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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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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0회 작성일 24-11-1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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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부르스 





노랗게 물이 든 잔디가 가을 햇살에 누워 있다. 아내가 내려오면 깎겠다고 초가을 부터 벼르고 벼르다 미뤄온 일이라 용기를 내어 창고에 있던 뽀얗게 먼지 앉은 기계를 꺼내고 전선줄이 감긴 도르레를 풀어 보일러실 전원에 소켓을 꽂았다. 전원을 이어 잔디를 깎는 기계라 방향을 이리저리 바꿀때 전선줄이 몸과 기계에 감기지 않도록 오른쪽으로 돌면 왼쪽으로 줄을 넘기고 왼쪽으로 돌면 오른쪽으로 넘겨 기계가 움직이기 수월하게 도와주는 중요한 도우미 역활을 아내가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스텝이 꼬여 수월한 진행이 어려운 것이 우리집 잔디밭 부르스다.


윙하며 칼날이 돌아가는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고 긴장된 눈으로 핸들을 밀고 나가면 정돈된 축구장처럼 기계의 꼬리를 물고 새로운 길이 나온다. 잔디길따라 긴장하는 아내의 눈빛이 따라다니고 오른쪽으로 길게 돌면 줄넘기 줄 넘기듯 전선을 왼쪽으로 크게 넘긴다. 그나마 정방형의 잔디밭은 스텝이 잘 맞는 파트너와의 부르스 처럼 마루를 미끄러지듯 스무스하게 잘 돌아간다. 행복한 부르스에 취해 마음이 녹녹해질 때쯤 난관이 거기 도사리고 있다. 마당 구석에 듬성듬성 서 있는 세 그루의 소나무 사이사이가 언제나 가장 난코스다. 특히 스텝이 꼬인채로 담벼락에 붙어 소나무 뒤쪽을 밀어나갈 때면 기계를 미는 사람이나 줄을 잡고 따라오는 사람이 초긴장 상태가 된다. 나무가 있는 곳이 구석진 곳이라 전선이 모자라기도 하고 나무 주위를 돌며 깎아야 하니 보통 난제가 아니다. 두 노인의 스텝이 헝클어지고 기계소리가 멈추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해진다.


매콤한 생강차 한 잔을 들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 두 노인이 일 같지 않은 일에 무기력한 체력이 허탈한지 마주보며 미소짓는다. 당신! 첫아이 낳고 이사할 때 냉장고도 짊어지고 2층을 올라 가더니 이제 어쩔 수 없나 보네! 밤새 가구정리하고 말끔히 청소하며 새벽까지 일하고도 아침에 거뜬히 출근하더니 우리도 이제 많이 늙었나 봐! 아내가 하나마나 할 희떠운 소리를 날리자 불끈 자존심이 쏫아나서 노인이 청년처럼 일어선다. 


깨끗이 정돈된 잔디밭을 보니 올 해 할 일은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마음 마져 정돈이 된다. 매년 행사처럼 이어지는 잔디밭 부르스. 우리는 얼마나 더 저 잔디밭 위에서 인생의 부르스가 이어질까. 황혼이 질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슴 깊이 새긴 사랑 영원토록 잊을 길은 없는 데... 문득 황혼의 부르스를 흥얼거리는 오후다. 내일도 새로운 스텝으로 부르스를 넘실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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