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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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단장
우리집 대문 밖 양쪽으로는 내 키보다 조금 큰 소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지난해에는 나지막한 내 키만하더니 올해는 소나무순이 훌쩍 올라 제법 쳐다보아야 할 정도로 자랐다. 대문안으로 들어오면 오른쪽으로 아담하고 제법 풍성한 마누라 같은 소나무가 기와담장을 배경으로 서 있고 또 오른쪽으로 조금 간격을 두고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또 한 발짝 건너 언제나 선머슴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 왜소한 배롱나무 한 그루가 가을바람에 잎을 다 떨구고 가엾게 서 있다. 또 오른쪽으로 내 키보다 작은 그렇지만 단단한 壽木 같은 소나무가 얌전히 서 있고 마지막으로 그 곁에 우리집의 수호신 같은 朱木이 장승처럼 서 있다. 며칠 전 무청을 한 다발이나 만들어 壽木과 朱木사이에 줄을 묶어 걸쳐 널어둔 무게 때문에 힘든 두 나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볼 수록 임의롭다.
어제는 잔디정리를 하느라 마누라와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췄으니 오늘은 마당의 나무들을 가지런히 전지하고 겨울준비를 마치기로 하였다. 나지막한 사다리를 준비하고 팔 길이 만한 전지가위와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손가위와 작은톱 하나를 노오란 손수레에 싣고 대문 밖을 나선다.
제법 큰 가지들은 톱으로 싹둑 잘라내고 웃자란 소나무순들은 작은 손가위로 이발하듯 전지를 한다. 소나무 전지는 가지를 잘라내다가 수시로 멀찌감치 나아가 전체의 모양을 디자인하고 제법 예술적 의식을 가지고 겉 모양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작년에는 초보 이발사가 조금씩 조금씩하며 잘라 낸 소나무가 깡총하여 겨우내내 안쓰럽다는 생각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 했었다. 그렇다고 무성히 자라는 소나무들을 그대로 둔다면 한옥의 자태가 덜하게 되고 나무 때문에 우거진 한옥의 자태는 볼품이 없는 것이다. 작은 나무는 아담한 겉모습을 따라가며 잘라내고 또 풍성한 소나무는 다이어트를 하듯 뭉텅뭉텅 잘라내 가벼운 마음을 만들어 간다.
썩어진 솔가리들을 일일이 긁어내고 잘라내며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듬성듬성 잘라내 주는 것이 관건이다. 속을 들여다 보면 나무도 앓고 있다. 구석구석 마른 잎들이 쌓여 썩어가고 있다. 하나하나 털어내고 썩은 가지를 잘라 낸다. 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4년 전 어줍잖게 정기검진에서 발견 된 암, 부랴부랴 상급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하고 북새통을 겪었던 시간이 먼 옛날얘기처럼 꿈결 같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수술대 위에서 숨을 몰아 쉬었던 4년 전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나무를 붙잡고 호흡을 하고 있다. 기적처럼 돌아 온 생,나무처럼 살아가리라 다짐을 한다.
머리를 깎고 머리를 감으며 수건으로 머리를 털듯이 시원하게 잘라낸 잔가지들을 빗자루로 털어내고 바닥에 떨어진 가을의 잔해들을 노오란 손수레에 차곡차곡 담는다. 소나무의 잔가지들은 버릴 게 없다. 겨우내 잘 말려서 솔가리가 되면 그 보다 더 화력이 센 겨울땔감이 없다.불멍을 좋아하는 손자라도 서울에서 내려 온다면 마당화덕의 환한 열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사그라져 가는 솔가리 위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던 손자가 문득 보고 싶다. 밤이 이윽하도록 祖孫의 마시멜로 같은 정겨운 대화가 그립다.
잔잔히 누워 있는 세월을 밟듯 노오란 카펫 같은 잔디밭을 서성인다. 장독대 옆에 쌓인 가을의 더미를 보면서 풍요로운 겨울을 기다려 본다. 몇 년이라도 건강한 겨울을 소망하고 싶다. 다음달의 완치판정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 보 몽* 詩人니-ㅁ!!!
"계"詩人님의 文香을,感動으로 吟味합니다`如..
"겨울"準備를 하시는,詩人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種親"의 "대들보"이신,"계보몽"任을 우러러 尊敬합니다..
"계보몽"任의 完快를,眞心으로 祈願드리며..늘,康`寧하세要!^*^
계보몽님의 댓글

안박사님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늘 찾아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술후 귀향생활이 벌써 2년이 넘었네요
겨울준비가 의외로 간단합니다 ㅎ
완치판정을 기대합니다만 워낙 약골이라 겁도 납니다
여한 없는 세월 미련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