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애물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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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애물단지
나는 2주일에 한번꼴로 집 앞에 있는 300년 된 정자의 마루바닥을 쓸어 낸다. 기역자 모양의 물에 뜬 누각의 마루가 늘 하늘에 열려 있기 때문에 온갖 새들이 정자 안의 구석구석을 자유로이 드나든다. 둥지를 짓기 위해 갖은 나뭇가지를 물어나르고 그 잔해들이 마루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싸리나무의 둥근 기둥으로 지어진 정자라 구석구석 아무리 날아 보아도 둥지를 틀만한 여유가 없다. 그런데 둥지의 잔해야 빗자루로 쓱쓱 쓸어내면 쉽게 처리가 되지만 그 놈의 새똥이 늘 문제다. 물동이에 물을 길러오고 걸레로 비비고 닦아내야 눌어 붙은 새똥이 겨우 사라진다. 그러니 빗자루를 들고 마루에 올라서면 한숨이 절로 깊어진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뜻밖에도 주범은 내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 못했던 후투티란 새였다. 아침이면 인사처럼 들러 잔디마당을 기웃거리며 걷던 그 우아한 자태에 홀려 한참이나 유리창으로 숨죽여 보던 그 신사의 풍모를 지닌 그것도 열대의 나라에서 오신 귀한 손님인 후투티였다. 처음에는 새도 저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품격을 지닌 새가 있구나 하면서 감탄을 하고 매일 찾아오는 후투티 사랑에 얼이 빠져 아침이면 으례히 이 귀한 손님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후투티에 대한 사랑의 열병이 달포쯤이나 짙어질 때쯤 발길이 뜸하더니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손님을 기다린 것이 석달이 넘어갔다.
쓰레기 투척의 주범을 찾아 몇날을 관찰한 끝에 정자의 굴뚝을 들락거리던 두 마리의 후투티를 발견했다.그 우아한 날개를 펼쳐 굴뚝을 들락거리는 후투티의 모습을 상상을 하지 못했던터라 언뜻 갸웃은 했지만 따듯하고 안전한 곳이 그곳일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부부가 새로운 둥지를 틀려고 분주히 정자의 천정을 드나들었다. 고군분투로 몇몇일을 고생했으리라. 그렇지만 촘촘히 마감되어 있는 300년된 이조시대의 목조건물이 호락호락 이들 부부에게 집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초를 놓을만한 구석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바닥에 쓰레기는 필연적이었다. 보기보다 미련한 구석이 있는건지 지금도 계속 공사중이다.
꿈결 같은 기억으로 우리사랑을 간직하고 싶었다. 청초하고 우아한 모습만 기억하고 싶었다. 이렇게 내게 너의 잔해로 인한 애물단지의 모습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머리에 달린 벼슬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체신을 지켜야지. 내가 마당에 둥지를 틀어주마. 그리로 오시기를 바란다.
후두득 난간에 앉아 있던 후투티가 허공을 날아 오른다. 깜짝 놀란 노인이 허공을 찡그린다. 마스크를 쓴 노인이 후투티의 잔해를 애물단지처럼 쓸어내고 있다. 혼잡한 마음을 하나하나 쓸어내며 사랑의 찌꺼기를 담고 있다. 지나친 사랑은 애물단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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