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갓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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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갓을 걸으며
능갓의 왕릉길은 소나무길이라 언제나 다정하다. 새라도 지져궈 준다면 하늘이 더욱 파랄 것이고 이렇게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은근히 슬퍼져서 천년 전 왕릉의 참배길이 문득 생각난다. 길가에 산풀들이 상큼하고 솔향은 계절에 더욱 짙어져 산소 같은 향기가 난다. 신라의 형제왕이 나란히 금오산 한 기슭씩 자리잡아 오래 된 비석을 안고 즈믄해를 누워 있다. 능갓이란 능은 왕릉이 있어 능일 것이요 갓이란 산의 나무나 풀 따위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땅이나 산이라하니 지엄한 왕릉이 있어 능갓에 들어서면 몸가짐을 삼가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임하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능갓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났다. 10월 초순 초가을 바람이 솔솔하면 송이버섯의 포자도 땅속에서 조금씩 움틀 준비를 한다. 소나무 뿌리의 향기에 이슬이 내려 앉아 송이의 하얀 포자가 주변에 스며들면 땅속의 익균들과 기생을 하며 가을을 풍미하기 위해 송이는 긴 용트림을 시작한다. 송이따기는 새벽 4시에서 8시까지가 적당하다. 왜냐하면 새벽이슬에 송이들이 땅을 밀고 올라오기 때문에 해 뜨기 전에 따야만 상품이다. 그 시간을 놓치면 강력한 가을 햇살에 금방 갓이 피어버린다. 갓이 피어 버리면 송이는 상품이 하품으로 변한다. 그래서 가을에 송이꾼들은 새벽잠이 없다. 캄캄한 새벽에 산을 올라 오전이 다 가야 내려오는 것이 일상사기 때문이다. 퀭한 눈,초췌한 모습으로 새벽산을 훑어 내려온 송이꾼들은 다음 새벽을 위해 저녁 일찍 깊은 잠에 빠진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 어머니가 부엌에서 얘야! 능갓에 가서 된장국에 넣을 송이 몇 개만 따오너라! 하시면 예 엄마! 하고 능갓으로 여동생과 함께 달려간다. 왕릉 지나 절벽 같은 비탈길을 미끄러지며 소나무 뿌리가 길게 뻗어 있는 속칭 송이구덩이로 내려가면 손가락 만한 송이들이 송이밭에 아침거리로 땅을 갈라 머리를 내밀고 있다. 가지고 간 나무로 만든 송곳으로 땅속에서 조심조심 밀어 올리면 봉긋한 송이가 향긋한 향기를 내뿜으며 나동그라진다. 솔향과 아침이슬과 맑은 공기가 화합이 되어 환상 같은 향기가 난다. 아직도 새벽 능갓의 송이향기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여 이따금 마른침을 삼킨다. 된장국에 쭉쭉 찢어 넣은 신선하고 탱글한 송이의 육질은 어떤 고기와도 감히 견줄 수가 없다.
10월이 되면 오사카 출장을 가기 전에 꼭 들리는 곳이 있다. 전국의 송이가 총 집합하는 경동시장엘 가는 것이다. 오사카 본사의 직원들이 한국송이에 맥을 못 추기 때문에 가을에는 꼭 경동시장을 들린다. 그것도 새벽시장을 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집사람과 경동시장엘 갔다. 10월의 경동시장 송이 집하장은 왁자지끌하고 장관이다. 한 철 장사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올라온 하얀자루와 솔잎에 싸인 싱싱한 송이들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1키로에 15만원 할 때도 4,5키로씩은 싼 기억이 있다. 양손에 송이박스를 들고 낑낑대며 오사카 공항에 내리면 사람보다 송이박스를 더 반가워 했다. 야속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이들이니 웃고 만다. 송이를 귀한 손님 대하듯 하는 그들의 호기심을 꺾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에야 송이가 귀한 식품 중에 고급 식품인데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지난 가을에 송이꾼들에게 특별히 부탁을 하여 1키로그람의 송이를 쌋는데 6만원을 주고 싸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도 아는 이를 통해서 산것이 그 정도이니 시장에서 살려면 10만원도 족히 넘을터다. 한 철 반짝 그것도 한달 남짓에 소비하는 식품이니 귀하고 비싼 건 당연한 이치이겠다. 그것을 참기름에 발라 불판에 데워 먹기도 하고 된장찌게에 넣어 옛날을 소환해보기도 하였지만 그맛이 그맛이 아니었다. 세월이 가면 입맛도 달라진다더니 싸리버섯이나 표고버섯처럼 그져 심드렁했다. 세월도 변하고 입맛도 변하니 오늘 점심엔 노루궁댕이 버섯이나 불판에 굴려 볼까 한다. 고 보송보송한 궁댕이를 잘 데워 한 입 깨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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