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긁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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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04회 작성일 24-02-21 09:30본문
밥그릇 긁는 소리
오늘 늦은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었습니다. 추어탕을 먹겠다고 작심을 하고 간 것이 아니라
거래처가 있는 지역의 변두리에서 사방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띈 곳이 추어탕을 파는 식당이었기에
그리로 간 것인데 시장이 반찬이라 맛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는데
홀 옆에 있는 방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쇠붙이로 쇠붙이를 긁는 거북한 그 소리는
바로 숫가락으로 밥그릇을 긁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날카롭던지 소름이 돋을 정도여서 도대체 누가 저토록 극성스럽게 밥그릇을
긁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고개를 돌려 방안을 들여다보니 어림잡아 칠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들 중 남자가 계속하여 그릇을 긁고 있었는데 남자의
태연한 행동으로 보아 부부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무신경한 사람이라도 남의 여자 앞에서
저렇게 밥그릇을 긁는 행동은 안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요.그저 집에서 늘 하는 것처럼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본 소리였습니다. 식량이 남아도는 요즘 같은 세상에 배가 고파서 저렇게
밥그릇을 긁어대는 사람은 없을 터인즉, 저 촌로도 분명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소리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나도 저렇게 밥그릇을 긁다가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은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삼대가 함께 식사를 하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할아버지와 장손인 내 손위 형이
겸상을 하였고 아버지와 내가 겸상으로 식사를 하였으며 어머니와 누나들과 여동생은 따로
식사를 하였는데 우리 가족의 식사에는 어겨서는 안 될 준칙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에 말을 하거나 웃어서도 안되고 그릇을 접촉하는 등의 잡음을 내서도 안되고 자세는
곧게 가져야 하며 먹던 밥을 남긴다거나 그릇에 밥알을 붙여둔 채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만약 그 어느 하나라도 어기면 당시 지역 향교의 전교를 지내시던 할아버지로부터
심한 꾸중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 때로는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조부님의 그런 가르침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기에 세월이
흐른 후 나도 내 자식들에게 예절 교육의 하나로 깨우치며 살았습니다.
가끔 아들 딸들이 제 아이들과 함께 와서 식사를 할 때면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제 어미의 간청에 의하여 마치 적선을 하듯 밥을 먹는 아이들의 식사 태도가 못마땅하여 호통이라도
처주고 싶지만 그러면 며느리가 서운해 할까봐 참고 있으려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제 자식들이니 저들에게 맡길 수 밖에요.. 한 톨의 곡식에도 농부의 피와 땀이 서려있음을, 그리고
하늘의 보살핌이 있었음을 알기에 나는 지금도 식사를 마칠 때면 내가 사용했던 밥그릇을 살핍니다.
안 그러면 하늘나라에 계신 조부님께서 호통을 치실 것 같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추어탕집에서의 그
시끄러운 불협화음도 참을 수 있었고 웃으며 식당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까마득한 유년시절의 추억이지만 불현듯 밥그릇 긁는 소리가 생각난 것은 작금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의료대란이 전 국민에게 우려와 불편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들은 밥그릇싸움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누가 봐도 이것은 국민을 볼모로 하는 밥그릇싸움이 아닐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므로
해당 의료인들은 하루속히 현업에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행여 위급한 환자가 치료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명분이야 어떻든 해당 의료인들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뿐더러 향후의 직업윤리에 큰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
굳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먹이지 않더라고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천직에 해당되므로
그 사명감은 여타 직종에 비해 막중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군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여 더 늦기 전에 현업으로 돌아오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산 시인님, 저 어렸을 때 저희 집 식사 풍경의 데자뷰 같습니다.
밥그릇 긁는 모습과 식사 풍경의 사실적 묘사가 참 돋보입니다.
좋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산님의 댓글의 댓글
안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수퍼스톰 시인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 가정도 저희와 비슷한 가풍이셨군요.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곡식의 귀함을
일찍 터득한 것 같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