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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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인생
심장 판막증 수술을 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는 여인이 있고 그 옆에 단정한 남편이 있다. 도시에서 50여년을 살다가 얼마전 조양동으로 이사를 와서 살기때문에 나는 늘 조양사장이라고 부른다. 올 해 여든이지만 참 단정하고 말끔한 노신사다. 심장수술을 한 사모님도 이성적이라 말씀도 고분고분하시고 늘 미소를 간직해 누님처럼 다정하다. 나도 오랜 객지생활 끝에 금오산 기슭으로 스며들어 산 지가 벌써 3년째가 넘어가고 있으니 어쩌면 동병상련의 정도 있다. 안사람도 두 부부를 얼마나 흠모하는지 필드에 나가면 그 두 부부만 찾는다. 운이 좋아 같은 조로 두어 시간을 라운딩이라도 하는 날엔 가을햇살처럼 행복하다. 추임새를 넣어가며 공을따라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다.
며칠째 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만 안 보여도 아쉬워 찾던 사람이었는데 일주일이 다 가도록 행방이 묘연했다. 만난 지가 두어 달 밖에 되지 않아서 전화번호를 받는다던지 조양동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까마득히 모르는 사이였다. 그져 라운딩을 하며 이심전심으로 서로에게 공감을 가지며 즐겁게만 지내온 터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나날이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가만히 감나무 밑에 앉아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시니어 클럽이라는 핑크빛 조끼를 입은 회원들이 코스모스처럼 일렁이었다. 조장들이 각 조의 앞에 장수처럼 서고 각 조장들이 오늘의 시합을 악수로 다짐하고 있었다. 운영이사의 경기 규칙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핑크빛 조끼들은 네 명씩 한 조가 되어 줄줄이 티업으로 들어가고 나는 6조이니 의자에 앉아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라운드 주변은 코스모스가 줄을 지어 하늘거리고 있었고 하늘은 맑아 바래고 주저앉은 마음도 불끈거리고 있었다.
시합이 끝나고 50여명의 회원들이 바나나와 송편과 음료들을 마시면서 스코어보드의 등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달 한 번씩 있는 월례대회에는 5등까지 상을 주어서 노인들의 무료함을 환희로 달래 준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용솟음치는지 등수가 발표 되면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를 하는 저 젊은 노인들, 80의 언저리가 무색할 정도로 팔팔하다. 3등에 호명이 되어 의아한 표정으로 나아간 주름진 노인에게 환호와 축하의 박수가 가을하늘에 퍼지고 이 정도면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하는 희떠운 생각이 눈 앞에 문득 스쳐 지나갔다.
심장판막 수술은 심장을 고르게 뛰게 도와주는 인공장치다. 조금만 무리해도 호흡에 문제가 와서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수시로 쓰러지고 마당에 풀을 뽑다가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쓰러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조양사장은 자기가 지은 죄라고도 했다. 부부간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자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주어 저런 지경이 되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점잖고 말쑥한 신사가 그럴리가 의심했지만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수시로 입원을 하니 늘 비상이라는 것이었다. 일 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주차장에 수 많은 차량들이 밀물처럼 빠져 나가고 알천벌 위로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사람이 평온하게 산다는 것이 참 힘든 것 같다. 인생이 다 그렇지만 일생이 고통의 연속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매일 우아한 인생을 살려고 노력을 한다. 많이 늦은 듯 하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이른 것이라 생각하며 그날 그날을 산다. 바보처럼 푼수처럼 우아한 인생을 살고 싶다. 가을달이 저리도 둥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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