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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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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183회 작성일 15-08-19 18:57

본문

어느 날 버스를 탔을 때
마음을 놓고 어디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여름의 끝에
에어컨이 나오는 창가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뒷자리, 구석을 좋아하는 습성

사생활이 보장될 것 같지 않은
공개된 맨 뒷자리보다는

뒷바퀴의 진동이 느껴지는
그래서 살아 있는 자는
느낌으로 매 순간 흔들거리는
자리가 좋겠다.

버스는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버스를 타면
나로부터의 출발이고
내가 탄 버스는 언제 다시 타게 될지

기약도 없고
미련도 없다.

버스를 타자마자
목적지까지의 정류장을 세는 버릇

창을 스치는 풍경을 즐기지 못함이나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내는
마음에는 여유가 없다.

버스를 타고
무게의 중심을 잡기에는
앉은 자세보다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때가
더 쉽다.

체중의 한계점을
무릎에 혹사하지 않기 위해
매 정거장의 빈자리를 스캔하는 버릇

이 또한
편하게 목적지를 가고 싶은
누구나 갖은 습이다.

버스를 타자마자
49개의 정류장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결코 원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고
꼭 가봐야 한다는 강박으로
오후 한 나절을 준비했다.

늦 여름에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8월의 햇살은
그늘과 대조적으로 따가웠다.

봄 아니면 가을의 양복에
와이셔츠는 날을 세워 반팔이었다.

넥타이는 거북스러워
주머니에 구겨넣고

양복의 상의를 들고 걷는 모양새가
새로 산 구두가 거북스럽듯이
풀어헤친 첫 단추의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기다리지마,
밤을 새거나 새벽에 올거야"

이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을 때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습관처럼 뿌려되던 향수
말끔히 머리단장과 샤워를 끝넨
외출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러면 않되는데

실수를 돌려놓기에는 약속시간이 임박해
집을 나서는 출발부터
어금니에 껌이 낀것같은 찝찝함이었다.

쪽방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타행의 CD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수수료를 물면서까지 지갑을 채웠던 건
가는 길에 언제 다시 은행을 들릴지
알수없었다.

Tamp을 켜고
대중교통을 검색하고

어느 코스를 갈 것인가?

입맛을 고르고
도보 표시가 없는
환승구간의 최단 거리를 찾았다.

생각은 단조로울수록
시간을 멀리 돌아가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는
번잡하고 빠른 길이 오히려
갈등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의 환승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버스를 탔을 때
목적지까지
한 시간 반의 거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역시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 할 때는
무념무상의 시 공간 속으로
생각을 비우거나

끝말잇기처럼 생각의 생각을
꼬리표를 붙이는
글쓰기가 어울릴 것 같아
휴대전화를 열었다.

삶과 죽음.

어쩌면 건널목을 무심코 건너는
인생의 교차로 같은 일은 아니었을까?

삶에 큰 의미를 두고 사는 것이
마치 큰 산에 오르는 노고처럼

죽음이란 뜻밖의 일

그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망으로
만드는 일이다.

죽음도 생의 일부이듯

누구나 한번은 맞이해야 할
단 한 번의 생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생로병사
이처럼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을 것인데

아침밥을 드시고
건널목을 건너다가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돌아가셨다니
안타까운 죽음이다.

손주를 보았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살 만큼 살았다고
그렇게 담뿍 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누가 그 죽음에 정의를 하겠는가?

죽음 앞에서
산 자는

애석한 죽음
안타까운 죽음
저마다 믿는 신의 낙원을
마음으로 분양해야 한다.

어찌 살아야 잘 살았다는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관념일 뿐

죽음은 이 모든 생각을
흙에 묻고
덮어 주어야 할
산 사람의 생이고

그의 부덕이 아닌 공덕이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는 48개의 정류장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름한 70년대의 이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서

"성모병원이 어딥니까?"

물었을 때
모퉁이를 가리키는 행인의 손끝을 돌았더니
현대 시설의 마천루가 눈에 들었다.

좁은 이차선 도로에서는
간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더니

시야의 폭은
눈앞에 벽을 만나야
트이는 줄 새삼 깨닫게 된다.

무작정 언덕길을 오르는데
성모마리아 상이 반겨 주었다.

'이 곳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금연 표시가 마리아 상을 빙 돌아

'호흡이 불결한 사람은 정숙하시오!'
무언의 금기가 막아섰다.

"영안실은 어디죠?"

목에 명찰을 매단 남자직원은
계단을 쭉 내려서면 왼쪽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죽음은
나이와 비례한 사회성으로
보게 되는데

영안실은 병원의 가장 깊숙한 곳이거나
폐기장과 인접한 후원의 뜰이거나
주차장을 개조한 듯한 지하에 있었다.

죽음은 은밀하고
곡소리는 새어나가지 못하는
산 자들이 사는 곳과 분리 수용해야만

집값의 상승이나
늘 접하게 되는 소리의 우울증으로 부터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쯤으로
달리 해석될 수 없었다.

안내대의 경비는
무미한 시선을 출입구에 두고 있었다.

"문을 닫아 주세요."

그의 역할은 '냉방 중'이라는
오직 그 문구의 수문장이라는 듯이

자동문을 지나
양문형 강하 문의 한쪽 문이
90`으로 열린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안내석에 근조라고 인쇄가 되어있는
흰 봉투의 검은 한자를 뒤집어
이름마저 검정싸인펜으로 써야하는
일련의 요식절차가

장례식장에 들어
처음 대면하는 일이다.

봉투에 준비한 지전을 세다가
돈에 낙서가 된 하나를 접어
다시 지갑에서 바꾸는 일조차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죽은자의 노잣돈마저 신경을 쓸까?'

돈을 봉투에 넣기도 전에
어정쩡한 자세로
수위의 말을 듣고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에
열려있는 문을 닫아 주었다.

누군가 열어놓은 한쪽 문을
나도 지나쳐 들어 오지 않았나
그 알 수 없는 연대감이 문을 닫았다.

6호실,

푯말을 읽고 있었지만
주머니속에 넣고 온 검정넥타이를
화장실에서 매달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복도의 끝을 돌아보고 있었다.

검정넥타이에는
숫한 사람들의 애사가 묻어 있었다.

'이제는 바꿀만도 한데'

그런 생각들은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불현듯 생각이 나는 걸까?

장롱에 걸려있는
사 오십여 개의 넥타이 중에
검정 넥타이가 없어
밤색에 기하학적 물결의 넥타이를 맸을 때
친구는 문상을 끝내고
내게 벗어 준 넥타이였다.

넥타이의 값보다
검정넥타이를 사는 일이
죽음의 냄새가 나는 듯해서
매번 매장 앞에서 쭈뼛거리지 않았던가?

자식이
노쇠한 부모님의 지팡이를
선물하지 않는다는 타부를
검정 넥타이를 보면 생각이 난다.

낡고 빛이 바랜 넥타이는
어쩌면 나의 슬픔이
사자의 애도에
더 걸맞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한 무리의 교회 사람들이
집회를 끝내고 막 나서는 모습들 속에
친구의 시원스런 이마
나이를 들수록 피부에 윤을 잃어가는
얼굴의 수심을 보았다.

향불에 불을 붙이고
항아리의 국화 한 송이를
단에 올려놓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절을 해야 하나
술잔은 보이지 않는데
묵념을 해야 하나

절을 두 번 하고
상주와 맞절을 했을 때
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사진에서

'누구나 한번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슬픔은 산 자의 몫이고
나는 이제 생의 끝을 마라톤 했다.
그래서 나는 웃을 수 있다.'

고인은 묵언으로
산자의 삶을 깨우치고 있었다.

목에 꽉 끼는 넥타이를 풀어놓고
양복 상의를 곱게 개
좌석 테이블의 곁에 두었을 때

굳이 이 먼 거리를
차를 두고 버스로 내달려 온
갈증을
소주로 달래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런 일이 아니면 얼굴 보기가 힘들다.
친구라고 해 봐야 몇 남지도 않았는데
언제 얼굴 한번 봐야지 하다가
장례식장에서 본다."

친구는 초록이 동색이었을까?

얼마 전에도 만났던 두 친구

한 사람은 아버지
한 사람은 어머니
그리고 다시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모인다는 생각이

이제 내 차례가 오려나
집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에
갑자기 우울했다.

사람이 늙는 것이 외로운 것은
하나둘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다.

늙음은 이를 달관해야
몸에 저승 꽃을 피우고 고독한 걸까?

"어머니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어디 계시지?"

아직 더 사실 수 있었는데
교회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돌아가셨으니

한쪽을 잃은 평생의 지기를
보내는 심정이 오죽할까?

어머니를 두고
친구들이 빙 둘러 앉아
손을 번갈아 잡아 주었을 때

어머니의 총기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죄스러움을 느꼈다.

30여 년 전
학창시절의 도둑고양이들

친구 부모님이 주무시고 있는
안방을 지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친구의 방으로 옮겨놓고 있었다.

어둠을 가르며 들려오는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

"밥은 먹었느냐?"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하염없는 사랑을
밥,
늘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

그 한 끼 거르면 어떻다고
목숨을 걸고 지키셨다.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내 자식 같은 아들들이
행여 술에 몸이라도 상할까 봐
술상을 봐 주시던 고마운 분이셨다.

어머니는 여전히

"밥 먹어야지!"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목이 멨다.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시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문상보다 먼저 도착한
백합의 삼단 화환

"큰일 치러보니
화환은 다 쓰잘되 없는 일이다.
네가 하지 말라면 안 할 놈도 아니고
네 뜻대로 해라."

친구가 여럿이면
개중에 꼭 한 사람은
입이 방정이다.

자신의 부모상에도 받았으면서
화환에 쏟는 마음에
토시를 다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말처럼
하지 말라고 안 할 사람도 아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뜻을 모은 친구들의 이름을
까칠한 친구부터 써 내려갔다.

어머니는 그 화환을 받으시고
내일이 발인인데
첫날부터 아들의 친구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삼일 쓰고 보자고
버려지는 것이 아깝다 생각하면
그뿐이겠지만

그리해서라도 어머니의 머릿속에
아들 친구들의 이름이 되살아나고
다시 불릴 수 있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장례식의 풍습은
제사의 풍습이 다르듯이
현대식의 장례에도 그 예법이 달랐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
살 듯이
그 집안의 종교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종교가 아니더라도
절을 하지 말라 하시면 절을 하지 않았다.

고스톱 문화도 점차 사라져 가고

들리는 말에는
장례식장에 구내식당을 두고
문상객들이 빈소를 찾고 나면
쿠폰으로 식사하고 떠났다.

10시에는 상주 이외에
누구도 장례식장에 남을 수 없다는 것도
새로운 풍습인데

큰일에는 의례 따르는
술도 못 마시게 한다니

곡소리가 점차 사라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겠다.

손님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막차 시간이 임박해서
아쉬움을 두고 일어섰지만

집으로 가는 막차는
간발의 차이로 끊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승용차를 갖고 오는 건데

택시를 타자니
그 돈도 만만치 않고

심야의 할증요금보다
빈 도로를 폭주하는 심야 택시는
타고 싶지 않았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기에는
그 또한 우스운 일이 되었다.

멀리 지방에서 달려온
친구들의 회유와 만류를
뿌리치지 못해
밤을 낮처럼 밝힌 도시의 뒷골목
선술집에 들었다.

묵은김치는 씹으면 씹을수록
곰 삭은 맛을 낸다더니

오랜만의 회후는
시간을 망각한 사람같이
유년시절의 일기를 들추고 있었다.

살아 있는 자들의 밤,

오색등이 찬란한 도시는 잠들 줄 모르고

금방 다려 줄을 세운 와이셔츠의 칼 날이
점차 무뎌지고 있었다.

새벽의 검푸른 여명을 밟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술이나 깨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해장국 집을 찾고 있었지만
결국 '아무러면 어때' 하는 곳이
라면에 김밥이었다.

그렇게 온 밤을 함께 했음에도
무슨 아쉬움이 남았는지

먼저 택시를 타고 가라는
내 뜻을 저버리고
첫 버스까지 친구는 배웅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지나쳤던 차창 밖의 풍경을 되돌려
나의 일상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는 죽음도 삶도
피곤함에 지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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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용담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용담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무르박님 문상에 다녀오셨나봐요
<문상 가는길> 사람이 상을 당하면 문상길
누구나에게 있는 일이지요.
정말 가슴 깊게 전해지는 문상길.
정말 좋은 글입니다.
깊은 사연으로 이어지는 문상가는 길
감사히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아무르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용담호님 다녀가셨네요.
늘 좋은 글 읽고 있습니다.

문상에 다녀오면 느끼는 일이지만
죽음의 의미가 나이 들수록
다르게 와 닿습니다.

죽음은 인생사의 마지막 길 이겠지만
꼭 남겨진 유족들의 표정에서
고인이 걸었던 가족사를 읽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은 정 이겠지요.

문운이 깃들길 빌어봅니다.

몽진2님의 댓글

profile_image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람이 가는 마지막을 보고 오셨군요.
저도 이제는 대부분이 그런 곳을 찾아 다니는
세월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슬퍼서 울었지만 이제는 곱게 보내는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슬퍼하는 것도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아무르박님 건강하세요.

아무르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들이 모두 어둡습니다.
요즘들어 시 마을의 문우님들이나
저 또한
죽음을 소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삶 자체가
보고 느끼고 행하여지는 것들이다보니
일상의 소제들이 이와같다는
어찌보면 평이한 것에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몽진2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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