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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1시쯤인가 선배에게서 골프약속이 왔다. 둘이는 귀찮은 클럽 소속이 아니라서
비교적 자유롭게 공을 치러 다닌다. 클럽에 들어가면 마음 맞는 사람과 조를 맞추고 같이
떠들어도 한 두시간이 즐거운 이성 파트너를 선별해야 하기에 비교적 선별이 까다롭기도
하고 그져 시쳇말로 후리하게 다닌다.
둘이 파크골프장에 가면 혼자나 둘이 오는 유민들이 많아 직접 현장에서 조를 맞추어 티업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것이 편하고 운이 좋은 날은 잘 웃고 말상대하기가 편한 여성분을
만나기도 해서 은근히 눈치를 보아가며 골라서 출발한다. 노인네들의 운동이란 게 대화를
하면서 느릿느릿 가는 운동이라 샷이나 퍼팅할 때 공감의 추임새를 넣어주고 같이 즐거워
하고 같이 안타까워 해야 즐겁다.
선배가 먼저 와서 저 만치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공을 올려 놓았으니 서두르라는 손짓이었다.
한 발 뒤에 두 여인이 한 조로 서 있는 데 선그라스에 허연마스크를 끼고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있으니 도무지 할머닌지 아줌씬지 알 수가 없고 성정이 어떤지는 라운딩을 해 봐야 알
터, "잘 부탁합니다" 하고 공을 홀을 향해 날린다. 1번 홀에 네 사람이 공을 치는 동안 두
여성파트너는 그 흔한 굿샷이니 나이스 퍼팅이니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들 공굴리기에 바빴
고 선배도 갸우뚱하면서 본전도 못하고 헛잣대질만 하고 있었고 나는 얼른 공을 주워 2번 홀
로 향했다. "잘 치시네요." 속으로 숨어드는 말을 겨우 꺼내어 어깨에 걸쳐 보았는 데 어깨
넘어로 묵묵부답만 돌아왔다. 선배도 기분을 감지 했는지 무거운 발길을 질질 끌며 전반 9라
운드를 간신히 돌았다. 참 운 없는 날이네! 그래도 골프는 신사의 도를 추구하고 예도의 게임
인 데,파트너를 저리 무시하며 경기를 할 수 있는가.
후반 라운드로 옮기는 도중에 "좀 쉬었다 할게요!" 하고 늙어 빠진 여우꼬리만 흔들고 다른조
로 홀랑가더라! 졸지에 외톨이가 된 선배와 나는 새로운 조를 구하느라 추위에 한 참을 떨었다.
물론 선배의 다리가 노환에 시원찮아 공을 주워 올려 치는 속도가 좀 느린 것도 있고 자주 걸
어야 회복이 된다는 나의 지청구에 마지 못해 하는 운동이라 경기의 보폭을 따라 잡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은 물이 올라 스스로 내게 전화신청까지 하는 지경인 데 겸연쩍게 서
있는 선배의 처량함이 한 없이 맘에 걸리기도한 데.
아무래도 육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설핏 눈가에 주름을 보았으므로) 그 여인네들은 얼마나 꼿꼿
하게 두고두고 살아갈 지 지켜 볼 요량이다. 조금 파트너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좀 오빠처럼 품어주면 안 되는 것인지 생각할 수록 괘씸하다.
눈 앞의 자기 편한 것만 찾는 세상, 돌이켜 보면 나 또한 그렇게 살아 온 것은 아닐까?
창 밖에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 분다. 깊은 동굴로 들어가는 것 같다.
파란 잔디 위에 훈훈한 봄바람이 그립다. 겨울은 저 만치 먼 여인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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