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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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9회 작성일 23-12-26 06:07본문
또 한 해가 간다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세월이 그 얼마였던가.
이제는 그 숫자를 기억하기 귀찮을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예전에는 새해 벽두가 되면
금연이라든지 무엇을 개선해보겠다는 맹약들이 줄을 이었지만 이제는 새해가 되어도 만사가
심드렁하다. 다 그 것들이 작심삼일이라는 경험을 손수 겪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도 꿈이
있었기에 그런 벽두계획이라도 세웠지만 이제는 그 꿈마져 희미해지고 내일 아침에 어떤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걱정에 오로지 건강 하나에 매달려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다.
요양병원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나면 한 번 얼굴이나 보자고 힘 없는 목소
리가 핸드폰 저 편에서 맥 없이 들려온다. 술 좋아하던 몇몇 친구들은 벌써 불귀의 객이 되었
고 살아 남은 친구들도 거의 패잔병 수준이니 삶이 재미가 없다. " 그래 언제 시간내서 한 번
들릴 게, 나도 시원찮아 머리도 무겁고 어디 안 아픈 데가 없네!" 그져 대화내용이 이렇다.
그 다음 주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야! 친구야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병철이 있잖
아? 가가 갔다카네 어제! 마누라가 지금 전화 왔다! " 이제는 이런 소식이 놀랍지도 않지만
참 힘든 세상 잘 갔네하고 자포자기의 마음이 앞서서 오히려 담담해진다. 오랫만에 얼굴이나
보고 떠나지 뭘 그리 급해 가지고 서둘러 갔나 하고 바삐 가 보지 못한 나를 자책도 해 보지만
하나 둘 떠나는 친구들, 참 힘든 세상 잘 갔다 하고 위로하고 싶다.
한줌의 재가 되어 나오는 친구의 유골을 보고 차라리 슬픈게 아니라 헛웃음이 났다. 슬픈 음악
이 한줌의 육신을 쓸어 안아도 저러히 가벼운 죽음을 맞이하려고 그 무겁고 힘든 삶을 살아왔나
하는 생각에 느닷없이 동공이 시려왔다. 꽃 한 송이 던져 놓고 나오는 겨울이 이리도 삭막한 지
칼바람이 턱밑을 스치고 있었다.
년초부터 갖고 있던 지병들이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지병의 유지가 지상최대의 과제인 데 그 게
잘 안 된다. 근육이 빠지고 몸 안의 세포들이 자꾸 죽어가는 지 가는 지진처럼 몸의 중심이 무시
로 흔들리고 어지럽다. 새벽에 눈을 뜨면 가슴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해 한 해를 무사히
보내는 게 아니라 이제는 하루하루를 아무 탈 없이 보내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다.
무심하고 고통스러웠던 한 해가 사라져 간다. 무수한 해들이 지나 갔지만 다가오는 甲辰年은 나의
해다. 또 한 번 제대로 살아보자고 다짐을 한다. 실 없는 기약이지만 늘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다
짐을 해본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 한 해를 보낸다. 또 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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