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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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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711회 작성일 15-08-26 23:17

본문

폭풍이 물러가는 아침의 출근길은
먼 산의 등고선을 선명하게
친구처럼 다가섰다.

늘 보던 산이었는데
내가 저 산을 올라본 게 언제였던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여지없이 막히는
차량의 꽁무니를 따라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었다.

일상처럼 다가서는
번잡한 하루의 일,

생을 다 살아 본 사람처럼

내가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아는 것이 행복이었는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여름은
8월의 햇살을 길게 늘여 놓고
길을 잃은 사람처럼
나는 왜, 표류하는가?

여행은
긴 여정에서 집을 생각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인생은
돌아올 곳을 알고 출발한
여행은 아니었을까?

저마다의 꽃으로 물든
가로수 밑에 코스모스
저마다의 색으로 가을을 열었다.

코스모스를 보면
아버지를 찾아 오른 던
공원묘지의 오르막길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코스모스를 좋아하셨을까?

이맘때쯤에는
마당의 울을 가득 채운 노란 해바라기가
서로의 키 높이를 재며 꽃을 피웠고
나팔꽃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물봉선화를 함께 심으셨다.

'바닥을 기지 말고 하늘하늘 올라라!'

빨랫줄을 얼키설키 엮어 주면
나팔꽃은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푸른 자주색, 붉은 자주색, 흰색, 빨간색
꽃들이 기상나팔을 불었다.

울 밑에 핀 물봉선은
가을의 연민이었던가?

붉은 속 내를 꽃잎에 가득 물들이면
새끼손톱에 물들이던
수줍은 아가씨들
백 일이 지나기 전에 사랑을 꿈꿨다.

그 아씨들의 수줍던 얼굴들은
어느새 손주를 보고
중년의 삶을 고랑 깊이 얼굴에 새겨
노년으로 접어들었는데

사무실 앞 빌라에 만발한
능소화,

담을 타고 뒤늦게 오르는
호박잎과 노란 호박꽃,

"사장님, 여기 좀 나와 보세요."

칠십 하고도 다섯을 더 드신
이웃의 전기 가게 사장님은
나이를 거꾸로 세서
오십 일곱이라 하신다.

육십도 안된 청춘이라 하시더니
귀가 어두웠다.

"사장님, 사장님
여기에 호박이 싹을 피웠어요"

아스팔트와 인도 사이에 뿌리를 두고
초록의 호박잎이 대여섯 개 열렸는데

"그 건 호박이 아니라 참외예요."

길을 지나치던 중년의 여인이
한마디 톡 쏘고 지나간다.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래, 네가 참외였구나'

도시인의 삶이란
과일 자판에 열매만 먹고 살았는데
어찌 참외의 줄기를 알았겠는가?

사장님은 아시고도 시치미를 뚝
때시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먹구름은 낮게 떠밀려가고
아침 출근길의 애상은
철없이 핀 참외 줄거리처럼
엉뚱했다.





















추천1

댓글목록

아무르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버지의 마당에는
해바라기도 물봉선화도
나팔꽃도 가득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 생활에는
화분에 화초들이
인공조미료를 가미한 맛처럼
씁쓸하네요.

어쩌면
화분에 담아둘 수 없는
코스모스가
아버지가 꿈꾸시던 자유는 아니었을까요.

6, 25 참전 용사의 서훈을
찾지 못하여
시집간 누이들과 저는
가슴을 쪼이고는 했습니다.

누이가 국방부 홈페이지에 쓴 글을
계급이 높은 분이 보시고
특별지시로 잃어버린 병역기록을
찾았습니다.

김포의 공원묘지는
삼십 년이 지나면 이전을 한다기에
점점 산을 오르는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이 걱정이었습니다.

호국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을 화장해서
이장을 작년에 했습니다.

해마다 추석이면
산소 가는 길에 코스모스는
이제는 볼 수 없겠지요.

늙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합장한 수 있다기에

지금부터 60년
연장하면 다시 60년을
나라에서 관리해 준다기에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살아생전에
얼음이 꽁꽁 언 강물에 부교를 설치하시느라

발을 주물러라
허리를 밟으라 하시던 아버지의 신경통이
이 나라 자유를 지키시려 얻은 병이었다는 게
송구스럽습니다.

형제들의 서정과 감수성이
아버지의 정을 대물림해서
글을 쓰다 보니 좋은 날도 있습니다.

어느 분인지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 또한 군사비밀이라 하니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몽진 2 님,
추석이 다가오려는지
코스모스가 만발하네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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