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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이 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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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02회 작성일 24-11-03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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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이 타는 계절 





해마다 입향조의 가을묘제가 있는 날이면 치술령 아래에 있는 고천골로 간다. 소나무 간간히 보이는 갈참나무 숲길을따라 한참이나 걸어 올라야 선조의 혼령을 모시는 재실이 있다. 도포가방을 들고 비틀거리며 오른 언덕에는 선조님을 영원히 사모하고 기리는 집이란 영모재의 현판이 석봉체로 선명히 걸려 있다. 지난 봄에는 도난당한 현판의 복원을 위해  서각집을 드나들며 오래되고 단단한 고목의 판자를 고르고 글자체를 골라 보름을 다듬고 쓰다듬어 현판제막식을 성대히 치렀다.


해마다 선조의 산소 앞에서 직접 참배를 하던 옛 예법을 벗어나 올해 처음으로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영모재실 안에서 강신을 먼저하며 기제사의 예법으로 묘제를 올리기로 문중에서 결정을 했다. 고산준령에 있는 선조님들의 산소에 다 늙은 노인들이 일일이 제물을 들고 이동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이 피치 못할 현실적인 이유였다. 이구동성으로 그리하자니 그리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개밥에 콩 나오듯이 간혹 참여하는 젊은 종친들을 위해 유세차 하며 수백년을 이어온 곡소리 같은 축문을 우리글로 풀어서 짓기로 했다. 바야흐로 문화의 대변천의 시대가 왔다. 몇몇 노종친이 주름이 찡그려지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패전의 장수처럼 처져 있는 노종친들을 보면 안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도 없지만 대체로 문화의 대변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는 표정들이다.


집사분정을 하고 헌관과 축관이 정해지니 도포꾼들은 도포끈을 동여맨다. 읍장 출신 종친이 제집사를 맡아 낭낭한 목소리로 홀기를 낭독하고 이에 초헌관은 엄숙히 제상이 놓여 있는 선조님 앞으로 나아가 엎드리니 산골의 바람마져도 일순 고요하다. 열선조님의 영령 앞에 엎드린 후손들은 숨결마져 엄중하고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선조님을 기리고 있었다. 분향에 오르는 향기가 사위를 맴돌고 오랫만에 선조님들과의 조우에 모두가 흥감하여 엎드린 세월이 거기 있었다.


축문의 글자 하나하나가 허공에 타오르고 퇴주잔에 어른거리는 후손들을 보면서 과연 영령이 계신다면 얼마나 감복하고 계실까 하는 꿈결 같은 생각이 산골바람을 타고 넘실대는데 사신하시겠습니다 하는 목소리에 언뜻 정신을 차린다. 병풍을 접어내고 제상을 물리며 수 많은 제관들이 음복의 행사를 위해 자리에 길게 늘어 앉는다. 같은 피를 나눈 얼굴들이 볼 수록 임의롭고 정겨워 서로의 정담은 끝 없이 이어진다. 천리 먼길 서울에서 온 종친에게는 환영의 박수가 산골을 울렸고 성공한 종친의 헌성금에는 위로의 박수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세계 유일의 우리네 혈족문화, 시대는 번거롭고 거추장스럽다고 등을 돌리고 있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 과연 그들이 없었으면 무슨 재주로 이 세상에 나와 인생을 향유하고 있을까. 주인! 음복주 한 잔 드시지요 하는 소리에 허허로운 생각들이 재실의 대들보로 흩어지고 있었다. 200년의 상량문이 추상 같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맑은 가을바람이 산허리를 훑어 내려오고 있었다. 

추천2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물가에아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올해는 유세차~~~~를 빼시고 축문을 읽어셨다니
시절 감각이 남 다르시고 확실한 선구자들 이십니다예
오랜 정서의 어르신들 기분 흡족하시지 않으셔도 양해 해주시는것이 참 고맙습니다
우리네 혈족 문화가 자손 만대로 이어나가길 축원 합니다
날씨 쌀쌀 해 졌습니다
감기조심 하시고예 행복하신 11월 되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맡은 마지막 시대, 남들이 다 바뀌니 바꾸어 보려 노력중입니다
태산 같은 일들이 어깨를 짓누르지만 그래도 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우리시대에 선구자적인 이정표를 놓으려 노력중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감기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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