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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있어 산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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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4회 작성일 15-09-30 21:28

본문

부산 태종대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바다의 경치
그리고 오륙도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내겐
죽고 싶었던 곳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내 나이는 고작 스물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 입시에 대한 부담감과
가난한 집안 형편,
이성에 눈을 뜨고 있었다.

첫사랑은 갈망만 남겼다.

힘없이 돌아서야 했던 이별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다가섰다.

욕망, 갈등, 사랑, 가난
내게는 죽어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 시절 읽었던 책들은 하나같이
철학, 종교, 삶과 죽음에 관한 글이었다.

무엇보다
이 세상 끝내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

나는 이미 바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이 세상 끝내는 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올라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마치 바닥에서 찾은
마지막 비상구였다.

생각이 관념에 포로가 되면
결코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끝없는 수렁이었다.

앨범 속에 나는 이미 죽었다.

가위질로 하나 둘
추억이 갈기갈기 잘려져 나가더니
끝내
마지막 불쏘시개로 사라졌다.

너무나 단조로웠던 배낭에는
헤르만 헷세의 책 한 권과
갈아입을 속옷 한 벌
지금 죽더라도 이는 닦고 싶었다.

칫솔과 쓰다 남은 치약 조금

서울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편도 요금과 버스비 정도면 충분했다.

생을 분탕질 친 것도 아닌데
온실 속에 화초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내게는 단 한 번도 온 것 같지 않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누구도 내게 손 내밀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
세상에 나만 홀로 남은 것 같은
고도,

그것은 고독이었다.

시계 초침의 울림마저
심장 박동의 호흡을 신경 쓰게 하는
자신의 내밀함 속으로 자꾸먼 침전했다.

'간간이 다가서는 가로등이
몇 개나 지나쳐야 부산에 다다를 수 있을까?'

어둠 속에 스쳐 가는 풍경들은
달빛에
너무나 고요히 멀어져 갔다.

유리창에 투영한 내 얼굴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고흐의 자화상이었다.

머리를 기된 차가운 쇠기둥의
미세한 떨림만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냉소적인 울림이었다.

불규칙한 듯
금방 익숙해지는
열차의 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람을 쐬러 나갔을 때,
객차와 객차를 이어주는 중간지대에서
선로의 특의한 기름 냄새는

처음 타본 열차도 아니었건만

희망을 거둔 울렁임에
빈속은 헛구역질을 하게 했다.

눈물마저 씨가 마르면
머릿속은 하얗게 흰 눈이 내렸다.

집착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평화를 찾아 숲으로 날아든 새 한 마리,
이름을 불러 주는 이 없어
공허한 바람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끝없이 몰락하는 잠에서조차 
꿈이 없는 생활은
현실의 도피가 되지 못했다.

세상에 철저히 버려진 들
모질게 일어서야 할 이유가 남아 있다면
삶은 노 저어 갈 것이다.

'왜, 수 많은 날 중에
밤은 수채화를 그려낼 수 없는 것일까?'

어둠만은 아니었다.

한 줌 빛조차 없는
숲길도
음영의 밝고 어둠이 존재하는 것을

붓을 들지 못한 화가는
귀동냥으로 세상을 그릴 것이다.

삶은 달걀로 식욕을 속이고
뜬눈으로 밤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의 푸른 빛은
별똥별의 긴 여운을 남기고
꼬리를 문
또 다른 횡성으로

기차는 꼬리를 물고 있었다.

부산역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알리는
새벽의 기적 소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불시착한
한 사내의 표류기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단조로운 배낭에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수동적인 몸짓으로
결연코 뜻을 이루리라
막연한 관념에 몸을 일으켰다.

기필코 태종대는
단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초행길이었다.

아침 뉴스에 잠시 보였던 푸른 바다,

어떤 이에게는 아침을 여는
네트워크의 시대의 희망찬 아침의
풍경이었을 것이었다.

죽음을 생각했던 내게
더없이 평화로운 세상의 바다에
내 모든 갈망과 좌절을
송두리째 던져버리기에 좋은 곳이라 여겨졌다.

부산역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쓰다 남은 치약으로 양치질했다.

입을 씻는 행위처럼
내 입에 오욕을 씻어 낼 수 있다면
세안의 맑은 눈으로
이생의 미련은 씻어 낼 것만 같았다.

부산역 앞 광장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를 모르고 오른 산행의 낙마였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의 눈총을 피해
계속 움직여야 했다.

광장을 가로지른 버스정류장에서
태종대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었다.

여명은 밝아 오고 있었지만
도심의 어느 곳에서 태양이 불쑥
고개를 내밀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고민과 갈등의 숨바꼭질 속에서
새벽의 여명을 뚫고 쏟아 오르는
암묵의 바다,

붉은 태양을 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태양이기를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보고 싶은
것인 줄
의역하고 있었다.

첫차는 유난히 밝은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뚫고 다가섰다.

손님이 하나 없는 빈자리에
태종대라는 빨간 글씨만 보고 탄
종착점을 시간표대로 읽고 있었다.

말은 아껴야 했다.

꼭,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천금처럼 말문을 닫는 것부터
천문을 닫는 연습이었다.

또다시 엄습해 오는 고독,

차창에 어리는 얼굴에서
죽음의 빛깔을 찾아내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호젓하고
평화로운 잠결에
기상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이었다.

'이승에 버려두고 갈 것은 무엇인가?'

'배낭을 벗어둘까?'

'신발을 모아둘까?'

'살아온 날에 대한
집착과 허무를
한 장의 유서로 남겨둘까?'

'이 모두를 떠 안고
새처럼 날아오르리라'

버스의 종착은 태종대에 멈춰 서고
이윽고 시작한 솔밭 사이로 이어진 산행이
한 걸음식 걸음의 제족을 띄울 때마다
심장의 박동은 무겁게 눌렀다.

요금소에 불은 꺼져 있고
태양은 솔밭 사잇길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지막한 오름길에 8부 능선에서
'태종대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
온몸은 전율처럼
내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탁 트인 바다,
구름에 가려진 수평선 넘어
안개는 밤의 기척을 몰아
잠을 깨우고 있었다.

'들어가지 마시오.'

말뚝을 박아놓은
느슨한 쇠사슬 넘어 바다는
긴 여정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이윽고 안개는 걷히고
태양이 눈에 부신 고개를 내밀었을 때,
한낮을 지난 오후의 햇살처럼
평온하게 다가서는 아침은
세상의 끝까지 달려온 인고의 시간이었다.

먼바다를 무심코 응시하며
무념무상의 수도승처럼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이 세상과 이별하기에는
더없이 밝고 눈부신 푸른바다였다.

몸을 일으켜 세워
금기의 푯말을 넘어 벼랑 끝에 섰다.

무엇을 남겨 두는 것조차 
모두 부질없다는 결론부터
어쩌면 실족사로 남겨질 개연성은
어떨까?

실망의 기대치에 기되
슬픔은
이 세상에 남겨진 자의 몫으로
나를 치장하고 푼 생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굳은 결심으로
한 발 두 발 절벽의 끝으로 다가설 적에
차라리 가볍게 느껴지는 마음은
결연히 실행으로 옮겨놓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의 길은 없었다.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놓았을 때,
눈을 감지 않기로 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벽 끝에 바다,

불끈불끈 쏟아 오른 암초들 사이로
파란 물결은 포말로 부서졌다.

검은 새 한 마리,
아니다.

검은 새는 두 마리였다.

고개를 처박고 바닷속으로 자맥질하면
또 다른 새는
바닷속에서 고개를 내밀 때까지
바다 위를 빙빙 유형을 했다.

새가 고개를  수면위로 내밀고
젖은 날개를 펼쳐 물기를 털어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새가 물속으로 자맥질했다.

몇 번인가?

수를 헤아려 볼 겨를도 없이
갯바위 주변에 둥둥 떠 나란히 유영하는
검은 새 두 마리,

서로 부리를 문질러 되며
너무도 다정히
바다 위를 유영하는 것이었다.

어떤 묘사로
눈의 풍경을 형용할 수 없는
삶의 애착과 행복하게 보였던 모습은
새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한낮 미물일지라도
서로를 보듬으면 저리 행복해 보이는 구나'

어처구니 없게
두 마리의 새의 율동일지
춤사위 일지
알 수 없는 다정한 모습에
나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리고 왈 꽉, 쏟아지는 눈물

한 걸음 뒤로 물러앉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내게는 죽을 용기마저 없었다.

머릿속에 무섭게 다가서던
어머니의 얼굴에서
나는
눈물을 보았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내 삶의 선택이 없었다면
내 죽음의 선택은 나이어야만 했다.

그것이 내 의지에 대한 선택이었고
내 결연한 삶의 항로에
또 다른 길이라 믿었다.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좌절의 늪 속에서
내 손은 빈손이었고
더는 떨어질 곳이 없는 수평에 누워
이미 나는 바닥,
그 바다에 누워 있었다.

죽음만이 모든 불행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또 다른 관념으로 나를
나락의 끝에 세워놓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내게로 달려왔을 때,

나는 그들을 피해
산의 반대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살인 미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자살 미수라는 불명예를
뒤로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겁 없이 달려온 천 리 길,
버려진 행성에 불시착한 날개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움트고 있었다.

'그래, 살자.
더 이상의 바닥은 없다.'

좌절도 욕망도 가난도
잃어버릴 게 없었다.

OECD 34개국 중에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
그중에 80%는 노인이라는
불 명예의 대한민국,

세계 1위의 노인이 가난한 국가,
교통사고 사망률 1위,
빨리빨리의 문화와
짧은 시간에
마천루를 올리는 세계 1위의 국가,

부동산 투기의 거품을 세계 속에 전파했고
세계는 부동산 계발에 시발점을 만든 나라,

모든 불 명예를 뒤로 한 체
통계와 수치로 보는 대한민국에
나는 미력한 수치를 만드는 중년이다.

하나가 인수분해하고
셋을 만들었고
여섯 식구의 목숨을 떠받들고 사는

돈을 위해서라면
행복을 위해서라면
24시간을 발 벗고 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왜, 사는가?'

자문했을 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내 아들들을 위해 사는 것이다.'

어떤 결론을 도출했을 때,
나는 허탈한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어느 날, TV에서
일본의 한 노인이
자살예방을 위해 견장을 차고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자살 바위로 유명한 해안가를
누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도 나처럼,
젊은 날의 어느 하루
그 해안가 절벽에 올랐다고 한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떠나버린 날
그는 죽음 이외에 선택이 없었다.

그를 죽음에서 건져 올린
계기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살을 포기하고 돌아섰을
그 마음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 이후로 평범한 직장과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는 정년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남들은 쉽게 떠나던 해외여행이나
호젓한 숲 속에 오두막과
텃밭을 일구겠다는 파란 꿈을 접고
찾은 곳이
젊은 날에 방황의 끝에 만난 자살 바위였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그 날, 나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더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다시 죽음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는 남은 생을
한 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까운 청춘을
던지려 했던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이제 남은 생은
헛되이 죽어가는 젊음을 구하리라.

그는 아침에 출근하듯 그곳을 찾았고
간단한 주먹밥을 먹으면서
늦은 저녁까지 그곳을 지켰다.

그가 자살을 생각하고 온 사람의
마음을 돌린 것이
칠십 여건이라 한다.

그는 백발의 노인이었지만
나는 그의 눈빛에서
이런 생각을 도출했다.

'사람은 돈으로
물질의 풍요로
세상을 사는 듯 보이나
삶의 가치는 결국 자신이 만든 것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도 정신병자를 오래 상담하다 보면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시달려요.
어느 날은 죽고 싶다는 심정이 들어요."

인간은 누구나
죽고 싶다는 심정이 드는 것이
결코 정신병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일수록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할 수 있으며
그 말 속에는
자신의 한계점의 바닥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내 삶이
포물선의 꼭짓점에 올라 있기를
소망하고 있지만
인생을 살아보면
하향점에 머무는 날도 있다.

그것은 물질의 풍요에서 오는
정신의 빈곤이 만든 바닥일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의 지점장이 목을 맸다.

그의 풍요로움 속에 정년은
그가 아무 할 일도 없는 초라한 노인,
그의 세계의 바닥이었다.

그가 이룬 물질의 풍요보다
그가 누리고 있었던 지위에 나락은
그에게 삶의 길을 잃게 한 것이다.

그가 수락산 기슭의 소나무에
목을 맸을 때,

원한에 의한 살인이나
자살을 가장한 범죄였을 거라는
가족들의 주장을 경찰은 수사했다.

그의 자필 유서의 발견이나
그가 빨간 노끈을
산행에 앞서 구매한 CCTV의 모습이나
근처 편의점에서 안주도 없이 구매한
소주 두 병,

그 병에 남은 그의 지문과 빈 병,

그리고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은
자살의 정황증거였다.

경찰은 자살로 수사를 종결지었고
한 때, 우리 사회는
그가 업무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시각으로
그의 죽음을 포장했다.

하지만 그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지구 상에 모든 동물 중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포유동물만이
자살을 한다.

고래도 병들거나 늙어 죽을 때가 되면
바다를 거슬러 극지까지 헤엄쳐
자살을 한다.

일명 고래의 동굴,

아직 밝혀지지 않지만
고래잡이를 하던 늙은 선원들의 말을 빌리면
고래는 푸른 빛의 별이 총총한 밤이면
마지막 숨을 크게 들이키고
한없이 깊은 자맥질로
고래의 동굴에 몸을 숨긴다고 한다.

자살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젖을 먹는
포유동물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자살도 삶의 선택이라는 말에
어떤 이는
병리학적인 자 때를 들이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점은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한다.

길에서 길을 잃어버릴 때,

나와 내 가족 말고
누구를 위해 우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는가?

우리는
통계상이나 수치에 나온
자살률 1위 국가에
자살방조 죄를 짓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사람은 아닐까?

나는 묻고 싶다.

길에서 길을 잃을 때,
태어난 것은 순서가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은
꼭, 자살만이 아니다.

내 마음의 문을 닫게 한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고

그것은
고도성장과 빨리빨리 문화 속에
정체성을 잃은 부메랑이
내 목을 칠 수 있다.

자살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도 한 때는
가슴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어머니의 흰 피를 마신
내 이웃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 죽기로 한 사람에게
나는 이 말 한마디를 하고 싶다.

"열심히 일한 당신
자신을 위해 술 한잔 사라!

고독은 죽는 그 순간까지
결코 멈출 수 없다.

지금 죽어야 한다면
그 또한 혼자 감내해야 할 자신만의
몫이지 않은가?

누구나 고독과 타협하고
인내하며
악수하고 살고 있다.

당신의 문제점은
고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당신만 외로웠겠는가?

당신의 침묵으로
당신의 자살로
또 다른 사람을 자살로 이끈다면
혼자 죽지 마라.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다른 한 사람을 위해
살아 줄 수는 없을까?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죽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 어느 곳에서 죽더라도
자살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오직 당신만이 자신의 가치를
가벼이 보고 있을 뿐이다.

바닥이 있어 산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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