모든 문제를 단순하게 결론지으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것이지만 나는 윤석열 대통령도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가끔 그의 언행을 보면 단일관점본능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저자는 나와 다른 생각이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이 된다고 말하지만, 세상일에 아무런 결정권이나 영향력이 없는 나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하는 오기로 틀린 줄 뻔히 알면서도 한번 뱉은 말은 그냥 고집한다.

일찍이 미국의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가 지적한 것처럼 나도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인간이란 생물이니까.

 

그래서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독서하고, 산책하고, 이런 따위의 잡문이나 쓰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 더 익숙하다.

협량한 성격으로 애초에 교우관계가 적은 탓도 있지만 먹고 살 일도 아닌데 이 나이에 굳이 듣기 싫은 이야기들을 들으러 나갈 이유도 없는지라 코로나 핑계를 대고 만남을 줄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애꿎은 아내만 더 힘들게 되었지만-

 

나는 자식들에게 죽어도 가족 말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바로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장례가 모두 끝난 뒤 내 휴대폰을 열어 죽을 임()하여 두어 달 정도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간단한 글로 내 죽음을 알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라고 말해두었다.

얼마 전까지도 실없이 웃고 떠들던 사람의 영정을 본다는 것은 분명 심란한 일일 것임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비나 오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오다가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에게는 지금 살아있을 때 미리 부의금을 주면 50%를 할인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설마 내가 먼저 죽으면 본전도 못 찾을 거라는 속셈은 아니겠지만, 이 흥정에 응한 친구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나만 그런지 모르나 TV 뉴스조차 알아듣기 어려운 때가 많고 출연자들이 주고받는 말 가운데 외국어인지 신조어인지조차 구분 못 하는 말들이 적지 않다.

수명은 고무줄처럼 자꾸 늘어나는데 보이스피싱 말고도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 많다. 자꾸 바뀌는 휴대폰 사용법과 온라인으로만 가능한 기차표나 버스표를 사는 것부터 잡다한 메뉴를 골라 주문해야 하는 키오스크들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모처럼 아이들이 오면 사용법을 적어두지만 자주 이용하지 않은 탓에 그때마다 손가락이 굳고 버벅거린다. 혼자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좋은데 햄버거 프랜차이즈 같은 곳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내 뒤에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이 주섬거리는 내 뒤통수에 던지는 눈총이 따갑게 느껴지는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만남은 축복이다.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빙빙 도는 사람들도 많다.

얼마 전 세계적 일간지 뉴욕타임즈"나이 든 지하철 탑승자들이 여행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지하철에 하루의 인생을 실은 노인들의 사연을 전했다.

이 기사에는 집 근처의 4호선 수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한 뒤 1호선 종점인 소요산역에 1시간 만에 도착, 역 근처를 거닐다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 노인을 비롯하여 한시(漢詩) 이론서를 들고 탄 교수 출신, 공사 감독관으로 일했다는 노인 등등 조용히 집에서 머무르지 못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좋은 데다 노선도 많고 긴 수도권 지하철은 소일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는, ''지공거사'들의 지하철 예찬과 함께-

 

이런 노인들에 비하면 나의 오늘은 외롭지 않은 행복한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고등학교와 대학 동문인 고향 선배 두 분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점심 먹고 오후 한나절은 넉넉히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뉴스에서 본 매장 이용 시간이 너무 깁니다. 젊으신 고객님들은 아예 이쪽으로 안 오고 있어요.”라는 어느 카페 주인이 장시간 앉아있던 노인에게 건네주었다는 메모-

물론 케이크라도 더 시켜 긴 시간 자리를 점령하는 것을 보상할 생각이지만 메모 쪽지가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젊은이 앞에 서 있다가 노인석으로 가 서있으라는 핀잔을 들었다는 이야기, “늙은이는 투표장에 나오지 마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에서 보듯 노인 혐오에 대한 사회 풍조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제 내려놓을 것이라곤 체면 염치밖에 없는데 그야말로 똥창이 맞는 사람들끼리 수다를 좀 떨기로 어떠냐. 지하철 뺑뺑이보다 행복하지 않은가.

저승에서조차 안 받아줘 언제 요양병원을 뺑뺑이 돌 줄 모르는 늙은이들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을 때 좀 뻔뻔하게 굴어 스타일 좀 구긴들 어쩌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죽자사자 온갖 일을 견디며 살아온 우리인데 똥 친 막대기 취급한 들 어떠랴. “이놈들아, 늙어봤냐. 난 젊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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