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고유제(移葬 告由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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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고유제(移葬 告由祭)
支派祖의 이장 고유제가 있다고 해서 支派의 도유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에서 사는 주손도 오고 부산서도 친족들이 온다고 하니 주인이 직접 참여해 주면 자리가 빛나지 않을까 해서 초청하는 자리였다. 백수야 나날이 공일이니 망서릴 것도 없고 그리고 옛 어른들과 옛 동무들도 온다하니 겸사겸사 하루가 심심치 않을 것 같기도 하여 흔쾌히 승락을 하였다. 오전 11시에 제를 시작한다고 하니 9시 부터 수염을 고르고 치장을 하며 오랫만에 정장도 이것 저것 골라보고 넥타이는 검은 걸로 빼내어 걸고 마음이 바빴다.
햇살이 눈이 부시고 바람은 산들한 데 늙은 애마도 신이 났는지 소리 없이 잘도 달린다. 마침 의성에서 종친이 온다고 해서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같이 이장지가 있는 보문갑골로 가기로 했다. 의성 종친이 멀리서 손을 흔들고 아니나 다를까 차에 오르시자마자 예의 그 끝이 없는 종사이야기가 시작 된다. 내가 몇 번 당했던 기억이 있는터라 그러려니 하고 지겨움이 넌짓이 스며들 때 쯤 마침 보문로에서 좌회전하라는 내비의 음성안내방송에 길고 긴 이야기가 마무리로 꺽어진다. 의성 종친은 똥도 버릴 것 없는데 딱 하나 버릴 게 있다면 종사이야기다. 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나오듯 하는 백과사전 같은 늘어진 종사나 역사이야기들을 어떨때는 잘 드는 가위로 싹둑 짤라 휴지통에 버리고 싶다. 전화도 가끔 한 번씩 오지만 좀 두렵다. 어떤 때는 저녁 9시에 전화가 오면 열시까지는 보통이다. 같은 얘기가 하도 지겨워 전화기를 스피커 폰으로 켜 놓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일본 천황의 항복소리 같은 가느다란 음성에 기가 질린다. 그것도 어떤 마음의 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좌회전을 하고 산길을 한참을 가는데도 산소가 보이는 주차장까지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멀리서 제관들이 미리와 대기중이었는데 얼추 20여명은 넘어 보였고 새로 단장한 석곽의 무덤들이 새로운 100년을 위하여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저 석곽들도 10여년 후면 다 공해물이 될텐데 돈 많은 후손들이 기천만원씩을 들여 참 고생도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제주 형님께서 주인이 이런 날 참석해 주어서 고맙다고 입에 침이마르고 종친들이 빙 둘러서서 아는 얼굴들 모르는 얼굴들 돌아 가면서 악수를 하며 돈다. 밖에 나가면 아무도 모를 생소한 얼굴들, 종친이라니 다들 별안간 친숙하였다.
도유사가 준비한 제수를 진설을 하고 돗자리를 던져 주욱 펴고 그 위에 헌관 순서대로 줄을 서고 그 외 제관들은 잔디 위에 나란히 선다. 서울서 온 종손인 초헌관이 무릎을 꿇고 성급히 분향을 하니 서 있던 어른 한 분이 참신을 먼저해야지 거꾸로 하네 하신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종손의 얼굴의 당황한 표정으로 삼촌을 쳐다보고 80넘은 삼촌인들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은퇴했으니 강신을 알랴 참신을 알랴 멀뚱멀뚱 주위를 애타게 둘러 보는 데 산골이 일순 고요하다. 삼촌이 마 퓨전으로 간단히 하입시더,하니 옆에 있던 90 당숙이 그 옷은 뭐하러 입고 다니노! 포대만 쓰고 다니지! 하신다.
모르면 편하고 자유스럽다는 것이 확연히 증명되고 집사가 시키는대로 하니 이무롭고 즐겁다. 문제는 시키는 사람도 장님 문고리 잡듯이 대충대충이다. 나이가 많은 관계로 소임은 맡았지만 그 의미와 절차가 도통 오리무중이다. 내가 나서기도 이상하기도해서 바라보기만 하였지만 참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이장제가 진행 되었다. 위수 관계없이 술잔은 끝도 없이 오르시고 3헌의 헌관들도 벼슬처럼 엎드려 절을 올렸다. 녹색의 바람이 한바탕 산허리를 휘젓드니 축 없는 무미건조한 이장제가 끝이나고 말았다.
음복의 시간이 되자 퇴주잔에 부은 청주를 한 순배씩 돌리고 하얗게 친 밤 한 알씩을 안주삼아 깨무는 데 주인! 이제 무거운 것은 좀 벗어버리고 살자! 하고 제주가 넌짓이 오늘 이 사단을 무마하려든다. 그렇지요 저도 그럴려고 노력중입니다. 하지만 대책없이 하루 아침에 모두 다 벗어버리면 사람이 알몸으로야 살 수 있을런지요. 우리 시대야 내리 받은 지혜만큼만 하고 살다가 가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큰 기업을 하다 은퇴하신 제주가 죄 없는 콧등만 쓰다듬고 돌아선다. 80이 훨씬 넘도록 돈과 사업하나에 매달려 성공을 이루었고 말년에 돈의 힘으로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는 선조들의 산소를 6기나 고급 대리석 석곽으로 아성처럼 산소를 꾸몄다. 햇살에 눈부시는 산소의 모습에서 회심의 미소가 얼핏설핏 피어나기도 하였지만 세월이 지나 저 공해 같은 산소군을 누가 다 관리를 할까 하는 쓸데 없는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본인이야 흡족하고 벌써 동네에는 다 소문이 퍼져 그 집 아들 돈 벌어서 조상님께 효도 한 번 걸죽하게 한다는 칭찬이 떠돌아 다녔다. 절뚝거리는 그의 팔뚝을 부축하는 장자의 모습이 의기양양한 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일까 하는 생각에 6월의 산야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장제가 끝나고 언제 또 만날지도 모르는 혈친들의 면면을 미소로 주고 받으면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하나 같이 삐까번쩍한 외제차를 몰고 산허리를 내려가는 재물의 행렬에 조상의 음덕으로 잘 살고 있는지 모르는지 이 시대의 마지막 장면 같은 모습에 과연 의심이 사모치는 초여름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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