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피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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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지와 함께 메밀로 만든 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메밀 하면 떠오르는 고장 강원도 봉평에서 직접 가져온 메밀로 국수와 전 등을 만든다는 식당에 들어서니 낯익은 사진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메밀밭을 찍어 걸어놓은 액자와 메밀의 효능을 깨알같이 적은 안내판으로 벽면을 장식하였고 메밀로 만든 과자와 메밀가루를 진열해 놓은 판매대도 보였습니다.
오로지 메밀로 만든 음식만을 취급하는 전문 음식점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하여 애를 쓴 흔적은 보이 그 주인이 메밀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산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어봤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다만 식대를 계산하면서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동향의 인연에 대한 주인의 반응이 극히 의례적이어서 멋쩍었다는 것, 그래서 그 후부터는 상인에게 거래 이상의 사적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봉평은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 선생의 고향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인데 이 작은 시골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오로지 가산 선생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마침 나의 귀향 길이 평창을 거치게 되어 있는지라 그럴 때마다 이효석 선생을 생각하게 되고 한 사람의 명성이 그 고장을 발전시키는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가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효석 선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단편소설이지만 작품을 읽는 느낌은 한 편의 서정시를 음미하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달 밝은 밤에 메밀꽃 하얗게 핀 산길을 걷는다는 분위기 자체가 환상적인 데다 그 분위기에 걸맞게 주인공들의 관계를 달빛 같은 은유로 설정하고 있기에 그 글을 읽는 독자도 그 분위기에 편승하도록 만든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눈에는 보이지만 열기가 없는 것이 달빛이기에 직접 피부에 와닿는 자극은 없습니다. 다만 가슴에 스미는 애틋한 정서로 인하여 많은 이야기를 생산하는 요소가 되어왔고 그 빛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영혼의 문신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봉평에서 대화로 넘어가는 80리 산길을 걸으며 20년 전 봉평의 물레방앗간에서 있었던 성 서방네 처녀와의 사랑 이야기에 조선달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지만 그 이야기에는 묵묵히 따라오는 청년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임을 암시하는 은유가 암호처럼 들어 있습니다. 동이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들은 허생원은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내일은 그 어머니가 사는 제천으로 가자고 하는데, "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 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들렀다.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
봉평이 아니더라도 예전 강원도 산간에서는 메밀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화전(火田)이 많은 지역은 온 산자락이 메밀꽃으로 덮였고 메밀로 만든 음식은 늘 먹는 일상의 메뉴였습니다.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전은 자주 먹는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음식이지만 예전의 내 고향에서는 평범한 음식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도 어린 눈에는 그저 평범한 야생화처럼 보였는데, 그러나 이효석 선생은 그 평범한 꽃을 가지고 한국문학의 금자탑을 쌓으셨습니다. 회상해 보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달 밝은 밤에 언덕을 넘을 때면 산 아래 화전을 하얗게 덮었던 메밀꽃. 그때는 그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꽃인 줄 몰랐고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는 비유는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봉평이니 대화니 제천이니 하는 지명이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이유는 명절 때 고향에 가가 위해서는 이 지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눈에도 익고 귀에도 익어서 정겨운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은 시가지인 대화를 지날 때면 맛으로 유명한 막걸리를 서너 통 사서 아버님께도 드리고 형제들과 한 잔씩 나누던 추억이 있어서 더욱 정이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강원도 어느 지역에서도 메밀을 재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봉평은 메밀꽃 그 자체가 관광상품이기 ]때문에 산지로서의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이 과연 소방울 딸랑거리며 산길을 걷던 장똘뱅이의 정서를 얼마나 재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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