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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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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3-12-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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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밤 




경희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년에 한 두번 통화도 어려운 집안 누이로부터 받는 전화라

그렇잖아도 궁금하던차에 반가운 마음에 자세를 곧추 세우며 반색을 한다. 15년 전 일찌감

치 청상이 된 누이가 아들 딸 다 출가시키고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소식이야 지난 번 母의

장례식에서 들은 바 있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몇 달 만의 전화라 반갑기 그지 없었다.

늘상 통화 내용이야 그렇고 그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들 안부, 외로운 삶들을 풀어 

놓고 몇 시간이고 밀고 당기고 하면서 시큼한 칡물이 단맛이 다 빠지고 미지근한 맛이 될 때

까지 씹고 또 씹어 무미건조 할 때 쯤 대충 이야기가 끝난다.


고등시절 학교가 파하면 서너살 위였지만 친누이처럼 살가웠던 누이네를 밥먹듯이 찾았다.

본가가 있는 안마을이 누이가 살고있는 마을을 거쳐야 가는 곳이라 참새가 방앗간 드나 들

듯이 참 편하게도 드나들었다. 고구마도 쪄주고 옥수수도 발라가며 여름 밤 자욱한 밤하늘의 

별을 세며 때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희노애락을 같이 나눈 셈이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 남아 친구 혁이와 같이 한여름 밤에도 오리나 되는 길을 찾아가기도 했다.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저녁에도 숨이 컥컥 막히는 날이 연일 지속 되었다. 저녁이 

제법 이윽해지고 누이네 집을 건너가는 시냇물이 고인 웅덩이의 돌다리를 건너려는데 누군가 

저만치서 아이 시원해! 아푸! 하면서 여름 등목을 하는 하얀몸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는 게 

아닌가. 혁이와 나는 일순 돌이 되었고 저 쪽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미동도 없었다. 고요는 더욱

적막해지고 숨소리도 멎어 한여름밤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쯤, "아니 요것들이 저리 안가!" 적

막을 찢은 건 누이쪽이었다. 누이의 하얀몸을 무엄하게 한참을 바라 본 것이었다. 당황한 누이가

우리를 향해 물장구를 쳐댔고 우리는 걸음아 날 살려다오 하면서 안마을로 도망쳐 왔다. 그 이후

죄인처럼 근 일 주일간을 피해 다녔고 도저히 누이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누이

가 안마을로 웃는 얼굴로 찾아 오는바람에 죄는 사면이 되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빙그레 미소를 짓는 누이와 같이 늙어가는 노인이다.


누이와 만나게 되면 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아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어른의 언어따위는

필요치 않다. 누이도 그런 거 같다. 옛이야기에 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나도 마찬가지다. 

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엣날의 향수에 빠져든다. 옛날 누이의 웃음이 그대로 남아있다. 누이와 

같이 본 고향에서 같이 죽어가는 것이 행복하다. 그때보다는 많이 후덕해졌지만 그래서 누이를 더

더욱 사랑한다.


길고 긴 겨울밤이 지나면 그해 여름밤이 다시 오리라. 또 다시 세월을 딛고 설 따듯한 누이의 봄을 

기도한다. 오일장에서 뜨듯한 국밥 한 그릇이 그립다. 누이와 같이 하는 세월이 뜨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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