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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874회 작성일 15-09-26 22:54

본문

부산 사투리의 악센트가
침을 튀는 남자는
부동산 간이 소파의 오후 햇살처럼
눈동자에 적의심으로 빛났다.

마스크를 한 채
눈만 번뜩이는 깡마른 중년의 여자는
그의 아내였을 것이다.

꺼벅 머리가 순박하지만
호기심이 가득했던 청년은
해맑은 웃음으로
시종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약속 시각보다 늦으면 어떻게 할까?'

애써 태연한 척
목소리의 톤을 다듬는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 목소리에서
먹잇감을 노려보는 포수의 가늠쇠를
느낄 수 있었다.

승용차에서 오토바이로 갈아탄
악셀을 땅기는 힘은
늦지 않겠다는 약속과 자신감에 대한
발로였다.

그런데 문 앞에서 쭈뼛거리고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 산소의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일요일에 미리 다녀오자 던 약속을
두 번씩이나 어기고 있었다.

토요 휴무제가 정착하는 요즘
일요일마저 제 맘대로 실수 없는
자영업의 고충은
벌써 이 주째 있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다녀와야지 했다.

벼렸던 칼날이 무뎌지기 전에
결심은
꼭, 차가 막히는 주말에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평일이면 어떤가?'

'이 또한, 자영업을 하는 사람만의
자유가 아니었던가?'

아침을 먹고
출근 시간을 피한 늦은 출발이었다.

찬합에 김밥을 포장해 주는 아주머니에게
'김밥을 너무 성의 없이 썰어 준다.'
핀잔을 했을 때,
'아버지의 산소에 가져갈 김밥입니다.'
부연 설명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성의 없기는 매만 피차일반인데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단골 과일 집에 들려
배 하나,
사과 하나,
땡감은 없다, 하여 묽은 감 세 개를
샀다.

"사과도 조금,
배도 조금 뛰어 산소 주변에 던져 주고
술도 넉넉히 부어 줘."

못마땅했다.
때아닌 훈수다.

"과일이나 팔면 되지
남의 잿밥에 관심이 많아요.
사과는 더 붉고 좋은 놈,
배는 제일 크고 밝은 놈으로 주세요."

비릿한 여자의 웃음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촌놈에게
바가지를 씌워 보겠다.'는
계산법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장사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
신용과 약속이다.

무엇을 팔 것인가 생각했다면
'그곳에 무엇으로 나를 담아 낼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태가 눈을 떴다. 감았다.
조기가 노래를 해요!"

그리고 한 박자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호기심의 목소리

나는 사무실 창밖의
확성기 소리에 이끌려 갔었다.

1톤 화물차의 생선 장수에게서
'영업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충격으로 뒤통수가 얼얼했다.

생선장수의 노점 차에는
나와 똑같은 호기심의 아주머니들이
먼저 알고 모여 있었다.

실하게 보이는 대물 생선과
물 좋은 꽁치들

언제 퇴근 할 줄 모르는 일과였지만
꽁치를 필요 이상으로 구매했을 때
냉장고에 넣고 생각했다.

'그가 오늘의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담아내고 있었을까?'

단골 가게라는 노점상의 할머니,
아내는 유독 그 할머니의 가게를 즐겨찾았다.

마주한 생선 노점의 할머니는
과일 좌판 할머니의 동생이었다.

자매의 짙은 화장과 똑같은 파마머리는
푸석한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희끗희끗한
흰 머리의 뿌리를 감추지 못했다.

친절을 과장한 장삿속은 어쩔 수 없는
그녀들만의 뼛속 깊이 침전한
생활의 단편이었다.

과일 가격에
흥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일 년에 한번 찾아가는 아버지의 배웅이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자식이 된 도리였다.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하나 집어 들었을 때,

"네 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시큼하고 걸쭉한 막걸리도 좋았지만
소주를 드시면 어떤가?'

성묘 끝에 남은 소주 한잔이
내게는 달콤한 기다림이였다는 걸
어머니는 모르셨다.

가을 하늘에
드넓은 바다로 항해하는 흰 구름이 마치
희망을 안고 펼친
흰 돛단배 같은 아침이었다.

고속도로 요금소를 접어들어
서울을 벗어 날 적에
굴레를 벗어버린 우화의 껍질 같은
날개의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짧은 정체마저
작은 설렘으로 다가서는 아침이었다.

뒤늦게 찾은
6ㆍ25 참전 용사의 서훈이었다.

사설 공동묘지의 30여 년에 역사는
밀려드는 아파트의 개발의 목 졸림으로
언제 파헤쳐질지 알 수 없었다.

작년에 이장을 했다.

60년을 나라에서 관리해 준다는 말보다
부부는 나란히 합장할 수 있다는 말에

"내 죽어 갈갈 곳이 생겼다."는
노모의 그 씁쓸한 한 마디에
형제들은 위안을 삼았다.

산 길을 오르는 전기 셔틀버스에
어머니를 태워드리고
아내와 산길을 접어들었다.

이장으로 뼈를 수습하느라 무거웠던 마음은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지 않았는데

가을 들판의 황금색 논과
올망졸망 삼삼오오 모여 있는
시골집과 들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멋진 풍경으로 한껏 부푼 가슴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휴대전화의 사진에는
언제나 가장인 내 모습이 없었다.

어쩌다 마주하는 사진에는
독사진이
늘 똑같은 표정으로 비스듬히 서서 찍혀 있었다.

틈만 나면 찍는 사진 속의 어머니,
많이 늙으셨다.

언제까지 담아낼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는 기약이
푸른 가을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잠시 잠깐 먹구름을 드리웠다.

참배를 끝으로 다시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만큼

'나, 이 세상 떠나는 날은
홀연히 바람처럼 나비처럼
망고 강산 훨훨 날아가리라!'

할머니의 한 많은 세상의 유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였을까?

'자식을 앞세운 할머니의 한이
얼마나 컸을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유언처럼
화장으로 한 줌 재를 뿌려졌을 때
할머니는 바람처럼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셨을 것이다.

'그토록 애달파 했던
아들 곁으로 돌아가셨을까?'

먼 길 떠나기 전에 들리는
화장실 앞에서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은 평생의 친구라 했다.
육 남매의
아들 하나를 귀히 여기지 않으시더니

"다 늙어 내가 복이다.
네 할미가 대를 이을 아들을 못났는다고
소실을 들이시려 하더니
말년에 외로울까 봐 너를 봤다."

친구가 좋아 전화도 없이
이틀 밤을 나가자고 들어 왔을 때

'나는 죽었구나!' 했다.

어머니는 끓는 속알이를 뒤로 한 채
"밥은 꼭 먹고 다녀라!"
저녁상을 차려 주시 던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아들을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방목을 하는 줄 알았다.

"사내는 젊어 세상을 두루 살피고
경험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말씀하셨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들어
자식을 셋이나 엮고 보니
홀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얼마나 대범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걸려 온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은 조급하게 옥죄어 왔다.

영업으로 다져진 직장생활을 끝으로
자영업으로 들어선 이십 년,

매일매일의 불안은
'오늘은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일희일비 하지 말자 칼을 갈지만
숫돌에 무뎌지는 칼날이
세월을 이길 수 없는 희망과 갈등의
중간지대의 회색 구름이었다.

여유롭던 평일 정오의 풍경은
영업전화 한 통화로
삶의 악다구니 속으로
액셀을 밟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미뤘던 성묘를 다녀오느라
늦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부산 사투리는
알 수 없는 적의 감을 토로했다.

삼 년 전,
보증금 삼천에 월 삼십오만 원에
세를 놓았다.

서울에 사는 동생이
재개발 지역에 투자를 추천하기에
호가에 지금의 집을 샀다.

세를 놓고
재개발을 기다리면 되려니 했던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그의 세입자였다.

서 너달, 월세를 붙이더니
연락을 끊고 집을 찾았으나
그의 부재만 있었을 뿐이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애끊는 심정을 안고 찾았다가
돌아서야 했을 집 주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일 년 반을 기다리다 못한 집 주인은
법원에 명도소송을 냈다.

다시 일 년 반의 시간이 지나
승소를 이끌었고
집달관과 경찰의 입회 아래 문을 열었다.

집 주인과 가족들은
처참한 광경에 기절할 듯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쓰레기와 악취
그리고 벽지에 엉겨 붙은 곰팡이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쓰레기나 치우면 되려니 했다.

이미 좀이 쓴 부엌가구와
악취와 오물에 눌어붙은 장판
그리고 화장실 부품은 도금이 벗겨져
처참한 몰골이었다.

집안을 둘러보고
이미 체념한 듯한 집주인의 심경을 헤아려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왔다.

"세입자가 눈치를 보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입자를 잘 들여야
월세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겁니다.
전면 개보수가 필요합니다.
차근차근 견적서를 작성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침묵,

주인 남자는 견적서가 얼마나 올라올지
급한 성격을 누르고 기다리는 눈치였다.

재개발을 목전에 둔 집에
주인은 미련이 없어 보였다.

이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수리해서
집을 팔고 싶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다시 세를 놓을 것이다.

이것저것을 고려한 최소비용에
합산 금액을 뽑았다.

주인은 부엌가구를 새로 들이는 문제로
또 한 번 망설이는 눈치였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무리 집수리를 잘해 놓아도
남자와 여자가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여자는 부엌가구와 화장실 개조가
마음에 들면 만사 좋고
남자는 집안의 어느 구석이든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면 그만입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도
점차 여자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모계사회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돈은 남자가 벌어도
돈은 여자가 쓰는 겁니다.

이제는 화장실도
부엌가구도 문화입니다.

부엌가구가 너무 더러우면
가족의 위생이 걸려있는 문제라
양보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체념이라도 한 듯이
'그래, 던져보자'
하는 심경으로 부엌가구를 포함시켰다.

도저히 화장실 개조만큼은
말을 꺼낼 수 없을 것 같은
남자의 셈법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가격 흥정,

남자의 논리가 재미있었다.

푼돈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여비를
공사금액을 깎아 만들고 싶어 했다.

십 여만을 깎아 주었을 때,
그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공사를 하는 겁니다.
돈이라도 시원하게 싸 주십시오."

그는 지갑을 꺼내
계약서도 없이 계약금을 백만 원을건넸다.

처음 부동산에 들어서서부터
계약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고작 삽 십분 안팎이었다.

그가 얼마나 좌절 했나를
반증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제 뜻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아니라는 걸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사는
첫날부터 복병을 만났다.

메케하고 역겨운 쓰레기 더미에서
세입자가 버려둔 소주병을 헤아리고 있었다.

소주병이 97개,
사이다병이 한 개,
수 없이 버려진 라면 빈 봉지,

물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노점의 포장마차에서나 볼 법한
일회용 빈 접시에 덫 씌운 비닐봉지,

분식점의 떡볶이, 어묵, 순대를 담던
일회용 그릇과 비닐에서
그가 얼마나 단조로운 식생활을 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먹고 나면 휙~

방이며 거실이며 싱크대 위에
던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삶의 자포자기였다.

빌라 101호의 남자는
몹시 불쾌한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102호의 남자가 열어놓은 창 너머로
쓰레기의 악취가
도저히 참기 힘든 지경에 다다랐다.

관할 경찰서로, 구청으로, 주민센터로
민원을 재계했지만
사유재산 침해라는 이유로
누구도 102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심지어 집주인조차도

둘째 아이의 출산으로
참다못한 101호 남자는
본가에 두 달 동안 피접 살림을 살아야 했다.

101호 남자의 선택은
집을 팔고 이사를 결심하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환기를 시켜놓으려고
열어놓은 창문에
101호 남자는 집주인과 언쟁을 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부동산 사장님을 호출해서
출입문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창문을 닫게 했다.

나는 그 쓰레기통에 코를 박았다.

방독면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스며드는 역한 냄새는
인간의 가장 취약한 점을 파고드는
박테리아 같았다.

흠뻑 젖은 땀방울에도
갈증으로 마시던 생수에도
잠시 쉬어가리라 피워 문 담배 연기에도
냄새가 났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생활 쓰레기를
100ℓ 전용봉투에 담아내고 있었는데
베란다에 쌓여있던 묵직한 검정 비닐봉지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엄습했다.

죽은 생선의 사채일까?
썩은 김치의 포기들의 뭉근한 느낌일까?
먹다 남은 냉장고 음식물 이었을까?

장갑을 낀 손끝에 전해오는 전율은
그 남자의
사체 토막을 담은 것만 같아
상상의 나래는 소설책 한 권을 쓰고 있었다.

오후에 일을 나간다는 지층 102호 남자의
말을 빌려보면
작년 12월에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돈이 없어
동네 슈퍼에서 담배를 세 번이나 훔치다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한다.

'밥인들 제대로 먹었을까?'

'그의 삶에 담배란 어떤 존재 일까?'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새벽에 분식점에서 사온 음식을
계단에서 먹었다고 한다.

'전기와 수도, 가스가 끊어졌던 것일까?'

그 남자의 부재중에도
단전 단수 예고장은 발견되었지만
수도도 전기도 열려있었다.

단지, 가스의 밸브만이 잠겨 있었다.

그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자신의 집에 들어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하루의 수고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치울 수 있었던 쓰레기더미였는데
그는 굳이 치우려 하지 않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우편함에 꽂혀있는
한 무더기의 사채업체의 최고장과
독촉고지서를 보면서
그가 행방불명 된 것이
영화에서나 봄 직한 인신매매나
범죄에 연루 된 것은 아니었을까?

대부업체의 돈을 여러 곳에서
빌려 쓴 정황으로 볼 적에
그의 신용과 금고는 바닥을 쳤을 것이라는
추측을 유추하고 있었다.

방 문짝마다 기름때처럼 배어나는
니코틴의 누런 때는
문짝을 송두리째 떼어 차에 실었다.

곰팡이와 음식물 찌꺼기로 오염될 되로 된
주방가구를 분해해서 차에 실었다.

장판을 벗겨내고
이제는 도배지의 껍질을 한 겹
두 겹 벗겨냈다.

세면대와 뚜껑이 이미 분리된
까만 때 자국이 얼룩진 변기를 떼어 냈을 때
일 톤 화물 차의 쓰레기는
그의 무덤에 봉분처럼
차의 지붕을 넘어서고 있었다.

식욕을 잃어버렸으나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곡기를 원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든 김밥집,

김밥 한 줄을 시켜놓았지만
그의 체취에 묻어 난 악취의 세뇌는
김밥 반 줄에서 손을 멈추게 했다.

겨우 물 몇 모금으로 삼켜야 했던
김밥 반 줄에서
나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겪게 되는 희한한 풍경,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에서
돈 몇 푼에 나 자신을 팔았다는
자괴감마저 들고 있었다.

"방바닥에 똥을 싸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집 주인에게 건넸던 말이 생각나서
곱씹어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 불황의 늪 속에
그는 나의 동업자였는지 모른다.

철저하게 짖뭉게 놓은
그의 체취가
집 주인의 체념을 끌어내었고
손 싶게 계약을 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를 향한 어떤 적개심도 분노도
토로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로 인하여
내 삶의 집착과 끈적끈적한 애착에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문 틀에 에너멀 페인트가
일고여덟 번 덧칠 되고
새 문짝이 달렸다.

도배와 장판이 시공되고
각종 콘센트와 스위치가 교체되었다.

새로 단 조명은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주방가구와 신발장이 새것으로 설치 되고
세면대와 좌변기가 교체되었다.

모든 수도꼭지는 새것으로 바뀌었다.

화장실 입구에 비대칭으로 컸던
거울이 교체되었을 때,
집안의 분위기는 따스한 가을 햇살이
온화하게 느껴지게 했다.

난방의 분배기가 동파해서
새것으로 교체 하고 보니
오래된 보일러에서는 따스한 온수가
힘차게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그 누가 오더라도
살고 싶은 집,
가족들의 안위와 행복을 지켜 줄 수 있는
집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새로 단장한 타일공사를 끝으로
그의 채취는 사라졌지만

집주인의 체념과
101호 남자의 불편했던 심기가
그 어떤 노력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로 상경길에 둘러보겠다는
집 주인의 기대치보다

이번 공사로 느꼈던
한 남자의 몰락이
우리 이웃의 아픔이었고
도시 빈민의 단편적인 삶의 그늘이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전하리라'

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에 버려진
노숙자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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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몽진2님의 댓글

profile_image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편의 단편고설이요 시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르박 선생임의 글은 언제 읽어도 곱고
심금을 울립니다.
좋은글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면서 아쉬워
감히 추천올립니다.

아무르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몽진 2 임,
댓글 감사합니다.
조금은 여유롭게 추석을 보냈습니다.

달을 보셨습니까?

슈퍼 문이라더니
처가의 골목을 환히 밝힌 달빛이
제 서정에 외등을 켜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동안 뜸했지요.
일에 사무쳐 문필을 꺾고 살았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보람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될까 합니다.
향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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