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풍경 " 나이가 무슨 벼슬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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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볼일을 마치고 전철로 귀가를 하는데 맞은편 노약자석에 앉은 한 노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승객이 문을 닫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인은 젊은 승객에게 호통을 치는데 노인의 표정을
보니 여간 험상궂은 게 아니다. 큰 체구에 눈알까지 부라리는 걸 보니 누군가가 한 마디 대꾸를 했다가는 변을
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호통을 받은 젊은이는 흘깃 돌아볼 뿐 별다른 반응 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맞은편 좌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집 거실도 아니고 대중교통인
전철의 통로인데 저렇게까지 역정을 낼 필요가 있을까. 설사 문을 닫지 않았다 해도 그 문은 승객이 수시로 드나드는
출입문이고, 더구나 지금은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겨울도 아니니 굳이 문을 닫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데도 노인의 호통은 그칠 줄 몰랐다.
그 노인의 관심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 저 봐라, 자는 체하고 있는 거 봐라 "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여성은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자리를 뜨고 말았는데, 그 여성이 앉았던 자리에는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영아를 대동한 보호자 등의 이니셜이 그려져 있었다. 젊은 여성이 노약자석에 앉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노인은 왜 그곳을 자신들의 전용석이라며 고집을 피우는지 정말로 모를 일이다.
한 때 이 좌석이 노인 우대석인 적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합법적 노인 연령인 65세 이상인 사람은 우선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었으나 그 후 이용 범위가 바뀌어 지금은 노약자 보호석이 되었다. 따라서 노인은 물론 몸이 불편한
환자나 임산부, 영유야를 동반한 보호자 등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은데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부
노인은 아직도 이 좌석을 노인 전용석으로 오해하여 몸이 불편한 젊은이나 임산부가 앉을 경우 시비가 벌어지는 모습을
종종 본다.
다행이 요즘의 전철은 칸마다 임산부 전용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임산부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역으로 그마저
무시하고 그 좌석을 점거(占據)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타 승객들의 눈총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다만 고의가 아닌 실수나 무지에 의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전철을 운영하는 기관이나 업체는 이에 대한
홍보에 신경을 써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을 열었으면 닫는 게 맞고, 건강한 사람은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맞다. 그러나, 전철의 문은 승객들이
수시로 여닫기 때문에 통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고, 임신 초기의 여성은 외형상 신체적 변화가 없으므로 자칫 오해를
살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앉을만해서 앉은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매도하는 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나이 먹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왜 저리도 소란을 피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가뜩이나 노인 비하가 도를 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요즘, 노인들은 나이에 맞는 품위를 지키며 조용히 무임의 대접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그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머릿속은 여러가지
생각으로 어지럽기만 했다. 노인도 사람이라 감정도 있고 아직은 노익장의 기개도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은 여생을 꾸려가는 에너지로 사용해야지 남을 괴롭히는 데에 쓰면 되겠느냐는 생각이 머리와 가슴을
맴도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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