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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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길
동방에서 통일전으로 걷는 오리 길은 은행나무 죽죽 늘어선 길이어서 가을이면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무수히 걷는 길이다. 이제 가을이 짙어지니 노오란 은행잎이 햇살에 나부끼고 아스팔트 위에 흩어진 샛노란 이파리들이 오리나 되는 포도를 가을바람에 부대끼며 누워 있다. 금빛 이파리를 밟으며 통일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가을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길이다. 좌우로 펼쳐진 가을 들판에는 느지막한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전장의 탱크처럼 달리는 채곡기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마을 어귀에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아득한 은행나무 꼭대기에 있는 까치집은 마을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할머니들의 말씀이 저 까치집에 올라가면 이따금 마을에서 사라지는 씨암탉도 털이 뽑힌체 누워 있고 개구리도 두 눈을 껌벅거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물뱀도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구심과 호기심이 발동한 서너명의 마을 개구장이들이 모였다. 그 중에 날렵한 장극이가 의기롭게 나서면서 내가 올라 가 볼게 하며 웃통과 바지를 벗으면서 헤진 런닝구와 광목빤스 차림으로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에 찌를 듯 쏫아 있는 매끈한 피부의 은행나무를 과연 장극이가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은 벌써 열자나 오른 장극이의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뻗은 가지 하나하나를 잡으며 잔나비처럼 잘도 오르던 장극이가 조그만 매미처럼 보일 때 힘에 부치는지 나무를 안고 한참을 머물고 있었다. 아직 절반도 못 오른 지점이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광열이가 바지를 벗더니 야! 기다려 하면 번개 같이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오르던 힘에 지친 광열이가 겨우 장극이의 발 뒷굼치를 손으로 받치자 장극이가 다시 발돋움을 시작했다. 몇 발작을 오르는 순간 뒷굼치를 받치던 광열이가 균형을 잃고 나무를 미끄러지며 켁!하고 나동그라졌다. 아이쿠!하며 짧은 신음으로 뒹굴던 광열이가 으앙! 소리를 내며 울어대자 고요한 마을이 떠들썩해지고 모사꾼들은 마을 저수지 언덕 밑으로 부리나케 몸을 숨겼다. 광열이 엄마가 아이고 ! 우야노! 하며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 하시고 은행나무 까마득히 오른 장극이는 내려오지도 못 하고 올라가지도 못 하는 엉거주춤한 자태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언덕에 숨어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키득키득거리며 노랗게 떨어지는 은행나무잎을 바라보고 있었다.
옛 할머니들의 전설 같은 얘기는 전설처럼 재밌다. 조금은 속은 기분도 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빙그레 미소가 번져 그 시절이 그립다. 우리가 그 할머니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람 사는 게 참 재미가 있다. 그 때 그 개구장이들은 다 잘 살고 있을까. 소문에 장극이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데 참 보고 싶다.
황금 벌판을 양쪽으로 끼고 통일전을 배경으로 동방을 바라보는 전경은 우리나라에 과연 이 만한 은행나무길이 있을까 싶다. 수 많은 가을 사냥꾼들이 포도에 늘어서 있다. 책보따리를 어깨에 동여매고 6년을 걸었던 오솔길이 쌍전벽해가 되었다. 文川은 에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의 푸름으로 흐르고 정다운 망덕숲은 우리들의 옛이야기들을 품고 언제나 수긋하여 좋다.
노오란 은행잎을 안고 가을의 백발은 해거름에 반짝인다. 성큼 한 발작 세월이 간다. 나는 은행나무길이 정다워서 좋다. 가을은 천상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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