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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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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3회 작성일 23-12-11 09:53

본문

그 해 겨울밤 




안마을에서 보면 평리길은 그리 가까운 길이 아니다. 


적어도 초등 2,3학년 짜리가 걸어 가기엔 좀 부치는 길이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거기 사셔서 

왕고모님집이라고 불리었는 데 유년에는 별의미도 모르고 오리나 되는 길을 참 열심히 다녔다. 

마침 왕고종 4촌형들이 중3 고3 이렇게 있어서 밤이 늦도록 새로운 정보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

로 호롱불에 콧구멍이 새카맣도록 밤을 세웠다.


밤이 이윽하면 먹을거리가 궁해진다. 무우를 깎아 먹기도 하고 덜 익은 홍시를 먹다가 떫어서

뱉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아 먹다가 입이 싱거워 지면 궁리는 더욱 세밀해 진다. 자정이 넘어가

면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초가집 처마 속에 둥지를 튼 참새사냥이 일감으로 떠오른다.

형이 호야불을 들고 앞서면 동생이 사다리를 잽싸게 찾아 세우고 나는 이리저리 두 형의 그림자

만 따라다닌다. 호야불을 든 형이 살그머니 처마 속 둥지에 손을 넣으면 단잠에 빠져 있던 참새

들이 순순히 손아귀에 잡혀 나온다. 자루에 넣을 때 까지 그 긴장이란 고요보다 더 적막하여 심

장이 터질 지경이다. 금방 자루는 파닥이는 참새들로 들썩이고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정지를 향

하고, 부엌에 앉아 불씨를 일궈 구워 낸 참새구이, 그 고소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허기진

아이들의 뱃속이 육미로 아릿할 때 달도 서산으로 기우는 새벽이 온다. 아이들이 기척도 없이 진

행된 일사분란한 완전범죄는 쥐도 새도 몰랐다.

 

이튿날 밥상머리에 앉으면 입술이 새까만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은 그져 빙그레 미소만 띄울뿐 가

타부타 말씀들이 없으셨고 특히 구순이 넘은 왕고모할머님은 밤사이 일어난 사건을 꿰차고나 있는

듯이 너무나 대견해 하시고 그렇게 어린 고종손의 손목을 잡고 즐거워 하셨다. 늘 웃음이 얼굴에 

미소처럼 자글해 있고 작은 것도 큰 감동으로 손자의 얼굴을 부비며 즐거워 하셨다. 내 기억에는 

초등 6학년 때까지도 왕고모 할머니가 살아계셨던 걸로 남아 있다. 겨울밤이 깊어질 수록 그 해 

겨울밤의 추억은 더욱 선명해지고 문천강 비니루 스케이트가 꿈처럼 미끄러져 간다.


소문엔 그 때 고3이었던 창수형이 고인이 됐고 중3이었던 봉수형도 술 때문에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문이다. 건강이 남달라서 참 오래오래 살 줄 알았는데 허무하다.요즘에야 남남처럼 얼굴도 모르

고 살 촌수이지만 그 때는 5촌 6촌까지는 다 형제처럼 가족처럼 살았다. 많이 비틀어진 세상이 

되었다.


통일전에서 은행잎 자욱히 뒹구는 평리길을 늘 자동차로 지나 다닌다. 60년도 넘은 그 해 겨울밤이

생각나서 미소를 지며 그 길을 지나간다.

겨울비 촉촉한 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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