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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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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0회 작성일 24-04-2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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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한동안 뜸하던 시내에 사는 초등친구가 아침 일찍 나를 찾아왔다. 이른 여름 연노랑 점퍼에 연회색 바지를 입고 사랑채로 들어섰다. 저 친구 옷은 참 잘 입는다 하고 생각하며 잠옷바지에 남방을 걸친채로 피로한 눈을 부비며 친구를 맞는다. 독거노인이야 다 불면에 시달리다 8시나 되고야 늦잠에서 깨어나 겨우 살아나니 별로 실례란 건 없다. 더구나 친구 사이임에야. " 무슨 일이고 아침부터? " " 야 눈꼽이나 떼고 차나 한 잔 주라! " 하며 못마땅한 눈초리를 쏘아 보낸다.


차 한 잔을 놓고 소파에 기대앉은 친구의 모습이 일전에 친구의 부고를 들고 오던 때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일순 불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설마하는 눈초리로 소파에 기대앉았다. 사랑채의 창호문 밖에는 연두의 이파리들이 봄을 피어올리고 팽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새들은 봄의 노래를 목청껏 돋우고 있었다. " 야 얼굴 좀 펴라 아침부터 죽상을 하고,,," 하니 " ...."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김이 오르는 생강차 한 잔을 늙은 입술에 갖다 대더니 " *팔! 나 보고 간암이라카네 2차 검진에서! " 툭 내 던진 한마디에 그동안 만나기만 하면 건강자랑에 침을 튀기던 건강한 친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하고 외로운 강가의 돛배하나가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고요한 정적이 한동안 흘렀다. 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 야! 요새는 의술이 좋아 간암도 의식만 잘하면 멀정하게 살아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더라, 걱정말고 의사랑 잘 상의해 봐라 야! 나도 폐암선고 받았을 때는 인생 이제 끝이구나 했지만 수술하고 4년이나 살아내고 있잖아! 자네는 건강하니 잘 극복해 나갈거야! " 하니 묵묵부답이었다. 얼굴에 자괴감 같은 것이 지나가고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자기의 몸뚱어리에대한 배신감에 안색이 노래지고 있었다. 


의기투합한 10명의 동기들이 만나면 그날은 누군가는 눈동자를 풀고 늘어져서야 술판이 끝났다. 먼저 온 동기들이 소주집에 둘러 앉으면 안주가 나오기전에 반가움을 담아 소주잔이 몇 순배 돌아간다. 빈속에 목구멍을 타고내리는 소주가 짜릿하여 그 맛으로 소주를 먹는다며 떠들어대며 우리는 술을 마셨다. 몇 친구가 늦게라도 오면 後來三杯니 뭐니해서 물컵으로 사람을 죽인다. 안주가 나오고 술자리가 깊어지면 내가 술을 마시는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건지도 모르고 우리는 술을 마셨다. 나의 젊은 시절은 그랬다. 늦은 밤을 다 토해내고 의기투합한 어깨동무가 도로를 휘젖고나서야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갔다.  


생존자는 5명이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인생을 통해 몸소체험을 하고 있다. 살아 있어도 다 패잔병의 모습이지만 친구는 참 건강했다. 가끔 다섯이 모이지만 아직도 옛날의 페이스를 고수하는 전설의 친구이다. 남은 병사들이 다 부러워하던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한 친구의 모습이 한없이 슬프다. 그까짓 투명한 물 한잔에 무릎을 꿇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지난 달 먼저간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소주 두병을 마시고 비스듬히 누우며 친구야 이제 술도 힘이 없어 못 마시겠네 하던 파리한 안색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그널이 성큼성큼 다가오는데도 그걸 몰랐다.


" 야! 간 그까짓거 다 잘라내고 10프로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대. 그라고 가족중에 이식가능한 식구를 찾아 봐! 이식하고 멀정하게 술마시며 사는 사람도 많다더라 걱정마! 요즈음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 그러잖아! 앞으로 10년만 잘 살면 되지. 걱정하지마! " 이런식의 얘기만 오갔다. 그렇다. 무릎에 힘이 있어 제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세월, 그것이 사람이 사는 한계다. 걷지 못하면 사람은 죽은 목숨이다. 일반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걷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인생을 보낸다면 그것이 인생에 있어 무슨 가치일까?


등을 돌리고 사랑채를나서는 친구의 어깨에 옛날처럼 어깨동무를 해본다. 그토록 듬직했던 친구의 어깨가 왜소하여 눈물이 핑돈다. 친구야 우리 모두 갈 길 다 정해있으니 그 길따라 천천히 가보세. 마음도 같이 따라나서는 친구의 등을 토닥여 본다. 툇마루가 차갑고 쓸쓸하다. 봄빛이 저리 푸른데, 마음은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서러운 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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