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우는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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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우는 뻐꾸기
새벽이 잔잔한데 밤새 그렇게 울던 뻐꾸기가 목이 쉬었다. 목소리 하나 둘 세어가며 울던 뻐꾸기가 여명이 올 때까지 시름시름 울더니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났다. 새들도 밤새 울면 목이 쉬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왠지 슬펐다. 참으로 긴 세월 참 많이도 아팠다. 40이 넘어 가족력의 DNA가 스물스물 피어 나더니 당뇨증상이 오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도 당뇨로 일평생을 시달리며 고생을 하셨고 외할아버지께서도 당뇨에 의한 밭톱의 괴사로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쓰러져 가셨다. 아버지도 식전에 나가셔서 말술을 드시는 소문난 주량때문에 내내 위장병을 안고 사시더니 느닷없이 폐암으로 돌아 가셨다. 만취한 늦은 밤에 꼬나문 지친 삶을 한 입 깊고 맛있게 들이켜서 입으로 코로 굴뚝의 연기처럼 내뿜던 아버지의 줄담배가 치명적이었다.
내가 60이 넘어가고 한참을 지났을 때 정기검진에서 느닷없는 폐암 소견이 나왔다. 약질 체력에 디스크마져 터져 허리 수술 한지가 얼마 안 되어 허리에 복대를 차고 몸을 추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버지도 폐암으로 아까운 나이인 60중반에 돌아가신 터라 안사람의 지청구에 일찌기 담배를 끊었고 만사여의할 줄 알았으나 가혹한 신의 심판은 차갑기만 하였다. 하도 기가차서 진료의의 말에 긴가민가하며 상위 병원에서 재진찰을 하니 과연 우주의 작은 별 같은 점들이 폐부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안사람이 울며불며 뜬금없이 자기 잘못이라며 나를 붙잡고 울고 있었고 아닌 밤에 홍두께격으로 나타난 암때문에 집안이 발칵 뒤집어 졌다. 왜냐하면 아버지 가 폐암 5개월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료의의 입에서 가족력이 크다는 얘기가 가볍게 나왔다. 기가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수술 후에 40여 년간 이어오던 사업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떠난 금오산 자락의 비어 있는 고택에 내려와 산행의 삶을 시작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 봄에 내려 왔으니 산에 오르면 그 향기로운 산공기가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 산행에 뻐꾸기들이 내 머리 위를 따라 다니면서 울어댔다. 옛날 민둥산에서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는 그런 한가로이 울던 뻐꾸기들이 아니었다. 가지 사이를 날면서 웃음 같은 울음소리도 들렸고 대화 같은 울음을 들으면서 향기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면 건너편 소나무 가지에 앉아 우쭐거리며 나그네를 희롱하기도 하고 쌍쌍이 보란듯이 허공을 날기도 하였다. 이즈음은 낙이 산행뿐이라서 산으로 오르는 길에 만나는 모든 것이 나의 친구요 나의 대화상대가 되었다. 이따금 산길에서 다람쥐와 산토끼를 맞닥뜨리기도하면 처음에는 오싹하기도 했지만 그것들도 자주 보다보니 정이 붙어서 임의로와 안녕 하고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수행승처럼 살아가는 내 인생의 망중한이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암이 완쾌 되어 가는지 6개월마다 검진하던 것이 이번에는 1년이나 있다가 오라고 했다. 천리길 병원 순례길이 늘 부담스러웠던 차에 가벼운 마음이 되어 내려왔다. 그 사이 뻐꾸기들도 세월따라 많이 늙어 갔는지 새벽에 가만히 울음소리를 기다려 보면 외마디 쉰소리의 뻐꾸기 울음만 힘겹게 들리지 4년전에 산행을 할 때 그런 요란한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다 어디로 갔을까. 한 달 살이 안사람도 소식이 캄캄하다. 늙은 나이에 뭘 그리 즐겁고 바쁜 일이 많은지 한 달째 소식이 오리무중이다. 이러다 죽으면 사람들은 고독사라고 얘기 하겠지 하고 생각하면 서글프고 허망하다. 그리운 뻐꾸기 소리들, 고향 같은 뻐꾸기 소리가 기다려진다. 새벽에 우는 저 외마디 울부짓는 뻐꾸기 소리가 이제는 지쳐 쉬었다. 쉰 울음소리가 내 목소리 같아 서럽다. 내 호흡에 내 깊은 폐부에 맑은 공기와 청아한 소리를 향기내어 불어주던 뻐꾸기 소리가 그리운 아침이다.
댓글목록
안산님의 댓글

병환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나마 완치단계가 되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규칙적인 산행이 큰 도움이 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뻐꾸기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만 아지랑이 피어 오르던 고향의 봄날 앞산 뒷산에서 들리던 뻐꾸기 소리가
꿈결처럼 그립습니다. 신은 행복과 시런을 번갈아 주시는가 봅니다. 저도 심장 시술에
허리까지 안좋아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만 뾰족한 수가 없네요. 낮은 산행과
운동으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늙어서 그려러니 하며 살아갑니다. 계보몽 작가님 건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