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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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인심
지난 여름에는 싱싱한 상추봉다리를 수시로 던져 놓더니 가을이 되니 단감봉다리를 비롯한 가을 곡수들이 하나 둘씩 대문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상추봉다리야 뒷집에서 담 넘어로 던져 놓으니 뒤집에서 넘어온 것이 분명했지만 솟을대문의 작은 문 앞에 무시로 던져 놓은 가을의 선물은 갸웃하면서도 알 수가 없었다. 지난주에는 흙이 묻은 갓 캔 고구마를 한 봉다리 주셔서 점심으로 가을을 호호 불면서 포삭한 고구마를 게걸스레 먹었고 봉다리 안에 같이 따라온 잘 익은 대추로 입가심을 하면서 달콤한 시골 인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과연 누가 이 가을의 선물을 놓고 갔을까?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유배하듯 온 신입 귀향객이야 처음에는 전원생활을 즐긴답시고 잔디도 깎아 보고 채전밭도 가꿔 보기도 하였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식겁을 하고나서부터는 아! 나이들어서는 전원생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해서 수십 년간 몸에 밴 도회의 정서로 순식간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 두개만 해결하면 되다 보니 야채나 과일도 조금씩 사다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굳이 노부부가 부실한 체력으로 밭에서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전원생활의 로망인 밭일들은 접고 잔디 깎는 기계를 하나 사서 잔디만 관리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이웃의 노인들이 다 왕성하게 농사를 전업으로 짓고 있었고 걸음을 못 걸어도 기어 다니면서 밭일을 하는 노인도 있었다. 저러다 뙤약볕에 죽지 하면서 늘 걱정을 하지만 때가 되면 일어나 앉은뱅이 전동차에 올라 집으로 가는 것을 보면 과연 농사도 천직이 있구나하는 어설픈 생각이 설핏 들기도 하였다. 그들이 일생을 가꿔온 천직의 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눈물겹고 감동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소문에는 저 부부가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가 마을의 이슈 중심에 섰다. 친인척이 이웃에 많이 사는터라 가족처럼 걱정을 해 주셨다. 어쩌다 골목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근심어린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안부를 물어 왔다. 나야 태생이 본향이라 별 걱정이 없지만 고향이 서울인 마누라가 근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마누라도 벌써 이 년이 되었다. 같이 죽을려고 열심히 살고 있다.
부부가 운동을 하고 주차장을 들어서는데 대문 앞에 가을 무우 두 단이 놓여 있었다. 마누라 장단지 같은 허옇고 실한 무우가 여덟개나 대문 앞에 뒹굴고 있었다. 소스라치는 마누라의 방정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마누라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무우의 시퍼런 머리채를 들고 대문안으로 사라지고 나는 주차장에 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사방을 둘러 봐도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회지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시골인심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너무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성가시기도 했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그 것이 우리네 시골인정이고 시골 인심이었다. 마누라는 아직도 다정한 시골 인심을 거북스러워하는 모양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정한 손길들을 찾아 노인정에라도 들릴 것이다. 귤이라도 한 박스 사 들고 마을을 한 바퀴 휘 돌아 볼 것이다. 온 동네가 노오란 은행잎으로 채색 되어 있다. 은행잎이 가을처럼 내리는 오후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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